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of the panic.

수요일날 본 시험으로 중간 시험은 모두끝났다. 정보와 사회 같은 과목은 문제가단답형이어서 벌써 채점이 끝나 점수를 확인했는가 하면, 어떤 과목들은 아직 채점이 끝나지 않은 듯 하다. 이번에 본 시험들 중 가장 인상깊게 본 시험은 역시 마지막으로 본 인터넷과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과목일 듯 하다. 수요일에 시험보는 줄도 모르고 수업들어갔다가, 얼떨결에 시험을 보았으니 이유는 충분할 것 같다. 다행히 기본 상식으로 다알고 있는 것이어서 무난히 다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번 학기 시험은 나에게는 특별한 것이었다. 한학기 휴학뒤의 시험이라 긴장이 극에 달했기에, 지난 10여년간의 시험들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스릴 넘쳤다. 처음으로 시험에 대해 두려움, 그리고 그에 따르는 흥분과 괘락을 느껴 보았다. 앞으로도 이런 기분을 자주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스릴러나 액션 영화를 많이 본다.)

마지막 시험이끝난 뒤, 인터넷과 사이버 스페이스의 조 모임이 있었다. 이윤미라는 01학번 여학생과 또 한 명의 남자가 나와 한 조였다. 그러나 남자는 만나지 못했고, 이윤미 씨를 만났다. 그녀의 전화 목소리는 너무나 터프해서 나를 기죽게 만들었다. 마치 ‘넌 뭐야’ 라고 나에게 무뚝뚝한 눈빛을 보내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은 두려웠는데, 묘하게도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에 대해 어떤 흥미를 갖게 되었다. MSN 에서 대화하던 그녀의 말투와 목소리의 부조화는 나를 묘하게 흥분시켰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을 둥글었다. 그렇게 살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의 말투에는 사투리가 조금 섞여 있었다. 나는 사투리에 대해 거의 몰라서, 그녀가 어느 지방에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지방에서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내가 착각했을 가능성마저 있다. 그녀는 롱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그것은 매우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옷은 파스텔톤이었는데, 치마인지 상의인지 어느 한 쪽은 아름다운 하늘색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난 오랜만에 누군가의 인상착의를 기억해내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바람직한 현상일까? 잘 모르겠지만, 처음 느껴보는 또다른 종류의 느낌을 그녀에게 받았기 때문인 듯 하다. 덕분에 나의 상황 파악 능력이 순간적으로 높아졌다고 생각해볼 수 밖에. 어쨌든 그런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기에, 한번 쯤 만나서 이야기라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프로젝트하면서 자주 볼테지만. . .

나는 요즘 내 자신이 흥미롭다고 느낀다. 나자신에게 지금의 나 자신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란 존재가 비록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확신은 없지만, 특별한 것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때문에, 내 인생은 요즘 외롭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다. 확신에 넘치는 힘은 없지만, 나약해 보이는 흐느낌도 없다. 나는 지금 매우 밸런스되어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나의 한 편에서는 누군가를 원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대와 내가 서로 우호적인 관계에 있다고 가정했을때, 사귀어 보지 않겠냐는 단 한마디에 나는 아마도 내 이성을 전부 포기한 채 그 사람의 손을 잡을만 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으로는 완벽할 수 없다는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내면에 있는 강한 또하나의 의식이 나와 함께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도 삶의 기쁨이며, 나를 만날 누군가의 기쁨이 아닐까? 후후.

마지막으로, 선미가 보고 싶다. 아마도 그녀는 요즘 이 곳을 방문하지 않고 있을 것 같다. 그녀가 나에게 보내왔던 편지들을 나는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한다. 수목원에 가지 않은 게 후회된다. 그리고 여유가 생겼을때 반드시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할거야. 정말 잊을 수 없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작품집을 읽고 있던 그녀의 모습.

가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랑에 빠진걸까 하는 생각이 곧 이어 나에게 찾아온다. 사랑에 빠졌다, 그렇지 않다고 확실히 말할 수 없는데 나는 그것을 어떻게든 결정해보려고 하는 것 같다. 사실 그렇게 결정하지 못하면 도저히 그 사람을 사랑으로서 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젠 그 패닉을 끝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