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追憶)

디아블로 2: 파괴의 군주가 나온 이후로 현준이와 함께 매일 한 두시간 씩 게임을 하다 보니 일기 쓸 시간이 줄어들어서 생각할 여유를 잃어버린 기분이다. 몸은 덥기만 하고, 게임이란 게 나를 기쁘게 해 주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게임. 싫은데 해야하는 것이 되버린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요즘 회사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여자 친구 없냐는 말 많이 듣는다. 여자친구가 있어도 없어도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때가 되면 곧 생기겠죠’라는 말을 하기도 이젠 지겹다. 그렇다, 정말 내 연인은 때가 되면 생길텐데 내가 왜 그런 것까지 일일히 대답해 줘야 하는지. 난 기다리는 것이 좋은데, 정말 지금으로도 한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데 왜 자꾸 그곳에서 나를 끄집어내려하는지 모르겠다.

저녁엔 가족과 뼈다귀감자탕을 먹으러 갔다. 마침 배가 고파서 꽤나 많이 먹고 좋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잘 있을까? 괜시리 미안해져버려서 침울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식사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아파트 뒤의 포장된 논길을 걸었다. 검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진초록의 벼가 눈을 감은 내 볼을 쓰다듬는다. 여기는 우리 멍멍이가 미끌어져서 굴러떨어졌던 곳이고… 여기는 내가 중학교 입학했던 날 진흙을 밟은 곳이었던가… 추억은 그때 그 진흙처럼 끈적끈적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