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회 신촌 문화 축제

어제 술이 내 머리를 뒤흔들어 놓은지 24시간이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머리를 흔들면 아프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나에게 술이란 귀찮은, 피할 수 없을 때만 마시는 그런 존재였다. 술에 이렇게 어색해 져 가면서 나는 외로움을 배웠고, 이제 그들이 다시 다가옴을 서서히 느낀다.

저녁에서는 성호가 약속대로 우리 학교에 음대 도서관에서 악보(우리나라에서는 판매가 되지 않아 주문하는데 $45가 드는)를 복사할 것이 있어서 놀러 왔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면서 성호가 내 학생증으로 도서관에 들어가서 악보를 복사할 때 밖에서 기다렸다. 밖에서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간간히 끼어드는 정적 속에 묻어 나오는 가녀린 이름모를 바이올린첼로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왠지 심금을 울릴만 한 것이었다. 바라보며 깎여내려진 어색한 산의 구릉밖에 보이지앉는 방충망이 달린 창문을 초점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성호가 영화를 보여 주기로 했는데, 마침 보고 싶은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볼까 했었다. 그렇지만 가는 길에 신촌 문화 축제를 구경하러 길을 새서 그 곳에 눌러 앉아서 공연이 끝날 때 까지 관람하게 되었다. 거리는 상당히 활기찬 분위기였고, 도로도 꽤나 탁 트렸다는 느낌을 주었다. 평소의 신촌에서 느껴지던 답답하거나, 오밀조밀하다는 느낌은 없어서 신기했다.

첫번째 공연에는 한국 전통 타악기 밴드 두드락(?)이 나왔는데, 꽤나 인상적이었다. 약간 개조한 국악기로 타악기만으로 상당한 퀄리티와 재미의 음악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워낙 템포가 빨라서 체력의 한계가 있는지 네 곡 정도를 하고 그들의 무대는 끝이 났다.

그 다음에는 윤도현 밴드의 콘서트가 있었다. 별 기대도 않고 앉아 있었는데 일정표를 보니 윤도현 밴드의 콘서트가 있어서 좋았다. 주위에는 그들의 팬이 꽤 있는지 공연 중에 소리지르는 사람도 많았다. 대학 아마추어 밴드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멋진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부 모르는 노래 투성이라서 따라부르지를 못했다. 주위 사람들은 어찌 그리도 다 아는지, 아무래도 팬클럽에서 단체 관람을 하러 온 것 같았다.

끝나고 성호가 내 펌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해서 펌프를 두판 뛰고 같은 버스를 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에 왔다.

내일도 모레도 축제가 계속된다고 하는데 열심히 다 봐 봐야 겠다. 길가에서 살도 좀 태우면서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내일은 누구랑 같이 보면 좋으려나.


월요일 밤에 두 시간동안 뚝딱해서 쓴 서양 문화의 유산 레포트가 수업시간에 잘 한 레포트 중에 끼어서 소개됐다. 여기서 소개 되면 A 란 뜻인데, 조금 무성의하게 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라 기쁘다. 교수님은 베낀거 아니냐고 – 좋은 뜻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 물어보기까지 하셨다. 나름대로 내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 나간 것이 도움이 되었고, 특히 내가 글을 길게 쓸 수 있는 능력이 일기를 쓰면서부터 꽤나 향상된 것 같다.


요즘은 벽에 대한 생각에 자주 빠진다. 벽이란 무엇일까. 너와 내가 이야기하면서 묘한 벽을 느낄 때, 나는 너를 과연 얼마나 더 깊이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두려움에 휩싸인다. 애시당초 우리의 종의 씨앗(예를 들면 벽에 달린 창의 유무, 있다면 크기)이 달라서, 그래서 원천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인해 충돌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절친한 친구, 연인 사이에도 벽은 있는 걸까? 우린 벽과 함께 그것을 껴안고 살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일까?

우리가 느끼는 벽에 대한 관념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저 사람과 나 사이엔 벽이 있는 것 같아. 우린 친해질 수 없는지도 몰라. 그녀석과 난 아무리 이야기해도 뭔가 이질감이 느껴져. 난 그사람을 좋아할 수 없어, 그사람은 날 좋아할 거 같지 않은걸, 우린 다르니까. 심지어는, 내 마음속엔 벽이 있는 것 같아, 낮추거나 열기 힘든. 이런 말들로 벽이 만들어지고 스스로 나는, 우리는 안돼! 하고 먼저 마음을 닫아버린다.

나를 아는 자들이여, 나에게 벽이 보인다면 가차없이 그것을 부수고, 자신에게 벽이 보인다면, 우리 함께 그 벽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그래서 그것이 우리를 막을 수 없을을 증명해 보이자.

PS: 사진은 베를린 장벽

JPT 2급 스터디 첫번째 모임

비가 온 뒤의 거리는 깨끗하고, 하늘은 푸르며, 태양은 빛을 대지에 골고루 뿌려주고 있었다. 나날이 더해 가는 아침 버스의 열기는 멈출 줄을 몰랐고, 강의실은 힘없이 돌아가는 에어컨의 지원 아래 나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잡는데 필사적이었다.

오늘은 무언가 공부를 해 보겠다 다짐했건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여러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공강시간을 보냈다. 새로 나온 가수나 노래들을 보고, 아래에 뜨는 가사를 보면서 따라 불러 보기도 하면서 약간은 불안한 여유를 즐겼다. 막상 하려면 하기가 두려운 것이 공부였던가. 사실 잘 할 수 있을지 두려운 것에 대해서는 항상 주저함이 따른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불어넣는 것, 가보지 않은 곳에 가 보는 것들 모두가 나에게 용기가 부족함을 암시하고 있었다.

구겨졌던 자동차의 범퍼를 펴기는 어렵다. 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마찬가지로 어려우며 공을 들여야 하기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제 2의 사춘기가 찾아왔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하지만 곧,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회복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더 용기를 내야지… 사람들에게 좀 더 안정적이고 푸근한 모습을 보여주고 힘이 되도록 하고, 새로운 시도를 무서워하지 않아야지.

수업이 끝난 뒤에 연세일본문화연구회의 JPT 2급 스터디 모임에 참석했다. 성훈 님, 그리고 순규님, 수지님, 등등 (나머지 분들은 기억이 잘…;) 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할 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다들 좋은 사람들 같았다. 성훈님은 말을 아주 열심히 하시는 듯 했고, 수지님은 나와 동갑인데도 상당히 성격이나 인격 면에서 안정되고 여유로와 보여서 좋았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다다다 친해졌으면 한다. 매주 수요일 만나지만 다른 날도 같이 공부하면서 친분을 쌓았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끝나고서는 ‘PHILL HARMONY’라는 술 집에 갔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이 때 쯤에는 어색했던 내 기분도 많이 풀어져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옆 테이블의 애들이 정말 난리 법석을 떨며 시끄럽게 굴어서 좀 귀찮았다. 뭐 좋을대로 하라지 풋풋.

수지님과는 같은 곳에서 버스를 타서 잠시나마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었는데, 버스가 너무 일찍 와 버리는 바람에 몇가지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이야기만을 나눠 보고 헤어졌다. 저녁도 먹지 않고 술을 마셔서 지끈거리는 내 머리를 달고 집으로…


조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한참 졸 때엔 정신이 몽롱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저 졸기만 하다가도, 갑자기 그 상태에서 깨어나면 머리가 어찌나 개운한지 무슨 지식이든지 다 주워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잠 자는 것, 조는 것. 그들은 아마도 우리 머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필수적 메커니즘 아닐까나. 과학적으로는 REM(Rapid Eye Movement)가 일어날 때 뇌세포가 Refresh 된다고 한다.


오늘처럼 무난한 하루도 없었다. 평화로웠으며, 집에 와서는 즐거웠다. 만족감이라 해야 할까. 그런 기분을 느꼈다. 정말 편안하다는 느낌. 나와 대화를 나눠 주신 분들께 감사…~

PS: 넣을 사진이 없어서 우유가 곰돌이 넣으래서 넣어봄;

후회(後悔)

오늘은 영화보는 날. 평일의 만남은 나에겐 외도와 같다. 집에 있다가 약속장소로 나가는 것과 학교에 있다가 나가는 것은 매우 다르다.

일단 학교 안에서 오래 있다가 몸 정리를 하지 못하고 나가기 때문에 땀을 흘리지 않으려고 아주 노력해야 하고, 점심을 먹어도 입냄새가 안나게 해야 하고, 나란 인간에겐 이런 형식적인 것들이 꽤나 신경쓰인다. 그만큼 나에게 가뭄에 비오듯 생겨나는 만남이란 행운이며, 축복이다.

축복 덕인지 오랜만에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여유를 부렸다. 아침도 가족과 함께 먹고 누구보다 먼저 밖에 나설 수 있었다. 왠지 활기가 넘치는 하루다. 밖에는 흐렸다. 비가 올 것만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구름이 바로 이 때가 기회다! 라는 듯이 비를 쏟았다.

질금 질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수업을 들으러 돌아다니고, 오랜만에 숙제도 열심히 해 보고. 나를 괴롭히던 코도 오늘은 괜찮은 것 같고. 오늘은 느낌이 좋은 하루인 것 같다.

수업 땡땡이 치면 다음부터 안만나 준다며 으름장(?)을 놓은 지현이의 의견도 있었지만, 출석을 최근 좀 많이 빼먹어서 수업을 끝까지 듣고 약속장소로 갔다. 역시 나이스 타이밍으로 그녀를 만났다.

일단 영화 표를 예매하러 갔는데, 그녀에게 정훈이가 전화를 걸었다. 같이 밥먹잔다. 그래서 우리 셋은 극장 앞에서 무슨 영화를 볼 지 티격태격했는데, 역시 정훈이의 강한 주장으로 엑소시스트를 보게 됐다. 원래는 첫사랑을 볼 계획이었는데, 역시 정훈이는 흐음 -_-;;

영화가 시작하기까지는 한시간 남짓 남아서 저녁을 먹었다. 전에 현준이와 간 적이 있는 볶음밥 전문점이었는데, 조금 매운 것을 빼고는 그렇저럭 괜찮았다. 나는 코 문제 때문에 약간 남겼는데 정훈이가 내꺼랑 지현이가 남긴것 까지 다 처리해 버렸다 흐음;

드디어 영화 시작. 전에 봤던 거 같은 영화다. 거미처럼 계단 내려오는 거랑 십자가로 자위하는 부분도 안짤리고 그대로 나왔는데, 너무 빨리 지나가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뭐 그냥 말 그대로 아닐까? 전체적으로 오래된 영화라 Tension 이 꽤 부족하고, 전개가 더디다. 번역도 좀 엉성한데다가, 내용이 좀 지저분하다 -_-…. 영화를 보고 나니 약간 쏠린다. 지현이는 얼굴이 엉망이고, 오직 정훈이만은 신난 것 같다 -_-;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맥도널드 앞에서 나누고 바이바이~ 했다. 난 다시 한번 나이스 타이밍으로 버스타고 집에 왔다.


확실히 정훈이랑 지현이는 꽤 친한 것 같다. 두 사람 사이 대화에서 내가 끼기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질투하는 건가 -_-? 둘이 있으면 그래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은데, 왜그런지 모르겠다. 푸코가 말한 권력 구조의 메커니즘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에게 만남은 약간의 긴장을 주는 듯 하다. 볶음밥을 내가 조금 남긴 것은 더 이상 먹으면 내 속에서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서 코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긴장을 풀고, 더 잘 웃고,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었음 좋겠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또 놀아준 그녀가 고마웠고 또 내 자신이 미안했다. 시간을 내 주어서 만났는데 여러 모로 도와주질 못해서. (이건 뭐 거의 만날 때 마다 레퍼토리인 것 같다) 오늘 그녀의 표정이 너무 우울해 보여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편으로는 내가 좀더 소리를 내서 딴거 보자고 할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면목없음에도 영화가 끝나고서도 어디 가서 차라도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역시 그녀라는 것을 생각하니 멋적은 웃음만 나온다.

PS: 쓰고나니 정훈이 이야기가 별로 없네; 정훈 너도 본걸 후회하지 않냐? 크크;

Writing a Garbage

아침에 일어나니 왼쪽눈에 다시 생긴 쌍커풀. 이것을 일컬어 하루키는 절망이라 하였던가. 나는 오늘도 내가 있던 그 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쌍커풀 따위의 미신에 흔들리다니 나 자신을 향해 가벼운 조소를 지어 보았다. 하지만 이 세상은 미신으로 가득차 있는걸.

사는 이유를 잠시 잊고 생활을 하니, 오늘은 아주 평범하고 그리 우울하지도 않았다. 특히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을 빌리니 기분이 좋았다(내가 나를 위해 빌린 책은 아니고 우유가 레포트 쓰는 데 필요하다고 빌려달라 부탁한 책인데, 상당히 재미있어 보인다. 그리고 나는 책을 보통 빌리지 않고 구입한다.). 책을 껴 안고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갈 때의 기분이란 색다른 것이다. 혹시 미끄러져서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한켠으로는 뿌듯한 마음이 교차한다. 미묘한 감정의 충돌이 삶에 새로운 색깔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여느때처럼 재헌이는 꼬임에 넘어가 대성선배, 재헌, 나 셋이서 당구를 치고 (오늘은 내가 1등을 했다 핫핫…) 수업을 들었다.

파일 처리론 시험 성적이 나왔다. 100점 만점인 것 같은데 5 점 나왔다. 그럴 줄 알았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 않았다.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 훨씬 위안이 되었다. 다음 시험과 기말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면 쉽게 따라잡을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곤 오랫만에 집에 일찍 돌아와서 한가한 김에 머리를 이쁘게 깎고 내일이 마감인 서양 문화의 유산 레포트를 썼다. 시간이 없어서 쓰레기 같은 레포트가 나온 것 같은데, 현애가 말해 주기로는 괜찮다고는 하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레포트 쓰는데 갖은 글늘리기와 설명을 해대느라 힘이 다 빠져서 일기에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 쓰레기 같은 글을 쓰고도 이렇게 뭔가 한 것 처럼 쓰려니 답답해 죽겠다.

내일은 좀더 열심히, 좀더 즐겁게, 좀더 가깝게…

PS: 그림은 오늘 내가 쓴 레포트의 모습을 상징함;

Second Wind

매일 나보다 먼저 문자메시지를 받아서 깨어나는 핸드폰보다 내가 먼저 일어난 것은 오늘로부터 한 달이 넘은 어느날이었다. 이게 얼마만인지, 하지만 나는 어제의 괴로운 기억이 씻겨나가기도 전에 깨어났음을 후회했다.

나는 조용히 방충망이 달린 창문의 섀시 도어를 열고 희미하게 색을 내기 시작한 태양을 뒤로 한 채 주머니가 없는 반바지에 손을 넣고 고개를 떨군채 서 있었다. 방금 예열을 마친 자동차의 공기처럼 숨막힐듯한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큰아버지 댁 따님의 결혼식에 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난 가족들의 움직임이 이 방을 서서히 침범해 들어온다.

공기를 식히기 위해 방문을 열고 다시 창문에 등을 기댔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내 사늘하게 식어 있는 송장의 빛을 한 눈은 어머니를 잠시 응시하다가 이내 땅으로 떨어졌다. 더이상 정적은 없다. 어쩔 수 없이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몸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느낀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또한 이 곳은 아까와는 다른 또하나의 고요를 나에게 마련해 준다. 달콤한 샤워기 소리가 내 피부에 닿을 때면 누군가의 손이 나를 매만져 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다른 곳에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집중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온 신경을 촉각와 청각에 모아 다른 신경을 마취시키는 것이다.

샤워 덕에 약간 나아진, 그러나 아직은 엉망인 기분으로 아침을 먹었다. 어머니께서 내 엎에 앉아서 물으셨다. 나는 별 일 아니라 우겼지만, 어마니께서 믿으실 리 없다. 나는 대충 사는게 재미없다는 식으로 둘러대고, 결혼식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사는게 재미없는 것도 사실이고, 기분이 엉망이라 결혼식에 가고 싶지 않은 것도 거짓이 아니다. 다만 내 환부가 터져서 만든 작은 우주 중 성운 한두개 쯤은 되리라.

아침을 마치고서는 침대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아침은 집중이 잘 되는 시간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스를 타고 진을 빼서 아침 시간을 졸거나 쉬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언제까지라도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결혼식에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설득은 얼마 가지 않아서 금방 시작되었고, 나는 이 때 어느 정도 기분이 더 회복되었고 – 물론 아직도 엉망이지만 – 더 이상 잔소리를 들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았기에, 반신반의로 아버지에게 동의했다.

예식장은 안양의 한 호텔에서 있었다. 나랑 동갑인 그 애가 애도 낳은지 꽤 되었고, 결혼한다는 사실이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그런 일은 어디에도 있는 것이고, 더군다나 작은 아버지의 막내 따님(아마 나와 동갑인 듯 하다)도 얼마 전에 애를 낳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미리 밥을 먹고 식을 지켜보았다. 무슨 사람이 이리도 많이 오는지. 거의 다 내 친척들이었는데, 나는 그들의 이름, 직업, 거주지 따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성격이나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만약 결혼하게 된다면, 이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야 할런지. 나는 도무지 확신이 서지를 않는다.

식이 끝나고 나는 호텔로비에서 어느 정도 아는 젊은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혼자 전철을 타고 학교로 갔다. 지현이의 홈페이지 숙제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는데, 나름대로 열심히 도와 주었지만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려서 조금 늦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머리가 아파서 곧 쉬러 갔고, 나도 주린 배를 이끌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가벼운 현기증과 버스가 가속할 때 나는 굉음, 그리고 나의 미열이 묘하게 섞여서 두통이 왔다. 그래, 차라리 같이 아픈게 낫지.


아침에 세면을 하고 거울을 보았는데, 왠지 내 얼굴이 조금 더 단순해졌다고 느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몇년 전 피곤이 계속해서 쌓이던 어느날 생겨나서 어제까지 남아 있던 왼쪽 쌍커풀이 사라져 있다. 오랜 세월동안 짝커풀이라는게 싫었고 무언가 불완전하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사라지니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다시 태어나려면 무언가 결심이 필요하다. 우선 어제의 절망을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나는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기를 잠시 그만두고, 그럼으로써 최소한 지금 내 앞에 주어진 크고 작은 일들에 노력하기로 했다. 또 사람들을 만나는 횟수도 늘리기로 했다. 조금 더 현실적인 결심을 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아직 기분이 엉망이다.

반신반의로 어제 답장 거의 안해준 지현이에게 문자를 보내 봤다.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노라고. 의외로 빨리 온 답장. 우리는 결혼식이 시작하기 전까지 메세지를 나누었다. 실로 그녀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남의 이야기를 듣기란 힘든 일임에도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사람이 있다!

저녁에 그녀를 돕게 되었을 때엔 조금 힘들긴 했지만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여러 모로 내가 도움을 더 많이 받았음에도 미안하다는 그녀, 머리가 아프다면서도 같이 저녁을 먹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그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이 일기를 보고선 아니라며 고개를 저어버리고 마는 그사람. 덕분에 ‘왠지 감동적인 하루’, ‘힘이 나는 하루’였다고 결론지을 수 있어서 기쁘다.

PS: 우리집 창문과 비슷한 풍경을 찾다가 발견한 영화 ‘북경반점’의 한 장면. 이쁘다…;

Inexpressible Sorrow

서양 문화의 유산 레포트 때문에 같이 하는 애를 만나러 학교에 갔다. 그런데 갖고 있다고 믿고 있던 그 애의 전화번호가 없다. 아무래도 그 애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멍하니 학교에 걸어들어가고 있는데, 현준이를 만나서 현준이랑 리건이랑 숙제하는데 옆에서 놀았다. 홈페이지 숙제였기 때문에 게임방에서 줄곧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같이 하자고 한 애가 전화를 걸어서 간신히 만나게 되어서 한 20분 이야기 하고 다시 돌아온 시간을 제외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오래 해서 쏠려 봤다. 어찌나 오래 했는지, 한게임 당구 수지가 150으로 올라갔다. 포트리스, 스타크래프트… 안해본 게임이 없는 것 같다. 지현이가 가르쳐 준 bugsmusic.co.kr 이 아주 도움이 되었다. 이게 없었으면 정말 도저히 못견디었을 텐데.

거의 죽은 몸으로 셋이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같에 게임을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내가 거절해서 우리는 해산했다. 완전히 일그러진 표정으로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 앉아서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나는 왜 컴퓨터를 그렇게 오래 해야 했을까. 짧은 내 의견으로는, 혼자이기 싫어서 였던 것 같다. 지금 게임방을 나가면 달리 할 일도 없다. 집에 가기는 싫다. 그냥 앉아있자….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괴로울대로 괴로워진 영혼과 육신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함. 애써 포기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인생에 대한 오기. 그러나 더이상 나아갈만한 능력이나 힘이 남아있지를 않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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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유 놀이방에 썼던 글들을 읽어보았다. 이렇게 많은 글 들을 사람들은 쓰고 살았었구나. 그리고 내가 잊고 지나쳤던 이 수많은 글 들을 보고 놀랐다. 정말 내가 아는 것은 정말 하나도 없구나…

남들도 그렇게 내 글을 스치듯 지나 보내고 잊겠지. 내 이름을 기억해 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곳의 글 들을 당시에 왜 그리도 열심히 읽지 못했는지 후회했다.

오래 된 글 부터 몇 개인가 읽어보다 보니, 우유의 100문 100답이 있었다. 그 땐 그런 것이 있었는지 조차 잘 몰랐던 것 같은데, 난 왜이리도 무관심했는지. 한 가지 밖에 볼 줄 모르는 내가 부끄럽다.

천천히 그녀의 100문 100답을 읽고서, 내가 예전에 썼던 111문 111답이 생각났다. 옛날의 철없던 내 모습이 싫고 부끄러웠기에, 다시 한 번 써 보고 싶었다. 나는 부랴부랴 우유가 받았던 문제를 복사해서 내 나름대로의 답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정확하다고는 장담할 수 없는 100문 100답을 꽤 짧은 시간만에 쓰고, 우유놀이방에 등록했다. 전보다 훨씬 솔직해 져서 가슴이 뿌듯했다. 그 시절엔 왜이리도 가식이 많았는지… 난 부끄러워서 예전 나에 대한 질/답 글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이렇게 내 생각의 일부는 하루하루 어딘가에서 만들어지고 삭제되며 나라는 생각의 총체는 어딘가로 시나브로 이동해 간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 나는 그렇지 않다고 우겨 왔는데 나 자신이 이렇게 변해간다는 것이 조금은 견디기 힘들다.

더 이상 글을 삭제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누가 말려주기라도 했으면 한다. 컴퓨터 천재였던 누군가는 자기의 모든 글을 삭제하고 사이버 자살을 한 뒤에 죽었다. 그만큼 글이란 것은 존재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 여기 있어요”

우리 글은 쇼 윈도 안의 마네킹. 때론 시선도 끌지만 오랫동안은 기억되기 힘든 것.

하루 종일이고 그 마네킹을 바라보는 소년, 그 추억을 커서도 기억하는 소년이 되고 싶다.

Never apart

수업이 없지만, 어제 축제도 안 갔기 때문에 분위기를 살피러 학교에 갔다. 그다지 기대 없이 간 학교는 역시나, 1학년 때랑 어떻게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지… 물론 달라진 것을 말한다면 등록금인상률 뺨치는 음식값 정도? 학생들이 너무 하는 것 아닐까…?

현준이와 오랜만에 만나서 점심먹고 수업 같이 들어주고, 게임방에서 좀 놀다가 저녁을 먹었다. 난 둘이 만나면 영화가 참 보고 싶다. 못 본 영화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이상하기도 하지. 하긴 난 혼자서는 영화 절대로 못보는 사람이니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영화 한편 못보고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 현준이가 돈이 없어서 내 지갑을 몽땅 털어서 영화를 보여 주었다. “멕시칸”

총을 둘러싼 액션 스릴러(?)지만 주 테마는 사랑이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언제 헤어져야 할까. 절대 헤어지지 않아. 사랑의 기적. 진부할 것 같았던 이야기를 상당히 색다르게 엮은 괜찮은 영화였다.

사랑은 배우면서 하는 것.

정말 사랑한다면 영원히 헤어질 수 없는 것.

사랑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 그럼에도 변하곤 하는 것.

너무나 다정했던 동성애자 킬러 아저씨의 말이 참 멋졌다…

나는 이 순간에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가.

오늘의 결론

어제 12시 가 조금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지만 역시 깨는 시간은 다음날 해야 할 일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지, 어제 잠든 시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아침이다.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맞추어 놓은 TV 가 자동으로 켜 지고, 한 시간인가 지나면 꺼져버리는 아침이다. 어제 밖엘 조금 돌아다니고, 당구를 치는데 꽤나 힘을 들여서 아침의 내 몸엔 땀이 베어 있었다. 샤워기에 물을 틀고 노래를 틀었다. 아무도 없는 아침은 이래서 좋다. 아무리 샤워를 오래 하고 노래를 크게 틀어 놓아도 누구 하나 화내지 않는다.

잠시 물을 받다가, 오랜만에 욕조에 들어가서 좀 누워 있고 싶어졌다. 욕조에 누워서 여유를 즐긴 것은 1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리운 마음에 욕조에 물이 채 다 채워지기도 전에 들어가서 기다렸다. 조금씩 차오르는 물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내 사소한 움직임에도 반응하는 물이 좋다. 물이 점점 차 올라 내 몸과 수면의 높이가 같아 졌다. 나는 수면으로 떠오르는 걸까, 아니면 가라앉고 있는 걸까.

난 수영을 못한다. 어렸을 때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이젠 기억이 안나는 어떤 이유로 못하게 되어서 아직도 난 내가 바다에 뜰 수 있는지 조차 모른다. 하늘을 나는 상상은 해도 바다를 헤엄치는 상상은 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게 바다는 두려운 곳이다.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배를 타는 것이 나에겐 더 두렵다. 하지만 바다를 거니는 것은 좋아한다. 내 발목을 적시는 푸른 물이 좋다. 발목에 느껴지는 물의 감촉이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욕조에서 느꼈던 것과 같다.

그리곤 컴퓨터와 약간 씨름 하다가 악마의 시를 읽었는데 문체가 좀 어려워서 40분을 채 못읽고 잠이 들었다. 창문을 열고 잠이 들어서 그런지 일어 났을 때 더러운 기분은 남지 않아 좋았다. 여름 바람이 이렇게 시원했던가… 기분 좋다. 한동안 계속 누워서 바람을 쐬었다. 거실에는 실링 팬이 돌아가서 여름인지 모를 정도로 시원했다. 4학년 때 휴학을 잠깐 하고 혼자 살아 보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이런 sweet home 을 떠난다는 것이 조금은 두려워 졌다.


요즘 일기를 쓰면 결론이 안나는 것 같다. 다만 내 느낌과 기억의 편린이랄까? 언제부터 오늘 하루의 결론을 내고 그것을 정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나를 며칠간이나 괴롭혔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며칠 간의 고민 끝의 내 결론: “내 인생이 하루 단위로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비참한가.” 인생은 긴 여정이니까, 이렇게 생각해 두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리라. 며칠에 한번이고 어떤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자.

PS: 그림은 ‘그남자와 그여자의 사정’ 중에서… 그런데 난 이 애니메이션 거의 못 봐서 무슨 내용인지 잘 –a

사랑따위 나는 몰라요

지금, 일기 쓰기가 두렵다.

내 일기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되어 버릴 것 같다.

간단히 중요했던 두 이벤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싶다.

꿈을 꿨다. 한 페미니즘 성향이 약간 있는 여성지를 읽는 꿈이었는데, 거기서 한 중학교 3학년생의 고민 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다. 거기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기력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귀여운 소녀의 얼굴이 몇 장 인가 인쇄되어 있었고, 그녀의 독백이 한 페이지에 걸쳐 적혀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꿈 속에서 나는 그 얼굴이 지현이랑 닮았다 생각했지만,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내 일기가 매스컴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자꾸 지현이가 나오니 좀 이상하다.

집에 올 때 책을 샀다.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별로 끌리는 문체는 아니지만 꽤 평이 좋아서 구입했다. 컴퓨터 할 시간에 이것을 읽는 것이 내 메마른 정신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난 정말 내가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을 때 언제라도 함께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또 그 사람이 원할 때 언제든지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넌 연인을 원하고 있는거야, 바보야.”

“그럴까? 하지만 난 사랑이 뭔지 몰라.”

“누구나 사랑을 알아가며 사랑을 하지.”

… 애써 모른다고 대답하고 싶다. 이 질문들에 대해.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이제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