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일기를 자주 쓰고 싶지만 며칠 전에 나의 컴퓨터를 학교 컴퓨터실로 옮겼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지금은 학교고, 집에 가기 전에 잠시 여유를 내어 일기를 쓰고 있다. 김광민 4집의 ‘아버지’ 란 곡이 흐르고 있다.

전에는 잘 쓰지 않던 오디오를 이제는 자주 듣게 되었고, 밤이 되어도 초조히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없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데, 첫번째로 앞에서 말했던 일기에 관한 문제가 있고, 두번째는 메신저로 누군가에게 나의 의문점에 대해 토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는 내가 컴퓨터를 학교에 갖다 놓고 집에서는 이론적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겨난 수학적 의문점을 해결하고 싶을 때 그것에 대해 즉석에서 문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큰 장애는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을 좀 더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여유를 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심정적으로 애석한 것은, 내가 이렇게 메신저에도 없고, 일기도 자주 쓰지 않고 있는데 아무도 나의 안부를 전화나 e-mail 로 물어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매우 자주 그들의 안부를 물어왔던 것 같은데, 그들은 아마도 그것을 나의 겉치레로 생각하고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로 ‘어떻게 지내는가’ 에 대해 묻고 싶어하는데 사람들은 다른 의미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몇몇 사람들에게서 설명받았다. 또 어쩌면 그들은 자기 자신의 삶에 좀 더 힘을 기울이고 있느라, 상대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은 나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사실 나에게도 그런 위치의 사람들은 정말로 많고, 또 그 위계 질서는 시시각각 변한다. 어쨌든 인간관계란 정말 나에겐 크나큰 회의를 가져다 주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나는 오랜 시간 네트워크로부터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 내 삶을 영위해 갈 것이다. 이것이 나 자신에게 큰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그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의 본질을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며, 내 사랑을 완전히 매듭지을 것이다.

나의 결정은 자주 획기적이고 말그대로 결정적이었다. 너무나 좋아한다고 잘도 말하던 김진주를 한 번의 결정으로 완전히 포기하고 절교했었다. 어느날 갑자기 모든 접속을 끊고 조용한 생활을 지냈고, 어느날 갑자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가 지금은 한 순간에 끝내버렸다. 결정 자체가 너무나 확실해서 그 뒤에 나는 그 결과에 무관히 어떤 희열을 느끼곤 한다.

지금은 사랑하던 누군가를 포기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녀의 나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기민하게 판단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몇번이나 약속이 미루어지고, 원하는 날에 만나자 해도 웃고만 있고 대답한마디 없는 무신경함이 나를 극도로 우울하게 만든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가 누군가에 의해 전적으로 통제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그것을 완전히 끝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랑은 나를 매우 자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빠뜨리는 것 같다. 서로에게 제어 가능한 공정한 상황이기를 항상 바랬는데, 그 점에 있어서 나는 매우 불운했던 것 같다.


유정아 보면 편지해줄래? 유클리드의 GCD 구하는 알고리즘의 증명에 궁금한 게 있거든. 알고리즘 증명의 핵심은 m 과 n 의 GCD 는 n 과 r 의 GCD 와 같다는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한 책의 증명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보면 메일 주지 않을래?

극한으로의 여행

이 글은 2002년 5월의 어느날 작성되었으나 정확한 일시는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이 유한하다면 그 끝에 이르자.” – TrustinLee

The Art of Programming 첫번째 권을 구입했다. 연습문제에 간혹가다 섞여 있는 미해결 문제들은 나의 욕구를 매우 강하게 자극시켰다. 나만이 풀어낼 수 있는 어떤 문제가 반드시 있으리라는 확신과 알 수 없는 자신감에 나는 매우 고무되었다. 왜 이런 책을 이제서야 접하게 되었는지, Java Enterprise Application Development 따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던 내 자신에 대해 조금은 후회하고 있다.

나는 마치 당장이라도 내 꿈이 실현된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내가 해 낼 수 있을지 아니면 나의 자신감은 오류로 판명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긍정적인 쪽에 나의 모든 재능과 노력을 쏟아붓고 싶다.

한편으로는 수학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이 모두는 A Beautiful Mind 를 읽은 뒤 나에게 일어난 변화이다. 그는 이제 나의 영웅이 되었고, 나는 다른 누군가의 영웅이 되고 싶다.

자기 중심의 세계

이 글의 정확한 작성 시각을 잃어버렸습니다.

호연님이 오랜만에 나에게 인사를 걸어 왔다. 사실 그것이 여간 기쁘지 않아서 들뜬 마음에 오늘 있었던 일이라던지, 책을 읽고 생각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다.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내 자신에 대한 발견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므로 나 자신에게 큰 흥미거리가 되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은 재미도 있고, 서로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다른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을 자신에 대한 자신의 여러 설명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서로를 다양한 공유된 경험의 총체로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의사의 전달은 전달받는 사람에게는 간접 경험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공부를 할 때 책을 보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하게, 공부하는 것과 경험으로 습득하는 것의 속도 차이에 경험차가 있다는 점 또한 여기에 적용된다.

그렇다면 내가 만나고 있는 대상이 그 둘 중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아니면 그 중간인지를 판단할 수는 없을까? 어렴풋이 가능할 것 같지만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타인의 생각을 읽기를 게을리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것을 생각해 낼 수도 없었다. 아마도 내가 어려서부터 자기중심적으로 자라왔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일생동안 내가 인간과 상호작용한 시간보다 컴퓨터와 상호작용한 시간이 더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그렇다.

그러나 BeautifulMind 의 JohnNash 의 예가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자기중심적 성격의 사람들이 만남과 교감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다. 나의 추측인데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은 남들이 모르는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외부로부터의 애정을 끊임없이 적대적으로 갈구하는 매우 모순되면서도 순수한 것 같다. 그 세계는 애정의 결핍이라는 중요한 결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메우는가가 생의 방향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나의 세계는 어떻게 될까. 나는 최고가 되고 싶다. 누구라도 나를 인정해 줄수 있는 명성과 능력을 갖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더더욱 하루하루가 내 두뇌를 쇠퇴의 내리막길로 밀어내리고 있는 듯한 불안감에 더 자주 빠지곤 한다. ‘애정’에 대한 불확실성도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나는 지금의 ‘애정’, ‘사랑’ 이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과 혼란을 그 결론이 어떻건 – 사랑의 부정이건, 사랑의 갈구건 – 하나의 ‘정리된 무언가’로 이끌어 내고 싶다.

나는 바뀐다 / 전화를 받고 싶은 사람 / 외모와 사랑

이 글의 정확한 작성 시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일기를 매일 쓰지 않기로 결심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럼으로 해서 내 인생이 더 깊이 있고 우아해졌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하겠다. 오히려 내 자신이 조금 더 게을러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예전의 나로 돌아가 매일 일기를 써 보기로 결정했다. MurakamiHaruki 가 [세계의끝과하드보일드원더랜드]에서 말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나는 제자리에 돌아와 버리고 만 것일까?

대답은 ‘아니오’ 다. 그 동안 내가 간과한 것을 늦게나마 발견했기 때문이다.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외적으로 동일한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옳은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마음가짐을 바라보았을 때, 그 때의 마음가짐과 지금의 마음가짐이 같은 것 같지는 않다. 추측컨데 아마도 세월의 힘이 나에게 그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강 한가운데에서 보트를 타고 구부러진 노를 젓고 있는 나지만, 내가 바라보는 자연의 풍경은 언제나 나에게 인생의 값어치와 그것으로부터 오는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나 보다. 아아, 인생은 정말 끝까지 살아볼 무한한 가치가 있다.


친구들과 땅끝마을로 여행을 떠난 지현이에게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했다. 전에 내가 전화를 오래 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전화도 자주 안하는 지현. 뭐, 그냥 하기 귀찮아서 하는 변명일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녀를 철썩같이 믿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와 함께라면 머리가 하양게 될 때까지라도 전화를 계속하고 싶다. 어쨌든, 그녀는 잠에서 깨어난 목소리로 나의 전화를 받았다. 금방 학교 갈 버스가 와 버려서 끊게 되었지만 오랜만의 전화라 상쾌하고 좋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전화를 참 걸지도 않고 또 전화가 오지도 않는다. 또 싫어하거나 모르는 번호에게 전화가 오면 잘 받지도 않는다. (나에게 연락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메신저나 E-mail 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신뢰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일주일에 한 두번 쯤은 별 이유도 없이 전화를 받아 보고 또 걸어보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나에겐 종종 감동적이다.


요즘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아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가끔은 내 몸의 불완전함을 아쉽게 느끼곤 한다. 그래도 난 내 자신을 사랑한다. 외모나 육체적인 특성이 사랑을 결정할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 본다. 오늘 후배가 틀은 MP3 에서 윤도현이 그랬다. 모든 사람은 발가벗겨 놓고 보면 다 같다고. 결국 타인과 나를 구분하고 내가 타인을 평가하는 궁극적인 잣대는 그 사람의 정신인 것 같다. 아니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누구나가 첫 만남에서 첫 인상과 외모를 중시하는 편이다. 이런 내 모습 싫은데… 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은 정말 싫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외모나 신체적 결함을 이유로 나를 택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충격은 아마도 대단할 것이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가끔 매우 두려워지곤 한다. 그 사람도 어쩌면 이 일기를 볼까?

사진과의 작별을 고한다.

이 글은 2002년 5월의 어느날 작성되었으나 정확한 일시는 잃어버렸습니다.

2 년 쯤 전에 사진 촬영과 감상 수업을 들었다. 그 땐 접사 촬영이란 것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자동 카메라로 접사를 시도해 사진을 망쳤었다. 인화소 점원이 뭘 찍은 거냐고 물었을 땐 그녀가 나를 경멸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자존심이 매우 상했기 때문에 그것을 제출하지 않았고 그래서 D- 라는 학점을 맞았다.

그 뒤 이번 학기에 재수강을 할 결심을 하고 Nikon FM2 를 구입했다. 상당히 우수한 성능의 수동 카메라였는데, 조금은 불편했지만 매우 강력하여 큰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고 얻어내는 결과물 자체는 그다지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은 Dynax 7 을 소유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본다. (여담이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기기를 바꾸는 사람들은 백날 찍어봐야 사진기 기종공부밖에는 못할 것이 확실하다.) 어쨋든 나는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사진이란 이미지를 창출해 내는 프로세스에 취해 그렇게 셔터를 눌러 왔다.

나는 내 필름의 많은 분량을 코스튬 플레이 사진에 쏟아부었다. 아마도 찍기가 수월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그 때로 되돌아 간다면 코스튬 플레이 행사장에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다. 내가 이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간단히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피상적인 인간관계이다. 내가 소위 코스계에 발을 디딘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일부러 추가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차례차례나를 친구목록에 추가했고, 그들중 80%는 내가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오래 또는 깊게 나눠 본 적은 정말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다. 그리고는 행사장에 나가 눈웃음과 겉치레의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어 돌아다니는 내 자신의 모습은 나 자신조차도 경멸할만한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난 왜 이 곳을 무의미하게 거닐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두번째는 사진사들의 이상야릇한 경쟁구도와, 디지털 카메라 위주의 분위기 때문이다. 노출이니 색감이 어떤사진은 샤프니스가 떨어지고 어쩌구저쩌구,…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할 수 있는 가장 하급의 평가를 하고 있다. 정말 질릴대로 질리고 지금은 끔찍하게까지 생각된다. 누가 사진을 이쁘게 깔끔하게 찍으라고, 그게 전부라고 가르쳤는가. 난 정말 그 이상한 분위기를 싫어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장비에는 엄청나게 돈을 쏟아붓는다는 것이 더더욱 나에겐 위화감을 주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중엔 친해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최소 반은 그렇다. 덕분에 사진에 완전히 질려 버렸고, 이제 나의 모든 사진장비를 정리한 뒤, 더 잘 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더 깊은 무언가를 해야 할 시간임을 느낀다. 애시당초 잘 맞지 않았던 일을 오기로 여기까지 끌고 왔던 것 같다. 아마도 그들과 나는 , 그것과 나는 이제 서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

you are moving and touching me

오랜만에 세 사람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정훈이는 수개월 만이었고, 현정이는 2년만이었다. 처음에 현정이를 나는 거의 못 알아볼 뻔 했다. 정훈이는 달리 변함은 없었지만, 메신저로도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거의 이야기를 못해서 참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왜이리 포근한걸까, 그냥 웃음이 나오는걸까… 가슴찡하다.

메이크업을 받고 졸업 사진 촬영을 한 지현, 그녀를 보는 순간 또한 나에겐 너무나 놀라웠다. 순식간에 나는 사카이 노리코를 떠올렸다. 그러나 내 앞의 그녀는 여전히 그녀였다. 그녀는 이 거리의 구원자였다. 그 아름다움의 빛으로 지금이 저녁인지 낮인지, 아니면 아침인지 나는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걸까? 둘만의 만남이었다면 아마도 감격에 젖어 무엇이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을 텐데.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기에 그저 미소지을 뿐이었다.

넷이서 찜닭도 먹고 이자카야에서 술도 마시고 (현정이는 통금 때문에 중간에 작별을 했다. 마중나가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안되었다) Cafe POEM 에서 셋이서 이야기를 했다. 지현이가 주로 대화를 이끌었는데, 그녀는 오늘 유난히 즐거워보였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왜이리 할말이 좀처럼쉽게 떠오르지 않는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말 평소에는 많은 생각을 하며 지내는데.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한걸까 난.

막차 시간이 다가오고 우린 작별을 했다.

정훈에게: 좀 쉬어서 어깨가 좀 덜아파지길 지현에게: 너의 아름다움은 그 어느것에도 비견할 수 없었어 현정에게: 이렇게 너를 보게 되다니 정말 반가웠어 편입 공부 열심히 해!!!

IT IS LOVE

닥터 노구치라는 만화를 보았다. 그림체가 내 취향이 아니어서 보려다가 말았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 하루를 즐겁게 마감해 보고자 읽기 시작했고, 나는 것이 역사적인 세균학자 히데요 노구치의 전기 만화라는 것을 알았다. 간단히 소감을 말하자면 그것은 나에게 ‘뷰티풀 마인드’가 선사한 충격과 결심을 굳혀주고 또한 발전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세계적인 발견을 했다. 내가 그것에 비견될 만한 발견을 할 확률은 아마도 매우 낮을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특성이 그들의 것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원하는 건 다른 사람들이 또한 그렇듯 어떤 센세이셔널한 것일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그것은 나를 조금은 가슴아프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와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는 어떻게 전진해야 하는가. 다소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러나 진정 확실한 것은,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일 것이다. 나의 망각 회로를 멈추어 이 가슴 벅찬 기억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바를 끝까지 이루고 싶다. 아니, 이루지 않으면 아마도 나 자신은 견딜수 없어질 것 같다. 누군가 그랬던가, 끝없는 사랑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고. 내 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어느 누군가에 대한 사랑. 지금에 와서야 알았지만, 이 둘은 표출해 내고 열정과 노력을 다함으로서 이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들은 동일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조금은 빛이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은 사랑과도 같다는 사실…

the end of the panic.

수요일날 본 시험으로 중간 시험은 모두끝났다. 정보와 사회 같은 과목은 문제가단답형이어서 벌써 채점이 끝나 점수를 확인했는가 하면, 어떤 과목들은 아직 채점이 끝나지 않은 듯 하다. 이번에 본 시험들 중 가장 인상깊게 본 시험은 역시 마지막으로 본 인터넷과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과목일 듯 하다. 수요일에 시험보는 줄도 모르고 수업들어갔다가, 얼떨결에 시험을 보았으니 이유는 충분할 것 같다. 다행히 기본 상식으로 다알고 있는 것이어서 무난히 다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번 학기 시험은 나에게는 특별한 것이었다. 한학기 휴학뒤의 시험이라 긴장이 극에 달했기에, 지난 10여년간의 시험들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스릴 넘쳤다. 처음으로 시험에 대해 두려움, 그리고 그에 따르는 흥분과 괘락을 느껴 보았다. 앞으로도 이런 기분을 자주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스릴러나 액션 영화를 많이 본다.)

마지막 시험이끝난 뒤, 인터넷과 사이버 스페이스의 조 모임이 있었다. 이윤미라는 01학번 여학생과 또 한 명의 남자가 나와 한 조였다. 그러나 남자는 만나지 못했고, 이윤미 씨를 만났다. 그녀의 전화 목소리는 너무나 터프해서 나를 기죽게 만들었다. 마치 ‘넌 뭐야’ 라고 나에게 무뚝뚝한 눈빛을 보내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은 두려웠는데, 묘하게도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에 대해 어떤 흥미를 갖게 되었다. MSN 에서 대화하던 그녀의 말투와 목소리의 부조화는 나를 묘하게 흥분시켰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을 둥글었다. 그렇게 살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의 말투에는 사투리가 조금 섞여 있었다. 나는 사투리에 대해 거의 몰라서, 그녀가 어느 지방에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지방에서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내가 착각했을 가능성마저 있다. 그녀는 롱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그것은 매우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옷은 파스텔톤이었는데, 치마인지 상의인지 어느 한 쪽은 아름다운 하늘색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난 오랜만에 누군가의 인상착의를 기억해내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바람직한 현상일까? 잘 모르겠지만, 처음 느껴보는 또다른 종류의 느낌을 그녀에게 받았기 때문인 듯 하다. 덕분에 나의 상황 파악 능력이 순간적으로 높아졌다고 생각해볼 수 밖에. 어쨌든 그런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기에, 한번 쯤 만나서 이야기라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프로젝트하면서 자주 볼테지만. . .

나는 요즘 내 자신이 흥미롭다고 느낀다. 나자신에게 지금의 나 자신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란 존재가 비록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확신은 없지만, 특별한 것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때문에, 내 인생은 요즘 외롭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다. 확신에 넘치는 힘은 없지만, 나약해 보이는 흐느낌도 없다. 나는 지금 매우 밸런스되어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나의 한 편에서는 누군가를 원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대와 내가 서로 우호적인 관계에 있다고 가정했을때, 사귀어 보지 않겠냐는 단 한마디에 나는 아마도 내 이성을 전부 포기한 채 그 사람의 손을 잡을만 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으로는 완벽할 수 없다는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내면에 있는 강한 또하나의 의식이 나와 함께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도 삶의 기쁨이며, 나를 만날 누군가의 기쁨이 아닐까? 후후.

마지막으로, 선미가 보고 싶다. 아마도 그녀는 요즘 이 곳을 방문하지 않고 있을 것 같다. 그녀가 나에게 보내왔던 편지들을 나는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한다. 수목원에 가지 않은 게 후회된다. 그리고 여유가 생겼을때 반드시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할거야. 정말 잊을 수 없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작품집을 읽고 있던 그녀의 모습.

가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랑에 빠진걸까 하는 생각이 곧 이어 나에게 찾아온다. 사랑에 빠졌다, 그렇지 않다고 확실히 말할 수 없는데 나는 그것을 어떻게든 결정해보려고 하는 것 같다. 사실 그렇게 결정하지 못하면 도저히 그 사람을 사랑으로서 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젠 그 패닉을 끝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