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No Doubt – Don’t Speak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있는 듯 없는 듯 걸터 앉아 분위기를 즐기고 있던 내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다. 라이브 공연이 있는 분위기 좋은 술집에서 혼자 음악에 취해 아무 것도 듣지 못하던 내 모습처럼, 나는 어떤 모임 내에서도 나 스스로를 항상 강하게 인식해 왔었나 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이란 말을 배우게 되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를 통해 내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이렇게 놀라운 것이었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합니다’ 라고 말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모든 진심을 실어 나의 존재를 모두 걸고 내 입으로 소리내어 당당히. 부끄럽게도 한 번도 없었지 싶다. 정말 난 그 말 한 마디만은 할 수가 없었다.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몇 번이 고 몇 번이고 포기해버렸기에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고 후회할 일만 저질렀나 보다. 그런 채로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우원한 표현을 알아채 주지 못하는 그들을 끝내는 원망하며 멀어져갔던 것은 아닐까.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 가는 짓은 그만두고 싶은데-

쉽지가 않아 눈물이 날 것 같구나.

다행스런 하루

the indigo – Song for You

“당신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라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가슴벅찬 일입니다. 버스에서 받은 전화로 잠 이 달아났을 때의 상쾌함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감 그 자체였습니다. 나를 짧은 시간이나마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 짧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해 서로를 아프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대의 인생에서 어떤 하루를 원하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런 다행스런 하루를 원한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쉬워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를 말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어리광

中島美嘉 (Nakashima Mika) – 雪の華

버스 뒤에 앉은 남자가 이사람 저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벌써 네 명 째. 그는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죽고 싶은 심정이 야. 아침에 머리를 잘랐는데 고등학생처럼 스포츠 머리가 되었어. 쪽팔려서 내일 못나오면 머리 때문인 줄 알아. 그리고 저녁엔 신촌 에서 보드 게임방에 갔는데 만원이나 물렸어. 정말 울고 싶다.”

나는 다섯 번 째 그가 전화를 걸고 만원이 만이천원이 되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녀석의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에 휩 싸였다. 어린 아이처럼 징징대며 반복되는 그의 말을 들어준 그의 친구들과 별 관계도 없는 여자 선배의 기분은 어땠을까.

세상엔 정말 죽고 싶은 기분, 울고 싶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더 좋은 이유가 많다. 예를 들면 사랑이나 꿈과 같은 위대한 감정이 그 렇다. 그 외에도 조금은 더 사소하지만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던 일과 같은 이유도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그 모든 실존적 문제를 뒤로 하고 자신의 헤어 스타일과 보드게임 실력의 부재에 대해 죽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다. 기껏 서투른 미용사의 실수와 남들의 약간 나은 명민함 때문에 무릎꿇고 울음을 터뜨리고 싶어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나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아무리 인간이 무한에 가까운 다양함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사랑과 꿈 같은 것이 여전히 으뜸의 가치를 갖는 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꿈이야말로 개인주의의 승리의 증거다. 개인과 개인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승화시키면서 동시에 서로를 깨어지 지 않도록 연결해 줄 수 있는 가교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감히 헤어 스타일링의 실패나 게임에서의 패배가 자신을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히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Sky Walker

Isao Sasaki – Sky Walker

컬러링이 없길래 잘못 걸은 줄 알았다는 그의 말에 조금은 충격(?)을 받아 컬러링 서비스에 가입했다. 이렇게 가입하게 될 거라면 3개월 무료로 해 드린다는 019 직원에게 조금은 선심을 쓸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웃음)

컬러링은 전화를 거는 사람이 항상 듣게 될 음악이니만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은 내가 남에게 반복해서 전 화를 걸 때 그 곡이 지루해졌던 개인적 경험에 기초한다. 그래서 선택한 곡이 바로 지금 흘러나오고 있는 이사오 사사키씨의 ‘Sky Walker’ 다. 난 이 곡을 참 좋아한다. 근심 걱정이 나를 괴롭힐 때, 참기 힘든 분을 삭힐 때 나는 이 곡을 계속해서 들었었다. 요즘은 그런 일들이 많지 않아 어느 새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반복해서 듣는 이 노래, 이 곡처럼 질리지 않는 사람과 함께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애 최고의 밤

Santana – You are My Kind (featuring Seal)

누군가와 처음으로 함께 식사를 한 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를 보고 술잔을 기울였다면? 그래,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몇 달 만에 기울이는 술잔인지 모르겠다. 남자에게서조차 느끼기 힘들었던 술의 매력을 나는 서로의 비슷함 속에서 느껴가고 있었다. 몇 잔이고 내 자신을 잃지만 않을 수 있다면 우리의 술잔은 끊임없이 차오를 터였다.

우리도 모르게 지하철은 끊겨 버렸다. 한 시간이 일 분 같았다. 내 생에 이렇게 빨리 흘러간 시간이 있었던가.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추운 밤길을 걷는 것 조차도, 떨리는 내 몸에 애써 힘주며 입을 여는 것 조차도,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대로 태양이 뜨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6시에 7호선 플랫폼에서 헤어졌다. 그녀는 손을 흔들었고, 나는 살짝 웃었다. 자리에 앉으라는 제스쳐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지하철이 떠나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는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차창에 앉아 기분좋은 마지막 77 Sunset Strip 한잔을 떠올리 며 그녀가 마신 Peach Coco의 빛깔로 어슴프레 밝아오는 하늘을 마냥 보았다. 나는 옳은 선택을 했다고 확신하며.

사랑의 맹세

Toy – 구애

내 경험에 의하자면,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다가서서 이야기를 걸어야 한다. 불만족스러운 일상, 무언가 빠진듯한 느낌, 제대로 되어 가고 있지 않은 인생이다. 어서 빠져나가고 싶을 때, 우리는 너무나도 편리하게 기다림을 택한다. 안타깝지만 역시 내 경험에 의하자 면 기다림은 기다림을 낳을 뿐이다. 어쩌다 재수좋게 걸려들어온 행복도 언젠가는 재수없게 날아가버리지는 않을까?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서 당당히 말하고 싶다. 내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의 장점이나 단점때문이 아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환희로 점철된 그대의 과장되게 아름다운 모습을 숭배하다가, 어느날 그대의 모든 베일이 벗겨졌을 때 드러난 단점들을 불평하고 있을 나 자신이 되지 않겠음을. 사랑의 환희는 그대로 간직하되 그대의 화장기 없는 맨얼굴을 그대로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으로, 그 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겠음을.

믿어라, 사랑을 위해

Yuri Chika (有里知花) – Such a Beautiful Feeling

몇명으로부터 악평을 들어서 보고 있지 않았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봤다. 보기만 해도 미소짓게 하는 그 사람이 추천해준 영 화는 10년 뒤 30세가 되는 날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심각한 우연으로 결 말은 해피엔딩에 이른다. 연주가가 그곳에 와 있는 것은 조금 심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 우연에도 불구하고, 뭐랄까 이 영화가 우리에게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마지막에 준세이가 기차를 타고 아오이를 앞질러가는 장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우리 삶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우연인지 나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나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어쩌면 여러 선택 가능한 행동에 대한 주사위 놀음에 다름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 모든것이 복잡해져서 입을 다물고 마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사랑에 대해서는 말이다.

사랑에 있어서 선택은 믿음에 의존할 때 더 강렬하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랑은 미지근한 맥주 취급당하는 게 세상인 것을. 지금 나에겐 6면 모두 ‘믿음’이 새겨진 주사위만 있으면 되는 거다.

인연은 없다

SOUL’d OUT – True to Myself

오캄의 면도날의 법칙을 따르자면, 우리에게 존재 유무와 아무런 관계 없이 인지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혼이나 귀신, 악마, 신과 같은 것은 실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틀 안에서 해석되었을 때에야 의미 를 갖는다.

인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알고 지내고 있는 사람과 어떤 인연이 닿아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결국 우리가 죽는 순간에야 답을 보여준다. 죽기 전까지, 아니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고민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사람이 인연이든 인연이 아니든 그 사람과 나는 이 곳에 있다. 우리는 서로를 느낄 수 있다.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일부를 뇌리에 새길 수도 있다.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 사선의 시작까지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대 앞에 서서 말하겠다. 그대를 바라보는 내 눈빛은 호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지금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라고.

외로운 줄타기

Muse – Time is Running Out

출퇴근하는 버스와 전철 안에서 나는 잠들거나 무언가를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에 몰두하며 지내왔다. 그러던 오늘 문득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더 미약해져 가고 있다고. 나 자신의 세계가 너무나 완전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내 자신이 나의 안쪽을 바라보기 보다는 다른 것에 더 집중함으로써 그것이 갖고 있을 수 있는 문제점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그 문제는 어쩌면 내 앞에 선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한 번 정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이 마주칠까봐 고개를 떨구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외롭지 않음이라는 상태는 외롭지 않음이라는 상태는 외롭지 않음이라는 상태는 그것이 어떻게 정의되든 – 허상이든 만에 하나 정도 있는 진실이든 간에 –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성에 기초한다. 외로움을 견디며 무언가를 해 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외로움을 모른 채 해 내기는 비교적 쉽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지 말라는 줄타기의 원칙을 지켰다. 버스 안에서의 한가한 자기 성찰도 결국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후반부를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가면서 그렇게 시야 밖으로 사라져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의 아픔도, 심지어는 우리가 지금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 지까지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앞만 바라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언가 더 잘 해내가고 있다는 일은 어쩌면 서글픈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