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

놓쳐서 늦게 탄 버스는 안이 아주 한산하다. 어제 느껴지던 그 열기는 다 어디로 가 버렸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시원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한 일이 없는 하루다. 매일매일 거대한 인생의 서사시를 쓰는 것처럼 일기의 지면을 채우는 일은 무의미하다. 매일 밥을 먹는 것이 우리에게 별다른 의미도 주질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겠지.

어김없이 재헌이를 꼬드겨서 당구를 쳤다. 침착함과 신중함, 그리고 행운이 나를 다시 한번 승리로 이끌어 주었다. 하지만 뭔가 허전한 이 마음. 역시 자꾸 이겨버린다는 건 친구에게 미안한 일이고, 또 이겨버릇해서는 승리의 귀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애시당초 오늘 있던 아카라카에는 가지 않을 계획이었는데, 내일 시험이 오후 7시라서 시간 여유가 많다고 생각하고 아카라카를 구경했다. 재작년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집단 응원, 가수 퍼레이드, 또 응원으로 마무리되었다. 싸이, 설운도(!), 소나기, 야다, 포지션, 레이지본, 크라잉넛, 핑클 등등 많은 가수들이 와서 노래를 불러 주었다. 포지션과 야다가 제일 괜찮았던 것 같다.

응원할 때에는 응원 춤 동작을 다 잊어버려서 고생했지만 이내 대충 익혀서 어느정도 따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들곤 해, 멍하니 춤을 추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커다란 벌집 안에 흠집이 약간 난 모양 비슷했으리라. 그래도 나 혼자라는 생각은 안 들고, 그저 멍 하니 바라볼 뿐이었으니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뒷풀이를 약간(막차 시간 때문에 중간에 나와 버렸음)하고 돌아오는 길에 꽤 전에 보냈던 문자메시지의 답을 받았다. 뭐랄까, 언제 받아도 기쁜 그런 메시지다. 오늘 보낸 메시지가 10년 뒤에 답장이 와도 기쁠 그런 메시지. 사실 나에게 문자 메시지 보내 주는 사람은 019와 그녀 뿐이다. 보냈을 때 답장 줄 사람은 그녀 뿐이다.

이런 생각이 나면 가끔은 기뻐해야 하는지 쓰러져 울어야 하는지 분간도 되지 않는다. 난 외로운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정답은 ‘,’ 쯤 되지 않을까?

PS: 사실 일상의 일들이 완전히 무의미하거나 하지는 않다. 어떤 것에 의미가 없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자기 삶 자체가 의미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몸부림, 열정

어김없이 아스팔트를 가르는 자동차들과 함께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는 기분으로 버스를 탔다. 오늘도 우중충하면서도 상쾌한 공기다. 버스의 답답한 기운은 내가 왜 여기에 서 있어야 한는지 이유조차 잊게 한다. 학교에 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어수선한 분위기의 관광 코스를 돌고 있는 기분이다. 이 뜨거운 공기 안에서라면 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쏠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름대로 나는 2년 남짓이라는 길다면 길다고 해야 할 세월을 참으며 통학을 해 왔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지만, 어쩌면 이 뜨거운 공기는 희망이 가져다 주는 열정의 2차 효과일 뿐일런지도 모른다. 다들 작아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열정을 갖고 이 600원짜리 버스에 타서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어딘가를 향해 매일같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짧은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고 미온의 열정이 이 세상 곳곳에 무의식적으로 뿌려진다고 생각한다.

버스에 내려 다시 우중충상쾌한 공기와 함께 정확히 수업 시간 4분 전에 강의실에 들어섰을 땐 아무도 없었다. 잠시나마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럴리가 없다. 밖에 게시판에 붙은 연합 채플 공지사항이 기억난다. 그게 하필 오늘 아침이라니. 어제는 2시에 자서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힘들어서 미칠 것 같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내 기대가 무너져내리니 수업이 없는데도 수업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여유를 내서 산 포도농장이라는 포도 쥬스를 마시며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왔다. 다음에 일어날 일은 조금 뻔하다. 이제 무얼 해야 할지, 갑자기 길잃은 개처럼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결국엔 언제나처럼 컴퓨터실에 가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실에 도착했을 땐 아까 버스 안에서나 느꼈을 법한 미지근한 온기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버스의 기운과 이 곳의 기운은 사뭇 다르다. 어디까지나 기계의 그것은 열정이라기보다는 발열이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 홈페이지를 관리하고는 어제 읽다 만 소설을 마저 읽어내려갔다.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 속에서 멋진 글귀도 찾아서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하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에겐 오늘도 결정적으로 이 곳에서 항상 느끼는 ‘갈증’ 이라고 하는 것을 해소할 수가 없다. 왠지 모르게 나는 이 곳에서 내가 내는 ‘체온’이란 것이 열정이라기 보다는 삶의 몸부림이라는 생각히 들었다. 열정과 몸부림은 비슷하다. 다만 그것은 비슷할 뿐이다. 본질은 다르다. 마치 치즈와 버터의 차이와 같다. 둘 다 같은 원료를 사용하지만 어디까지나 버터가 더 느끼하다. 마찬가지로 몸부림은 느끼하다. 상쾌한 터치가 되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필요를 느꼈다.

마침 PDA 가 수업시간을 알린다. 선배와 수업시간에 들어갔다. 읽던 소설을 마저 다 읽어버렸다. 아직도 소설의 결말 부분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주제 조차 파악이 되지를 않는다. 잠시나마 멍한 CHAOS에 빠져 있는 사이에 수업의 반이 끝나고 잠시 휴식시간에 찾아왔다. 밖에서 동창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강의실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재헌이가 수업엘 들어왔다. 아마도 어제 태워먹은 CPU를 교환하러 갔다 온 거겠지. 아까 동창과 했던 내가 읽은 소설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을 그와 다시 한 번 이야기한 뒤에 수업이 끝났다.

다시 컴퓨터실로 돌아온 나는 조금 쉬다가 이미 딜레이되어버린 운영체제 숙제를 했다. 5인 1조가 되어서 하는 숙제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충분이 잘 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분간 프로그래밍은 꼴도 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다. 단체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오늘 같은 경우엔 인내력 테스트에 좋다 할 수 있겠다.

기침이 계속 난다. 어제 본 파이란처럼 폐가 아파서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죽어도 그만이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어째서 나에겐 이리도 살아야 한다는 몸부림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역시 열정과 몸부림은 적어도 같은 뿌리를 갖고 있기는 한 듯 싶다. 사실 다른게 근본적으로는 없는지도 모른다.

내 몸 안의 작은 열정은 나도 모르는 동안 언제나 있다. 죽기보다 싫은 일을 할 때도 꺼저가는 열정을 짜 내어 무언가를 해야만 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생각할 때 열정의 불꽃에 기름을 들이붓기도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생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겐 최소한의 열정이 식지 않고 발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열정은 우리 몸 안에 함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항상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의처/부증과도 같다. 심해지면 집착이 된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지만, 사랑과 집착은 정말 작은 차이에서 온다. 상대방을 항상 생각하되,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사랑은 어느샌가 집착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내가 한 것들이 사랑이긴 한 것인지. 난 변변히 잘난 사랑도 한 번 해 본적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아직도 어떤 만남을 할 때 마다 그 사람들 모두를 내 연인처럼 대하고 싶다고 느끼곤 한다. 정말 내가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만난지 며칠이 지나도록 만난 사람의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 본다. 지금쯤 양치질을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까? 어떤 기분으로 숙제를 하고 있을까? 이 모든 생각들이 집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바보 같은 감정을 갖지 않도록 노력한다.

지금으로선 이런 일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싶다.

PS: 사진은 내가 쓰고 있는 향수… 누나에게 선물받은 것인데 향이 맘에 든다. 예전에 타미힐피거 애프터쉐이브 쓸 땐 몰랐는데…

Talk Talk Talk

첫번째 수업 시간은 버스를 놓쳐서 듣지를 못했다. 컴퓨터실이 닫혀 있길래 어제부터 읽던 1째 권의 마지막 부분을 남김없어 읽어버렸다. 2권이 바로 보고 싶었지만 없는 걸…

영화를 예매해 볼까? 녹색극장에서 그녀의 의견을 물어 6시 30분 표를 끊었다. 어제 5시 4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밥먹을 시간이 있으려나…

학교로 돌아와서 별 생각 없이 있다가 5시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시간을 메우기 위해 대성선배 재헌 나 셋이서 당구를 쳤다. 오늘은 잘 되질 않네…

오래간만의 만남이라 그런지 알수 없는 상쾌함과 긴장감이 나를 마비시킨다.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거리 한가운데에서 시계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녀는 6시에 도착했다. 밥먹을 시간이 없어서 일단 영화를 봤다. 파이란…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슬픈 영화였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삼켜버린 그 슬픈 장면들이 떠오른다. 일부러 강한체 하려는 건 아닌지? 우리의 감정을 무의미하게 강하게 단련하고 있는건 아닌지?

영화를 보고 우린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에 다다랐는지, 이렇다할 감상을 말하지 못한 채, 소렌토에 갔다.

우린 파이란에 대한 여러 생각을 나눴다.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조차 보이지 않는 강제, 더이상 붙잡을 사람조차 없는 파이란… 그들은 어쩌면 이 세상에 남겨졌던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이야기하면서 밥을 반 쯤 밖에 먹질 않았다. 그리고 우리 이야기는 Aroma 라는 카페에서 11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곤 외로움이라던가… 나의 기억, 그녀의 기억, 그녀의 가치관, 나의 장점과 단점(그때 당장 요즘 느끼는), 그녀의 고민…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우린 나눴고, 그것이 어떤 합의점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만으로도, 비록 그것이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잔잔한 여백을 남기며 우린 책을 지었다. 내용이 약간 다른 멋진 두 권의 책이 우리 가슴 안에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것이다.

그녀에게 ‘소피의 세계’를 빌려주고 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11시 12분이 되어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TTL 존 앞에서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이 어딘지… 신촌의 거리가 인공조명 아래의 세트 같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우린 헤어졌다. 그녀가 먼저 오늘 즐거웠어! 하고 말을 건네 주어서 기뻤다.


내가 한 말이 전부 진실인지, 아니면 조금은 거짓말인지 말해놓고도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녀가 한 말을 전부 기억하지도 못한다. 나나 그녀가 대화 중의 질문에 전부 대답한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난 그녀가 균형있는 사람이란 걸 안다. 멋진 사람. 그런 균형 감각을 가진 사람과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는 게 너무나 기적같다.

그리고 기분이 꿀꿀할때 말해주겠다는 이야기들이 벌써부터 기대(?) 되기 시작한다… ^^

PS: 내가 무슨 이야기에 대해 어떠어떠한 내용을 나눴는지에 대해 말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이야기는 전부 다 말할 수 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만이 말 할 수 있는 고유의 ‘빛’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찬란함을 논할 수 없기에.

PS2: 오늘 일기는 정말 내 기억의 단편이다. 무엇으로 오늘을 설명해도 부족할 것만 같다. 그리고 싫거나 피곤한 내색 않고 끝까지 함께 이야기해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여유

어제 몇번이고 거듭한 회의 뒤의 하루. 내 마음처럼 비가 흐느적 흐느적 내린다. 그럼에도 비가 오면 본능적으로 기분이 상쾌해지는 내 몸은 무언가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집에서 들고 나온 우산이 전혀 취향에 안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비를 맞으며 등교했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은빛 아스팔트를 응시하며, 지나가는 차들의 비친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구나… 나에게도 은빛 그림자가 있을까?

학교 앞에 내려서 우산을 사러 갔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가게가 열지를 않았다. 오렌지색 우산을 사고 싶은데…

우산사러 돌아다니다가 이미 생물학 시간은 제쳤고, 컴퓨터실에 갔다. 언제나처럼 기선선배가 까먹고 치우지 않아 풍기는 계란 썩은 냄새가 자욱했다. 에어컨의 공기정화 기능을 쓰니 좀 낫구나. 아무 생각 없이 웹서핑을 하고, 잠시 한가함으로 무기력함을 달랬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에게 컴퓨터가 어떤 존재인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인생과 맞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인지.

“그건 아냐!”

그리고 컴퓨터를 접었다.

일주일 간 컴퓨터를 치지 않으면 어떨까? 책을 보면서 쉬고 싶어…

화일처리론 수업에 들어갔다가 재헌이와 함께 나왔다. 내가 재헌이 지면 돈 좀 대 주기로 하고 당구를 쳤다. 이제 120 으로 다시 올릴 때가 되었는지 내가 계속 이긴다. 최근 6 게임 중에 진 적이 없는 것 같다. 미안해서 반값 정도 내 주고, 함게 쇼핑을 했다.

일단 내일은 밖에서 있다가 좀 늦게 올 지도 모르니까 미리 카네이션을 샀다. 학교에서 가까운 꽤 큰 꽃집에서 만든 카네이션 바구니인데, 정말 예쁘다… 부모님이 기뻐하실만 하다.

그리곤 우산을 사려고 가격을 알아봤는데, 마음에 드는 SYSTEM ORANGE 우산이 11000원이나 한다. 이러면 책을 살 수가 없는데… 잠깐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홍익문고로 가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를 샀다. 이 책이 난 1권 짜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2권… 13000원 나갔다. 하지만 선미님이 재미있다고 그랬으니 기대할만 하겠지.

그리곤 집에 왔다. 버스 안에서 졸아서 카네이션 바구니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넘 쎄게 안고 자기도 했다…

컴퓨터를 만지려다가, 이게 아니지 싶어서 침대에서 새로 산 책을 읽었다. 한 30페이지 읽다가 잠이 들어서 한시간 뒤에나 일어났는데, 그 뒤부터는 잠이 오질 않아서 지금은 1째 권의 거의 끝 부분을 읽고 있다.

그래도 자주 다니는 커뮤니티는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한바퀴 돌고는, 신발장에 걸린 줄넘기를 3년 만에 해 보았다. 100번 쯤 하니 숨이 찼다. 허기가 돌아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보았다. 오랜만에 즐기는 여유. 예전엔 이 여유를 버리고 컴퓨터 앞에서 웹서핑을 했단 말인가!

소화가 끝나고 따뜻한 물로 얼굴을 씻고 샤워를 했다. 창문을 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좋구나…

“여유”

내일은 영화와 함께 여유를…


화일 처리론 숙제는 하지 않았다. 수업도 오늘 하나도 안 들었다. 누가 나를 욕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내일도 쉬어야만 할 것 같다.

1년을 쉬어도 모자랄 것 같은 12년의 체증을 내일 이틀 째 씻어내련다.

PS: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LE 는 안하기로 결정. 애들이 별로 할 생각이 없는 듯.

The World in the glasses

어제 일찍 잔 덕에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앉아서 화일 구조론 숙제를 하다가 배가 고파서 누나랑 매형이랑 셋이서 피자를 시켜 먹었다. 거대한 치즈 크러스터 슈퍼스프림 피자. 역시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치즈 크러스터다. 느끼하다. 요즘 몸이 안좋아서 그런가 별게 다 느끼하구나… 난 치즈도 좋아하는데. 두 조각 먹구 그만뒀다.

30분동안 낮잠을 자고 코딩(숙제)를 계속 하다가… 피곤해져서 침대에 누웠다. 낮잠은 싫다. 핸드폰 너 일루와봐… 나 지현이랑 수다떨구 싶다 -_-; 빨랑 문자 보내줘!

그렇게 그녀와의 수다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문자메시지… 아이시큐… 문자메시지… 또 아이시큐… 그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나를 다시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는 것이 기뻤다(물론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 그리고 나에게 ‘오늘 뭐했어?’ 하고 물어보는 사람이 그녀 한 사람뿐이었던 것 같아서 왠지 서글프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서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이런 것을 넋두리라 하던가… 매일 넋두리를 이야기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이야기하고 그것을 잊지 않기로 하고…


내가 12년 동안 걸어온 프로그래밍의 길. 그것이 붕괴되고 있다. 아니, 붕괴라기 보단 권태기에 접어들었다고 해야 해야 겠다. 숙제가 왜이리도 하기 싫은지. 옛날 같았으면 좋아라 해치우곤 자랑스러워 했을 텐데…

내가 차라리 번역가의 길을 걸었더라면 어땠을까? 인문대학생이 되어서 말이다. 여러 소설에 묻혀 살면서… 위의 것보단 조금 낭만적일까? 그렇지 않을까?

지현이의 말처럼 어떤길을 걷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긴 12년의 세월 동안 나와 컴퓨터의 사이… 그 사이에 어떤 사람들도 나와 함께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칠 것만 같다. 내가 어째서 그래야만 했는지, 왜 내 생활에 무언가 빠져있었다는 것을 몰랐는지 후회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절망하기보다는 내 삶의 새로운 전환기를 찾을 수 밖에 없음을 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조자 없는 현실이 가혹하리만치 따갑다.

따가운 햇살 아래 선글래스를 계속 쓰고 있을 수 없는 나니까. 글래스로 보는 세상은 어차피 글래스 안의 세상. 글래스를 벗고 그것을 견디어 냈을 때 새로운 내 자신이 태어나리라…

PS: 오늘 사진은 lono 군이 만든 제 홈페이지 400히트 기념 축전입니다. 직접 그려줄줄 알았더니… 으휴 -_-+;;

일본 여고생들과의 조우

대망의 Language Exchange 하자던 그녀와의 만남을 가진 날.

대학로 스타벅스 앞에서 오후 세 시에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난 긴장하면 약속시간보다 보통 한 시간 정도는 일찍 나간다. 그래서 두 시에 스타벅스 앞에 도착했다. 스타벅스란 데도 역시 태어나서 처음 가 보는 곳이기 때문에, 스타벅스 안을 두리번 두리번 (그것도 밖에서) 쳐다보았다. 얼핏 보니 KFC 같은 커피 판매점 같았다. 뭐 이정도면 됐지! 하고 시간이 아직도 40분이 남아서 여기 앉았다가, 저기 돌아다녔다가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한 15분 쯤 전일까? 전화가 왔다. 장자 씨네… 무슨 옷을 입고 있냐고 묻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또 물어보기는 그렇고 해서 그냥 Navy Blue의 티 셔츠를 입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녹색의 셔츠를 입고 있다고 한다. 녹색이라… 연녹색일까, 아님 진녹색일까? 하는 궁금증이 몰려왔지만 일단 끊고 봤다. -_-;

드디어 정각, 약간 이국적인 풍모의 귀여운 여자애가 스타벅스를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그녀는 녹색 셔츠를 안입었는걸… 흐음~ 저 여자도 나처럼 스타벅스가 처음인가 보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그녀는 잠시 스타벅스에서 멀어졌다가 한 명의 녹색 티를 입은 여자아이를 데려오는 것이다!

내가 먼저 가서 말을 걸어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하지만 역시 내가 가서 말을 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썰렁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좀 버벅이다가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두 명(나와 장자)은 오렌지 쥬스, 한 명(이름 까먹음)은 뭔가를 먹었는데 기억이 안난다. 그런데 그 귀여운 아이는 이미 점원과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문제를 겪고 있었다. 내가 어설프게 설명해 줘서 넘어가고 우린 2층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녀들은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어디서 자기들의 전단지를 보았는지,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각종 한국어 표현이라던가, 대학생활은 어떤지, 연세 대학교에 들어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너무나 많은 질문에 난 서투른 일본어로 대답해 줬다. 서로 뜻이 잘 안통할 때면 난처해서 웃기도 하고, 그녀들도 새로운 표현을 알게 되면 신나서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녀들은 나한테 Language Exchange 할 필요 없을 정도로 일본어를 잘 한다고 했지만 난 믿기 힘들었다. 아무리 봐도 내 일본어 실력은 극악인 것 같은데… 설마 이 아가씨들이 나랑 LE 하기 싫어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난 그럴리가 없다고 철썩같이 믿기로 했다. 앞으로 그녀들을 잘 도와주어서 한국어도 배우고 연세대 들어가는데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녀들은 18살)…

갖은 이야기 (너무 많아서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를 나눠 가며 한 시간이 흘렀다.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것도 외국어로 말을 했는데…

그녀들은 다른 약속이 있다면서 일어나자고 했다. 하긴 더 오래 이야기하다간 나의 일본어 실력이 들통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음번에 연락이 안 올까 두려워서 다음에 언제 연락하겠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내일 쯤 연락을 준다고 한다. 아 기뻐라… 내일은 방에 콕 박혀서 전화를 기다려야 겠다!


그녀들과의 만남이 끝나고 나는 신촌엘 갔다. 학교에서 책이나 볼까 하는 심산으로 가긴 했지만 결국 현우한테 전화가 와서 현우랑 저녁을 먹고 당구도 치고 게임방도 가고 하고 말았다. -_-;

그렇저럭 재미있는 게임들이었다. 달리 할 말 없음!


여름이 되고 감기에 걸리니 몸이 조금 아픈 것 같다. 식욕도 너무 없고 이러다 또 저번처럼 쓰러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된다면 난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 텐데, 다시 한번 만남을 이어 가기 위해 힘을 또 내기가 이젠 두렵다. 지금 이대로가 계속되었으면 한다.

만나지 않고, 그래서 잊혀지고, 다시 만나기 위해 많은 힘을 소비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사슬을 끊어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난 어떻게든 나를 유지하련다…

감흥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전화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떨리는구나… 이번엔 정말 받을거야… 어떻하지?

에잇 모르겠다! 하고 전화를 걸고 신호음이 세 번이 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는 사람은 정 장 자 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는 자기가 장자라고 하며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얼마 전에 조심스럽게 적어 보았던 시나리오에 따라서 말을 이어 갔다. 생각외로 잘 되는 것 같다. 그녀는 한국어를 좀 못하는 것 같고, 나도 일본어를 좀 못했던 것 같다… 한숨 푸욱…;

그녀는 나를 한번 만나 보고 결정하고 싶다고 한다. 이거 면접인가? 랭귀지 익스체인지하는데도 면접을 보네 하핫… 뭐 좋다고 하고 약속을 정했는데, 이 때부터 나의 일본어가 심각하게 버벅이기 시작했다. 서로 답답답답… 두둥…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알아들어서 토요일 오후 세 시로 시간을 정하고, 장소는 그녀가 정했다. 난 그녀가 신촌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쪽지를 우리 학교 공대 게시판에서 봤으니까) 대학로… 란다. 난 대학로 정말 거의 안가봐서 잘 모르는데 참… 그래도 어쩔수 없지! 하고 우린 스타벅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이 정해지자 그녀는 황급히 ‘안녕!’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매우 쫄아 있었던가, 답답해서 그랬던 것 같다. 하긴, 나도 어제 후다닥 두 번이나 끊었으니 그 심정을 이해할 수 밖에.


여기는 꿈의 세계 피곤한 몸으로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SES 가 지나간다… 바다를 이렇게 가까운데서 보다니, SES 가 나를 힐끔 쳐다보고 수다를 떨면서 지나간다. 그러나 사인해달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일반인으로서의 한가로움을 한껏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왜 이 꿈을 꾸게 된 걸까? 이지현양 분석바람 -_-;


일어나니 11시. 경남님을 2시에 역삼에서 뵙기로 해서 아침을 먹고 곧바로 나갔다.

2시가 약간 넘어서 경남님을 만나서 점심을 먹고 회사로 갔다. 회사 이름이 이저드 란 곳이었는데, 대구(대전?)에서 있다가 서울에서 올라온지 얼마 되질 않아서 공사가 한창인것 같았다. 아랫층에는 PanWorld Net 이라는 유명한 회사가 있는데, 경남님의 형님이 운영하는 회사라던가? 하여튼 여러모로 관심이 간다.

다만 찔리는 것은, 원래 Neximo 측과 다시 계약을 해서 이번엔 월급을 받으며 그곳을 위해 일하려고 했었는데 이저드에서 일하려고 학업 때문에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한 것…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분나쁠까? 난 잘 모르겠다. 내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시간이 말해주겠지. 다만 이번에 하게 된 일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것 밖에는 달리 변명이 없구나.

이저드에서 만나기로 한 분이 안계셔서 별로 한 일 없이 사무실을 나와서 신촌으로 갔다. 컴퓨터실에 가서 학교 숙제를 하려고 하는데 띠리리리리… 어랏 호석형이다. 한양대에서 당구 결투신청이다 하핫 -_-; 공부보단 역시 당구가 우선인지 조금 고민하는 척 하다가 한양대로 갔다. 같이 저녁먹고 당구쳐서 3:2 로 나의 승리 -_-v

침착해 지는 법을 배워서인지 패배가 싫지는 않지만 승리가 그래도 좋긴 한가보다.


오늘도 하루 분의 일기를 썼다. 내가 얼마나 하루를 감흥없이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일들이 일상을 만들어내지만, 그 속의 우리 감정은 너무나 단순하지는 않은지? 그곳에서 하루에 적어도 하나 쯤은 무언가 얻고 느껴야 하지는 않은지?

내 자신을 반성해 본다.

PS: 그림은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정훈이네 홈페이지에서 슬쩍. 뭔가 심각한 사색, 허무, 추억 따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평범이 던져준 기회

평범한 하루가 다시 한번 지나가는군…

이라고 생각하며 공대를 나가려던 찰나

“Language Exchange 하자!” 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서투른 한국어로 쓰여진 몇마디… 그녀는 재일교포인 듯 하다. 바로 이게 기회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후다닥 나의 귀염둥이 PalmVx 에 메모하고 집에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전화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계속했지만, 왠지 요즘은 내가 대담해 진건지 뭘 모르는 건지. 걸어보자!!! 하는 생각이 불끈!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메모장에다가 전화 통화 시나리오를 주우욱 적어내려갔다. 한 편의 일어 교재를 보는 듯한 이 기분 …;

자 다 썼다. 몇번의 짧은 고민 끝에 전화를 걸었는데, 웬 중국인 같은 어설픈 한국어 발음의 여자가 받더니. 장자 없어요! (그녀의 이름은 정장자 -_-;) 하는 것이다. 으음… 중국인과 한 방을 쓰나? 하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당황해서는 후다닥 끊어버렸다. 생각해 보니 LE 의 주인공이 전화를 안받았을 때의 시나리오를 안 쓴 것이다 –; 가슴이 두근 두근…

시간은 흘러흘러 11시. 이번엔 받겠지 하고 걸어보았지만 아까의 그 중국인… 그런데 한국말을 잘하는 거 같기도 하네… 라고 생각하도 그럼 정장자씨 어디 가셨나요? 하니까 갑자기 우물우물 거리더니 일본어로 밖에 나갔는데.. 쇼핑하러 외출했어요. 하는 것이다… 난 전화받는 사람이 중국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발음이 하두 굴러가서 –;) 뜻밖이었다. 또 당황한 나는…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이번엔 일본어로) 하고 우다닥 끊어버렸다 -_-;

전화받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에휴… 난 너무 두려웠나 보다. 그래도 12시에 다시 걸어 봐야 겠다. 꼭 그 사람을 만날거야…!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어쩌면 나와 그녀는 이 세계에서 이방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그 이방인을 만나보고 싶어하는지도… 내가 아직도 우리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그녀를 만나게 되면 더 잘 알게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PS: 그런데 그녀에게 이미 LE 파트너가 생겼으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 –…

하늘을 나는 꿈

그저께는 밤새고 어제는 자정이 넘도록 놀아서 몸이 장난이 아닐 줄 알았는데 좀 피곤하기만 할 뿐 괜찮았다.

조금 늑장을 부려서 지현이랑 재헌이랑 (또 누구였지) ICQ 를 나눴다. 오래간만의 아침 대화라 조금 생소했지만 뭔가 대화가 상큼했다.

첫번째 수업(일반생물학)을 듣지를 못하고 두번째 수업(파일처리론)을 듣다가 너무 답답하기도 하고, 재헌은 졸리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좀 쉬러 컴퓨터실에 가 보았는데 잠겨져 있네… 결국 창가에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바람은 너무나 상쾌하고 하늘은 어찌나 높은지… 어제 온 부슬비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멋졌다.

갑자기 내가 저 하늘을 나는 상상을 했다.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꿈에서도!!!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상상을 하다니… 요즘 나에게 무언가 계속 변화가 일고 있는 듯 하다. 그것도 기분좋은 변화가…!

대성이형과 점심을 먹고 컴퓨터실에 돌아오니 너무 졸려서 낮잠을 약간 잤는데, 기분이 정말 최악이다 -_-; 난 정말 낮잠이랑은 안맞는 듯… 온 몸이 뜨겁고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것 같고, 마음이 답답해졌다. 감기 기운이 좀 더 심해졌는지… 목도 부어서 참 힘들었다. 조금 전까지 하늘을 날고 싶었던 그 맑은 하늘은 어디 간 걸까? 난 어쨋든 몸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 하늘을 동경하고 싶다고 느꼈는데…

마지막 수업인 운영체제를 들을까 말까 하다가 성적이 생각나서 앉아서 소피의 세계를 읽었다. 이제 곧 니체가 나올텐데… 정말 기대된다. 꼭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사서 읽어봐야 겠다.

어렵게도 수업이 끝나고 정보특기자 회의가 있어서 잠시 있다가 성준이랑 Dunkin’ Donuts 에 슬러쉬(다른 이름이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네…)를 먹으러 갔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Dunkin’ Donuts… 분위기 좋은데? 다만 디지몽이란 게 여기저기 도배되 있는게 좀 싫었다. –; 난 포켓몬도 잘 모르는데 참…;

힘든 몸을 이끌고 다닌 하루 치고는 평범했던 것 같다. 오늘 어디선가 쓰려져도 이상할게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영혼이란게 정말로 존재하는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이 세계가 실존하는가? 정말로 이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인가? ‘나’ 라는 것이 사실은 기억과 감각의 집합체는 아닌가? 우리 존재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영혼’ 이란걸 만들어 냈다고 하는 말을 오늘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이란 걸 믿는다고…

난 영혼이나 나를 창조한 신을 믿지 않는다. 내 육체가 없으면 영혼이란 것도 없고, 내 안의 신은 나의 친구이자 나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영혼은 소중하고 신이란 경건한 존재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결론과 일치하긴 한다.

어떤 사람이 유물론적 관점을 가지던, 실존주의를 찬양하던, 그것은 그 사람의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취향은 취향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 같다.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면, 그래서 자신의 속박을 벗어버릴 수 있다면…

그래서 당신과 함께 하늘을 날 수 있다면…

PS: 사진은 POSCO Gallery: 날개, 나의날개 (1997. 10. 12 – 11. 19) 의 작품 중 하나.

2일야화

– 어제 보통과 같은 하루였다. 다만 수업시간에 진도를 따라가려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교재를 못 가져간 생물은 쉬는 시간마다 했다. 그 외엔 정말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던 오늘은 나에게 새로운 바리에이션을 요구했다.

재헌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휴학한 친구 경민이가 곧 군대를 간다고 해서 같이 밤새도록 술마시고 놀기로 했다는 것… 음 밤을 새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술 좀 마시고..(흑주? 라는 곡주를 마셨는제 11도에다가 참 맛있었다) 게임방에서 밤새도록 스타크래프트와 포트리스를 했다… 이대로 밤을 새 버리면 죽어버릴 것 같은 신체적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새벅 5시… 역시 매사는 우리의 정신적 능력에 좌우된다는 것을 재확인.

내 주위엔 유난히도 신검에서 5급이나 4급을 받은 사람도 많고, 병역 특례 업체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은 생소한 모임이었지만, 나름대로 여러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경민이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 오늘6시에 집에 도착해서 쓰러져 자고 일어나 보니 12시… 호석형이 오늘 영화 보여주기로 했는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호석형이 보여주기로 약속도 했고, 또 약속을 깨면 안될 것 같아서 갈 수 있을 것 같기고 하고 해서 서둘러서 메가박스에 갔다. 휴~ 다행이도 다른 영화 트레일러를 하고 있네… 제 시간에 도착한 셈이 됐다. 본 영화는 ‘한니발’. 양들의 침묵 후속편 답게 엽기적인 장면이 꽤나 나오는 영화였다. 특히 마지막에 뇌를 먹는건 거의…; 그렇지만 난 한니발이 스탈링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한니발은 살인자이고, 스타링은 FBI Agent이기 때문에 한니발의 사랑은 그리도 뒤틀린건 아닌지… 물론 그의 이상한 성향에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그녀를 무언가 특별히 생각했고 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 다 보고 늙은 몸으로 같이 펌푸 한판 뛰고 호석형과 헤어졌다. 신촌으로 갔다. 왠지 가고 싶었다. 그냥 집에 가기엔 좀 쓸쓸했다구 해야 하나. 그래서 지현이에게 전철 안에서 문자를 쳤다. 그냥 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음음 근데 정훈이랑 놀고 있네? 음 나는 안끼워주구~ 했지만 뭐 내가 끼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잖아 -_-;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우린 결국 만났다. 지현, 정훈, 나는 셋이서 길을 거닐었다 (라기 보단 마구 방황했다.) 셋 다 어딜 가야 할 지를 몰라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만 하고… 영화(파이란), 노래방, 술집, 당구장 등의 후보 중에 술집이 뽑혀서 근처에 있는 FOR YOU(4U)라는 맥주 가게에 갔는데 분위기가 참 괜찮았다. 거기 가서 지현이랑 사진도 찍고 정훈이도 사진 찍어주고… 좋았다. 난 19xx Stout 란 맥주, 지현은 Leffe Blond, 정훈은 글쎄 기억이 안나는 맥주를 마셨다. 꽤 맛있었다. 난 처음 맛과 끝맛이 다른 걸 좋아하니까…

그리고 나선 노래방에 가게 됐다. 음 난 정말 아는 노래가 별로 없는데… 무지 걱정을 했다. 다들 노래를 잘부르네..~ 특히 지현이 목소리는 너무 이쁘다. 성우해도 될 것 같아… 난 어제 담배 연기를 너무 많이 접해서 목이 아프고 피곤해서 맘대로 되지도 않고 가사도 생각이 안나서 노래를 잘 못불렀다. 아휴… 왜이렇게 못부르는 거야! 그리구 사진도 또 찍었다. 잘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난 밝은데서 안찍으면 너무 아저씨 처럼 사진이 나와서 좀 싫다. 음음 난 못생긴 걸까나? 난 못생긴게 정말 싫어. 그냥 싫어… 난 안 못생겼음 좋겠는데, 그걸 내가 결정할 수가 없구나. 그러고 보니 이쁜 지현은 왜 사진 찍는 걸 싫어할까나? 궁금 궁금…

노래방에서 주인아저씨가 계속 시간을 주고 또줘서 결국 12시 15분까지 노래를 불렀다. 내가 타고 가는 588-1 번 버스는 11시 40분에 이미 끊겼을 것 같고, 가망이 있는 588-2번 버스를 타기로 하고,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버스를 40분 쯤 기다렸는데 오질 않는다. 내 지갑엔 단 2000원… 어제도 집에 안들어왔는데 택시비 준비해달라고 집에 전화하기가 너무 어색하다. 지현이가 혹시 차 못타면 택시비 꿔줄테니 전화하라고 했지만 그것도 좀 미안하고… 결국 선배한테 11500원 꿔서 집에 오고 지금… 휴… 정말 숨가쁜 하루구나!


간신히 돈을 빌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지현이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걱정어린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너무나 기분좋았고, 고마웠고, 그래서 말로는 표현못할만치 지현이가 좋았다.

생각해 보니, 20년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그런 걱정어린 전화를 이제서야 처음 받아봤다니… 난 참 외로운 놈이었다는게 맞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외롭지 않을 것 같아. 이틀 간 일어난 세 번의 만남과 헤어짐. 우리 일생의 만남과 헤어짐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길 기도하며…

PS: 택시 안에서나 술집에서나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는데, 지금은 왜 잘 정리가 안되는지. 그만큼 지현의 전화는 나에게 깊은 인상이어서, 다른것들을 다 지워 버린 것 같다. 고마워 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