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한 공포

복막염으로 입원하고 2개월 간의 치료를 받는 지도 이제 2년이 다 되어 간다.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 그리고 살아 있음에 대한 희열. 태어나서 처음으로 문병이라는 것도 받아 보고, 5일이라는 시간 동안 일체의 식사 없이 링겔에만 의존하여 지냈었다. 체중은 9kg 이 줄었다. 어쩌면 지옥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불새가 잿더미에서 다시 빛을 발할 준비를 하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으리라.

치료가 끝난지 오래지만 아직도 과식을 하면 소화 불량에 걸리거나 수술 부위가 아파 와 그 때를 떠올리게 한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면 정말 막막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어느날 갑자기 내 영혼이라는 것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나는 그 두려움이 찾아 올때면 무언가에 열중한다.

그것이 연애이든 일이든… 그들은 나의 불안감을 떨치고 나에게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 준다. 언제까지나 계속되었으면 하는 사랑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잘 적혀내려갔으면 하는 이력서. 기대 반 불안 반으로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순간이라면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빛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수술 뒤 급격히 저하된 체력과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성격으로 몸이 약해진 것을 느낀다. 더 건강해지기 위해 피트니스 클럽도 다니고 있지만 언제쯤 그나마 예전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가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그 걱정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로 바뀌기도 하여 마음이 착찹하다. 건강을 생각해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지만 지인과의 약속과 책임감으로 그 말을 쉽게 할 수 없다.

오늘은 업도미널 – 앉아서 윗몸 일으키기를 할 수 있는 운동 기구 – 을 하다가 수술 부위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운동할 때는 그 일을 잊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 배를 만져 보고 복막염이 있던 그 날처럼 배가 뜨거워진 것을 알고 온 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메스꺼운 기분도 들고 가벼운 통증도 느꼈다. 너무나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정말로 고통이 찾아왔던 그 날도 이런 공포는 느끼지 못했다. 그때 느낀 고통과 병원에서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기에, 다가올 지도 모르는 미래를 알고 있기에 나는 정말 무서웠다. 겪는 그 순간은 공포를 잊을 만큼의 고통으로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가기에, 차라리 아픈 거라면 어서 아파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 정도의 공포.

내 나름대로 상황을 판단해 보려고 했지만, 운동을 막 마치고 집에 온 차라 근육이 회복하느라 열을 많이 발산하고 있었다. 더군다가 심리적 긴장으로 몸이 통증에 민감해져, 지금 느끼는 아픔이 정말 심한 아픔인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메스꺼움이 느껴졌지만 지나친 긴장 때문인지도 몰랐다.

섣불리 부모님을 깨워 응급실에 가기가 망설여져서 잠시 기다리기로 한 것이 벌써 새벽 세 시가 넘었다. 천공이 되었으면 방귀가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이 사실에 조금은 안도했는지 메스꺼움은 덜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재채기를 하고 코를 풀 때면 조심스러움과 긴장이 앞선다.

이렇게 스스로 안심하고서도 잠을 자다가 믿을 수 없는 통증에 잠을 깨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든다. 그래도 나는 나에게 있을지 모를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고,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는 꿈을 즐겨야 한다.

정리의 본질

가끔씩 땀을 흘려가면서 정리를 하고 나면 흐트러짐 없이 깔끔해진 방을 보고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헝클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정리란 무엇인가를 깨끗하고 정돈되 보이게 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간에서 살아가는 자가 그의 활동을 최대한 효울적으로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된 물건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기고, 자주 쓰는 물건을 손에 잘 닿을 수 있는 곳으로 재배치하며, 한편으로는 쓸모 없어진 것을 버려 공간을 최적화하는 행위가 바로 정리의 본질이다.

깨끗하게 만들어 홀가분하고 남에게 보여주어 기쁜 공간보다는 나에게 편리한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게 정리 아닐까?

생활 패턴 바꾸기

얼마 전부터 생활 패턴을 바꿔 1시 취침 8시 기상하여 6시까지 일하고 저녁식사 후 운동을 해 오고 있다. 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지 못했기에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속상했는데, 그나마 좀 나아진 듯 싶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은 부족하다. 7시 기상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해서 견뎌낼 자신은 없다.

어떻게 그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게 되었을까. 부끄럽지만 인터넷 공유기의 사용 제한 설정을 이용했다. 0시 30분 이후부터 6시 30분까지 모든 네트워크를 차단하도록 설정한 것이다. 덕택에 컴퓨터로 별 볼일이 없으면 침대에 누워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다가 1시 경에 잠이 들게 된다. 어쨌든 효과 만점이니까, 혹시 잠 못 이루는 자가 있다면 한 번 실행해 볼 만 할 듯 하다.

좀 더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생활을 하려고 애쓰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쉽게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힘들 때가 많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잘 해내야만 한다.

ATH-EW9 구입

금요일에 그만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EX-70 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밖에서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었었다. 2년여의 시간을 함께하던 이어폰인지라 애석한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전부터 새 이어폰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집에 도착하자 마자 이어폰을 살펴보았다.

그리 하여 결국 구입한 것이 사진의 AudioTechnica ATH-EW9. 이어폰월드 오프라인 매장을 직접 방문해 청음한 ATH-EM7 만으로도 EX-70 을 충분히 능가하고 있었지만 약간 부족함이 느껴져 결국 상위 모델을 구입하게 되었다.

비록 EM7 을 청음하여 만족한 뒤 더 상위 모델을 구입하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청음을 하지 못하고 구입하는 것이라 가게를 나서면서 걱정이 되었다. 지난번 UM1 처럼 몇 시간도 못 듣고 팔아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묘한 불안감을 안고 귀에 걸친 이 조그마한 이어폰은 내가 들어 본 이어폰 중에서 가장 해상도가 높았다. 음색은 여성 보컬이 강조된 것을 제외하고는 균형잡혀 있는 느낌. 저음은 아주 적당하지만 버스 안에서는 엔진음에 묻히기 때문에 시끄러운 곳에서는 감상이 힘들 것 같다. 커널형에 비해 공간감은 비할 데 없이 우수하다.

EM9 도 한 번 같이 들어 보고 비교하여 샀다면 더 좋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지만, 지금도 만족스러우니 다음 기회에!

누군가와 멀어져간다는 것

오랜만에 메신저로 말을 건넨 그 친구는 이제 나와는 다른 길을 향해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 사이의 끈이란 천천히 희미해져 결국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하긴, 아주 오랜만의 대화이기에 시간과 서로의 소홀함이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 바퀴 일 년 세계 여행을 하고 돌아 와도 아무 일 도 없었던 것처럼, 언제나처럼 나를 집에 초대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 하루를 만나도 그런 편안한 친구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 조금은 나를 외롭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것

나는 정말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새 이일 저일 벌려 놓고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할일은 많은데 여러가지 일들이 끼어 들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바람이 막 빠져나가기 시작한 풍선처럼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내 자신에 분노도 일고, 이렇게 된 내 상황도 한탄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을 대충, 적당히 넘기고 싶지 않은 성미 때문에, 분배된 시간이 만들어낸 하잘것 없는 결과물에 또 다시 격분하고 스트레스는 쌓여만 간다.

이대로 몇 달만 더 살면 다시 십이지장에 구멍이 나고 한 달 정도 원치 않은 휴가를 갖게 되지 않을까? (웃음) SafeHaus 투자 받으면 다른 일은 다 정리해야 겠다고 굳게 다짐해 본다.

‘amiryo.com’ 과 ‘상실의 시대’

아미료라는 곳에 머문지도 생각보다 긴 시간이 지났다. 한 번은 카페24.com 으로 이사를 시도한 적도 있지만, 돌아와 달라는 말에 지금도 아미료 서버의 호스팅을 받고 있다. 나는 루트 권한을 갖고 있는 한 명의 관리자이며, 글리미노드넷의 주인으로 이 곳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막상 나에게는 아미료란 곳에 대한 애착은 없는 것 같다. 그 때를 돌이켜 보아도 나는 역시 아미료라는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다들 무슨 생각으로 아미료에서 각자의 홈페이지를 꾸려 가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무제한에 가까운 메일과 홈페이지 용량이 메리트일까나. 아니면 아미료에 있는 사람들과의 어떤 보이지 않는 유대감? 어쩌면 아미료라는 상실의 시대에서 유래한 멋진 이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철저히 나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나는 무제한에 가까운 메일 용량을 gmail.com 에서 이미 확보했고, 홈페이지는 블로그만 할 거라면 이글루스로 옮기면 그만이다. 그리고 아미료의 입주자들은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고, 내가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도 그 중 소수일 뿐이다. 백업도 알아서 해야 한다. 거기다가 내가 운영자이니 뭔가 안되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미료의 또 다른 주인이자, 진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현우 군은 아미료에는 정작 홈페이지가 없다는 사실. 그는 네이버 블로그를 쓰고 있다. 난 100 번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의 블로그는 로그인 안하면 답글도 못단다. 답글 달기 위해 아미료 사람들은 네이버 사이트에 가입하고, 로그인을 해야 한다. 네이버 뉴스와 사전 빼고는 전혀 사용 안하는 나에게 로그인은 사치다.

어딘가에 소속해 있으면서 그 안의 사람들과 소통이 없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아미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많을 수록 나는 이 곳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마 사람이 네명을 넘어 가면 상당히 불편해 하는 것이 틀림 없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젊은 시절 상실의 시대가 가져다 준 감흥은 대단했지만, 그 감흥은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잃어버려간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버려서, 그것은 더 이상 멋지거나 아름답게 보이지가 않는 것 아닐까? 슬프고 애처로운 것이 아니라 있을 수 밖에 없고 또 있어야만 하는 상처를 덮는 딱지와도 같은 기분.

서버도 내 홈페이지도 아무 문제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 곳을 떠나고 싶다.

メトロ – orange pekoe

보사노바, 재즈, 그리고 R&B가 믹스된 팝 사운드로 신선한 자극을 안긴 혼성 퓨전 재즈 유니트. (라고 앨범 설명에 적혀 있다)

음악에 장르를 매기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하는 그들의 음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2집 ‘Modern Lights’ 의 ‘メトロ (Metro)’ 라는 곡이다. 도시의 상실감을 짧은 가사에 아름답게 담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감탄이 절로 난다. 긴 곡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 노래를 지금 끝도 없이 듣고 있다.

2004년 8월에 내한 콘서트도 했었다는데,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지 싶은 밴드 중 하나다.

어떤 신입 사원과의 전화 통화

Update: 다 읽으셨다면 저의 다른 글을 추가로 참고해 주세요.

어제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덜컥 집에 걸려온 전화를 통해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어판을 구독 신청했다. 텔레비젼은 커녕 뉴스도 잘 보지 않는 나에게는 사치인 듯 싶다.

오늘 아침 쓸데 없이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구글과 지식인을 통해 알아 본 결과, 아마도 YBM mbu 에서는 신입 사원들에게 스크립트를 주고 교육을 통해 내셔널 지오그래피 한국어판을 판촉하는 것 같았다. 스크립트의 전체적인 맥락은 다음과 같다:

  •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홍보를 하고자 하는 듯 이야기를 도입
  • 자신의 첫 번째 회원이 되어 주었을 때의 혜택 제시
  • 신입사원으로서의 자신의 안타까운 처지 어필
  • 구매를 촉발

돌이켜 보면 매우 교묘하여 마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잘 먹혀들어갈 것 같은 전략이다. 그렇다고 지금 YBM 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마 내가 YBM 을 욕하게 되는 시점은 실제 서비스에 불만족하거나 계약을 철회 및 해지하는 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궁금한 것은 아무래도 그 사람이 진짜 YBM 에서 일하는 신입 사원인가 하는 것과, 나에게 제공된 제안이 과연 저렴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녀는 생 초보 텔레마케터, 진짜 신입 사원 같았다. 쉴 새 없는 기침, 모르는 부분에서 상사가 불러주는 라이브 스크립트를 따라하는 모습, 제품 구매 결정이 이루어지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말투랄지.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직종상 관계는 전혀 없지만 포르노 영상의 섹스는 대부분 연기라 한다. 직업의식이 투철하면 그런 것도 가능해진다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쳐 그녀를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당장은 그저 믿을 수 밖에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에게 제공된 제안은 여러 가지 검색 결과 그렇게 싼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내셔널 지오그래픽 미국 사이트에서 구입할 경우 거의 덤핑에 가까운 가격 (권당 17 USD) 으로 1년 구독을 할 수 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사회 초년생 한 명 도운 것인지, 아니면 경력 만점의 텔레마켓터 또는 철저히 진화한 텔레마켓팅 시스템에 농락당한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진실이었다면 나와 생년월일이 같은 재미있는 친구 한 명 사귀었다고 생각하면 만족스럽지 않을까 싶다.

9 Comments

  1. 무파이 said,

    August 4, 2005 at 3:35 am

    저도 똑같은 전화를 받았었죠… 저두 회사 신입, 그녀도 신입 사원… 님께서 설명하신 네가지 요소를 다 갖춘 상황이었습니다.
    신입으로서 회사에서 받은 상태라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더군여. 그리고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쉰 목소리 그리고 애절한 느낌… 구입의사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 순간,,, 자신이 피아노 전공이고 목소리는 쉬었지만 얼굴은 이쁘다는 주제에서 벗어난 호소까지,,, 참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졌더군여… 분명 그녀가 신입사원이긴 했지만 예전에 그와 비슷한 사기를 당한 경험때문에 생긴 선입관때문에 전화를 끊고 말았습니다. 같은 상황,,, 거부한 저, 수락한 당신,,, 당신은 저보다 순진한건가요? 아니면 어쩌면 찾아올 만남에 대한 투자인가요…
    ㅎㅎㅎ 재밌네여…

  2. Trustin Lee said,

    August 4, 2005 at 3:36 am

    처 음부터 어느 정도의 능력으로 입사한 저는 신입 사원의 설움을 겪어 보지 않아, 마치 타국의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유가 좀 생뚱맞겠지만 고국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있다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국에 막 도착해 고생하고 있는 노동자를 대하는 느낌이랄까. 버벅이면서도 열정적으로 제품 하나를 팔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더군요.

    사기인지 아닌지, 모든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직감상 사실은 맞는 것 같더군요. 해당 사무실의 전화번호도 조회해본 결과 종로 2가에 위치한 국번이고, 카드 결제 정보의 회사 명도 동일하고, TM의 휴대 전화 번호도 본인 것이고요. 사기는 아닌 듯 합니다. (물론 환불 요구시 어떤 상황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본인이 직접 1:1 관리를 해 준다는데, 사실 잡지 구독하는데 딱히 관리해 줄 것이 있겠냐만은 잡지가 늦게 오거나 할 때 얼마나 잘 관리해 줄 지 궁금하군요. 서비스가 나쁘면 휴대 전화로 5분마다 압박을 가하는 등의 행위가 가능하니 그 점에서는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너무 가혹한가요? ^^)

    어쨌든 YBM mbu 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결국 신입 사원을 이용해 그런 식으로 영업을 펼치는 것이라는 점이 상당히 비굴해 보이네요. 필요한 사람들은 알아서 구독할 텐데 말입니다. 저같은 경우 이번달 목차가 상당히 재미있어 보인 것도 구매 결정에 한 몫 했으니까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지리적인 내용만 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더라구요.)

  3. 무파이 said,

    August 4, 2005 at 3:36 am

    그렇군여… 희승씨는 조금은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으셨군여…
    저는 가장 평범한 길을 걸어왔지요… 거의 대한민국 표준 남성의 삶을 걸어왔습니다.고등학교 대학 1년 후 봄 입대 재대를 거쳐 대학 졸업후 입사 -_-;
    대 학교 친구 대부분은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4년을 방황한 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너무 안일하게 살았지요. 그리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고 그 하고 싶었던 것이 님처럼 발전적인 것이었다면 제 삶은 조금은 나아졌겠지요…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관심도 없었고 흥미도 없었지만 어느 정도의 호감은 있었습니다. 막상 직업으로써의 일을 하게 되니 ( 강제성을 띄는… )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더군여… 빠르지도 않고 앞지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님이 예전에 느꼈던 즐거움을 전 이제야 느끼나 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길이 저의 길인지는 항상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남들만큼은 할 거 같지만 그 이상이 되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남들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열정과 욕심이 필요한 법이지요…
    그러나 전 매사에 욕심이 없어서 아직 머하나 제대로 이룬 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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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KJSP 눈팅만 3년을 했어도 글 한번 남긴적 없었는데…
    여긴 조용해서 좋네여…
    저도 블로그 하나 장만할까 봅니다…
    좋은 블로그 장만 과정이나 팁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여…
    암턴 가끔 여유가 있으면 끄적되겠습니다…
    그럼…

  4. Trustin Lee said,

    August 4, 2005 at 3:36 am

    이렇게 답글을 달아 주시는 분도 계셔 기쁘네요. ^^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배워 취미삼아 오랜 시간을 거쳐 왔기 때문에 초기 커리어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들은 앞으로의 제 행동에 달려 있겠죠. 열심히 해야 할텐데 큰일입니다. ^^;; 시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