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Talk Talk

첫번째 수업 시간은 버스를 놓쳐서 듣지를 못했다. 컴퓨터실이 닫혀 있길래 어제부터 읽던 1째 권의 마지막 부분을 남김없어 읽어버렸다. 2권이 바로 보고 싶었지만 없는 걸…

영화를 예매해 볼까? 녹색극장에서 그녀의 의견을 물어 6시 30분 표를 끊었다. 어제 5시 4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밥먹을 시간이 있으려나…

학교로 돌아와서 별 생각 없이 있다가 5시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시간을 메우기 위해 대성선배 재헌 나 셋이서 당구를 쳤다. 오늘은 잘 되질 않네…

오래간만의 만남이라 그런지 알수 없는 상쾌함과 긴장감이 나를 마비시킨다.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거리 한가운데에서 시계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녀는 6시에 도착했다. 밥먹을 시간이 없어서 일단 영화를 봤다. 파이란…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슬픈 영화였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삼켜버린 그 슬픈 장면들이 떠오른다. 일부러 강한체 하려는 건 아닌지? 우리의 감정을 무의미하게 강하게 단련하고 있는건 아닌지?

영화를 보고 우린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에 다다랐는지, 이렇다할 감상을 말하지 못한 채, 소렌토에 갔다.

우린 파이란에 대한 여러 생각을 나눴다.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조차 보이지 않는 강제, 더이상 붙잡을 사람조차 없는 파이란… 그들은 어쩌면 이 세상에 남겨졌던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이야기하면서 밥을 반 쯤 밖에 먹질 않았다. 그리고 우리 이야기는 Aroma 라는 카페에서 11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곤 외로움이라던가… 나의 기억, 그녀의 기억, 그녀의 가치관, 나의 장점과 단점(그때 당장 요즘 느끼는), 그녀의 고민…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우린 나눴고, 그것이 어떤 합의점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만으로도, 비록 그것이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잔잔한 여백을 남기며 우린 책을 지었다. 내용이 약간 다른 멋진 두 권의 책이 우리 가슴 안에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것이다.

그녀에게 ‘소피의 세계’를 빌려주고 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11시 12분이 되어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TTL 존 앞에서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이 어딘지… 신촌의 거리가 인공조명 아래의 세트 같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우린 헤어졌다. 그녀가 먼저 오늘 즐거웠어! 하고 말을 건네 주어서 기뻤다.


내가 한 말이 전부 진실인지, 아니면 조금은 거짓말인지 말해놓고도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녀가 한 말을 전부 기억하지도 못한다. 나나 그녀가 대화 중의 질문에 전부 대답한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난 그녀가 균형있는 사람이란 걸 안다. 멋진 사람. 그런 균형 감각을 가진 사람과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는 게 너무나 기적같다.

그리고 기분이 꿀꿀할때 말해주겠다는 이야기들이 벌써부터 기대(?) 되기 시작한다… ^^

PS: 내가 무슨 이야기에 대해 어떠어떠한 내용을 나눴는지에 대해 말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이야기는 전부 다 말할 수 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만이 말 할 수 있는 고유의 ‘빛’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찬란함을 논할 수 없기에.

PS2: 오늘 일기는 정말 내 기억의 단편이다. 무엇으로 오늘을 설명해도 부족할 것만 같다. 그리고 싫거나 피곤한 내색 않고 끝까지 함께 이야기해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