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BARANAKUCHA

한글 문제로 네 시간쯤을 고생하다가 간신히 해결하고, 오랜만에 아레오 시절에 같이 일했던 신동구 씨를 만났다.2 년 만에 뵈었는데, 그렇게 달라진 구석은 없었다. 자기와 함께 일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주제였는데,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요즘 여기저기서 같이 일하자는 말을 왜이리들 하는지, 차라리 친구들에게 인기가 더 있었으면 하는데 아쉽다.

집에 돌아오면서 오랜만에 연하와 문자메시지로 채팅을 했다. 한 20 통 넘게 주고 받았는데,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너무 재미있고 계속 하고 싶은 기분도 들고 좋았다. 왠지 옛날로 돌아온 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 보기도 하고… 어쩌면 나도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이면 아르바이트가 끝난다. 힘들기도 했고 나름대로 큰 회사에 있어본 것이 흥미롭기도 했고, 나에게는 짧지만 많은 경험을 할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또, 내 실력이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고,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남들보다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Sideeffect of Love

라이코스 3일 째. 내 옆에 과장님까지 합세해서 라이코스를 위해(?) 일해보지 않겠냐고 나를 꼬시신다. 이번에 합세하신 여과장님은 다음주 부터 일할 회사는 계약 파기하고 일루 오라고 터프하게 말씀하신다. 솔직히 일하고 싶기는 하지만, 월요일부터 일한 내용을 보면 좀 답답하기도 하고 해서 딱 확실히 마음에 내키는 것도 아니라서 보류하기로 했다. 하지만 테크노 비전 일이 맘에 안들면 라이코스 쪽 일을 해 볼까 생각중이다.

일 끝나고 경남형을 만났다. 난생 처음 마르셸 이란 데 가 봤는데, 꽤 재미있는 곳이었다. 시장바닥 같기도 하지만 꽤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갖기 좋았다.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도 하고,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저녁을 같이 했다.

저녁을 다 먹고는 당구를 쳤는데, 내가 너무 못쳐서 힘이 안났다. 그러나 형도 실력발휘가 잘 안되시는지 한 판은 내가 간신히 이길 수 있었다. 왠지 전보다 배가 더 나오신 것 같기도 하고, 인상은 더 좋아지신 것 같았다. 세 게임 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신촌 공기를 안마셨다. 예전에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카이 씨가 숨쉬었던 공기의 어느 한 분자라도 인연이 닿아서 내 몸을 거쳐 지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공기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그런 가능성이 존재하는 같은 하늘하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그렇게 묘한 사랑에 빠져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결국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사랑 그 자체는 나에게 많은 힘과 꿈을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것을 사랑의 위력이라고 믿고 있다. 비록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가 남기고 간 발자욱은 선명히 남아 길잃은 자들을 인도한다.

I'm learning my life even now

라이코스 근무 이틀 째, 어제 배고팠던 기억을 되살려 밥을 든든히 먹고 일했다. Portal to Go 의 한글 버그 때문에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세 시간 쯤 씨름하다 보니 벌써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저녁땐 지현이에게 생일 축하로 보낸 편지에서 이야기했던 그 사람, 연하를 만났다. 하이텔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에 갓 입학했던 시절이었다. 잠시 그녀를 잊고 지내기도 했지만, 나름대로의 인연이 닿아 요즘에는 자주 연락하곤 하는 사이가 되었다. 잠시 동안 그녀의 존재에 대해 잊고 지내왔던 시간이 너무 후회가 된다. 그녀를 오늘 만나리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진 못했지만, 의외로 이야기가 빨리 진행되어서 오늘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검은 머리에 검은 원피스, 검은 우산을 쓰고, 흰 얼굴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거리를 등대처럼 비추며 서 있었다. 그녀는 내 사진을 본 적이 있기에 단번에 나를 알아 보았다. 그녀는 내가 조금 올라다 봐야 할 정도로 키가 컸다. 사실, 네트워크 상에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결국 처음 만난다면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서먹서먹하게 느껴야 할 텐데, 언제부턴가 그 벽이 사라져 버려서, 꽤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눈높이가 비슷한 상태에서의 대화도 왠지모르게 그 자연스러움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간단히 우동을 먹고 영화 ‘슈렉’을 봤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 수많은 패러디, 멋진 결말이 인상에 남았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온 트레일러들 중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 란 영화가 상당히 기대되었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보니 시간이 훌쩍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둘 다 집이 멀기 때문에 – 그녀는 용인에 산다 – 같이 우산을 쓰고 가다가 전철역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갑자기 신촌공기가 마시고 싶어졌다. 신촌을 경유해서 집에 가는 바람에 시간이 거의 곱절로 들어서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다.


자기가 영화를 예매해 주고서도, 식사비를 더치페이 해 준 , 차분하고 아름다워서 비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을 만난 하루.

지현이가 그랬다. 세상엔 자기 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고. 근래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지현이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좋은 – 그녀 만큼 좋은 이라고도 또한 말하기 힘들지만 – 사람이 많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만남을 계속할 수록 좋은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내 경험의 부족이 부끄럽게 느껴지는구나.

기분나쁜 밤

오늘부터 일주일 간 9시 30분까지 라이코스 코리아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어제 오후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 잠이 안오고 깨었다 잠들었다는 쉴 새 없이 반복해서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자위를 해서 피곤하게 해 보지만 짜증만 날 뿐, 좋은 효과는 거의 없다. 오히려 더 뒤척이게 되고 말았다.

내 생애 최초로 자위에 대해 쓰는구나. 요즘 내가 읽은 소설들은 보통 쓰여진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인데, 한번 이상 섹스 장면이 안나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그런 장면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흥분한다. 문단이 끝나 문맥적인 이해가 끝나면 흥분이 멈춘다.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의 연인은 주인공에게 자기를 생각하며 자위해 달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무리 노력을 해 보아도 잘 되지를 않는다. 나는 여기서 많은 동감을 느꼈다.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그런 일을 하기는 정말 불가능하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그러하다.

아마 더 길게 쓴다면 지금도 이미 이상해 진 눈빛을 더 날카롭게들 하겠지. 어쨋든, 힘든 잠을 마치고 나는 강남역 6번 출구 미래빌딩 13층에 위치한 라이코스 코리아 연구소에 갔다. 나에게 연락해 주신 분의 성함과 연락처를 깜박 잊고 놓고 와서 잠시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어떤 분의 도움으로 모바일팀 과장이신 송 지훈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일은 대충 브리핑을 받고 점심을 먹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었는데, 소스 코드가 어찌나 지저분한지 거의 미칠 뻔 했다. 이런 큰 빌딩을 세 층이나 먹고 있는 큰 회사의 개발팀에서 나온, 그것도 다음주 오픈이라는 제품의 코드가 이모양이라니 (제대로 동작도 안한다) 큰 기업에 대한, 그리고 과장이란 직위에 대한 환상이 일순간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문서화가 거의 안된 To-do list 가 나를 계속 참견하는 가운데,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며 코딩을 해 내려갔다. 이런 일을 일당 5만원으로 하고 있다니 괜시리 내가 한심해진다.

일이 끝나고 퇴근해서는 거의 1 년 만에 혜선이를 만났다. 달라진 생활 패턴 때문에 거의 아사 직전까지 갔던 내 몸은 그녀를 만나서 저녁을 먹음으로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같이 슈렉을 볼까 했는데 시간이 안맞아서 포기하고, 커피샾에 가서 이야기를 했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던 듯 하다. 그냥 서로의 생활 이야기 따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나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적었긴 하다. 터무니없이 양많은 말로브 아이스 커피를 홀짝 홀짝 들이키며 부풀어오르는 내 방광을 느끼다가 카페를 나왔다.

그녀와 작별인사를 한 것은 강남역 6번 출구의 건너편이었다. 그녀는 나와 헤어지면서 자기 사촌 고모? 이모? (그런데 고모, 이모는 여자를 칭하는 표현 아니던가?) 를 만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참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좀 싫었다. 쓸 데도 없는 질투를 하고 난 요즘 이상하다.

전철을 타고 신촌에 와서 무작정 영화관에 갔다. 슈렉을 보러 갔다. 혼자 영화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역시 맞지를 않는다. 슬슬 짜증이 나서 집에 와버렸다. 또 언제 혼자 영화를 보고 싶은 날이 올지 모르겠다.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낭만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불행의 종국으로 느껴졌다. 아마 이번 경우는 후자 쪽에 조금 더 가까웠던 듯 하다.

세 번의 만남

요즘 내가 어떻게 잠들었는지, 꿈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너무 깊은 잠에 빠져 버린 나머지 깨어났을 때면 내 자아의 어딘가가 소실되었다거나, 내 주위의 누군가가 바뀌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조금은 불안한 생각이 들곤 한다. 바다 위의 배는 항상 흔들린다. 자연스럽게 흔들린다. 내 삶도 그렇게 느릿 느릿 흔들려 왔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요즘은 미린이가 말해준 캐나다의 서스펜션 브릿지를 걷고 있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 나를 살살 에인다.

어제 받은 씨디에 대해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럴싸한 묘책은 떠오르질 않는다. 내 나름대로의 선물을 준비중이다. 선물을 할 바엔 역시 최선을 다하는 편이 좋다. 첫 만남에 선물을 받아본 사람만이 아는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재헌이와 당구를 치고는 휴대폰 줄을 사러 돌아다녔다. 맘에 드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왜 휴대폰 줄을 사러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난 선물받고 싶었는데. 이러긴 싫은데 그냥 그렇게 했다. 핸드폰 줄을 안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줄이 달리겠지.

재헌이가 내 일기장을 보고 “완전히 푹 빠졌네~ 해바라기가 달님을 보네~” 한다. 난 아니라고 소리친다. 솔직한게 죄인가요. 정말 그땐 그렇게 느꼈는걸.

현우와 대화했는데, 그는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사람은.. 세번은 만나봐야 되요. 기억하셔야 되요…”
“왜 세 번이지?”
“첫번째는.. 외모를 보게 되요.. 두번째는.. 음성을 듣게 되요.. 세번째는.. 생각을 듣게 되요.. 네번째는.. 마음을 듣게 되죠.. 그래서.. 세번째 까지는..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행해야 된다고 생각..”

지금까지 수많은 부족한 만남들을 해 온 나. 그나마 충분한 만남을 해 온 사람을 놓치기가 너무 싫다.

복잡한 감정의 하루에 작별을 고하며…

안녕.

잊지 못할 순간

“아비정전에서 장국영과 장만옥이 1분간 함께 머물렀던 그 시간이, 그 인연이, 그 둘에게 영원히 잊지못할 1분을 만들었는데 …”

라는 말로 천천히 시작했던 운명론적인 편지의 주인공. 매력적인 글솜씨와 파격적인 편지로 나를 조금은 혼란스럽게, 조금은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김선미 씨를 처음으로 만났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그녀는 30분 일찍 도착했다. 결국 그녀를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셈이었고, 처음 만남부터 이렇게 남을 기다리게 한 적이 없어서 나는 심각하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수리 다방 창문을 바라보니, 창가에 혼자 앉아 있는 한 여성이 보인다. 나는 후다닥 계단을 올라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아이보리 블라우스에 갈색 머리를 하고 책을 읽고 있던 그녀의 얼굴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래, 이건 마주치고 말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했다. 전에 E-mail로 받았던 사진과는 사람이 달라 보여서 깜짝 놀랐고, 그 눈빛이란 너무 투명해서 순간 반해 버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호감이 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그러니까 친한 친구처럼 대해주었는데, 그때문에 나는 별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특히 그녀는 대화의 침묵이 일어나는 묘한 타이밍을 제거하는 능력이 대단한 것 같았다. 끊임 없는 호감섞인 미소라던가, 전체적으로 지적이라고 느껴지는 목소리는 정말 압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뭐랄까, 자신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서로의 시선이 정확히 부딪힌 적이 있었는데, 나는 간신히 시선을 떼어낼 수가 있었다. 정말 눈의 미소가 투명한 사람이었다. 나는 잘 웃지 않는 편인데 영 딴세상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녀는 이영애씨의 그 미소를 꼭 빼닮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눈을 감을때에만 드러나는 쌍커풀은 너무 멋졌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헤어질 시간이 되어 일어나려고 할 때, 그녀는 나에게 씨디를 선물했다. TURBO의 ‘TURBO HISTORY’ 앨범이었다. 네 장 짜리 앨범중 두 장만 자신이 갖고 나머지 두 장을 친구와 나에게 선물하는 것이라 했다. 처음 만났는데 선물을 받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기쁘다는 사실 조차 잠시 잊은 채 카페를 나왔다. 이 사람은 진짜 낭만가…?

전철 역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슈렉은 친구 불러내서 보라고 하며 그녀는 짧은 시간 손을 흔들고는 인파속으로 숨어버렸다. 난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단 40 분 정도의 시간동안 이렇게 인상적이었던 시간이 있을 수 있다는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생애 어떤 만남보다도 큰 느낌을 불러일으킨, 그야말로 Sensational한 잊지못할 만남이었다.

뒤에는 현준이와 놀았다. 같이 슈렉을 보지는 않고, 게임을 같이 했다. 현준이는 아직 자금 사정이 좋지 않으니까… 게임방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였다. ‘소드피쉬’랑 ‘슈렉’은 꼭 보고 싶은데 딱히 볼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내 머릿속 깊은 곳까지 들어왔던 오늘. 이 날을 잊기는 정말 힘들 것 같다. 만남의 씨앗을 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You're not changed at last

언어교환 상견례를 했다. 내 파트너는 캉가이 켄 이라는 남자 분이었는데, 성룡을 닮았다 핫… 좋은 분 같았고 다음 주 부터 매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공부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잘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둘이서만 이야기 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학생회관 1층에서연세 일본 문화 연구회 회원들과 그들의파트너와 함께 팥빙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쁘지는 않았고, 처음 만난 사람이라서 아직 익숙하지가 못해서 조금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서먹서먹함의 여백마저도 친근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와서 쉬다가, 작년 10월에 구입했던 정들었던 019 핸드폰과 작별을 고했다. 저장되어있던 모든 문자메시지, 주소록을 삭제하고, 비밀번호를 0 네 개로 바꿨다. 이게 누구의 핸드폰인지 분간할 수 조차 없는 녀석이 되어버린 그 녀석을 상원이네 아주머님께 선물(?)하고, 나는 집 앞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서 전화를 걸었다. 물론 나의 새 핸드폰으로.

오랜만에 대화하지만, 왜 이리 익숙해져버렸는지, 말없는 공백마저도 저 들판의 흔들리는 벼의 움직임처럼 자연스러운지. 이런 저런 이야기, 둔함에 대한 이야기. 그녀가 둔하다고 말하기 보다, 그녀가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했다. 향수를 선물했다고 해서, 난생처음 옷을 선물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선물을 준 상대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근거가 부족한지도 모르니까. 나도 그렇게 이해되고 있을까? 순간 떠올랐지만 결국엔 좋다 생각했다. 그녀에게 핸드폰 줄을 사달라 했다. 그녀는 사달라는 사람이 참 많다 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리도 많았나. 왠지 그 사람들이 미워진다. 잠시 싫은 기분이 되었다가는 곧 이야기에 묻혀 바보처럼 잊어버린다. 7장 짜리 편지 받은 이야기도 하고, 쥬만지이야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 배터리 전압은 0로 떨어져 우리는 (적어도 나는) 아쉽게 작별을 고했다.


표현하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지나쳤던 일을 정리해 보고 싶다. 누워서 전화를 받던 그날의 나… 그렇게 소중한 사람을 앞에 두고 나는 누워서 막혀서 내 비위를 건드리는 코와 함께 침묵을 향해 치달았다. 어쩔 수 없었던 것만은 아닌데… 그 시절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 때 보다 나는 더 그녀를 자주 생각한다. 매일 매일 온라인이던, 그래서 언제라도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그 때 그사람, 가끔씩은 전화를 걸어주곤 했던 그사람, 문자메시지로 채팅도 하던 그사람. 난 그래도 과거와 지금의 그사람은 같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것들은 어쩌면 그저 그녀의 표면적 특성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내면을 파악하는 법을 전혀몰랐던 그 시절 나의 그른 분석이 지금도 남아서 ‘그녀가 변했다’ 라는 오류를 만들어내었다고 하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아니면 ‘그녀는 조금 자랐다’고 해야 하나.

다가가기 어려움. 확실히 이건 아닌데, 그녀는 무언가 완전하게 만들어진 성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것. 내부에는 질서 정연한 나름대로의 시스템과 룰이 존재해, 그것을 조정해 줄 필요조차 없는 상태. 조금 갈라진 곳도 있지만 적어도 무너지거나 할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은 성. 자석이 달렸는지 무거운 갑옷 입은 기사들을 끌어모으는, 그러면서도 뭔가 통행증이라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버리는 그런 성…

이해할 수 없으면 외워버려서 시험을 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을 외워버릴 수가 없다. 당신을 쓸 수도 없고 풀 수도 없다. 간직하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가진 수 많은 결함의 틈새로 피어오르는 연기가 내 가슴속에 간직한 당신의 작은 조각을 바라보는 것마저도 방해할지 모른다. 그저 지금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그 모습이 마냥 아련하기만 하다.

추억(追憶)

디아블로 2: 파괴의 군주가 나온 이후로 현준이와 함께 매일 한 두시간 씩 게임을 하다 보니 일기 쓸 시간이 줄어들어서 생각할 여유를 잃어버린 기분이다. 몸은 덥기만 하고, 게임이란 게 나를 기쁘게 해 주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게임. 싫은데 해야하는 것이 되버린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요즘 회사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여자 친구 없냐는 말 많이 듣는다. 여자친구가 있어도 없어도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때가 되면 곧 생기겠죠’라는 말을 하기도 이젠 지겹다. 그렇다, 정말 내 연인은 때가 되면 생길텐데 내가 왜 그런 것까지 일일히 대답해 줘야 하는지. 난 기다리는 것이 좋은데, 정말 지금으로도 한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데 왜 자꾸 그곳에서 나를 끄집어내려하는지 모르겠다.

저녁엔 가족과 뼈다귀감자탕을 먹으러 갔다. 마침 배가 고파서 꽤나 많이 먹고 좋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잘 있을까? 괜시리 미안해져버려서 침울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식사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아파트 뒤의 포장된 논길을 걸었다. 검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진초록의 벼가 눈을 감은 내 볼을 쓰다듬는다. 여기는 우리 멍멍이가 미끌어져서 굴러떨어졌던 곳이고… 여기는 내가 중학교 입학했던 날 진흙을 밟은 곳이었던가… 추억은 그때 그 진흙처럼 끈적끈적한 것.

I'm proud of myself

핸폰 몰래 산 것 들통났다. 그렇게 심하게 혼나지는 않고, 상의도 않고 샀다고 조금 꾸중을 들었다. 도대체 무슨 상의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 괜시리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한 일주일 해외 여행이라도 다녀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 이제 나의 사랑스러운 핸드폰은 자랑스럽게 내 책상위에 놓여질 수 있게 되었고 019는 해지만을 기다리고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오늘 저녁에 머리를 손질하고 019 에 전화를 걸어 해지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명의 변경을 해서 남에게 넘기는게 어떻겠냐는 상냥한 상담원의 말에 혹해서 네~ 하고 선물로 이어폰을 받기로 했다. 019가 참 힘들긴 힘든지 해지하지 말라고 선물까지 보내 주고, 참 세상은 웃긴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노력만큼 일이 잘 된다고 할 수 없으니. 그래서 세상은 비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세상은 아름다운 것…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 유치하지만 이렇게 자랑하고 싶은 내 인생…!

We are different kind of people

“but I believe … believe … in you.” 고교 시절 그렇게도 미친놈 소리를 들어가며 좋아하던 사카이 노리꼬 씨. 대학 시절에 내가 왜 지금처럼 시들해졌는지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상은씨가 생각난다. 나에게 그녀는 첫번째 대학 시절의 사랑으로 다가왔으며, 동시에 사카이 씨를 그토록 삽시간에 잊도록 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후회하지는 않았다. 결국에는 그렇게 잊혀져 가는구나 하며 체념했다. 상은씨를 지나 진주씨를 지나… 난 내가 그들을 정말로 사랑했는지 의문이 생길정도로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인연 따위는 없는 거야. 다만 너를 강하게 해야 해. 라며 자신을 타이르곤 했다.

변덕스러운 나의 마음이 가져온 나에 대한 증오가 끓어오른다. 어째서 단 한 사람을 바라보지 못했는지. 내 근처의 소중한 사람을 놓치고 말았는지. 이제 결국 마지막까지 단 한사람을 바라보겠다고 다짐하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태양의 흑점처럼 군데 군데 나타나곤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연이 없다고 애써 생각했던 그 사람. 난 그 사람을 절대 잊지 못할것 같다. 역시 내가 사는 이유는 어떤 누군가를 위해서 라고 밖에 결론지을 수 없는 구석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