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수와 차이나 비스트로라는 신촌의 한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했었다. 우리 건너편의 여러 손님이 앉을 수 있는 테 이블에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식사를 마친 채로 기나긴 수다를 계속하고 있었다. 처음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우리가 살짝 귀를 귀울이자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남자들은 쉽게 말해 ‘여자를 사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원하는 여자와 사귀기 위해 그녀에게 사용해야 할 다양한 테크닉의 디테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사귀게 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하는 추상적인 이야기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우리는 그들을 살짝 비웃었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벌써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
어쨌거나, 이런 많고도 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을 들을때면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가 어지럽거나 한 것이 아니 라, 길을 지나가다가 얼굴을 아는 사람을 지나친 것 같아서 잠깐 어리둥절해 하다가 아니라고 결론짓고 갈 길을 갈 때의 그 느낌이다. 완전한 혼란도 아닌 이런 어리둥절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사랑’이라는 단어는 언어로 만들어져서는 안되었던 것이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물론 ‘사랑해’ 라는 말은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명사는 왠지 부자연스렵다. ‘사랑을 하되 사랑은 모른다’는 말은 이런 연유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나.
굳이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자면, 사랑이란 호감, 증오, 소유욕, 관심, 역설, 성욕, 주거나 받고 싶은 마음, 두려움, 확신 등 아무 리 많은 단어를 나열해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랑은 우리 인생사의 모든 국면처럼 한결같이 동적이며, 따라서 역설적이다. 누군가 자신, 또는 남의 삶을 말로 설명하고자 할 때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내가 우리 삶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사랑을 좋아한다. 사랑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랑 그 자체가 지니는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좋다. 한때 일본에서 유행했던 가수들의 앨범 제목 ‘Sween and Bitter’ 처럼 나는 내 사랑의 쓴 맛과 단 맛을 모두 즐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