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25일

이 글의 정확한 작성 시각을 잃어버렸습니다.

Port of Notes의 2001년작 ‘Duet with Birds’ 앨범을 구했다. 일본 음악들은 동시대의 한국 음악에 비해 월등한 품질을 갖고 있다. 우선 악기의 음색이 훨씬 고급스럽다. 당시 한국 유행곡들을 들어 보면 그 소리가 유치하기 그지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소리에 빈 틈이 많아 마치 조금 고급스러운 노래방 반주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본 음악은 그런 느낌을 주는 곡들이 거의 없다. 적어도 싸구려 아이돌 음악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것은 일본 음악 시장이 가진 다양성과 규모에서 나오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한국 대중 음악도 어느 정도의 규모와 다양성을 달성하여 좋은 곡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얼마 전에는 추억의 가수 사카이 노리코의 ‘Natural Best’ 앨범을 꺼냈다. 조용히 침대에 누워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 처음 사카이 노리코의 ‘Ten Songs’ 앨범을 듣고 일본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매일 한 장씩 내야 하는 깜지에 히라가나와 카타카나를 빽빽히 채워 일본어 공부도 했다. 장난기 많고 나를 얕보던 녀석이 교실 칠판에 ‘사카이 노리코 바보’ 라고 적고 나를 성가시게 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에게 시디를 테이프로 공짜로 더빙해 주며 사카이 노리코 홍보에 여념이 없었던 나. 지금 생각하면 가벼운 웃음이 난다. 그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때 나는 자/타칭 ‘광신도’ 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사카이 노리코 씨에게 편지라도 한 통 쓰고 싶다. 나의 그 시절과 지금은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 속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그녀의 흔적과 추억에 대해 그녀와 함께 몇 마디 정도 나눌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때 그렇게 받고 싶었던 사인 한 장 받을 수 있다면 참 흐뭇할텐데. 한 번도 눈앞에서 본 적이 없는 그 사람. 그래, 언젠가 우리 모두 은퇴라는 말을 꺼낼 수 있을 때 그렇게 해 보고 싶다.

2005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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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쉬고 싶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사 읽었다.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등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오고 있지만, 왠지 나에게는 낯선 느낌이다. 무어랄까 읽어 보아도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참 잘 쓴 글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당분간은 좀 더 그의 글들을 읽어 보아야 겠다.

2005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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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하늘 아래 한적한 공원. 그 곳엔 나 뿐이다. 조용히 우산을 쓰고 한 발 한 발 딛을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 떠오른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부터 가장 증오하는 사람까지. 이 곳에선 모두 좋은 느낌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다가 작은 지붕 아래에 앉아 조용히 좋아하는 음악을 흥얼거리며 잠시 생각을 비운 채로 아무도 없는 길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멍해도 상관 없으니 한참을 그렇게 즐긴다. 바람이 쌀쌀해지기 전에 다시 조용한 발걸음으로 따뜻한 집에 돌아와 My Song 을 듣다가는 잠이 드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2005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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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다. 마음도 정처 없이 방황하게 되어 시간을 낭비하곤 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새벽이 되면, 아 배가 고프구나, 이렇게 부질없게 시간을 보내 버리고 말았다니, 하는 것이다. 이럴 때 참 내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진다. (웃음)

2005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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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출근하고 없을 이 아침, 늦잠을 잤다. 출근해 이미 스케쥴이 늦어 버린 인수 인계 자료를 준비해야 하겠지만, 여전히 집. 이 뻔뻔한 여유를 얼마나 더 즐길 수 있을까? 매일 매일 더해가는 지각비는 벌써 30만원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한 해의 첫 달이라 부르는 1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도 아랑곳 않고 속도를 늦추었다. 이런 것이 어쩌면 자유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을 깨뜨리는 것. 이렇게 텅 빈 모습은 흡연자의 그것과 유사하다. 담배라는 것이 가져오는 불안함 속의 편안함, 그 안의 無…

그래도 나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이런 아무 것도 없는 시간이니까.

2005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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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는가라는 영원히 풀기 힘들 그 문제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갖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신중히 살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 변화라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나는 대학 시절 갑작스러운 휴학도 해 보았고, 멀쩡한 회사를 다니다가 이렇게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기도 했다. 만약 내가 원하는 공부를 전혀 못할 환경이라면 어쩌면 대학원도 그만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두 가지 인생에 대한 관점이 충돌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변화라는 것은 더 신중해지기 위한 경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동적인 자만이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를 시간을 더 빛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 말로 삶의 시간을 좀 더 만족스럽게 사용하는 방법이 아닌가? 전체적인 맥락 – 인생의규율 – 과 역동성을 함께 유지하는 것 만큼 만족스러운 것도 없으리라.

그래서 나는 나이가 많기 때문에 다시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다지 많은 가능성을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없다시피한 희망에 돈 천원을 걸고 로또를 하지만, 자기 자신의 숨겨진 가능성에는 좀처럼 투자하지 않는 법인지도 모른다. 마이너스가 나올 것 같아 보이는 – 그러나 사실은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는 – 복권은 아무래도 사기가 난처하니 말이다.

2005년 1월 2일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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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좀 더 솔직해질 수 있고, 할 말 못할 말도 하면서 친해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그렇지 않다. 맥주와 같은 술을 한 병 정도 마시게 되면 약간 흥분하여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과 솔직함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또 그것보다 더 많은 술을 마시며 스스로의 건강함을 과시하거나 몸을 망쳐가는 사람들을 볼 수록 나는 술이라는 것이 솔직함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주장 속에는 납득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음을 느낀다.

사람은 왜 제정신이 아닐 때 솔직해지는가? 이는 자기 자신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술을 마시면 저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능력이 정말 저하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제어 능력의 저하로 인해 얻는 것 (상대방의 깊은 곳) 보다 잃는 것 (소위 꼬장이라 불리우는 것들) 이 많지는 않은가? 제어 능력이 있다고 해서 인간이 솔직해질 수 없는가? 나는 이 두 가지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다.

자기 제어 능력의 저하로 그 사람으로부터 더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무언가 나를 위해 숨기거나 내놓지 않은 어떤 다른 감정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즉, 그 사람은 평상시에 나에게 솔직하지 않은 면이 있다는 것으로, 이는 그 사람이 친구가 되기에는 그렇게 적합하지 않거나 친구가 되려면 좀 더 평상시에 솔직해져야 함을 뜻한다. 나는 평상시에 솔직하고 정당하게 나를 대하지 않는 사람이 술이 깨어난 뒤에 나에게 좀 더 솔직하고 정당하게 대해 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겠다. 차라리 평상시에 솔직하지 못하였다가, 나중에 평상시에 그런 과거를 이야기하고 정식으로 사과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해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건전한 동반자로 받아들이겠다.

사회가 복잡해 지고 그들이 권력 관계에 놓이면서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게 했으면 했지 덜 겪게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나쁘게 했으면 했지 좋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셔야만 가면을 벗게 된다는 논리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또 하루라도 빨리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의 가면이 사라졌으면 하고 빌고 있다.

2005년 1월 2일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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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나버린 2004년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한해다. Netty2를 본격적으로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했고, 그 덕택에 Apache Software Foundation 의 커미터 자격도 얻었다. 처음으로 잡지라는 곳에 특집 기사를 기고했고, ‘희승사화‘라 불리우는 연봉 파문 사건도 겪었다. 이 모든 과정의 한가운데에 오픈소스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오픈소스야말로 프로그래머가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다.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은 자가 그것을 즐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한계는 이미 결정난 것이 아닌가? 나는 프로그래밍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오픈 소스와 여러 협업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에게 다가올 수도 있는 성공에의 확률도 거부하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개발자와 소프트웨어 연구자가 살고 있지만 순순히 프로그래밍을 엔터테인먼트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래서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웃음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는 없지만 나와 나의 몇몇 동료들에게는 존재하는 이 세계의 위대함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