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정전에서 장국영과 장만옥이 1분간 함께 머물렀던 그 시간이, 그 인연이, 그 둘에게 영원히 잊지못할 1분을 만들었는데 …”
라는 말로 천천히 시작했던 운명론적인 편지의 주인공. 매력적인 글솜씨와 파격적인 편지로 나를 조금은 혼란스럽게, 조금은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김선미 씨를 처음으로 만났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그녀는 30분 일찍 도착했다. 결국 그녀를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셈이었고, 처음 만남부터 이렇게 남을 기다리게 한 적이 없어서 나는 심각하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수리 다방 창문을 바라보니, 창가에 혼자 앉아 있는 한 여성이 보인다. 나는 후다닥 계단을 올라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아이보리 블라우스에 갈색 머리를 하고 책을 읽고 있던 그녀의 얼굴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래, 이건 마주치고 말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했다. 전에 E-mail로 받았던 사진과는 사람이 달라 보여서 깜짝 놀랐고, 그 눈빛이란 너무 투명해서 순간 반해 버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호감이 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그러니까 친한 친구처럼 대해주었는데, 그때문에 나는 별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특히 그녀는 대화의 침묵이 일어나는 묘한 타이밍을 제거하는 능력이 대단한 것 같았다. 끊임 없는 호감섞인 미소라던가, 전체적으로 지적이라고 느껴지는 목소리는 정말 압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뭐랄까, 자신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서로의 시선이 정확히 부딪힌 적이 있었는데, 나는 간신히 시선을 떼어낼 수가 있었다. 정말 눈의 미소가 투명한 사람이었다. 나는 잘 웃지 않는 편인데 영 딴세상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녀는 이영애씨의 그 미소를 꼭 빼닮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눈을 감을때에만 드러나는 쌍커풀은 너무 멋졌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헤어질 시간이 되어 일어나려고 할 때, 그녀는 나에게 씨디를 선물했다. TURBO의 ‘TURBO HISTORY’ 앨범이었다. 네 장 짜리 앨범중 두 장만 자신이 갖고 나머지 두 장을 친구와 나에게 선물하는 것이라 했다. 처음 만났는데 선물을 받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기쁘다는 사실 조차 잠시 잊은 채 카페를 나왔다. 이 사람은 진짜 낭만가…?
전철 역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슈렉은 친구 불러내서 보라고 하며 그녀는 짧은 시간 손을 흔들고는 인파속으로 숨어버렸다. 난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단 40 분 정도의 시간동안 이렇게 인상적이었던 시간이 있을 수 있다는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생애 어떤 만남보다도 큰 느낌을 불러일으킨, 그야말로 Sensational한 잊지못할 만남이었다.
뒤에는 현준이와 놀았다. 같이 슈렉을 보지는 않고, 게임을 같이 했다. 현준이는 아직 자금 사정이 좋지 않으니까… 게임방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였다. ‘소드피쉬’랑 ‘슈렉’은 꼭 보고 싶은데 딱히 볼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내 머릿속 깊은 곳까지 들어왔던 오늘. 이 날을 잊기는 정말 힘들 것 같다. 만남의 씨앗을 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