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t Take My Eyes Off of You

한 주의 시작을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이라 하고, 나는 월요일이라 한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일요일은 쉬는날이기에 월요일은 공식적인 한 주의 시작이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11시 까지 학교에 간다. 아침에 아버지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셨을 때, 나는 Morten Harket 의 “Can’t Take My Eyes Off You” 를 있는 힘껐 불렀다. …I love you baby and if it is quite all right I need you baby to warm a lonely night I love you baby Trust in me when I say… 몇번이고 부르다 지쳐서야 나는 집을 나왔고, 방금 나를 스쳐 지나가버리는 버스도 나의 조금 늦은 등교를 후회스럽게 하지는 못했다.

신촌에 도착해서, 여러 011 판매점을 돌아다니다가 결국에는 지쳐 버려서 그렇게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39만원이라는 가격에 루나틱 퍼플 칼라의 V.67을 구입했다. 모토롤라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어떤 디자인들 보다도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 모델은 내가 신문 지면상에서 그를 처음 접했을 때 부터 나를 사로잡아왔었던 것이다.

10개월 할부로 구입한 귀여운 V.67을 들고 나는 학교로 가서 난희 프로그래밍 코치를 하면서 이용자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 보고, 이것 저것 해 보며 시간을 보냈다. 난희와 점심 먹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서점 가서 책을 구경했다. 헤르만 헤세의 어떤 책 (이별, 사랑 이란 단어가 들어갔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의 표지 속에 적인 구절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황급히 PDA에 옮겨 적었다. Writings 란에 올려야지…

난희와 작별하고 학교에 돌아와서는 예전 핸드폰에 있던 주소를 새 것에 옮겼다. 한글 입력법이 기존의 것과는 달라서 애를 많이 먹었지만, 주소를 옮기면서 거의 다 익힐 수 있었다. 번거로운 주소 옮기기도 이럴 땐 쓸모가 있었다. 13 개 정도의 주소는 새 핸드폰에 옮겨지지 않았는데, 그들과는 너무나 오랫동안 연락을 취하지 않아서 도무지 연락을 걸 만한 용기 마저도 낼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저 어딘가에서 삭제되거나, 옮겨지지 않거나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녁땐 정훈이와 만나서 볶음밥을 먹고, 당구를 한판 치고 돌아왔다. 당구는 한 게임만 했는데, 정훈이가 헬스 클럽에 갈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와서 나도 트레드밀을 조금 했다. 조금만 뛰어도 무슨 땀이 이렇게 삐질 삐질 나오는지 나는 방금 대야에 담궜다가 꺼낸 걸레처럼 되어버렸다. 미리 물을 두 잔 마시고 시작하니 훨씬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3분 간의 대화가 왜 5분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는지. 너무나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많은지. 내 두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는 도대체 어디를 거닐고 있는지. 중력은 있는 건지. 아…!

Mamoribeki mono

오랜만에 약속이 두 개 겹친 날. 그리고 그 어느 쪽도 조정할 수 없었던 제멋대로의 날. 나는 어쨋든 그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고, 어떤 후회라는 것 조차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마저 잘 알고 있었다. 경험이 가져온 이 불가피한 선택의 문제는 나를 괴롭히려는 시도 조차 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선택하도록 강요했다. 사실 정말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모임에 가야만 하는 것이 나 개인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오래 전 부터 잡혀 있던 약속에 대해서 무시한다는 것이 너무나 버거웠고, 만날 사람들에게 전해줄 것들도 많고, 내가 가지 않으면 사람이 적은 모임이었기 때문에 라는 지극히 이성적인 척 하는 이유로 나는 결국 후자를 택하도록 강요받았다.

결국 고등학교 동창들과, 군대 휴가나온 녀석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도 하고… 성호 덕에 약간은 어설프지만 철학적인 이야기도 해 보고… (단 둘이 만나면 아마 이렇다한 큰 결론 없이 꽤나 오래 이야기했을 법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다른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색했다. 사실 지금 나의 일행들은 나와 같은 반도 아니었는데, 같은 반이었던 그들과는 왠지 어색하고 뭔가 할 말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의 내 유아독존적이며 광신도적인 언행이 아마 지금 그들과의 괴리를 서로들의 안쪽으로부터 결계를 치듯 차오른 것 같았다.

어색한 작별인사와 함께, 군재와 나는 내가 꼭 사고 싶은 핸드폰, V.67을 사러 부천 역 상가에 갔다. 그러나 아까 가격이 제일 싸다고 생각했던 가게는 이미 문을 닫고, 무려 40만원이나 부르는 (비록 3만원 차이 밖에 안나지만) 가게에 실망하고 다음 달에 휴가나오면 보기로 하고 진짜 작별인사를 했다.

모임이 끝난 시각은 약 10 시. 다른 모임에 정말 가 보고 싶었지만, 고장날 줄 모르는 시간은 나를 제약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는 시간의 한계를 한탄하지만 결국 한계를 깨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결국 나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이 생각나기 보다는, 나에게 다가올 더 많은 시간들이 내 펑크난 타이어에 끝없는 바람을 불어넣어줌을 느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Club ZEN의 불꽃처럼 은은히 퍼져가는 사랑.

또한 꺼질줄 모르는 자신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

또 하루의 경험

비가온다고 했건만, 오늘은 비가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내리기를 내심 기대하고, 조금만 와도 우산을 펼쳐 봤지만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우산을 한 손에 쥐고서는 학교에 갔다.

학교에는 시험 기간 때문에 오랫동안 읽지 못했던 ‘악마의 시’를 마저 읽고, 밀린 정기구독 잡지를 읽기 위해 갔다. 파파이스에서 타바스코 치킨 샌드위치 세트를 사들고 컴퓨터 실 문을 여니 어두컴컴한 컴퓨터실에는 컴퓨터와 모니터의 전원 표시등과 네트워크 상태를 알리는 LED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에어컨을 틀고 문을 열어서 퀘퀘한 냄세를 지우고 햄버거를 후다닥 해치웠다. 사실 그 다음에는 책을 읽어야 겠지만 책은 책이고 전화는 전화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만에 걸어 보는 전화인지 모르겠다. 왠지 망설여지기도 하고, 막상 걸면 할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목소리가 듣고 싶어. 안부가 묻고 싶어. 아까 미리 입력해 두었던 그녀의 전화번호가 아직 화면에 남아 있는 것을 보고 통화 버튼을 꾸욱 눌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의외로 할 말이 참 많았다. 전화 통화는 정확히 오후 2시 55분에 시작되어서 36분 45초 동안 지속되었는데(물론 최근 통화기록을 확인한 후에 알게 된 것), 느낌 상으로는 한 15분 통화한 것같았고, 통화가 끝난 뒤에도 머리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으로 전화 통화 하면 보통 편두통을 겪는다.) 통화가 끝날 때면 습관적으로 무언가 할 말이 떠오를 것만 같아서 쉽게 전화를 끊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딸깍.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나서야 나는 책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그러지 않고는 책을 읽을 수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책 끝까지는 200 페이지 정도가 남았었는데, 나는 책을 약 3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읽어냈다. 내가 인내심이 강하다거나 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그 책이 종반부로 치달을 수록 발산하는 강한 흡인력과 감동적인 전개 때문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악마의 시’는 문학적으로 대단한 작품이면서 또한 우리 삶, 선과 악에 대한 심오한 고찰로 가득찬 교훈적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후반부에서 맺어지는 절묘한 스토리의 맞물림과 전지적 작가시점을 이용한 작가의 철학적 의견 피력 부분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감동의 끝에서 나는 또 다른 책을 찾기 시작했다. 더 많이, 더 깊이 읽고 쓸수 있도록 나는 다시 책을 찾았다. 읽을 책은 정말 많지만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기는 정말 힘들었다. 여러 도서 정보 사이트를 뒤졌지만 내 마음에 들만한 – 사실 읽고 나서야 평가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 책을 찾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호밀밭의 파수꾼’을 사려고 결정지으려다가, 그녀와 뭔가 공통된 것을 갖고 싶다 생각해서 그녀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오기를 무작정 기다리기는 힘들었기에 나는 홍익문고에 가서 여러 신간 도서들을 둘러보았다. 한 20 분 쯤 둘러 보았을 때 전화가 왔는데, 그녀에게서였다. 그녀가 추천해 준 책은 마루야마 겐지의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 3~4 페이지를 읽어 보고 결정하라던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그 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않고 구입했다. 비로소 첫 세 페이지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을 때였다.

매 주말은 독서를 하고 평일에는 공부를 하는 쪽으로 하려고 한다. 간접 경험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것을 경험해 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혼자 무언가 경험을 하려 하면 왠지 그들이 모두 다 대단해서 하기 힘들어 보이고, 그럴싸한 변명을 지어내는 것이다. 사실 하고 나면 별것 아니라 생각할 인생의 수많은 경험들… 하지만 확실히 나는 그것을 자신에게 요구하고 있는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