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고생들과의 조우

대망의 Language Exchange 하자던 그녀와의 만남을 가진 날.

대학로 스타벅스 앞에서 오후 세 시에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난 긴장하면 약속시간보다 보통 한 시간 정도는 일찍 나간다. 그래서 두 시에 스타벅스 앞에 도착했다. 스타벅스란 데도 역시 태어나서 처음 가 보는 곳이기 때문에, 스타벅스 안을 두리번 두리번 (그것도 밖에서) 쳐다보았다. 얼핏 보니 KFC 같은 커피 판매점 같았다. 뭐 이정도면 됐지! 하고 시간이 아직도 40분이 남아서 여기 앉았다가, 저기 돌아다녔다가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한 15분 쯤 전일까? 전화가 왔다. 장자 씨네… 무슨 옷을 입고 있냐고 묻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또 물어보기는 그렇고 해서 그냥 Navy Blue의 티 셔츠를 입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녹색의 셔츠를 입고 있다고 한다. 녹색이라… 연녹색일까, 아님 진녹색일까? 하는 궁금증이 몰려왔지만 일단 끊고 봤다. -_-;

드디어 정각, 약간 이국적인 풍모의 귀여운 여자애가 스타벅스를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그녀는 녹색 셔츠를 안입었는걸… 흐음~ 저 여자도 나처럼 스타벅스가 처음인가 보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그녀는 잠시 스타벅스에서 멀어졌다가 한 명의 녹색 티를 입은 여자아이를 데려오는 것이다!

내가 먼저 가서 말을 걸어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하지만 역시 내가 가서 말을 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썰렁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좀 버벅이다가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두 명(나와 장자)은 오렌지 쥬스, 한 명(이름 까먹음)은 뭔가를 먹었는데 기억이 안난다. 그런데 그 귀여운 아이는 이미 점원과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문제를 겪고 있었다. 내가 어설프게 설명해 줘서 넘어가고 우린 2층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녀들은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어디서 자기들의 전단지를 보았는지,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각종 한국어 표현이라던가, 대학생활은 어떤지, 연세 대학교에 들어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너무나 많은 질문에 난 서투른 일본어로 대답해 줬다. 서로 뜻이 잘 안통할 때면 난처해서 웃기도 하고, 그녀들도 새로운 표현을 알게 되면 신나서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녀들은 나한테 Language Exchange 할 필요 없을 정도로 일본어를 잘 한다고 했지만 난 믿기 힘들었다. 아무리 봐도 내 일본어 실력은 극악인 것 같은데… 설마 이 아가씨들이 나랑 LE 하기 싫어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난 그럴리가 없다고 철썩같이 믿기로 했다. 앞으로 그녀들을 잘 도와주어서 한국어도 배우고 연세대 들어가는데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녀들은 18살)…

갖은 이야기 (너무 많아서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를 나눠 가며 한 시간이 흘렀다.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것도 외국어로 말을 했는데…

그녀들은 다른 약속이 있다면서 일어나자고 했다. 하긴 더 오래 이야기하다간 나의 일본어 실력이 들통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음번에 연락이 안 올까 두려워서 다음에 언제 연락하겠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내일 쯤 연락을 준다고 한다. 아 기뻐라… 내일은 방에 콕 박혀서 전화를 기다려야 겠다!


그녀들과의 만남이 끝나고 나는 신촌엘 갔다. 학교에서 책이나 볼까 하는 심산으로 가긴 했지만 결국 현우한테 전화가 와서 현우랑 저녁을 먹고 당구도 치고 게임방도 가고 하고 말았다. -_-;

그렇저럭 재미있는 게임들이었다. 달리 할 말 없음!


여름이 되고 감기에 걸리니 몸이 조금 아픈 것 같다. 식욕도 너무 없고 이러다 또 저번처럼 쓰러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된다면 난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 텐데, 다시 한번 만남을 이어 가기 위해 힘을 또 내기가 이젠 두렵다. 지금 이대로가 계속되었으면 한다.

만나지 않고, 그래서 잊혀지고, 다시 만나기 위해 많은 힘을 소비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사슬을 끊어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난 어떻게든 나를 유지하련다…

감흥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전화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떨리는구나… 이번엔 정말 받을거야… 어떻하지?

에잇 모르겠다! 하고 전화를 걸고 신호음이 세 번이 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는 사람은 정 장 자 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는 자기가 장자라고 하며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얼마 전에 조심스럽게 적어 보았던 시나리오에 따라서 말을 이어 갔다. 생각외로 잘 되는 것 같다. 그녀는 한국어를 좀 못하는 것 같고, 나도 일본어를 좀 못했던 것 같다… 한숨 푸욱…;

그녀는 나를 한번 만나 보고 결정하고 싶다고 한다. 이거 면접인가? 랭귀지 익스체인지하는데도 면접을 보네 하핫… 뭐 좋다고 하고 약속을 정했는데, 이 때부터 나의 일본어가 심각하게 버벅이기 시작했다. 서로 답답답답… 두둥…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알아들어서 토요일 오후 세 시로 시간을 정하고, 장소는 그녀가 정했다. 난 그녀가 신촌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쪽지를 우리 학교 공대 게시판에서 봤으니까) 대학로… 란다. 난 대학로 정말 거의 안가봐서 잘 모르는데 참… 그래도 어쩔수 없지! 하고 우린 스타벅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이 정해지자 그녀는 황급히 ‘안녕!’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매우 쫄아 있었던가, 답답해서 그랬던 것 같다. 하긴, 나도 어제 후다닥 두 번이나 끊었으니 그 심정을 이해할 수 밖에.


여기는 꿈의 세계 피곤한 몸으로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SES 가 지나간다… 바다를 이렇게 가까운데서 보다니, SES 가 나를 힐끔 쳐다보고 수다를 떨면서 지나간다. 그러나 사인해달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일반인으로서의 한가로움을 한껏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왜 이 꿈을 꾸게 된 걸까? 이지현양 분석바람 -_-;


일어나니 11시. 경남님을 2시에 역삼에서 뵙기로 해서 아침을 먹고 곧바로 나갔다.

2시가 약간 넘어서 경남님을 만나서 점심을 먹고 회사로 갔다. 회사 이름이 이저드 란 곳이었는데, 대구(대전?)에서 있다가 서울에서 올라온지 얼마 되질 않아서 공사가 한창인것 같았다. 아랫층에는 PanWorld Net 이라는 유명한 회사가 있는데, 경남님의 형님이 운영하는 회사라던가? 하여튼 여러모로 관심이 간다.

다만 찔리는 것은, 원래 Neximo 측과 다시 계약을 해서 이번엔 월급을 받으며 그곳을 위해 일하려고 했었는데 이저드에서 일하려고 학업 때문에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한 것…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분나쁠까? 난 잘 모르겠다. 내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시간이 말해주겠지. 다만 이번에 하게 된 일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것 밖에는 달리 변명이 없구나.

이저드에서 만나기로 한 분이 안계셔서 별로 한 일 없이 사무실을 나와서 신촌으로 갔다. 컴퓨터실에 가서 학교 숙제를 하려고 하는데 띠리리리리… 어랏 호석형이다. 한양대에서 당구 결투신청이다 하핫 -_-; 공부보단 역시 당구가 우선인지 조금 고민하는 척 하다가 한양대로 갔다. 같이 저녁먹고 당구쳐서 3:2 로 나의 승리 -_-v

침착해 지는 법을 배워서인지 패배가 싫지는 않지만 승리가 그래도 좋긴 한가보다.


오늘도 하루 분의 일기를 썼다. 내가 얼마나 하루를 감흥없이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일들이 일상을 만들어내지만, 그 속의 우리 감정은 너무나 단순하지는 않은지? 그곳에서 하루에 적어도 하나 쯤은 무언가 얻고 느껴야 하지는 않은지?

내 자신을 반성해 본다.

PS: 그림은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정훈이네 홈페이지에서 슬쩍. 뭔가 심각한 사색, 허무, 추억 따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평범이 던져준 기회

평범한 하루가 다시 한번 지나가는군…

이라고 생각하며 공대를 나가려던 찰나

“Language Exchange 하자!” 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서투른 한국어로 쓰여진 몇마디… 그녀는 재일교포인 듯 하다. 바로 이게 기회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후다닥 나의 귀염둥이 PalmVx 에 메모하고 집에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전화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계속했지만, 왠지 요즘은 내가 대담해 진건지 뭘 모르는 건지. 걸어보자!!! 하는 생각이 불끈!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메모장에다가 전화 통화 시나리오를 주우욱 적어내려갔다. 한 편의 일어 교재를 보는 듯한 이 기분 …;

자 다 썼다. 몇번의 짧은 고민 끝에 전화를 걸었는데, 웬 중국인 같은 어설픈 한국어 발음의 여자가 받더니. 장자 없어요! (그녀의 이름은 정장자 -_-;) 하는 것이다. 으음… 중국인과 한 방을 쓰나? 하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당황해서는 후다닥 끊어버렸다. 생각해 보니 LE 의 주인공이 전화를 안받았을 때의 시나리오를 안 쓴 것이다 –; 가슴이 두근 두근…

시간은 흘러흘러 11시. 이번엔 받겠지 하고 걸어보았지만 아까의 그 중국인… 그런데 한국말을 잘하는 거 같기도 하네… 라고 생각하도 그럼 정장자씨 어디 가셨나요? 하니까 갑자기 우물우물 거리더니 일본어로 밖에 나갔는데.. 쇼핑하러 외출했어요. 하는 것이다… 난 전화받는 사람이 중국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발음이 하두 굴러가서 –;) 뜻밖이었다. 또 당황한 나는…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이번엔 일본어로) 하고 우다닥 끊어버렸다 -_-;

전화받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에휴… 난 너무 두려웠나 보다. 그래도 12시에 다시 걸어 봐야 겠다. 꼭 그 사람을 만날거야…!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어쩌면 나와 그녀는 이 세계에서 이방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그 이방인을 만나보고 싶어하는지도… 내가 아직도 우리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그녀를 만나게 되면 더 잘 알게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PS: 그런데 그녀에게 이미 LE 파트너가 생겼으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 –…

하늘을 나는 꿈

그저께는 밤새고 어제는 자정이 넘도록 놀아서 몸이 장난이 아닐 줄 알았는데 좀 피곤하기만 할 뿐 괜찮았다.

조금 늑장을 부려서 지현이랑 재헌이랑 (또 누구였지) ICQ 를 나눴다. 오래간만의 아침 대화라 조금 생소했지만 뭔가 대화가 상큼했다.

첫번째 수업(일반생물학)을 듣지를 못하고 두번째 수업(파일처리론)을 듣다가 너무 답답하기도 하고, 재헌은 졸리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좀 쉬러 컴퓨터실에 가 보았는데 잠겨져 있네… 결국 창가에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바람은 너무나 상쾌하고 하늘은 어찌나 높은지… 어제 온 부슬비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멋졌다.

갑자기 내가 저 하늘을 나는 상상을 했다.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꿈에서도!!!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상상을 하다니… 요즘 나에게 무언가 계속 변화가 일고 있는 듯 하다. 그것도 기분좋은 변화가…!

대성이형과 점심을 먹고 컴퓨터실에 돌아오니 너무 졸려서 낮잠을 약간 잤는데, 기분이 정말 최악이다 -_-; 난 정말 낮잠이랑은 안맞는 듯… 온 몸이 뜨겁고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것 같고, 마음이 답답해졌다. 감기 기운이 좀 더 심해졌는지… 목도 부어서 참 힘들었다. 조금 전까지 하늘을 날고 싶었던 그 맑은 하늘은 어디 간 걸까? 난 어쨋든 몸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 하늘을 동경하고 싶다고 느꼈는데…

마지막 수업인 운영체제를 들을까 말까 하다가 성적이 생각나서 앉아서 소피의 세계를 읽었다. 이제 곧 니체가 나올텐데… 정말 기대된다. 꼭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사서 읽어봐야 겠다.

어렵게도 수업이 끝나고 정보특기자 회의가 있어서 잠시 있다가 성준이랑 Dunkin’ Donuts 에 슬러쉬(다른 이름이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네…)를 먹으러 갔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Dunkin’ Donuts… 분위기 좋은데? 다만 디지몽이란 게 여기저기 도배되 있는게 좀 싫었다. –; 난 포켓몬도 잘 모르는데 참…;

힘든 몸을 이끌고 다닌 하루 치고는 평범했던 것 같다. 오늘 어디선가 쓰려져도 이상할게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영혼이란게 정말로 존재하는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이 세계가 실존하는가? 정말로 이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인가? ‘나’ 라는 것이 사실은 기억과 감각의 집합체는 아닌가? 우리 존재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영혼’ 이란걸 만들어 냈다고 하는 말을 오늘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이란 걸 믿는다고…

난 영혼이나 나를 창조한 신을 믿지 않는다. 내 육체가 없으면 영혼이란 것도 없고, 내 안의 신은 나의 친구이자 나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영혼은 소중하고 신이란 경건한 존재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결론과 일치하긴 한다.

어떤 사람이 유물론적 관점을 가지던, 실존주의를 찬양하던, 그것은 그 사람의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취향은 취향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 같다.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면, 그래서 자신의 속박을 벗어버릴 수 있다면…

그래서 당신과 함께 하늘을 날 수 있다면…

PS: 사진은 POSCO Gallery: 날개, 나의날개 (1997. 10. 12 – 11. 19) 의 작품 중 하나.

2일야화

– 어제 보통과 같은 하루였다. 다만 수업시간에 진도를 따라가려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교재를 못 가져간 생물은 쉬는 시간마다 했다. 그 외엔 정말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던 오늘은 나에게 새로운 바리에이션을 요구했다.

재헌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휴학한 친구 경민이가 곧 군대를 간다고 해서 같이 밤새도록 술마시고 놀기로 했다는 것… 음 밤을 새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술 좀 마시고..(흑주? 라는 곡주를 마셨는제 11도에다가 참 맛있었다) 게임방에서 밤새도록 스타크래프트와 포트리스를 했다… 이대로 밤을 새 버리면 죽어버릴 것 같은 신체적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새벅 5시… 역시 매사는 우리의 정신적 능력에 좌우된다는 것을 재확인.

내 주위엔 유난히도 신검에서 5급이나 4급을 받은 사람도 많고, 병역 특례 업체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은 생소한 모임이었지만, 나름대로 여러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경민이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 오늘6시에 집에 도착해서 쓰러져 자고 일어나 보니 12시… 호석형이 오늘 영화 보여주기로 했는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호석형이 보여주기로 약속도 했고, 또 약속을 깨면 안될 것 같아서 갈 수 있을 것 같기고 하고 해서 서둘러서 메가박스에 갔다. 휴~ 다행이도 다른 영화 트레일러를 하고 있네… 제 시간에 도착한 셈이 됐다. 본 영화는 ‘한니발’. 양들의 침묵 후속편 답게 엽기적인 장면이 꽤나 나오는 영화였다. 특히 마지막에 뇌를 먹는건 거의…; 그렇지만 난 한니발이 스탈링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한니발은 살인자이고, 스타링은 FBI Agent이기 때문에 한니발의 사랑은 그리도 뒤틀린건 아닌지… 물론 그의 이상한 성향에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그녀를 무언가 특별히 생각했고 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 다 보고 늙은 몸으로 같이 펌푸 한판 뛰고 호석형과 헤어졌다. 신촌으로 갔다. 왠지 가고 싶었다. 그냥 집에 가기엔 좀 쓸쓸했다구 해야 하나. 그래서 지현이에게 전철 안에서 문자를 쳤다. 그냥 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음음 근데 정훈이랑 놀고 있네? 음 나는 안끼워주구~ 했지만 뭐 내가 끼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잖아 -_-;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우린 결국 만났다. 지현, 정훈, 나는 셋이서 길을 거닐었다 (라기 보단 마구 방황했다.) 셋 다 어딜 가야 할 지를 몰라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만 하고… 영화(파이란), 노래방, 술집, 당구장 등의 후보 중에 술집이 뽑혀서 근처에 있는 FOR YOU(4U)라는 맥주 가게에 갔는데 분위기가 참 괜찮았다. 거기 가서 지현이랑 사진도 찍고 정훈이도 사진 찍어주고… 좋았다. 난 19xx Stout 란 맥주, 지현은 Leffe Blond, 정훈은 글쎄 기억이 안나는 맥주를 마셨다. 꽤 맛있었다. 난 처음 맛과 끝맛이 다른 걸 좋아하니까…

그리고 나선 노래방에 가게 됐다. 음 난 정말 아는 노래가 별로 없는데… 무지 걱정을 했다. 다들 노래를 잘부르네..~ 특히 지현이 목소리는 너무 이쁘다. 성우해도 될 것 같아… 난 어제 담배 연기를 너무 많이 접해서 목이 아프고 피곤해서 맘대로 되지도 않고 가사도 생각이 안나서 노래를 잘 못불렀다. 아휴… 왜이렇게 못부르는 거야! 그리구 사진도 또 찍었다. 잘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난 밝은데서 안찍으면 너무 아저씨 처럼 사진이 나와서 좀 싫다. 음음 난 못생긴 걸까나? 난 못생긴게 정말 싫어. 그냥 싫어… 난 안 못생겼음 좋겠는데, 그걸 내가 결정할 수가 없구나. 그러고 보니 이쁜 지현은 왜 사진 찍는 걸 싫어할까나? 궁금 궁금…

노래방에서 주인아저씨가 계속 시간을 주고 또줘서 결국 12시 15분까지 노래를 불렀다. 내가 타고 가는 588-1 번 버스는 11시 40분에 이미 끊겼을 것 같고, 가망이 있는 588-2번 버스를 타기로 하고,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버스를 40분 쯤 기다렸는데 오질 않는다. 내 지갑엔 단 2000원… 어제도 집에 안들어왔는데 택시비 준비해달라고 집에 전화하기가 너무 어색하다. 지현이가 혹시 차 못타면 택시비 꿔줄테니 전화하라고 했지만 그것도 좀 미안하고… 결국 선배한테 11500원 꿔서 집에 오고 지금… 휴… 정말 숨가쁜 하루구나!


간신히 돈을 빌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지현이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걱정어린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너무나 기분좋았고, 고마웠고, 그래서 말로는 표현못할만치 지현이가 좋았다.

생각해 보니, 20년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그런 걱정어린 전화를 이제서야 처음 받아봤다니… 난 참 외로운 놈이었다는게 맞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외롭지 않을 것 같아. 이틀 간 일어난 세 번의 만남과 헤어짐. 우리 일생의 만남과 헤어짐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길 기도하며…

PS: 택시 안에서나 술집에서나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는데, 지금은 왜 잘 정리가 안되는지. 그만큼 지현의 전화는 나에게 깊은 인상이어서, 다른것들을 다 지워 버린 것 같다. 고마워 지현!

Singin' in the Rain

어제 좀 피곤하게 잤는지 11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컴퓨터를 치며 한창 늑장을 부리다가 목욕을 시작했다. 얼마만에 즐기는 혼자만의 목욕인가… 라고 생각할 때 쯤 벨이 울려서 나가 보니 누나랑 매형이네. 역시 혼자의 시간을 갖기란 어려운 것 같다.

누나가 차려준 밥을 먹고 학교 도서관엘 갔다. Maxine 디자인할 때 쓸 UML 책을 봤는데, 처음 샀을 땐 정말 안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참 재미있고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Teach urself * in * series 와, 번역서에 대한 나의 편견이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는 예인듯 싶다.

2시 부터 보기 시작한 책도 5시가 넘어서는 후반부에 들어가고 해서 잠깐 책을 덮고 컴퓨터실에 들렀다. 잠겨 있는 컴퓨터실. 한때는 화도 내곤 했지만, 창 밖을 바라보는 여유를 알게 된 뒤로는 왠지 즐겁기도 하다. 창 밖을 바라보며 이번 주 자 ‘내일’ 이라는 대학신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멀리서 들려오는 웅웅 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산들바람… 여전히 좋아라… 이젠 옆에 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질 않는 것을 보니 좀 안정된 것 같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다시 한번 컴퓨터실 문을 열어 보니 성준이가 있네. 성준이와 UML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룰루랄라 컴퓨터놀이를 하다 보니 저녁먹을 시간. (역시 컴퓨터실에서 있는 시간은 긴데 실제로 한건 별로 없으니 컴퓨터는 우리의 영양을 쪽쪽 빨아먹는 악마의 기계라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신촌역 지하철에 있는 파파이스에 가려다 버거킹이 더 가까워서(? 사실은 성준이가 전에 씨디 공짜로 줘서 비싼거 먹여 주려고) 버거킹에서 치킨와퍼세트를 같이 먹었다. 그럭 저럭 먹을만 하구나… 돈을 많이 주니 이것저것 양이 꽤 많은 것이 좋았다. 그러면서 역시 이 세상은 돈이 지배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철학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땐 그냥 맛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자연스러운게 좋다고 생각해…

다 먹고 나선 TowerRecord 순례에 나섰다. K-Pops 랑 NewAge 부분, 그리고 잡지랑 각종 Top 25 부분을 전부 구경했다. 다리가 장난이 아니게 아프고 피곤해서 나왔는데, 우린 도서관엘 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도서관 가는 길엔 우리의 복병 컴퓨터실이 있었으니… 유혹을 못이기고(사실은 아마도 공부가 컴퓨터실에서도 잘 되리란 넌센스 사고를 하고) 컴퓨터실에 가서… 펑펑 놀았다;

11시가 넘어서야 학교를 나와서 집에 갔다. 버스 안에서 볼륨 24(내 MDR 의 최대 볼륨은 30)로 globe 의 departures, Freedom 등을 들었다. 머리가 조금 아프다… 그래도 …J…J이 듣는다. 미친놈처럼 계속 듣는다. 30분 정도 듣다가 귀에서 이어폰을 뽑아버리고 멍 하니 앉아서 집에 도착하길 기다렸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자기가 미쳤다고 생각 안해본 사람은 없겠지? 나도 가끔은 미쳤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미쳐 보고 싶다. 폭포처럼 내리는 빗 속… 백양로(우리 학교의 1자로 쭈욱 뻗은 큰 길 이름)를 미친듯이 거슬러 올라간다. 끝까지 올라간다. 물이 불어서 내 발을 전부 적신다. 맨발로 걷는다. 우산도 없다. 계속 걸어서 나랑 비슷한 사람을 만날 때 까지…

PS: Singin’ in the Rain 포스터. 보질 못한 영화라서 보고싶다.

Correspondence

시험 마지막 날.

공부를 하나도 안해서. 그냥 아는대로 썼다. 어떻게 나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강제적으로 뭘 하고 싶지가 않다고… 다만 그 강제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나에게 필요하고 내가 즐길만한 것으로 바꿔 보고 싶다.

끝나고 재헌이랑 당구를 쳤다. 이번 주엔 당구를 세 번이나 치는구나… 다행이도 한번도 돈을 안 냈다. 가즈키처럼 어느날 내가 당구치고 집에가서 죽어버리진 않겠지? 하핫…

집에 오니 할 일이 없구나… 피곤해서 잠깐 누워 있다가 컴퓨터를 켰다. 역시 할일이 없어. 5월 달부터 성준이랑 Maxine 하기로 했으니까 그때 쓸 UML 을 연습해 볼려고 Dia 란 프로그램을 갖고 놀다가, UML 규약이 생각이 안나서 잠시 웹을 뒤지다가 스펙 문서가 800페이지나 되어서 포기를 하고 예전에 산 UML in 24 hours 란 책을 봤다.

침대에 앉아서 책을 봤다. 내 책상은 각동 잡동사니와 컴퓨터 모니터로 꽉 들어차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아… 정말 집중이 안되는구나. 거기다가 금방 졸려 버려서 포기를 하고 또 잠시 컴퓨터를 하다가는 이래선 안되지! 하고 다시 한번 책을 손에 잡아 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잠이 들어서 몇시간 쯤 잔 것 같다.

난 낮잠이 싫다. 낮은 덥기 때문에 일어나면 머리가 뜨겁다. 그 날 저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멍하니 앉아 있곤 한다…

이렇게 시험 마지막날도 흘러간다. 내일은 도서관엘 가야 겠다. 나한테 약속이 있을리 없잖아!

자리에 앉아서 메일함을 뒤진다. 여러 사람들에게 편지(또는 답장) 쓰는 재미로 며칠을 산 것 같은데 답장도 안오고… 슬프다 슬퍼… 이러니까 꼭 써달라고 애원하는 거 같네. 그래도 답장이 안온다는건 슬퍼요.

PS: Leaving Las Vegas 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니콜라스 케이지…

Departure

이제 시험이 하나 남았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왜이리도 피곤한지. 더이상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생물학 시험을 내일 본다 쳐도 이걸 내일 대충 외워서 본다면 그게 내 지식이 되기는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괴롭다. 삶은 기쁨과 괴로움의 연속이라는 지금 괴로운건 당연한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괴로운걸 어쩌랴.

시험보기 전에 다시 한번 창밖을 바라보며 쉬어 보아야 겠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시작해야지…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현재… 비록 미래는 몰라도 현재가 조금 더 밝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이렇게 쓸데없이 괴로움 외로움 슬픔을 타는 사람이 많을까?

일찍 잠자리에 들고 꿈을 청하련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PS: 요즘 좋아하는 ACO 의 absolute ego 앨범 표지. 절대자아의 정의가 도대체 뭘까? 소피의 세계 후반부에 나오겠지. 데카르트 나올 때…

고요와 평화

감기에 걸렸는지 목이 좀 부었다. 어쩌지.. 시험 두개 남고 끝나면 놀아야 되는데… 빨랑 나았으면 좋겠다.

어젯밤엔 꿈을 꿨다. 내가 뱀한테 물리는 꿈이었다. 뱀에 물려서 우리 학교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서양문화의유산 교수님이신 설혜심 교수님께서 무슨 설교를 하고 계셔서 치료를 늦게 받아서 죽다 살아나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죽음에 대한 공포와 코믹이 어우러진 꿈이었던 것 만은 확실하다.

시험을 두 과목 봤다. 프로그래밍 언어 구조론과 운영 체제였는데 나름대로 볼만 했다. 절대적으로 잘 보지도 못하고 절대적으로 잘 못 보지도 못하고… 시험이란 그런 것 같다. 시험을 본 결과를 평가할 때 그 평가는 사람마다 다른 것… 난 모든 시험 결과를 ‘그냥 그랬어’ 라고 얼버무린다. 때론 이게 꽤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밍 언어 구조론 시험을 보고 나니 비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성훈 선배랑 주현이랑 홍매라는 중화요리점에 가서 약간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간만에 생각이 나서 주현과 나는 짬뽕을, 성훈선배는 볶음밥을 먹었다. 요즘엔 배가 고프면 배가 많이 아파서 오히려 먹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지곤 하는데 그래도 어쩌랴… 먹어야지!

다 먹고 주현이는 집으로 가기 전에 신주쿠 24시라는 권총 게임을 하러 간단다. 성훈이형을 졸라서 오락실에 따라갔다. 오랜만에 보는 Pump it Up 기계… 그냥 갑자기 하고 싶었다. 추억이 떠올라서일까? 2판이나 했더니 참 땀도 많이 나고 힘들고… 예전같지 않다는 말이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_-; 안해버릇하니 발이 무거워서 실수도 많이 하구…

땀 덕분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컴퓨터실로 돌아왔지만, 컴퓨터실이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켜 놓고 온도가떨어질 때 까지 화장실에서 기다렸다.

화장실엔 큰 창이 한 방향으로 나 있는데, 환기를 위해서 창문이 열려져 있다. 창문에 팔짱을 끼고 엎드려 밖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고요가 흐르는 건물들의 풍경을 보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다음번엔 공대 구석에 있는 창에 같은 자세로 밖을 바라보았다. 우리 학교의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꽃들과 사람들… 그리고 여기도 고요와 평화가 있었으니…

창문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서 있으니 내가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내 옆에서 함께 바람을 맞으며 그저 미소지으며 창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서로를 바라보기도 하고… 마음으로 공유되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 피곤한 몸으로 몸을 이끈다. 내가 겪은 한순간의 고요와 평화가 이리도 내 마음을 뒤흔드는지… 하지만 그다지 혼란스럽진 않다. 뭔가 정리되고 기대할수 있을만한 기분이다. 이제 내게 절망적 외로움은 사라진 걸까?

PS: 아름다운 그리스의 교회… 그리스는 정말 멋져… 근데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답글이 안달리네잉…

정의(定義)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정의하면서 살아간다. 간단하게 연필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서 복잡하게는 사람이란 무엇인가까지.

하지만 우리가 모두 동의하고 공유하는 정의란 세상의 수많은 정의들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예를 든 연필이나 사람 따위도 마찬가지다. 내가 느끼는 연필과 다른 사람이 느끼는 연필의 느낌은 다르며, 그것이 지니는 크나큰 상징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다. 우리는 나름대로 좌우명이나 다짐으로 우리 자신을 정의해 나간다. 하지만 그 정의 중에 옳은 정의는 하나도 없으며 또한 틀린 정의도 하나도 없다. 우리의 행동 중에 어떤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사실 어떤 행동이든 꼭 존재의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긴장했을 때 머리를 긁적인다던가 하는 습관 따위에 이유가 있어야할 이유는 없다. 또 잠깐 한 실수가 내 전부도 아니다.

이렇듯 우리 삶은 작가에 의해 삶이 좌지우지 되거나, 요약된 것이 아닌 한 편의 역동적 드라마는 아닐까? 어떤 정답도 없고 정답을 구해야할 필요도 없다. 서로의 답안을 들고 누가 맞네 틀리네 우길 필요도 없는 다양성의 표출이 우리 삶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이란 것은 단순한 말장난이며 어떤 결론도 없는 무의미한 학문이라고 누군가에게 정의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현실, 그리고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더없이 쓸데없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 자체가 철학이고 우리는 항상 삶의 이유를 자신에게 되물으며 이렇게 죽지 않고 존재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드디어 내일부터 시험이군… 토요일 보는 생물학이 가장 걱정이로다 -_-;

PS: 사진은 독일 베를린 지하철… 지하철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스치듯 지나가는 잔상의 아련함이 생각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