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earning my life even now

라이코스 근무 이틀 째, 어제 배고팠던 기억을 되살려 밥을 든든히 먹고 일했다. Portal to Go 의 한글 버그 때문에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세 시간 쯤 씨름하다 보니 벌써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저녁땐 지현이에게 생일 축하로 보낸 편지에서 이야기했던 그 사람, 연하를 만났다. 하이텔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에 갓 입학했던 시절이었다. 잠시 그녀를 잊고 지내기도 했지만, 나름대로의 인연이 닿아 요즘에는 자주 연락하곤 하는 사이가 되었다. 잠시 동안 그녀의 존재에 대해 잊고 지내왔던 시간이 너무 후회가 된다. 그녀를 오늘 만나리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진 못했지만, 의외로 이야기가 빨리 진행되어서 오늘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검은 머리에 검은 원피스, 검은 우산을 쓰고, 흰 얼굴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거리를 등대처럼 비추며 서 있었다. 그녀는 내 사진을 본 적이 있기에 단번에 나를 알아 보았다. 그녀는 내가 조금 올라다 봐야 할 정도로 키가 컸다. 사실, 네트워크 상에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결국 처음 만난다면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서먹서먹하게 느껴야 할 텐데, 언제부턴가 그 벽이 사라져 버려서, 꽤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눈높이가 비슷한 상태에서의 대화도 왠지모르게 그 자연스러움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간단히 우동을 먹고 영화 ‘슈렉’을 봤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 수많은 패러디, 멋진 결말이 인상에 남았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온 트레일러들 중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 란 영화가 상당히 기대되었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보니 시간이 훌쩍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둘 다 집이 멀기 때문에 – 그녀는 용인에 산다 – 같이 우산을 쓰고 가다가 전철역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갑자기 신촌공기가 마시고 싶어졌다. 신촌을 경유해서 집에 가는 바람에 시간이 거의 곱절로 들어서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다.


자기가 영화를 예매해 주고서도, 식사비를 더치페이 해 준 , 차분하고 아름다워서 비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을 만난 하루.

지현이가 그랬다. 세상엔 자기 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고. 근래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지현이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좋은 – 그녀 만큼 좋은 이라고도 또한 말하기 힘들지만 – 사람이 많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만남을 계속할 수록 좋은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내 경험의 부족이 부끄럽게 느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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