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좀 하면 안되나요?

나를 미치도록 답답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가끔은 짜증도 내고 화도 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건 대답을 필요로 할 때 아무 대답이 없는 거다.

지금까지 대답이 없는 사람을 많이 만나 왔다. 실질적인 대답의 여부에 관계 없이 내가 기다리지 않도록 적절히 대답해 준 사람은 손에 꼽는다.

‘지금은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네요’ 라던가, ‘으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라던가, ‘지금은 별로 이야기할만한 기분이 아니네요’ 정도의 대답만 있었더라면 나는 훨씬 더 기분이 좋았을 텐데.

정말 많은 호감을 갖고 있었던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이 메일로 나에게 다가왔고, 그 일은 나에게 여전히 중요 한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두 편의 편지에 대해 단 한 줄의 답장조차 보내오지 않은 뒤로,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 아무도 내가 말을 건네거나 편지를 보내기를 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원하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내 정성을 쏟아 말을 걸고 편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 사람에 대한 증오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 대한 증오다.

내 자신이 하는 말이 상대방을 기쁘게 한다거나, 그 말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가진 우스운 결함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최소한의 기대도 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에게 있어 서로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걸까?

거리는 0 니까 괜찮아

Grover Washington Jr feat. Bill Withers – Just the Two of Us

근무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은 두 번째다.

한가한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기엔 자꾸 마음이 두근거려 버리고 만다.

집에 일찍 도착하면 최신 기술 문서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기타라도 연습하며 마음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지금 내가 이 긴장감을 이겨 나아가고 있는 것은 다시 돌아올 것에 대한 확신과 노트북 PC를 열면 떠오르는 한 장의 사진 덕택이다.

눈을 감자 갑자기 크리스마스 저녁 내 뺨에 닿은 입술이 전해오는 상쾌한 온기가 전해져 온다.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다시 만날 준비를 하고 싶다.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내 팔을 벌려 힘껏 안을거야.

어느 누구의 시선도 개의치 않겠어.

미리 준비한 이어링을 네 작은 귀에 선물할거야.

그리고는 속삭이겠지. 오랜만이라고.

쿨하지 않은 사랑

Roller Coaster – 무지개

삶은 답이 보이지 않는 게임이다. 그래서 가끔은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도 한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내 스스로를 위해 내 마음속의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쏟아내고 찾아내고 싶었지만 말이다.

누구나 쿨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쿨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사실 ‘쿨하다’라는 것의 사전적 의미는 간단하지만, 나에게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엄밀하게 보자면,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러한 상태에 있는 것을 남들이 보고 부르기 위해 쓰는 용어가 바로 ‘쿨’이라는 생각이 든다.

쿨한 사랑은 존재할까?

내가 쿨하지 않으므로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남들이 있다고 해도 확신이 서지 않으며, 내가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쿨하지 않으므로 마찬가지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쿨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가치 판단이 가능할까? 역시 모르겠다.

나에게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런데도 난 사랑을 하고 있다.

뭐가 뭔지 모를 이 진흙탕 속에서 쿨하다기 보다는 얼마 남지 않은 몇 모금의 산소처럼 간절한 사랑을.

일하기 싫을 때

Sol Flower – Every Single Second

가끔 일이 죽도록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직업을 바꿔 볼까 생각도 한다. 하지만 어떤 직업으로 바꿀지는 결정할 수가 없다. 어쩌면 지금의 하기 싫은 일을 해 내면 그것이 경험이 되어 나를 조금 더 ‘프로페셔널’의 영역에 올려놓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조금 더 뻗으면 ‘나의 진로’ 라는 진부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문제에 도달한다. 대학원을 가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일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까? 대학원이 나에게 앞으로 어떤 효용을 가져다 줄까? 나의 현실적 상황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그 밖에도 차라리 기술 고시를 보는게 어떨까, 아니면 아예 지금부터 컨설턴트가 되면 어떨까, 아예 다른 직업을 가져 볼까 등 마치 자라나 분화되는 프랙탈의 가지처럼 생각해야 할 것들이 지수적으로 늘어나버린다.

요 며칠 간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내가 한동안 그들에 대해 별다른 걱정도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지금까지는 일하기가 싫지는 않았으니까.

너무나 많은 고민과 바뀌지 않은 채로의 현실. 그 안에서 나는 가끔 하늘 높이 올라간 풍선처럼 터져버릴 것 같다.

일상의 무게

SIAM SHADE – Life

알 수 없는 무게에 짓눌려 하루가 끝장난 느낌이 든다. 일찍 퇴근했지만 자꾸 프로그램이 오동작을 일으켜 원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금까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어느 정도 일단락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 풀리지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은 나에 게 작은 무게로 다가온다. 몸이 무거울 땐 어깨위의 깃털도 무거운 법이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때일까? 누군가 복권을 꿈꾸는 순간이라면 바로 이런 순간은 아닐까? 이 세계를 모두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픈 충동에 빠진다.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약간의 아쉬움만 남기고 그 모든 상상은 갑작스런 거센 파도가 남긴 빠르게 사라지는 포말과도 같다.

여기까지 쓰고 잠시 마음을 정리하고 있던 찰나,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습게도 안좋은 기분들이 완화되어버려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게 되어버렸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분노와 좌절의 가지를 쳐 내듯 그녀는 나에게 편안함을 되돌려주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웃음)

100일째 나를 바치다

Keyco – SPIRAL SQUALL

그녀의 눈동자보다 긴 시간동안 누군가의 눈동자를 깊이 바라본 일은 없다. 끝없이 빠져들어갈 듯 뻗어내리는 홍채의 갈색 무늬와 그 주위를 감싸는 깊은 원은 나를 멈출 수 없게 한다. 나의 모습이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비치고 있음을 확인할 때 내가 그 속에 들어 왔음을 확인한다. 내가 그녀 바깥에 있는지 안에 있는지 모호해질 정도로 그렇게 그녀의 눈동자는 깊다.

2004년 2월 17일, 그런 깊은 눈을 가진 그녀와 같은 하늘 아래 있음을 알게 된 지 100일째다. 같은 하늘도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다 가올 수 있구나 싶다.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행복하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과 사랑도 나는 잘 해 내고 있다. 오히려 일이 가져오는 힘든 순간 순간마다 사랑은 대표적 수식어인 ‘묘약’에 어울리게 나의 어려움을 말끔히 씻어내려 주었다. 정말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자랑하고 싶은 그녀의 편 안한 마음씨에 있다.

이제 백 번째 하루가 지나고 백 한 번째 하루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을 위해 스스로를 헌정할 것이다.

걱정의 말들이 어색해질 때

이수영 – 꿈에

누군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을 알 수가 없어서 당황할 때가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자책감이 드는 것이다. 누군가의 심정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저 마음으로 받아들여 나의 일처럼 여기고 있지만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무어라 할 수가 없는 상황.

이럴 때 그저 예전과 다름없는, 어떻게 보면 항상 하는 걱정의 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듣는 사람은 어떨 지 몰라도 나에게는 견디 기 어렵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란 마치 가슴이 눈물로 울컥거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는 애처로운 상황과도 같다.

어쩌면 이렇게 애써 표현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당장 만날 수만 있다면 단 한 번의 따뜻한 포옹으로 모든 말들을 대신할 수 있을테니까.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에 표현하면 할 수록 어색해지는 걱정의 말들. 그만두기엔 너무나 아쉽고 계속하기엔 너무나 생경하다.

나만의 방을 꿈꾸며

Pizzicato Five – Happy Sad

부모님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일찍 집에 들어와야 한다고, 식사를 제때 챙겨먹어야 한다고. 수백번을 들어온 그 말들을 들으면 이젠 화가 난다. 속이 아파서 내일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는 말에 ‘그러길래 일찍일찍 들어오고 그랬어야지’ 하는 투의 말들에 대한 나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우리는 말다툼을 했고 그것은 언제나처럼 내가 철이 덜 들었고 부족한게 없이 자랐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로 불 쾌하게 끝났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가족과 함께 한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많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나의 지혜로운 연인은 조언했다. 부모님들은 기성세대로서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더 넓은 시야를 갖고 나를 돕는 그녀에게 감사하고 싶다.

하지만 …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문제일까.

철이 덜 들어서 그런다고 말하는 것이 싫다. 나를 어린 아이로 보는 것이 정말 싫다. 나를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아 주지 않을 때마다 부모님의 애정은 나에겐 스트레스이며 마음에서부터 몸까지 집을 떠나버리게 만든다. 내가 정말로 피곤하고 힘든 것은 회사 일 때문도 아니고 집이 멀어서도 아니다.

가족사이의 따뜻한 마음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느낄만 하면 끊임없이 가이드라인이 제시되기 시작한 다. 자격증은 빨리 따야 하고, 일본어 학원은 왜 계속 안다니는지, 제발 집에 일찍좀 들어오라는 말들. 세상에 해야 할 일은 많다. 모두 하나같이 소중하고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일들이다. 나도 일본어 공부를 매일같이 하고 자격증을 5개 정도는 갖고 있으면 좋겠다. 일찍 집에 들어와서 매일 숙면을 취하고도 싶다. 하지만 나는 다 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그 중에서 선택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그 권리가 전혀 존중되지 않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집을 떠나는 것은 나의 숙원이 되어버렸다. 나는 오늘도 꿈꾼다. 진짜 내가 만들어낸 시공을.

아니, 당장이라도 짐을 싸기 시작해야 겠다.

추억하기보다는 잊고 싶다

Davi – Let’s Fall in Love

연휴도 어느덧 반이 지났다. 잠도 충분히 잤고 방정리도 그 어느 때보다 깔끔하게 마쳤다. 잊고 싶은 기억은 휴지통으로 떠나보내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은 이리 저리 고심해서 정리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내가 지금 소중히 여기고 있는 기억도 어느 날엔가 는 그렇게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찾아오지는 않을까. 누구나가 새해가 되면 비슷한 생각을 한다. 한숨을 내쉰다. 세상엔 변하는게 참 많다고.

서랍 속에서 발견한 액자도 그랬다. 조용히 액자를 풀어 사진을 휴지통에 넣었다. 그리고는 액자를 깨끗이 닦아 책상에 눕혀 놓았다. 액자도 함께 버릴 걸 그랬다. 원하는 디자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고른 녀석인데. 내일 아침엔 멀쩡한 액자를 왜 버리냐는 가족들의 만류를 듣지 않을 시간에 몰래 액자도 실종시켜야 겠다. 세상엔 변하는 게 참 많구나.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이 세상은 오죽할까.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심지어는 자연마저도 우리와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

친구가 말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나 다툼 따위가 아니라 바로 ‘사랑했었다’라고.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어떤 것은 과거가 되고 어떤 것은 현재에 살아남아 계속된다. 마치 오늘의 태양이 어제의 태양이 있던 자리를 지워버리듯 변하지 않기를 바라던 것이 변해버 리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혼란 속에서, 내게 주어진 지금이 과거형이 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추억하기보다는 잊고 싶다. 내 전부를 던질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라고 외치고 싶다. 나는 사랑 안에 있으므로.

PS:

이 보잘것 없는 일기를 쓰는데 무려 두 시간이나 걸렸네요. 그럼에도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쨌든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거에요.

지금 내 곁의 사람들에게 충실하고 싶고 지금 내 앞의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는 제 마음을

그렇게 누군가에게 열중하고 나면 잊어버려야 할 추억도 그 열기에 녹아서 남아 있지가 않게 되어버린다는 표현이 저에게는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목소리로 쓰는 편지

My Little Lover – DESTINY

벌써 새해 첫 달의 2/3가 흘렀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 그만 놓치고 지나간 일이 있으면 어쩌나 조금은 걱정스럽다. 내 ‘할 일 목록’ 표에서 어느 순간 나타났다가는 사라져버린 많은 일들을 기억하기엔 나에게 할 일이 너무나 많은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위해 이번 달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쓰기로 했다. 지난 한 달간 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이야기들도 털어 놓고 앞으로의 계획도 편안히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정말 편안히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편지를 완전히 편안하게 써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편지라는 것이 가지는 전달력을 알게 된 뒤로부터는 말이다. 일본어와 영어로 펜팔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기도 하다. 나는 항상 연습장에 편지를 쓰고 이리저리 수정과 편집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편지지에 마지막 결과물을 옮겨적어왔다. 고백의 편지도, 크라스마스 편지도 그랬다.

돌이켜 보면 많은 후회가 남는다. 물론 한 편의 소설처럼 멋드러지게 정리된 편지는 꽤 인상적이지만, 좀 더 자연스럽게 마음이 은은 히 풍겨나는 편지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편지를 많이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 사람의 편지를 받기 전까지는 즉석에서 써 내려간 편지의 멋을 몰랐었다. 솔직함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마음에 와 닿는 그 사람의 온기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월 4일 어린이 대공원, 나는 독특한 시도를 해 보았다. 글로 남기지 않고 목소리로 전하는 편지를 썼다. 한적한 공원 길을 함께 거닐며 천천히 한마디 한마디 지난 번 편지의 답장을 써 내려갔다. 내 두근거리는 가슴의 진동 하나 하나를 목소리의 울림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은 그렇게 긴장했지만 이내 내 마음은 그녀의 미소는 엉킨 실타래를 풀듯 나를 편안함으로 이끌어 주었다. 오 히려 마음이 자유로웠다. 솔직한 느낌 그대로 모두 전했다.

이제는 조금 자연스러워지고 싶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항상 떠오르는 일들의 목소리에 경청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