한없이 외롭다고 느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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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이리도 외로웠던 적이 있을까.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던 옛날이 좋은걸까.

언젠간 정말 소중한 누군가를 만날거라는 위로도 나에겐 듣지를 않아.

나에게 진정한 교감으로 서로를 위해 시간을 할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텐데.

나에게 하루에 한 번 쯤은 먼저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텐데.

사람들은 왜 안부를 식상하다고 생각할까. 나는 심각하게 묻고 또 대답하고 싶은데.

그런 사람이 있다면 좋을텐데.

지난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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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글을 원하는 만큼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예전에는 아주는 아니지만 보통 이상으로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조금은 상황을 개선해 보고 싶어 예전에 쓴 일기들 중에서 좋은 글들을 며칠에 한 번 씩 올려보려고 예전 일기를 읽었다. 그렇지만 1년만에 다시 읽는 일기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옛 시절의 기억은 단지 기억을 소유한 자를 위해 존재한다. 지난날의 일기를 읽으면 그 기억을 소유한 사람만이 불완전했던 기억을 일기로부터 새로이 이끌어내고 삶의 위대함을 깨닫기에 감동을 느낀다. 라는 건가.

차라리 일기보다는 소설을 쓰고 싶다. 평소에 즐기는 수많은 상상들을 세계화하여 글로 남긴다면 좋겠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겁이 나는 일이지만 일기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의 복잡한 세계를 상징적으로나마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 입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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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연세대학교 소프트컴퓨팅 연구실 (http://candy.yonsei.ac.kr/) 에 출근한다. 연구실은 공대 C관과 공학원에 위치해 있는데, 나는 공학원 2층 225B 호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근무라고 하지만 돈과는 관계가 없고 그저 순수히 연구(?) 하는 일이다.

어제 저녁과 오늘의 토론을 통해 나는 2차원 평면 공간에서의 로봇 시뮬레이터를 제작하기로 했다. 사실 이 부분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물론 어렵게 하면 어렵다), 로봇(에이전트) 프로그래밍에 필요한 인공지능을 프로그래밍하는 것도 아니라서 조금 맥이 빠진다. 더군다가 실제 로봇이 있는 것도 아니니 로봇 에이전트보다는 소프트웨어에이전트 쪽이 맘이 간다. 어찌 하였든 이 일을 끝내면 본격적으로 에이전트를 만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시점에서는 다양한 관련 자료를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팀은 나를 포함해 세 명이다. 한 명은 박사 과정에 있는 김경중씨와, 석사 과정에 있는 윤은경씨이다. 윤은경씨는 착해 보이고, 김경중씨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친절해 보인다. 그러나 선배님의 입장에서 다양한 입문 자료를 소개해 주지 않는 것이 매우 큰 불만사항인데 – 나에게 읽도록 주어진 논문은 기초적인 중간 과정이 모두 생략되어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동작하는지 알기가 어려웠고, 그들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 내일부터는 자료의 수집에 들어가도록 할 예정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수개월 안에 쉽게 깊이 있게 따라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의문점:

학습을 통해 진화하는 에이전트와 학습을 통해 룰을 추가/삭제/개정하는 룰 기반 에이전트의 궁극적인(결과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룰 기반 시스템에 학습을 채용한 에이전트는 존재하지 않는가?

별볼일 없는 하루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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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 해군과 남한 해군의 교전이 있었고, 터키 대 한국의 3.4위전 경기가 있었다. 패스트 푸드점의 콜라 한잔에 돌연히 떨어진 우유 한 방울의 궤적처첨 묘한 구석이 있는 하루였다. 멍청하게 쓰러져가는 내 마음 속 도미노의 잔해가 더 이상 함께 쓰러질 동료가 없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은 이상하고 멍청한 하루였다.

2. KT Card 가 도착했다. 어디서든 동전이 없이도 공중전화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전화는 일주일 쯤 전에 주운 수첩과 필기 노트의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이미 새 수첩과 노트를 구입했을 수도 있겠지만 시도할만한 가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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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구조 성적이 출석에서 8점이나 깎여서 B+ 가 나올것 같다. 매우 자존심이 상한다. 재수강할 여유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서 짜증도 나고 덕분에 학교 시스템을 욕해보지만 이내 그것의 무위를 깨닫는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역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바득바득 간다.

특히 요즘에는 성적에 대해서 신경질적이 되어서 누군가가 내 성적을 보고 ‘아 A 못맞겠네요’ 라고 하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오르고, 이유없이 잘난체 떨어대는 시건방진 후배놈이 ‘데이터구조 같은건 당연히 A+ 맞아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라고 말하면 그를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싶어진다.

화가 나서 일들이 손에 잘 잡히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집중이 매우 잘 되어서 좋았다. 특히 지난 며칠 동안 집중력이 비약적으로 회복된 것을 느낀다.

2002년 1학기 성적과 방학 뒤의 첫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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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 네트워크 리노베이션 공사와 나의 게으름 덕택에 이제서야 일기를 쓰게 되었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은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 같다.

마지막 시험인 컴파일러설계 시험을 보지 않았다. 재수강을 할 계획이기 때문에 하기 싫은 공부를 불필요하게 벼락치기까지 하면서 시험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가혹행위이자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시험 결과가 거의 다 발표되었다. 현재 예상 학점은 A A A A B F 이다. 재수강 과목인 정보와사회가 의외로 다소 부진하여 B 를 맞을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전체 학생들 중 34% 에 들었는데, 홈페이지 제작 숙제를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남는다. 기왕이면 B+ 보다는 A- 가 좋지 않은가.

어쨌든 고의로 포기한 컴파일러설계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우수한 성적으로 학기를 끝마치게 되어서 매우 기쁘다. 다음학기에도 이런 좋은 성적 – 대학 들어와서 최고의 성적이다 – 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제 방학을 시작한 지 3일 정도가 흘렀다. 첫날은 방학 일과표를 만들었고, 둘째날은 일요일이라는 핑계로 여유로운 한때를 보냈다. 오늘은 호연이가 영화 ‘하드캐쉬’ 시사회를 보여주었다. 또한 내일은 정훈이와 은하철도99 친구들과 함께 신촌 술집에서 한국:독일 4강전 응원을 하게 될 것 같아 나의 일과표는 지켜질만한 여유를 보이지 않고 있다. 3일이나 이런 시간이 계속되니 볼안감을 감추기가 힘들다. 흔쾌히 내일의 만남을 약속했건만 지금은 다소 흔들린다. (그러나 약속을 깰 생각은 없다.)

어서 빨리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

2002년 3학년 2학기를 마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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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말시험 기간이다. 학기를 마무리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두 과목 – ‘데이터구조’와 ‘인터넷과사이버스페이스’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름으로서 두 과목 – ‘C/C++프로그래밍’과 ‘컴파일러설계’의 시험만을 남겨놓고 있다. ‘C/C++프로그래밍’시험은 공부 전혀 않고도 최고 점수를 얻는 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컴파일러설계’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C를 면하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텀 프로젝트도 제출하지 않았고, 지난 시험에서 평균을 조금 넘은 정도의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번 시험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좋은 학점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번 학기는 들은 과목 수가 하나 적었고, 재수강이 많았기 때문에, 학점이 잘 나오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고, 따라서 그렇게 기분이 좋지만은 못하다. 좀 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 수도 있었는데 마지막에 그만큼 노력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웠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목요일과 금요일 시험만 끝나면 방학이다. 조심스럽게 계획을 세워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시험보다도 그것을 더 기다리고 있다.

인생의 몇 번째인가의 기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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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내게 엄습하고 있다.

유학을 가고 싶은데, 학부 성적이 좋지를 못해서 좋은 곳에 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캐나다의 워털루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지만 가능할 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우리나라 대학원을 갈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내 능력을 끝까지 발휘해서 원하는 곳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괴심도 든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느 것도 아니고, 공부에 의한 의욕도 매우 저하되어 있다. 차라리 기술고시를 보고 공무원이 되어 어느 정도 보장된 인생을 살아 볼까? 이것 또한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안정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 뿐만이 아니라, 방학이 되면 무엇을 할 지도 고민스럽다. 부모님께서 그렇게 원하시는 자격증도 따야 할 것 같고, XML 출판 프레임워크 만들던 것도 다 만들어야 하고, 좀 더 깊이 Unix C/C++ 을 공부해야 하기도 하며, 돈도 벌어서 사고 싶은 것도 사고 싶다. 수학도 열심히 해서 여러 문제나 증명을 쉽게 해결하고 싶고, GRE나 TOEFL 공부도 한다면 금상 첨화일텐데, 내게는 지금 그 어느것도 완벽히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다.

어쩔 때는 그저 맹목적으로 단 하나를 좇아 앞으로 나아가는 무모한 인생이 멋져 보였고, 그렇게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왜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럴수록 자신의 불완전성에 눈뜨게 되고, 좀 더 무기력해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다.

남들과 다른 삶을 원한다는 것은 이렇게 고통을 수반하는 여정이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덕분에 사랑에 대한 집착도 거의 사라졌다.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희망을 부여잡고 무슨 일을 할 지 결정해 나가기 시작하겠다.

힘내라고 말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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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가 고생하거나 할 때 힘내라고 자주 말하는 편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말이 도움이 별로 안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내 자신이 그런 만을 듣게 되면 화가 치솟는 경우까지 있다. 보통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힘이 더 빠지는 경우가 많다. ‘힘내라고 했다고 힘나는거 아니잖아’ 라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사람에 따라 다르다. )

나는 대신 ‘좀 더 하면 일이 잘 풀릴거야’ 라던가 ‘이렇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와 같은 말이 좋다. ‘힘내’ 라고 말하는 것 보다 훨씬 덜 겉치레스럽지 않은가? 직무 유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만서도, 차라리 한번 꽈악 안고 등을 두드리며 ‘걱정하지 마’ 라고 하는 게 낫다.

실제로 만나면 힘내라는 말보다는 잘될거야 라는 말을 자주 하는 나지만, 인터넷 상에서 누군가에게 힘내라고 실컷 떠들어 놓고 이렇게 말하는 내 모습이 이기적일런지도 모르겠다.

속박으로부터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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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m Project 기한이 다가온다. Java 와 다르게 자원관리가 매우 까다롭다. 아름답게 해결하는 것을 즐기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시간을 두고 음미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성적 입력 마감일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고 싶지 않다’ 쪽으로 내 마음은 기울고 있다.

휴대폰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첫째로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고, 둘째는 좀 튀어보고 싶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 수업 시간표를 알고 학교에 찾아와 술이나 한잔 하자고 권할만한 의지는 있을테고, 내가 보고 싶다면 공중전화를 걸던지 역시 그의 스케쥴을 익혀서 찾아갈테니 말이다. 메신저나 이메일도 있고.

요즘 외롭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겼지만 용기가 나지 않고 있다. 그 사람과 나는 단 한 번 얼굴을 마주쳤을 뿐인데, 이상하게 느낌이 좋다. 거기다가 텀 프로젝트 같은 일들이 겹쳐서 절망에 빠져드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는 다시 달리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