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따위 나는 몰라요

지금, 일기 쓰기가 두렵다.

내 일기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되어 버릴 것 같다.

간단히 중요했던 두 이벤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싶다.

꿈을 꿨다. 한 페미니즘 성향이 약간 있는 여성지를 읽는 꿈이었는데, 거기서 한 중학교 3학년생의 고민 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다. 거기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기력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귀여운 소녀의 얼굴이 몇 장 인가 인쇄되어 있었고, 그녀의 독백이 한 페이지에 걸쳐 적혀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꿈 속에서 나는 그 얼굴이 지현이랑 닮았다 생각했지만,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내 일기가 매스컴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자꾸 지현이가 나오니 좀 이상하다.

집에 올 때 책을 샀다.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별로 끌리는 문체는 아니지만 꽤 평이 좋아서 구입했다. 컴퓨터 할 시간에 이것을 읽는 것이 내 메마른 정신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난 정말 내가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을 때 언제라도 함께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또 그 사람이 원할 때 언제든지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넌 연인을 원하고 있는거야, 바보야.”

“그럴까? 하지만 난 사랑이 뭔지 몰라.”

“누구나 사랑을 알아가며 사랑을 하지.”

… 애써 모른다고 대답하고 싶다. 이 질문들에 대해.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이제 아니까.

간직

어젯밤에 지현이와 ICQ 를 했는데 내가 어찌나 심심했던지 시시콜콜 썰렁한 메시지를 꽤나 보냈던 것 같다. 그땐 왜 그랬는지, 심심한 사람의 투정이었다는 것을 정훈이의 일기를 보고 깨달았다. 어제 인사도 안하고 나가버려서 미안하다는 그녀의 편지가 내 메일함에 도착했을때야 나는 내가 나쁜 사람이란 걸 알았다.

아침에 여유가 있어서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지만 그녀는 괜찮다 한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지… 미안했지만 왠지 우울하게 말할 수가 없어서 장난 처럼 말해버렸던 듯 싶다. 그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내 대화 능력은 이정도 밖에 안된다.

학교란 지루한 곳이다. 대학마저도 우리에게 능동적 지식의 섭취 기회를 빼앗았다. 숙제와 시험은 판에 박혔고, 시험 패턴을 이해하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 때론 쉬고 싶을 때도 쉴 수 없다. 얼마 전 파일 처리론 2차 시험이나 숙제같은 것들이 싫다. 그들은 나에게 족쇄를 채운다. 학점이란 이름으로 나를 굴복시킨다.

나에게 어떤 대안이 있을까?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자유 활동과 학업 활동의 병행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소중한 나의 여가가 남질 않는다. 최고가 되려면 여가 시간마저도 컴퓨터를 즐겨야 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난 그런 최고는 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최고가 아니다. 기술적인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삶의 아름다움, 아울러 그 어두운 면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는 인생의 여러 국면 끝에 빚어진 철학의 산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 밸런스를 맞출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질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았자 별 소득이 없음을 깨닫고 웹 사이트를 뒤지다가 말고 하이텔에 접속했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sg718(사카이 노리코 팬클럽 ‘1971’), sg1314(99학번 모임 ‘은하철도’), sg2258(공개 일기를 한번 써 봐요) 정도이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모임은 1971인데, 요즘인 침체 분위기인 듯 하다. 그녀의 결혼 뒤로 이렇게 침체될 줄이야… 하지만 여전히 친목 모임으로서 잘 활동하고 있어서 좋다. sg1314는 1학년 때 가입한 모임이다. 내가 활동 안해도 잘 돌아가는 이 모임은 회원수도 많고, 이미 친한 사람들 끼리의 조직도 잘 되어 있다.

이곳에서 난 진주를 만났다. 대학 들어와서 두 번째로 좋아했던 사람. 하지만 지금은 소원해진 사람. 내 잘못도 있고, 그녀의 잘못도 있어서 이렇게 연락도 않고 지내긴 하지만, 그녀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평범했는데, 다만 그녀의 여러 환경이 그 때 그렇게 행동하게 하도록 했다는 것을 이젠 이해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 때 꼭 그렇게 했어야 할 필요는 없었는데… 미안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sg1314에 남겨진 나의 옛 게시들을 읽었다. 유치, 발랄, 희망적인 글들이다. 정녕 나에게 이런 시절도 있었단 말인지. 지금의 나와는 대조적인 그 모습에 난 놀라버렸다. 그리고 그 날의 나를 부정하고 싶었다. 이류는 모르겠지만 잊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300여개의 내 모든 게시를 삭제했다.

삭제해서 서운한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 서운하다면 나에게 꼭 말을 해 주었으면 한다. 어떻게 했어야 옳았는지. 난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난 곧 알아챘다. 그 많은 순간들은 아무리 지워내도 내 마음 속에 언제까지나 간직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걸. 그녀와의 여러 번의 만남, 어설픈 헤어짐. 그 사이의 수많은 글들이 그 때의 진짜 나였고, 그것의 잔해가 지금의 나를 이끌어준 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난 그녀에게 도움받았다. 난 그녀에게 도움 준 것이 없지만. 그래서 미안하다.

앞으로 간직해갈 내 삶의 여러 단면들이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도 잊혀지고 때론 다음 단면의 재료가 된다. 그리고 그 단면에게 도움을 준 수 많은 사람들…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잊을 수 밖에 없게 되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나에게 소중한 몇 사람이라도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 정도 아닐까?

어제의 그런 행동들도 무언가 가까이 간직하고 싶어함의 표출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왜곡되어서 실례를 낳고… 실수가 싫다 싫어…

PS: 지현이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인연이 거기까지는 닿지 못했나봐…~ 라고 해버리곤 해”

운명론적이라고는 하지만 난 이 말이 좋다.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 말, 옛 인연을 끊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인연에 대한 희망을 주는 말… 그래도 마음이 아픈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PS2: 그림은 정훈이가 그려 준 600히트 축전 ‘노드속에서의 발견’. 멋지다 ㅠ.ㅠ

해일

고등학교 동창 성호가 우리집에 놀라 왔다. 와서 그는 내 CD-Writer 로 씨디를 여러장 만들어 갔다. 중간에 에러가 나기도 했지만 그럭 저럭 잘 되었다.

그리고 음악 이야기에 대해 주로 나누었다. 특별히 생각은 나질 않는다. 음악씨디를 몇장 만들어서 그것을 틀면서 이야기를 했다. 슈베르트의 씨디를 틀었을 땐, 이것이 유행곡인지 아니면 클래식인지 분간이 안 갔다. 낭만이란 이런 걸까. 유행과도 같은 것.

그것은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다. 낭만이란 유행 이상의 것이라고 우기고 싶다. 하지만 낭만을 겪어 보지 않은 내가 그런 것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소용없는 것일 듯 하다.

그를 돌려 보내고, 누나와 매형도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혼자 남았다. 왠지 할 일을 만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나는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오래간만의 집안일이다. 몸에서 가볍게 땀이 난다. 걸레를 빨면서 땀을 식혔다. 그리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이런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잠시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바닥을 기며 걸레질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 Pump It Up을 했던 이유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일을 마치고 나는 샤워를 했다. 미지근한 물로 모공을 열고 크린싱 폼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찬 물로 모공을 닫았다. 거울엔 번들거리는 내 얼굴이 비친다. 기름이 끼지도 않았는데 번들거리는 내 얼굴이 싫다. 아침에 일어난 것 처럼 면도를 하고 스킨, 로션을 했다. 면도 독 때문에 얼굴이 후끈댄다. 향수까지 뿌리면 데이트 장소로 향하는 내가 될 것만 같았다. 누구라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밤. 누구나 집에서 쉬는 시간. 한 밤중에 나를 당장이라도 반겨줄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난 외롭지 않았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기에. 하지만 난 꽤나 그것을 바랬던 것 같다.

사실 오늘은 그다지 외롭지 않았다. 외로움이란 파도같다. 해일일 것 처럼 밀려왔다가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그리고 표면을 부드럽게 깎아지르는 것. 외로움을 겪고 나면 외로움을 잠시나마 잊고 마음은 편히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진짜 ‘해일’ 이 닥쳤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 모르겠다. 어디에 기대야 할까? 죽어야 할까?

PS: Southern All Stars 의 ‘Tsunami(해일)’ 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감동적인 노래… 그런데 싱글 사진은 보컬 아저씨가 독차지…;

No Appointment

잿빛 구름 사이로 비치는 서광. 그것은 메시지… 회사에 주민등록 등본 갖다 주러 가려고 했는데 아침에 경남님과 ICQ 를 해 본 결과 특별히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늘은 약속도 잡지 않았는데 갈 곳이 없어지니 도대체 뭘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할일은 많다.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심심하면 친구한테 문자메시지도 보내고, 메일도 읽고 할 일은 정말 많다. 하지만 왠지 예정에 없던 일을 하려니 이런 저런 핑계가 나를 방해했다. 답답하기도 하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내 자신이 막고 있다니, 뭔가 비정상이다.

한참 친구들과 ICQ를 주고 받다가, 꽤나 늦은 아침을 먹고 설겆이를 했다. 어제부터 일주일간 부모님이 미국으로 여행을 가셔서 거의 하질 않던 설겆이를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가사가 즐겁게 느껴졌다. 매일 매일 세끼 꼬박 설겆이도 하고 걸레질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혼자 살면 어떨까? 내 방을 멋지게 꾸미고 누군가 놀러 왔을 때 자랑도 해 보고.

나는 지금 당장 이 곳을 떠나지는 않는다 쳐도 전세집을 한 번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기 저기 가격대 별로 알아보았는데, 맘에 드는 곳은 꽤나 비쌌고 심지어 어떤 곳은 보증금과 함께 월세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내 능력으로 그렇게 부담되는 곳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지현이가 사는 데 처럼 그렇게 높고 넓어 보이는 곳은 좀처럼 없다. 하지만 여력이 되면 꼭 그런 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 한밤중에 아주 밝은 조명을 켜고 야경을 바라본다. 위스키 언 더 락을 가볍게 마시면서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고 미소짓는 상상을 했다. 상상처럼 달콤한 것은 없다.

꽤 오랫동안 그렇게 웹을 뒤지다가 상상에서 깨어났을 땐 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이젠 채팅이 하고 싶었다. 별로 도움도 안되는 것 알면서 웹 채팅을 했다. 초등학생 천지다. “사랑이란 술 같아요.” 라고 말하던 그 대학상을 짝사랑했었다는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의 말에 세대 차이를 실감했다. 그렇지만 초등학생만의 뭐라 말할 수 없는 – 경험한 자 만이 알 수 있는 – 공통된 특성은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도 느꼈다.

나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 생각난다. 사랑이 무언지, 우정이 무언지, 심지어는 좋아한다는 감정이 무언지까지도 모르던 시절이다. 그 때 나와 소위 ‘사귀던’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지금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의 기억이 내게는 이제 없다. ‘남남’이어도 상관 없었던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프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잊혀지거나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 이내 잊혀지고 우리의 기억 공간을 정리해 주는 사람이 있다. 나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잊혀져 간다. 모두 한편에서는 잊혀져 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억되어져 간다. 잊혀지는 만큼 기억되지 않으면 나는 점점 작아진다. 세계 지도의 폴리네시아의 이름조차 없는 작은 섬보다 작아져 결국엔 희미한 점이 되어버릴테지.

나는 잠시 상념을 멈추고 나의 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한 상황을 잠시 뿌리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한 시간 쯤 밀린 정기 구독 잡지를 읽었다. 한시간 쯤인가 읽고 나서야 내 머리가 더 이상 읽을 수 없음을 신호했다. 정말 나는 오늘 만날 사람이 “한” 명도 없단 말인가. 스스럼 없이 만나자 전화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사실 약속이 애시당초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혼자 방을 긁고 있는 것은 당연한지 모르겠다. 왜 숫자 “1” 이란 것이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결국 모든 숫자는 “1”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멍하니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앉고서도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몰랐을 때, 문자메시지가 왔다. 지현이다! 이 “1” 의 시간에도 나를 인터럽트 할 수 있는 단 한사람. 나는 기뻤다. 더 이상 표현할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때론 짧은 것이 가장 인상적.

저녁때는 누나와 “South Park”라는 만화영화를 봤다. 만화의 틀을 깨는 잔인함, 욕설, 교훈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난 오늘 나의 모든 사고 능력을 소비했는지, 자세히 뭐가 뭔지까지는 모르게 되어버렸다.


무위도식 보낸 하루인데 오히려 일기가 길다. 오랜 만의 채팅, 그리고 메시지로부터 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안에 쳐박혀 있어선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나를 방치한 내 자신이 바보같다. 혼자서 학교에라도 갔다면 내 일기가 훨씬 밝아졌을텐데.

PS: 내 일의 의욕을 되찾을 것 같다. 여러가지 꿈 중 하나라도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나.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것들

각종 커피, 오리지널 홍차, 여러가지 전통차, 그림이 유치한 캔음료 마셔보기. 자동차, 모터 사이클 몰기. 스키, 스노우보드 타기. 수구, 골프, 테니스치기. 고백하기, 이성과 손 잡기, 포옹, 키스, 섹스. 일일 찻집 가기. 군대 간 친구에게 편지쓰기. 소개팅에서 애프터 신청하기. 수능시험보기, 입시에서 떨어져서 재수하기. 밤새도록 진실되게 이야기하기. 컴퓨터와 1달 이상 떨어져 있기. 킥보드 타기. 공원에서 이야기하기, 자전거 타기. 나이트클럽가기. 클럽 가기. 좋아하는 가수 사인 받기. 운명적 만남. 평소에 공부하기. 교통사고 당하기. 통장 잔액 100만원 이상 1년 동안 유지하기. 밤새도록 연인과 바에서 술과 이야기를 즐기기. 유서 쓰기. 2시간 이상 앉아서 공부하기. 나처럼 외로워 보이는 사람한테 무작정 말걸기. 시험지를 백지로 내기. 시험에 안들어가기. 여자한테 온 문자메시지 씹기. 선생님을 짝사랑하기. 진짜 사랑. 30분이상 누군가의 손잡아보기. 고급 미적분. 사랑니 나기. 가슴아파서 기대 울기. 수목원에서 데이트하기. 해외 펜팔을 찾아가서 만나기. 점보기. 도둑질당하기. 컴퓨터 고장내기. 사우나. 초등/중학교 동창 만나기. 성인영화보기.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말 듣기. 꽃과 함께 고백받기.

저 중 거의 다는 내가 정말 겪어 보고 싶은것들이다. 지금 정말 해보고 싶은 것들도 있고, 아닌 것들도 있고… 몇가지 빼고는 다 해보고 싶다. 더 많은 일들을 앞으로 겪게 될 테지만, 내가 아직도 겪지 못한 일들이 이리도 많음을… 나의 경험이란 것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알 것 같다.

혹시 누구든지 위의 경험중에 하나라도 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으신 분께서는 당장 주저말고 메일을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일처리론 시험이 있었다. 평소에 하지를 못해서 오늘 하루 동안 시험 범위를 전부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나란 녀석은 더이상 벼락치기를 허용할 수 없는 것 같다. 여기 저기 책속에 박혀 있는 숫자들의 나열을 맹인처럼 바라보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의 실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자 참을수 없는 심정이 되었다. 노래를 들으며, 지현이랑 SAY 를 하면서 한 시간 쯤을 보낸 뒤에서야 공부를 약간 더 할 수 있었고, 시험을 보았다.

공부를 별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특별히 쓸 내용도 없고, 단순 반복 문제도 있어서, 적당히 앞부분만 보이고 설명을 하는 식으로 한 페이지를 채웠다. 더 이상 쓸 말도 없지만, 시험장에서 나가려면 시간을 좀 더 때워야 해서 생각 끝에 다음 장에 에세이를 한 편 써 보기로 했다. 제목은 “은빛 아스팔트”. 여기 일기에서도 며칠 전 썼던 표현인데, 그것을 모티브로 해서, 나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세상의 재발견(아스팔트가 은색이라는 것)을 하고 나에게 정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는 한 쪽 분량의 글이다. 맘에 들지 않은 감이 있긴 하지만 왠지 만족스러웠다.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이리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녀가 말했듯, 그것은 완전히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글을 쓰기가 두렵다. 어디까지나 선을 그어야 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나는 행간 사이로 흩어져 버릴테니까… 그녀도 어서 글을 계속해서 썼으면 좋겠다. 그녀의 글이 내 것보단 역시 세련되고 아름답기에…

Comma

놓쳐서 늦게 탄 버스는 안이 아주 한산하다. 어제 느껴지던 그 열기는 다 어디로 가 버렸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시원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한 일이 없는 하루다. 매일매일 거대한 인생의 서사시를 쓰는 것처럼 일기의 지면을 채우는 일은 무의미하다. 매일 밥을 먹는 것이 우리에게 별다른 의미도 주질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겠지.

어김없이 재헌이를 꼬드겨서 당구를 쳤다. 침착함과 신중함, 그리고 행운이 나를 다시 한번 승리로 이끌어 주었다. 하지만 뭔가 허전한 이 마음. 역시 자꾸 이겨버린다는 건 친구에게 미안한 일이고, 또 이겨버릇해서는 승리의 귀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애시당초 오늘 있던 아카라카에는 가지 않을 계획이었는데, 내일 시험이 오후 7시라서 시간 여유가 많다고 생각하고 아카라카를 구경했다. 재작년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집단 응원, 가수 퍼레이드, 또 응원으로 마무리되었다. 싸이, 설운도(!), 소나기, 야다, 포지션, 레이지본, 크라잉넛, 핑클 등등 많은 가수들이 와서 노래를 불러 주었다. 포지션과 야다가 제일 괜찮았던 것 같다.

응원할 때에는 응원 춤 동작을 다 잊어버려서 고생했지만 이내 대충 익혀서 어느정도 따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들곤 해, 멍하니 춤을 추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커다란 벌집 안에 흠집이 약간 난 모양 비슷했으리라. 그래도 나 혼자라는 생각은 안 들고, 그저 멍 하니 바라볼 뿐이었으니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뒷풀이를 약간(막차 시간 때문에 중간에 나와 버렸음)하고 돌아오는 길에 꽤 전에 보냈던 문자메시지의 답을 받았다. 뭐랄까, 언제 받아도 기쁜 그런 메시지다. 오늘 보낸 메시지가 10년 뒤에 답장이 와도 기쁠 그런 메시지. 사실 나에게 문자 메시지 보내 주는 사람은 019와 그녀 뿐이다. 보냈을 때 답장 줄 사람은 그녀 뿐이다.

이런 생각이 나면 가끔은 기뻐해야 하는지 쓰러져 울어야 하는지 분간도 되지 않는다. 난 외로운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정답은 ‘,’ 쯤 되지 않을까?

PS: 사실 일상의 일들이 완전히 무의미하거나 하지는 않다. 어떤 것에 의미가 없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자기 삶 자체가 의미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몸부림, 열정

어김없이 아스팔트를 가르는 자동차들과 함께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는 기분으로 버스를 탔다. 오늘도 우중충하면서도 상쾌한 공기다. 버스의 답답한 기운은 내가 왜 여기에 서 있어야 한는지 이유조차 잊게 한다. 학교에 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어수선한 분위기의 관광 코스를 돌고 있는 기분이다. 이 뜨거운 공기 안에서라면 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쏠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름대로 나는 2년 남짓이라는 길다면 길다고 해야 할 세월을 참으며 통학을 해 왔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지만, 어쩌면 이 뜨거운 공기는 희망이 가져다 주는 열정의 2차 효과일 뿐일런지도 모른다. 다들 작아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열정을 갖고 이 600원짜리 버스에 타서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어딘가를 향해 매일같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짧은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고 미온의 열정이 이 세상 곳곳에 무의식적으로 뿌려진다고 생각한다.

버스에 내려 다시 우중충상쾌한 공기와 함께 정확히 수업 시간 4분 전에 강의실에 들어섰을 땐 아무도 없었다. 잠시나마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럴리가 없다. 밖에 게시판에 붙은 연합 채플 공지사항이 기억난다. 그게 하필 오늘 아침이라니. 어제는 2시에 자서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힘들어서 미칠 것 같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내 기대가 무너져내리니 수업이 없는데도 수업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여유를 내서 산 포도농장이라는 포도 쥬스를 마시며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왔다. 다음에 일어날 일은 조금 뻔하다. 이제 무얼 해야 할지, 갑자기 길잃은 개처럼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결국엔 언제나처럼 컴퓨터실에 가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실에 도착했을 땐 아까 버스 안에서나 느꼈을 법한 미지근한 온기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버스의 기운과 이 곳의 기운은 사뭇 다르다. 어디까지나 기계의 그것은 열정이라기보다는 발열이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 홈페이지를 관리하고는 어제 읽다 만 소설을 마저 읽어내려갔다.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 속에서 멋진 글귀도 찾아서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하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에겐 오늘도 결정적으로 이 곳에서 항상 느끼는 ‘갈증’ 이라고 하는 것을 해소할 수가 없다. 왠지 모르게 나는 이 곳에서 내가 내는 ‘체온’이란 것이 열정이라기 보다는 삶의 몸부림이라는 생각히 들었다. 열정과 몸부림은 비슷하다. 다만 그것은 비슷할 뿐이다. 본질은 다르다. 마치 치즈와 버터의 차이와 같다. 둘 다 같은 원료를 사용하지만 어디까지나 버터가 더 느끼하다. 마찬가지로 몸부림은 느끼하다. 상쾌한 터치가 되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필요를 느꼈다.

마침 PDA 가 수업시간을 알린다. 선배와 수업시간에 들어갔다. 읽던 소설을 마저 다 읽어버렸다. 아직도 소설의 결말 부분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주제 조차 파악이 되지를 않는다. 잠시나마 멍한 CHAOS에 빠져 있는 사이에 수업의 반이 끝나고 잠시 휴식시간에 찾아왔다. 밖에서 동창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강의실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재헌이가 수업엘 들어왔다. 아마도 어제 태워먹은 CPU를 교환하러 갔다 온 거겠지. 아까 동창과 했던 내가 읽은 소설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을 그와 다시 한 번 이야기한 뒤에 수업이 끝났다.

다시 컴퓨터실로 돌아온 나는 조금 쉬다가 이미 딜레이되어버린 운영체제 숙제를 했다. 5인 1조가 되어서 하는 숙제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충분이 잘 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분간 프로그래밍은 꼴도 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다. 단체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오늘 같은 경우엔 인내력 테스트에 좋다 할 수 있겠다.

기침이 계속 난다. 어제 본 파이란처럼 폐가 아파서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죽어도 그만이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어째서 나에겐 이리도 살아야 한다는 몸부림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역시 열정과 몸부림은 적어도 같은 뿌리를 갖고 있기는 한 듯 싶다. 사실 다른게 근본적으로는 없는지도 모른다.

내 몸 안의 작은 열정은 나도 모르는 동안 언제나 있다. 죽기보다 싫은 일을 할 때도 꺼저가는 열정을 짜 내어 무언가를 해야만 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생각할 때 열정의 불꽃에 기름을 들이붓기도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생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겐 최소한의 열정이 식지 않고 발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열정은 우리 몸 안에 함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항상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의처/부증과도 같다. 심해지면 집착이 된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지만, 사랑과 집착은 정말 작은 차이에서 온다. 상대방을 항상 생각하되,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사랑은 어느샌가 집착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내가 한 것들이 사랑이긴 한 것인지. 난 변변히 잘난 사랑도 한 번 해 본적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아직도 어떤 만남을 할 때 마다 그 사람들 모두를 내 연인처럼 대하고 싶다고 느끼곤 한다. 정말 내가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만난지 며칠이 지나도록 만난 사람의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 본다. 지금쯤 양치질을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까? 어떤 기분으로 숙제를 하고 있을까? 이 모든 생각들이 집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바보 같은 감정을 갖지 않도록 노력한다.

지금으로선 이런 일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싶다.

PS: 사진은 내가 쓰고 있는 향수… 누나에게 선물받은 것인데 향이 맘에 든다. 예전에 타미힐피거 애프터쉐이브 쓸 땐 몰랐는데…

Talk Talk Talk

첫번째 수업 시간은 버스를 놓쳐서 듣지를 못했다. 컴퓨터실이 닫혀 있길래 어제부터 읽던 1째 권의 마지막 부분을 남김없어 읽어버렸다. 2권이 바로 보고 싶었지만 없는 걸…

영화를 예매해 볼까? 녹색극장에서 그녀의 의견을 물어 6시 30분 표를 끊었다. 어제 5시 4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밥먹을 시간이 있으려나…

학교로 돌아와서 별 생각 없이 있다가 5시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시간을 메우기 위해 대성선배 재헌 나 셋이서 당구를 쳤다. 오늘은 잘 되질 않네…

오래간만의 만남이라 그런지 알수 없는 상쾌함과 긴장감이 나를 마비시킨다.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거리 한가운데에서 시계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녀는 6시에 도착했다. 밥먹을 시간이 없어서 일단 영화를 봤다. 파이란…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슬픈 영화였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삼켜버린 그 슬픈 장면들이 떠오른다. 일부러 강한체 하려는 건 아닌지? 우리의 감정을 무의미하게 강하게 단련하고 있는건 아닌지?

영화를 보고 우린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에 다다랐는지, 이렇다할 감상을 말하지 못한 채, 소렌토에 갔다.

우린 파이란에 대한 여러 생각을 나눴다.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조차 보이지 않는 강제, 더이상 붙잡을 사람조차 없는 파이란… 그들은 어쩌면 이 세상에 남겨졌던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이야기하면서 밥을 반 쯤 밖에 먹질 않았다. 그리고 우리 이야기는 Aroma 라는 카페에서 11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곤 외로움이라던가… 나의 기억, 그녀의 기억, 그녀의 가치관, 나의 장점과 단점(그때 당장 요즘 느끼는), 그녀의 고민…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우린 나눴고, 그것이 어떤 합의점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만으로도, 비록 그것이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잔잔한 여백을 남기며 우린 책을 지었다. 내용이 약간 다른 멋진 두 권의 책이 우리 가슴 안에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것이다.

그녀에게 ‘소피의 세계’를 빌려주고 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11시 12분이 되어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TTL 존 앞에서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이 어딘지… 신촌의 거리가 인공조명 아래의 세트 같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우린 헤어졌다. 그녀가 먼저 오늘 즐거웠어! 하고 말을 건네 주어서 기뻤다.


내가 한 말이 전부 진실인지, 아니면 조금은 거짓말인지 말해놓고도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녀가 한 말을 전부 기억하지도 못한다. 나나 그녀가 대화 중의 질문에 전부 대답한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난 그녀가 균형있는 사람이란 걸 안다. 멋진 사람. 그런 균형 감각을 가진 사람과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는 게 너무나 기적같다.

그리고 기분이 꿀꿀할때 말해주겠다는 이야기들이 벌써부터 기대(?) 되기 시작한다… ^^

PS: 내가 무슨 이야기에 대해 어떠어떠한 내용을 나눴는지에 대해 말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이야기는 전부 다 말할 수 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만이 말 할 수 있는 고유의 ‘빛’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찬란함을 논할 수 없기에.

PS2: 오늘 일기는 정말 내 기억의 단편이다. 무엇으로 오늘을 설명해도 부족할 것만 같다. 그리고 싫거나 피곤한 내색 않고 끝까지 함께 이야기해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여유

어제 몇번이고 거듭한 회의 뒤의 하루. 내 마음처럼 비가 흐느적 흐느적 내린다. 그럼에도 비가 오면 본능적으로 기분이 상쾌해지는 내 몸은 무언가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집에서 들고 나온 우산이 전혀 취향에 안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비를 맞으며 등교했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은빛 아스팔트를 응시하며, 지나가는 차들의 비친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구나… 나에게도 은빛 그림자가 있을까?

학교 앞에 내려서 우산을 사러 갔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가게가 열지를 않았다. 오렌지색 우산을 사고 싶은데…

우산사러 돌아다니다가 이미 생물학 시간은 제쳤고, 컴퓨터실에 갔다. 언제나처럼 기선선배가 까먹고 치우지 않아 풍기는 계란 썩은 냄새가 자욱했다. 에어컨의 공기정화 기능을 쓰니 좀 낫구나. 아무 생각 없이 웹서핑을 하고, 잠시 한가함으로 무기력함을 달랬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에게 컴퓨터가 어떤 존재인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인생과 맞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인지.

“그건 아냐!”

그리고 컴퓨터를 접었다.

일주일 간 컴퓨터를 치지 않으면 어떨까? 책을 보면서 쉬고 싶어…

화일처리론 수업에 들어갔다가 재헌이와 함께 나왔다. 내가 재헌이 지면 돈 좀 대 주기로 하고 당구를 쳤다. 이제 120 으로 다시 올릴 때가 되었는지 내가 계속 이긴다. 최근 6 게임 중에 진 적이 없는 것 같다. 미안해서 반값 정도 내 주고, 함게 쇼핑을 했다.

일단 내일은 밖에서 있다가 좀 늦게 올 지도 모르니까 미리 카네이션을 샀다. 학교에서 가까운 꽤 큰 꽃집에서 만든 카네이션 바구니인데, 정말 예쁘다… 부모님이 기뻐하실만 하다.

그리곤 우산을 사려고 가격을 알아봤는데, 마음에 드는 SYSTEM ORANGE 우산이 11000원이나 한다. 이러면 책을 살 수가 없는데… 잠깐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홍익문고로 가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를 샀다. 이 책이 난 1권 짜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2권… 13000원 나갔다. 하지만 선미님이 재미있다고 그랬으니 기대할만 하겠지.

그리곤 집에 왔다. 버스 안에서 졸아서 카네이션 바구니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넘 쎄게 안고 자기도 했다…

컴퓨터를 만지려다가, 이게 아니지 싶어서 침대에서 새로 산 책을 읽었다. 한 30페이지 읽다가 잠이 들어서 한시간 뒤에나 일어났는데, 그 뒤부터는 잠이 오질 않아서 지금은 1째 권의 거의 끝 부분을 읽고 있다.

그래도 자주 다니는 커뮤니티는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한바퀴 돌고는, 신발장에 걸린 줄넘기를 3년 만에 해 보았다. 100번 쯤 하니 숨이 찼다. 허기가 돌아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보았다. 오랜만에 즐기는 여유. 예전엔 이 여유를 버리고 컴퓨터 앞에서 웹서핑을 했단 말인가!

소화가 끝나고 따뜻한 물로 얼굴을 씻고 샤워를 했다. 창문을 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좋구나…

“여유”

내일은 영화와 함께 여유를…


화일 처리론 숙제는 하지 않았다. 수업도 오늘 하나도 안 들었다. 누가 나를 욕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내일도 쉬어야만 할 것 같다.

1년을 쉬어도 모자랄 것 같은 12년의 체증을 내일 이틀 째 씻어내련다.

PS: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LE 는 안하기로 결정. 애들이 별로 할 생각이 없는 듯.

The World in the glasses

어제 일찍 잔 덕에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앉아서 화일 구조론 숙제를 하다가 배가 고파서 누나랑 매형이랑 셋이서 피자를 시켜 먹었다. 거대한 치즈 크러스터 슈퍼스프림 피자. 역시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치즈 크러스터다. 느끼하다. 요즘 몸이 안좋아서 그런가 별게 다 느끼하구나… 난 치즈도 좋아하는데. 두 조각 먹구 그만뒀다.

30분동안 낮잠을 자고 코딩(숙제)를 계속 하다가… 피곤해져서 침대에 누웠다. 낮잠은 싫다. 핸드폰 너 일루와봐… 나 지현이랑 수다떨구 싶다 -_-; 빨랑 문자 보내줘!

그렇게 그녀와의 수다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문자메시지… 아이시큐… 문자메시지… 또 아이시큐… 그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나를 다시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는 것이 기뻤다(물론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 그리고 나에게 ‘오늘 뭐했어?’ 하고 물어보는 사람이 그녀 한 사람뿐이었던 것 같아서 왠지 서글프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서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이런 것을 넋두리라 하던가… 매일 넋두리를 이야기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이야기하고 그것을 잊지 않기로 하고…


내가 12년 동안 걸어온 프로그래밍의 길. 그것이 붕괴되고 있다. 아니, 붕괴라기 보단 권태기에 접어들었다고 해야 해야 겠다. 숙제가 왜이리도 하기 싫은지. 옛날 같았으면 좋아라 해치우곤 자랑스러워 했을 텐데…

내가 차라리 번역가의 길을 걸었더라면 어땠을까? 인문대학생이 되어서 말이다. 여러 소설에 묻혀 살면서… 위의 것보단 조금 낭만적일까? 그렇지 않을까?

지현이의 말처럼 어떤길을 걷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긴 12년의 세월 동안 나와 컴퓨터의 사이… 그 사이에 어떤 사람들도 나와 함께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칠 것만 같다. 내가 어째서 그래야만 했는지, 왜 내 생활에 무언가 빠져있었다는 것을 몰랐는지 후회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절망하기보다는 내 삶의 새로운 전환기를 찾을 수 밖에 없음을 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조자 없는 현실이 가혹하리만치 따갑다.

따가운 햇살 아래 선글래스를 계속 쓰고 있을 수 없는 나니까. 글래스로 보는 세상은 어차피 글래스 안의 세상. 글래스를 벗고 그것을 견디어 냈을 때 새로운 내 자신이 태어나리라…

PS: 오늘 사진은 lono 군이 만든 제 홈페이지 400히트 기념 축전입니다. 직접 그려줄줄 알았더니… 으휴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