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moribeki mono

오랜만에 약속이 두 개 겹친 날. 그리고 그 어느 쪽도 조정할 수 없었던 제멋대로의 날. 나는 어쨋든 그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고, 어떤 후회라는 것 조차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마저 잘 알고 있었다. 경험이 가져온 이 불가피한 선택의 문제는 나를 괴롭히려는 시도 조차 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선택하도록 강요했다. 사실 정말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모임에 가야만 하는 것이 나 개인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오래 전 부터 잡혀 있던 약속에 대해서 무시한다는 것이 너무나 버거웠고, 만날 사람들에게 전해줄 것들도 많고, 내가 가지 않으면 사람이 적은 모임이었기 때문에 라는 지극히 이성적인 척 하는 이유로 나는 결국 후자를 택하도록 강요받았다.

결국 고등학교 동창들과, 군대 휴가나온 녀석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도 하고… 성호 덕에 약간은 어설프지만 철학적인 이야기도 해 보고… (단 둘이 만나면 아마 이렇다한 큰 결론 없이 꽤나 오래 이야기했을 법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다른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색했다. 사실 지금 나의 일행들은 나와 같은 반도 아니었는데, 같은 반이었던 그들과는 왠지 어색하고 뭔가 할 말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의 내 유아독존적이며 광신도적인 언행이 아마 지금 그들과의 괴리를 서로들의 안쪽으로부터 결계를 치듯 차오른 것 같았다.

어색한 작별인사와 함께, 군재와 나는 내가 꼭 사고 싶은 핸드폰, V.67을 사러 부천 역 상가에 갔다. 그러나 아까 가격이 제일 싸다고 생각했던 가게는 이미 문을 닫고, 무려 40만원이나 부르는 (비록 3만원 차이 밖에 안나지만) 가게에 실망하고 다음 달에 휴가나오면 보기로 하고 진짜 작별인사를 했다.

모임이 끝난 시각은 약 10 시. 다른 모임에 정말 가 보고 싶었지만, 고장날 줄 모르는 시간은 나를 제약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는 시간의 한계를 한탄하지만 결국 한계를 깨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결국 나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이 생각나기 보다는, 나에게 다가올 더 많은 시간들이 내 펑크난 타이어에 끝없는 바람을 불어넣어줌을 느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Club ZEN의 불꽃처럼 은은히 퍼져가는 사랑.

또한 꺼질줄 모르는 자신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