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Minutes

며칠 전 부터 지현이가 ICQ 에 접속한 모습을 볼 수 없다. 다음 주가 기말 시험 기간이기 때문이다. 항상 열심히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저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주 보지를 못하니 왠지 자주 대화하던 사람을 멀리 떠나보낸 것 같아 허전했다. 하이텔에 접속하면 자주 보는 사람들의 접속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그녀를 어제 가까스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아서 반가워하면서 그녀가 건네는 오늘 만나자는 말. 얼마만인지! 비록 시험 공부 때문에 책 돌려주고 시사회 표만 선물하고 다시 들어가봐야 한다지만 왜이리도 기쁜지 몰랐다.

오늘 3시에 그녀를 만났다. 책을 건네 받았는데, 그 안에는 그녀가 다이어리에서 뜯어낸 종이에 보라색 펜으로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거기에 시사회 가는 법과 짧은 편지가 적혀 있다면서, 자기 없을때 보라며 수줍은 듯 책을 덮고 나를 돌려보냈다. 고맙다, 미안하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나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대신 시험 끝나면 재미있게 놀자고 말해 버리고 4시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돌아갔다. 오는 길에 그 쪽지를 읽어 보았는데 그녀의 솔직함이 베어 있어서 참 기뻤다. 나도 언제 손으로 편지를 써 보내야지…

6시에 수업이 끝나고 연세일본문화연구회 JPT 스터디 모임에 갔는데 사람이 적어서 그냥 회원들끼리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다가 왔다. 오늘은 한 여자분을 처음 뵈었는데, 꽤 친근한 분 같았다. 나와 같은 학번인데 휴학중이시란다. 공대 앞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영화를 같이 볼 현준이를 만나러 공대 로비로, 그녀는 학교 밖으로 나갔다.

현준이를 만나서 전공설명회 잠깐 들러서 공짜 피자 얻어먹고 시사회에 갔다. 처음 가 보는 정동 A & C 는 시청역에서 의외로 꽤 먼 곳에 있었다. 화면은 상당히 컸는데 음향 시스템은 녹색극장에 비해 약간 떨어졌다. 자리는 넓어서 좋았다. 시사회라서 그런지 광고나 트레일러 없이 곧바로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 제목은 15 Minutes 였는데, 실제로 영화 내용과 제목 사이에는 별다른 관련이 없었던 듯 하다. (마지막에 15분 이란 말이 한 번 나오는데 그 15분 동안 일어나는 일이 영화의 주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내 머리로는 잘 파악이 안된다. 다시 봐야 알 것 같다)

이 영화는 올리버 스톤 감동의 Natural Born Killers 와 비슷한 매스컴 풍자 영화였다. 영화 자체의 화면 효과는 NBK 쪽이 훨씬 우수하다. 15 minutes에서는 캠코더의 화면 효과를 통해 화면의 변질이 일어나지만 그것이 사실 왜곡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스토리상 대립하는 살인자와 경찰들이라는 구도 때문에 매스컴에 대한 질타의 정도가 NBK보다는 약했다. 물론 이렇게 NBK와 비교하기만 하면 나쁜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NBK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흥행적 요소들이 가미되어서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지현이도 같이 봤으면 같이 이야기하면서 좀 더 생각을 정리해서 멋진 평을 썼을지도 모르겠는데 풋풋… 요즘은 생각이 밤의 길이 처럼 짧아졌는지도 모른다. 시사회를 갈 수 있도록 해 준 지현에게 고맙다는 말 변변히 못하고, 담에 만나면 잘 해 줘야 겠다… 맘 먹은 만큼 사람을 대하기는 힘들지만.

To Voice, To Exit

오늘 첫 수업시간인 서양 문화의 수업 시간. 유난히 학생들이 지각을 심하게 한다. 교수님은 화가 나셔서 문을 잠그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Exit or Voice(이름은 정확하지 않음) 이론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어떤 트러블이 발생할 때 사람들은 보통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한다고 한다. 첫번째는 Exit 이다. 그들은 트러블이 발생하면 소리없이 그것으로부터 빠져나간다. 근래 한국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해외 이민 러쉬 등이 이와 비슷한 경우이다. 두번째는 Voice 이다. 그들은 현실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트러블을 떠나지 않는다.

Exit 하느냐 Voice 하느냐. 교수님은 며느라와 시어머니의 대화를 써서 Exit 와 Voice 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셨다. 며느리가 “시어머님 피자 먹으러 외식가요~!” 했을 때 시어머니에게 피자가 입맛에 맞을리 없다. 그러나 별 말없이 그냥 외식 갈 마음이 없다고 하는 시어머니는 Exit 형이고, “난 피자따위 입맛에 맞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하고 화를 내는 시어머니는 Voice 형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Exit 가 더 온건한 방법이라고 생각될 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Voice 는 문제점을 들추어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서로간의 대화를 열어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반면 Exit 는 문제의 해결은 전혀 이루어 지지 않고 서로 간의 벽만 깊어질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활하면서 얼마나 여러번 Exit 하는지. 얼마나 Voice 에 대해서는 수줍게 생각하는지.

오늘도 모두에게 내 마음을 보이고 싶다. 모두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내가 어디가 부족한지, 당신은 어디가 부족한지. 어떻게 보완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훨씬 삶이 윤택해 질 텐데.

PS: 요즘은 일기를 짧게 짧게 쓰게 되네요. 이게 더 솔직하게 표현이 잘 되기도 하고, 요즘 몸이 피곤하기도 해서요 ^^

Don't Leave for Japan

어제 12시에 잤음에도 불구하고 숙면을 취하지 못했는지, 첫 수업시간부터 졸았다. 처음부터 꼬이는구나. 재헌이와 강의실에 나와서는 가볍게 당구 두 판 치고, 재헌이가 내 생물학 책을 제본한다 해서 맡기고, 점심 먹고 화일처리론 수업을 10 분 정도 듣다가 나와서 쉬다가는 다시 컴퓨터로 당구 대결하다가 마지막 수업인 운영체제 수업마저 빼먹는 개가를 올렸으니, 이는 3학년 1학기 초유의 일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재헌이네 집에 가서 재헌이 애인의 어머님께서 보내 주신 굴비를 구워 먹고, 가는 길에 산 과자와 콜라를 마시며 나는 파일처리론 공부를 하고, 재헌이는 회사일을 했다. 집에 가기 전에는 재헌이와 함께 WinAMP의 Visualization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헤어지면서 오늘 우리가 낭비한 막대한 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집에 가면서, 아니 오늘 내내 줄곧 토요일에 만난 그 요오꼬씨를 생각했다. 나의 추측이 – 확신에 가까운 – 맞다면 그녀는 지금 혼자다. 매일 우리 학교 어학당에 등교해서는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와서 여유 – 넘쳐서 주체할 수 없으리만치의 – 를 흘려보낸다. 한국어는 아직 거의 할 수 없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생활 반경에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게 뻔하다. 나는 그녀를 돕고 싶다. 오늘도 연락이 와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계속 생각했다. 어제 저녁에는 어떻게 한국말을 가르쳐 줄 지에 대해서도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매일 만나서 내가 낭비하는 그 시간을 그녀가 한국에 머무르는 귀중한 시간에 이용해서 서로 도움을 얻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번이고 생각한다. 꼭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한 달 뒤에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한국이 아마 적응이 되질 않고, 한국어도 진척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현지인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잘 할 수 있을텐데, 소개시켜준 분에게 어서 연락을 해야 겠다. 그녀가 한국에서 보낸 한달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니까, 또 어쩌면 열심히 도와주면 한국을 떠나지 않아도 될 수 있을 지 모르니까…

One and Three Zeroes

드디어 오늘, 1000 히트 날이 될 것 같네요. 이 사이트에 자주 방문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특별히 오늘은 일기라기 보다는 편지 형식으로 꾸며보고자 합니다. 사실 오늘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만 조금 해서 별로 쓸 일도 없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비슷한 시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제가 바라보고 있는 달빛이 같은 것이고, 내일도 어김없이 같은 햇살이 우리의 얼굴을 뜨겁게 달궈줄 것입니다. 당신과 저는 함께 일기를 쓰며 – 누구나 매일 일기를 씁니다 – 하루를 정리합니다. 저는 당신을 생각하며 일기를 쓰고, 당신은 저를 생각하며 이 곳을 방문해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미줄처럼 연약하지만 끈끈한 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글픈 거미들이 외로이 눈물을 분비하듯 만들어 낸 줄입니다. 그 곳엔 거미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친구와 헤어져야만 했던, 사랑하는 사람을 놓쳐야만 했던, 힘들어도 참아야만 했던 기억들이 모여서 실을 만들고 그렇게 연결한 것이지요.

앞으로도 이 시간이 계속되길…

절망을 딛고 인연, 사랑, 신념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Ever Yours, 희승…

PS: 1000번째 방문자님과 데이트라도 해볼까나 ^^. 그림은 지현이의 1000히트 축하 그림.

Gonna Go

어제 일본인 친구 만나는 것 때문에 전화가 와서 오늘 만나기로 해서 2시에 신촌엘 갔다. (생각해 보니 그 한국 분 이름을 아직도 모른다.)

일본인 누나가 한 분 계셨는데 이름이 무슨무슨 요오꼬 였다. 이름 외우기 정말 힘들다. 더워서 그런지 집중력도 떨어지고 긴장도 되고.

특별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말 수가 적은 편이었는데, 고요한 듯한 눈동자, 차분한 목소리. 지난 번에 만난 여자애들 보다도 더 못하는 한국어였고, 우리는 아예 일본어로 대화했지만, 그녀가 나는 더 인간적이고, 삶의 향기를 아는 사람이라 느꼈다. 꼭 계속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다.

길 듯 하면서도 짧은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헤어졌고, 그녀는 “다시 만납시다” 라고 일본어로 말했다. 그녀 말대로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생각했다. 어쩌면 나의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보고 별로 밖에서 할일이 없어서 집에 와서 쉬었다.

TV 에서 굳 윌 헌팅을 보았다.

당장 신촌에 가서 차마시고 이야기하고 싶다. 심야 영화라도 보고 싶다. 나를 그나마 많이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니까.

Love is Warplace

원래는 일하게 될 회사에 가려고 했으나 이야기를 해 본 가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가지 않았다. 가지 않는 동안 무슨 지령이라도 떨어져야 할 텐데 답답해 죽겠다. 돈을 빨리 벌고 싶은데.

오늘은 신촌 문화 축제 둘째 날. 행사 시작 예정 시간인 12시 30분에 정확히 행사장에 도착했다. 1시간 쯤 기다려도 행사는 시작할 줄을 모르고 땀이 계속해서 조금씩 났다. 결국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학교에서 컴퓨터를 했다. 점심도 굶으며 그냥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있었다.

5시에 현준이를 만나서 같이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영화 ‘Enemy at the Gates’ 를 봤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비유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했다. 일단 전쟁의 절박함, 무자비함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완만한 영상이 초반에 펼쳐진다.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비해 둔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주인공과 그 여자 빼고는 다 바보인가. 나쁜 사람인가. 정말 그렇게 그려야만 한단 말인가. 제일 불쌍했던 사람은 그 안경 쓴 장군(영화 초반에 진급되었으니까)이었다. 세상이 정말로 불공평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사람. 코니그 소령은 어떤가. 그가 그렇게 죽어야 할 이유가 있기라도 한가. 정의의 응징이라도 된단 말인가. 엔딩에 죽을것 같던 여자가 살아났고 그 둘은 해피엔딩으로 이쁜 사랑을 하며 잘 살았습니다~!??

확실히 사랑에 기뻐하는 자 만큼이나 사랑에 절망하는 자도 많다. 나도 몇 번은 절망했던 것 같다. 쓸데 없는 합리화나 투사도 해 보고, 내 잘못이라 탓해보기도 하고. 어딘가에서는 그녀가 다른 누군가와 쉽게 사랑에 빠지곤 하기도 했다.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그렇게 사랑이란 것은 전쟁만큼이나 잔혹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영화였다.

제 7회 신촌 문화 축제

어제 술이 내 머리를 뒤흔들어 놓은지 24시간이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머리를 흔들면 아프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나에게 술이란 귀찮은, 피할 수 없을 때만 마시는 그런 존재였다. 술에 이렇게 어색해 져 가면서 나는 외로움을 배웠고, 이제 그들이 다시 다가옴을 서서히 느낀다.

저녁에서는 성호가 약속대로 우리 학교에 음대 도서관에서 악보(우리나라에서는 판매가 되지 않아 주문하는데 $45가 드는)를 복사할 것이 있어서 놀러 왔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면서 성호가 내 학생증으로 도서관에 들어가서 악보를 복사할 때 밖에서 기다렸다. 밖에서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간간히 끼어드는 정적 속에 묻어 나오는 가녀린 이름모를 바이올린첼로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왠지 심금을 울릴만 한 것이었다. 바라보며 깎여내려진 어색한 산의 구릉밖에 보이지앉는 방충망이 달린 창문을 초점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성호가 영화를 보여 주기로 했는데, 마침 보고 싶은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볼까 했었다. 그렇지만 가는 길에 신촌 문화 축제를 구경하러 길을 새서 그 곳에 눌러 앉아서 공연이 끝날 때 까지 관람하게 되었다. 거리는 상당히 활기찬 분위기였고, 도로도 꽤나 탁 트렸다는 느낌을 주었다. 평소의 신촌에서 느껴지던 답답하거나, 오밀조밀하다는 느낌은 없어서 신기했다.

첫번째 공연에는 한국 전통 타악기 밴드 두드락(?)이 나왔는데, 꽤나 인상적이었다. 약간 개조한 국악기로 타악기만으로 상당한 퀄리티와 재미의 음악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워낙 템포가 빨라서 체력의 한계가 있는지 네 곡 정도를 하고 그들의 무대는 끝이 났다.

그 다음에는 윤도현 밴드의 콘서트가 있었다. 별 기대도 않고 앉아 있었는데 일정표를 보니 윤도현 밴드의 콘서트가 있어서 좋았다. 주위에는 그들의 팬이 꽤 있는지 공연 중에 소리지르는 사람도 많았다. 대학 아마추어 밴드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멋진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부 모르는 노래 투성이라서 따라부르지를 못했다. 주위 사람들은 어찌 그리도 다 아는지, 아무래도 팬클럽에서 단체 관람을 하러 온 것 같았다.

끝나고 성호가 내 펌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해서 펌프를 두판 뛰고 같은 버스를 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에 왔다.

내일도 모레도 축제가 계속된다고 하는데 열심히 다 봐 봐야 겠다. 길가에서 살도 좀 태우면서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내일은 누구랑 같이 보면 좋으려나.


월요일 밤에 두 시간동안 뚝딱해서 쓴 서양 문화의 유산 레포트가 수업시간에 잘 한 레포트 중에 끼어서 소개됐다. 여기서 소개 되면 A 란 뜻인데, 조금 무성의하게 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라 기쁘다. 교수님은 베낀거 아니냐고 – 좋은 뜻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 물어보기까지 하셨다. 나름대로 내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 나간 것이 도움이 되었고, 특히 내가 글을 길게 쓸 수 있는 능력이 일기를 쓰면서부터 꽤나 향상된 것 같다.


요즘은 벽에 대한 생각에 자주 빠진다. 벽이란 무엇일까. 너와 내가 이야기하면서 묘한 벽을 느낄 때, 나는 너를 과연 얼마나 더 깊이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두려움에 휩싸인다. 애시당초 우리의 종의 씨앗(예를 들면 벽에 달린 창의 유무, 있다면 크기)이 달라서, 그래서 원천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인해 충돌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절친한 친구, 연인 사이에도 벽은 있는 걸까? 우린 벽과 함께 그것을 껴안고 살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일까?

우리가 느끼는 벽에 대한 관념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저 사람과 나 사이엔 벽이 있는 것 같아. 우린 친해질 수 없는지도 몰라. 그녀석과 난 아무리 이야기해도 뭔가 이질감이 느껴져. 난 그사람을 좋아할 수 없어, 그사람은 날 좋아할 거 같지 않은걸, 우린 다르니까. 심지어는, 내 마음속엔 벽이 있는 것 같아, 낮추거나 열기 힘든. 이런 말들로 벽이 만들어지고 스스로 나는, 우리는 안돼! 하고 먼저 마음을 닫아버린다.

나를 아는 자들이여, 나에게 벽이 보인다면 가차없이 그것을 부수고, 자신에게 벽이 보인다면, 우리 함께 그 벽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그래서 그것이 우리를 막을 수 없을을 증명해 보이자.

PS: 사진은 베를린 장벽

JPT 2급 스터디 첫번째 모임

비가 온 뒤의 거리는 깨끗하고, 하늘은 푸르며, 태양은 빛을 대지에 골고루 뿌려주고 있었다. 나날이 더해 가는 아침 버스의 열기는 멈출 줄을 몰랐고, 강의실은 힘없이 돌아가는 에어컨의 지원 아래 나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잡는데 필사적이었다.

오늘은 무언가 공부를 해 보겠다 다짐했건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여러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공강시간을 보냈다. 새로 나온 가수나 노래들을 보고, 아래에 뜨는 가사를 보면서 따라 불러 보기도 하면서 약간은 불안한 여유를 즐겼다. 막상 하려면 하기가 두려운 것이 공부였던가. 사실 잘 할 수 있을지 두려운 것에 대해서는 항상 주저함이 따른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불어넣는 것, 가보지 않은 곳에 가 보는 것들 모두가 나에게 용기가 부족함을 암시하고 있었다.

구겨졌던 자동차의 범퍼를 펴기는 어렵다. 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마찬가지로 어려우며 공을 들여야 하기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제 2의 사춘기가 찾아왔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하지만 곧,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회복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더 용기를 내야지… 사람들에게 좀 더 안정적이고 푸근한 모습을 보여주고 힘이 되도록 하고, 새로운 시도를 무서워하지 않아야지.

수업이 끝난 뒤에 연세일본문화연구회의 JPT 2급 스터디 모임에 참석했다. 성훈 님, 그리고 순규님, 수지님, 등등 (나머지 분들은 기억이 잘…;) 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할 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다들 좋은 사람들 같았다. 성훈님은 말을 아주 열심히 하시는 듯 했고, 수지님은 나와 동갑인데도 상당히 성격이나 인격 면에서 안정되고 여유로와 보여서 좋았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다다다 친해졌으면 한다. 매주 수요일 만나지만 다른 날도 같이 공부하면서 친분을 쌓았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끝나고서는 ‘PHILL HARMONY’라는 술 집에 갔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이 때 쯤에는 어색했던 내 기분도 많이 풀어져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옆 테이블의 애들이 정말 난리 법석을 떨며 시끄럽게 굴어서 좀 귀찮았다. 뭐 좋을대로 하라지 풋풋.

수지님과는 같은 곳에서 버스를 타서 잠시나마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었는데, 버스가 너무 일찍 와 버리는 바람에 몇가지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이야기만을 나눠 보고 헤어졌다. 저녁도 먹지 않고 술을 마셔서 지끈거리는 내 머리를 달고 집으로…


조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한참 졸 때엔 정신이 몽롱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저 졸기만 하다가도, 갑자기 그 상태에서 깨어나면 머리가 어찌나 개운한지 무슨 지식이든지 다 주워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잠 자는 것, 조는 것. 그들은 아마도 우리 머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필수적 메커니즘 아닐까나. 과학적으로는 REM(Rapid Eye Movement)가 일어날 때 뇌세포가 Refresh 된다고 한다.


오늘처럼 무난한 하루도 없었다. 평화로웠으며, 집에 와서는 즐거웠다. 만족감이라 해야 할까. 그런 기분을 느꼈다. 정말 편안하다는 느낌. 나와 대화를 나눠 주신 분들께 감사…~

PS: 넣을 사진이 없어서 우유가 곰돌이 넣으래서 넣어봄;

후회(後悔)

오늘은 영화보는 날. 평일의 만남은 나에겐 외도와 같다. 집에 있다가 약속장소로 나가는 것과 학교에 있다가 나가는 것은 매우 다르다.

일단 학교 안에서 오래 있다가 몸 정리를 하지 못하고 나가기 때문에 땀을 흘리지 않으려고 아주 노력해야 하고, 점심을 먹어도 입냄새가 안나게 해야 하고, 나란 인간에겐 이런 형식적인 것들이 꽤나 신경쓰인다. 그만큼 나에게 가뭄에 비오듯 생겨나는 만남이란 행운이며, 축복이다.

축복 덕인지 오랜만에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여유를 부렸다. 아침도 가족과 함께 먹고 누구보다 먼저 밖에 나설 수 있었다. 왠지 활기가 넘치는 하루다. 밖에는 흐렸다. 비가 올 것만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구름이 바로 이 때가 기회다! 라는 듯이 비를 쏟았다.

질금 질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수업을 들으러 돌아다니고, 오랜만에 숙제도 열심히 해 보고. 나를 괴롭히던 코도 오늘은 괜찮은 것 같고. 오늘은 느낌이 좋은 하루인 것 같다.

수업 땡땡이 치면 다음부터 안만나 준다며 으름장(?)을 놓은 지현이의 의견도 있었지만, 출석을 최근 좀 많이 빼먹어서 수업을 끝까지 듣고 약속장소로 갔다. 역시 나이스 타이밍으로 그녀를 만났다.

일단 영화 표를 예매하러 갔는데, 그녀에게 정훈이가 전화를 걸었다. 같이 밥먹잔다. 그래서 우리 셋은 극장 앞에서 무슨 영화를 볼 지 티격태격했는데, 역시 정훈이의 강한 주장으로 엑소시스트를 보게 됐다. 원래는 첫사랑을 볼 계획이었는데, 역시 정훈이는 흐음 -_-;;

영화가 시작하기까지는 한시간 남짓 남아서 저녁을 먹었다. 전에 현준이와 간 적이 있는 볶음밥 전문점이었는데, 조금 매운 것을 빼고는 그렇저럭 괜찮았다. 나는 코 문제 때문에 약간 남겼는데 정훈이가 내꺼랑 지현이가 남긴것 까지 다 처리해 버렸다 흐음;

드디어 영화 시작. 전에 봤던 거 같은 영화다. 거미처럼 계단 내려오는 거랑 십자가로 자위하는 부분도 안짤리고 그대로 나왔는데, 너무 빨리 지나가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뭐 그냥 말 그대로 아닐까? 전체적으로 오래된 영화라 Tension 이 꽤 부족하고, 전개가 더디다. 번역도 좀 엉성한데다가, 내용이 좀 지저분하다 -_-…. 영화를 보고 나니 약간 쏠린다. 지현이는 얼굴이 엉망이고, 오직 정훈이만은 신난 것 같다 -_-;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맥도널드 앞에서 나누고 바이바이~ 했다. 난 다시 한번 나이스 타이밍으로 버스타고 집에 왔다.


확실히 정훈이랑 지현이는 꽤 친한 것 같다. 두 사람 사이 대화에서 내가 끼기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질투하는 건가 -_-? 둘이 있으면 그래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은데, 왜그런지 모르겠다. 푸코가 말한 권력 구조의 메커니즘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에게 만남은 약간의 긴장을 주는 듯 하다. 볶음밥을 내가 조금 남긴 것은 더 이상 먹으면 내 속에서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서 코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긴장을 풀고, 더 잘 웃고,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었음 좋겠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또 놀아준 그녀가 고마웠고 또 내 자신이 미안했다. 시간을 내 주어서 만났는데 여러 모로 도와주질 못해서. (이건 뭐 거의 만날 때 마다 레퍼토리인 것 같다) 오늘 그녀의 표정이 너무 우울해 보여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편으로는 내가 좀더 소리를 내서 딴거 보자고 할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면목없음에도 영화가 끝나고서도 어디 가서 차라도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역시 그녀라는 것을 생각하니 멋적은 웃음만 나온다.

PS: 쓰고나니 정훈이 이야기가 별로 없네; 정훈 너도 본걸 후회하지 않냐? 크크;

Writing a Garbage

아침에 일어나니 왼쪽눈에 다시 생긴 쌍커풀. 이것을 일컬어 하루키는 절망이라 하였던가. 나는 오늘도 내가 있던 그 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쌍커풀 따위의 미신에 흔들리다니 나 자신을 향해 가벼운 조소를 지어 보았다. 하지만 이 세상은 미신으로 가득차 있는걸.

사는 이유를 잠시 잊고 생활을 하니, 오늘은 아주 평범하고 그리 우울하지도 않았다. 특히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을 빌리니 기분이 좋았다(내가 나를 위해 빌린 책은 아니고 우유가 레포트 쓰는 데 필요하다고 빌려달라 부탁한 책인데, 상당히 재미있어 보인다. 그리고 나는 책을 보통 빌리지 않고 구입한다.). 책을 껴 안고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갈 때의 기분이란 색다른 것이다. 혹시 미끄러져서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한켠으로는 뿌듯한 마음이 교차한다. 미묘한 감정의 충돌이 삶에 새로운 색깔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여느때처럼 재헌이는 꼬임에 넘어가 대성선배, 재헌, 나 셋이서 당구를 치고 (오늘은 내가 1등을 했다 핫핫…) 수업을 들었다.

파일 처리론 시험 성적이 나왔다. 100점 만점인 것 같은데 5 점 나왔다. 그럴 줄 알았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 않았다.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 훨씬 위안이 되었다. 다음 시험과 기말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면 쉽게 따라잡을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곤 오랫만에 집에 일찍 돌아와서 한가한 김에 머리를 이쁘게 깎고 내일이 마감인 서양 문화의 유산 레포트를 썼다. 시간이 없어서 쓰레기 같은 레포트가 나온 것 같은데, 현애가 말해 주기로는 괜찮다고는 하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레포트 쓰는데 갖은 글늘리기와 설명을 해대느라 힘이 다 빠져서 일기에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 쓰레기 같은 글을 쓰고도 이렇게 뭔가 한 것 처럼 쓰려니 답답해 죽겠다.

내일은 좀더 열심히, 좀더 즐겁게, 좀더 가깝게…

PS: 그림은 오늘 내가 쓴 레포트의 모습을 상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