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y Beach

디아블로를 하고 나면 일기에 뭘 써야 할 지 잘 생각이 안난다. 게임마저 이렇게 집중해서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라이코스 아르바이트 payment 는 사원들 월급 지급때 일괄 지급된단다. 결국 지금은 매우 빈궁한 상태. 오늘 밥값 1500원이 없어서 친구에게 꿨다. 그래도 그 외에 모든 일에 있어서 소비를 하지 않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생각했다. 결국 음료루 한 캔을 마시고 안마시고가 다른 요소에 큰 영향을 눈꼽만치고 주지 못한다는 것… 오늘만은 뭔가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현준이는 사귄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깨질 생각을 한다. 난 그런 짧은 사귐이 정말 정말 싫다. 정말 경험도 없으면서 이말 저말 많이도 하는 구나. 그냥 비오는 해변의 흔들의자에 누워서 쉬고 싶구나.

I'm a Flower

내 위에 덮인 얇은 이불 한장마저 내 땀을 짜낸다. 땀범벅이 되서 일어난 11시의 하늘은 비가 오리라는 것을 확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 나가고 싶지만 어제 엄마가 누나네랑 같이 무얼 먹는다고 해서 나갈 수가 없다. 아침부터 컴퓨터를 켜고 Emacs 에 대해 연구한다. 한글이 나오게 하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한글이 나온 뒤에는 unicode 로 문서를 편집하려고 기를 쓴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고, 짜증과 부아만 늘어간다. 결국 Emacs 를 내가 원하는 대로 쓰기는 무리라고 결론지어 버린다. 몇 개 인가 외웠던 Emacs 전용 단축키 중 또 몇 개가 내 기억에서 잊혀진다. 오늘도 내 기억은 줄어드는구나. 내 인생이 제로가 되지 않도록 해야지.

저녁에는 족발을 먹었다. 토마토 쥬스와 먹는 족발 맛은 조금 느끼하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먹고서는 당구 게임을 꽤나 하다가 트레드밀을 하고… 샤워를 마치고 무상의 하루를 접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젠장.


어제부터 지금까지 내 쌍커풀이 사라진 상태로 있었다. 짝 쌍커풀을 가진 사람은 바람둥이라던데, 난 이제 오명을 씻을 수 있을까나. 아니 난 바람둥이도 아니잖아. 다만 아는 사람이 조금 있을 뿐인데. 남들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쁜 버릇이라고 단정지어 버리자.

인생의 불공평함에 대해 논한다. 전부 부질없는 짓이다. 내가 잃은 만큼 얻은 것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찔러 본다. 슬프지만 나는 어느 한 쪽을 버리고 내게 부족한 것을 얻어낼 만큼 용기있지는 않은 것 같다. 단비를 기다리는 길가의 꽃처럼 난 그냥 제자리에 서 있다. 자신이 흘린 눈물이 결국 자신을 탈수시킬 것을 알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꽃이다.

Literally Literals

본격적으로 일하기 위해 테크노비전에 가려고 마음먹었다. 버스를 탄 직후부터 샤워기 물줄기처럼 떨어지는 세찬 빗줄기가 천장을 때린다. 괜히 들뜬 기분이 되어 버려서 나의 의무감을 모두 내팽겨치고 저 거리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오늘따라 아마노 세이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와 비슷할 것 한 점 없어 보이던 그가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무언가 지금 나의 상황과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나오는 폭우의 정사신도 떠오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추억으로 이 빗줄기 사이 사이를 채우고 싶다.

신촌에 도착해서 어제 맡긴 XML Specification book 제본을 찾고 학교에 갔다. 테크노비전엔 이미 연락해서 약속을 월요일로 미루어 두었다. 바지를 갈아입고 오는 바람에 컴퓨터실 열쇠를 놓고 왔기에 오랜만에 공대 독서실에 가 보았다. 방학인 만큼 사람들은 적었다. 그래도 방학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였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스터디 그룹도 있었으니까. 나는 빈 테이블을 하나 점거하고 막 재단이 끝난 책을 읽어내려갔다. 네 시가 조금 넘어서 슬슬 내용이 지루해 지자 나는 혹시나 열렸을 지 모르는 컴퓨터실 문을 두드린다. 성수가 ACM 공부를 하고 있다. 어제부터 같은 문제로 씨름중인 것 같다. 도와주고 싶지만 나는 알고리즘보다는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관심이 더 많다. 습관적으로 내 홈페이지를 둘러본다. 요즘은 답글이 통 없다. 다들 뭐하고 지내는지 사뭇 궁금해지만, 누가 방문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사람들을 모두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배가 고프지만 수중에 있는 돈은 8000원 뿐이고, 나는 오늘 아침에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를 다 읽었기 때문에 책을 구입해야 한다. 결국 저녁을 포기한 나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샀다. 생각보다 얇은 책이었는데, 가장 최근에 발매된 버전이라고 한다. 책 겉에는 길다란 종이에 장황한 광고 문구가 달려 있고, 안에는 역자 서문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지금 이 곳에 서서 읽기는 너무 불편해서 버스를 타고 나서야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 70페이지 정도를 읽었는데, 속이 빈 데다가 학교에 있을 때도 책을 많이 읽은 탓인지 집에 도착해서 배를 채운 후에도 내 머리는 울림을 멈추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서 졸다가는 몇달인가 밀린 잡지책을 읽기 시작했다. 집중력의 한계 탓인지, 집안의 공기 탓인지, 아니면 정확히 나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광고 면을 보다가 지쳐버리고 말았다. 문득 선미가 생각났다 오늘 오랜만에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잘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몇번 인가 보낸 메시지들에 대해 모두 답장을 받지 못해 10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난 그녀가 혹시 수재민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했다. 나의 오해에 내 자신이 절로 비웃음을 내뱉는다. 하지만 직접 내용을 쓴 메일이나, 회신된 문자메시지를 받은 적이 까마득하니 그럴만도 하다. 단 40분의 만남이 아쉽기만하게 느껴진다.

라이코스에서는 아직 아르바이트비를 입금하지 않았다. 월요일까지 스노우쇼 입금 안하면 예약 취소된다고 아까 독서실에 있을 때 걸려 온 전화가 떠오른다. 아르바이트를 받아야 예약한 티켓을 살 수 있는데 난감하다. 아마 아쉽지만 취소가 되어버릴 것 같다. 사실, 같이 볼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5만원 짜리 공연을 나와 함께 가 주겠는가. 내 주위엔 학생뿐인데 선뜻 5만원을 단 80분을 위해 지불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표값을 대신 내 주기에는 대상이 너무 부담스러워 할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진정으로 호의를 품고 있는 사람이 나와 함께 보기를 원한다면 나는 정말 선뜻 내 줄테다) 내일모레는 오페라의 유령 예매 시작일이다. 이것도 같이 볼 사람이 없는 걸까… 한숨이 나온다.

Being with somebody

어제 탓인지 기분이 안좋은데다가 날씨도 우중충해서 도서관 가는 것도 포기하고, 회사 가기로 한 것도 취소했다. (취소했다기 보다는 취소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연기가 되었다) 조금은 가뿐한 마음으로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 한 일이라고는 특기생들끼리 당구 1시간 넘게 치고 주현이랑 영화 본 것 뿐인데 기분이 이렇게 나아질 줄은 몰랐다. 역시 그냥 누군가와 함께 있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내 기분이 편안해 질 수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어쩌면 난 외로움에 굶주린 사람인가 보다.

‘아틀란티스’ 를 봤다. 화풍이 내가 좋아하는 화풍인데다가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다가 꽤나 만족스러웠다. 스펙터클하고 시원스러운 화면전개와 특수효과에 너무나도 이끌렸다. 또 고전적 화풍 특유의 인물 묘사도 인상적이었다. 스토리가 뻔하다고들 하지만 다 용서가 되는 법! 사실 선미한테 같이 보자고 했었는데 언급이 통 없어서 그냥 봐버렸다. 내일이면 다른 영화 할테니까…

나름대로 좋은 좀 더 행복해지고 싶은 오늘이었다.

Do you love your parents?

표 예매하고 입금하려고 통장 잔고를 살펴보니 4만원. 라이코스에서 입금이 아직 안됐다. 아 도대체 언제들어오는거야. 짜증 약간 내고 현준이랑 대학로 돌고 학교 왔다.

학교에서 XML 관련 스펙 중에 필요한 건 모조리 다 찍었다. 500 페이지 정도 된다. 세 권으로 나눠서 제본하기로 했다. 찍는데 프린터가 말썽부려서 짜증이 조금 더 났다.

집에 왔다. 부모님 친구 분이 어제 전화하셔서 부모님 어디 갔냐고 물어보시길래, 그냥 친척댁에 가셨다고 했는데, 엄마가 그거 가지구 화내신다. 사실은 증조 누구누구 제사에 갔다 오셨는데 난 솔직히 기억도 잘 안난다. 내 머리는 치매끼가 약간 있는지 집중 안하거나 관심 없으면 거의 순식간에 귀의 반대편으로 빠져나가는지라 어쩔 수가 없다. 짜증이 좀 많이 난다.

019 요즘 고지서가 왔는데 이상하게 지난달 것이 연체가 되어 있다. 아마 뭔가 잘못되어서 안빠져 나간 것 같은데 또 그거가지고 뭐라고 하신다. 아 정말 미치겠다. 내가 뭘 어쨋다는 거냐.

한 5 분 지나자 엄마가 방문을 열고 신경질은 내면서 시간날때 빨랑 돈 어떻게 된건지 알아보라고 하신다. 지금이 벌써 세 번 째 같다. 5 분 동안 세 번 들었다. 그래서 엄마랑 한판 붙었다. 도대체 그래서 나보고 지금 뭘 어쩌라는 거야. 내일 전화해서 알아보면 되는데 왜 자꾸 그러는거야 가뜩이나 사람 짜증나 죽겠는데. 또 뭐가 짜증나는데. 아 몰라 그만둬 날 좀 내버려둬.

미치겠다. 그래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내 머리는 나빠서 사소한 것조차 기억 못하고 있는데 어쩌겠냐. 내가 한번 들어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컴퓨터 관련 지식이랑 호감가는 여자에 대한 신상 밖에 없다 어쩔래. 그래 난 그런 사람이야. 좀 그냥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사람이 필요한 것 뿐이었는데. 왜 내가 잘못했는지 남이 잘못했는지도 모를 문제를 가지고 닥달을 하는거야…

나 이럴 땐 울고 싶기라도 한데 사실 눈물이 말라서 나오지도 않아. 난 부모님 은혜도 모르는 나쁜 놈이거든. 그래서 그런가보지. 그냥 가난해도 좋으니까 부모님이 주실 집이 어쨋건 부모님이 내 주실 핸드폰 요금이 어떻건, 부모님이 사주신 컴퓨터가 어떻건. 그냥 아쉬워도 그런 소리 안들었으면 좋겠어. 돈 3만원 때문에 왜 내가 그래야 해. 내가 왜 돈도 못버는 주제가 되어야 하니. 나 지난주에 25만원 벌었어. 그래 그렇게 갖고 싶다는 최신형 핸드폰 따위 사줄게. 25만원 또 벌면 되. 더 많이 벌 수도 있어. 다른 한편으로는 공부하라고 닥달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돈을 은근히 기대하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해.

내 외로움이 가셔지기만 한다면 난 이대로 이 곳을 떠나고 싶어. 그리고 다른 사람처럼 살아가고 싶어. 이 곳에서의 기억을 버리고…

PS: 답글 달지 마세요. 특히 위로의 글은 도움이 안됨. 차라리 만나서 신나게 놀아줘요. 어차피 그래줄 사람이 있을 거 같지도 않지만서도.

When I'm Dead

만약에 내가 죽어버리면 가족을 제외하고 나의 친구들 중에 누구누구가 슬퍼할까? 아니 친구란 것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모두들 슬퍼해야 하나?

왠지 일기 쓰기가 싫다고 생각했다.

다시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확실히 다르지만.

좀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

정말 누구 말마따나 수목원에라도 가고 싶어지는 하루.

No Umpire

오랜만에 쉬는날을 맞았다. 한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정훈이랑 디아블로 2 확장팩에서 최종보스를 죽이고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보다가는 잠이 들었다가 피곤하게 깨어났다. 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하기가 싫어서 ‘서극의 순류 역류’를 봤다. 꽤나 인상적이었고, 여전히 공부가 싫어서 ‘패스워드’를 보다가 컴퓨터가 다운되서 포기했다. 오늘은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Java & XML 을 읽었다. 훌륭한 번역과 원문의 아름다움이 만나서 너무나 잘 정리된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런 책이라면 순식간에 읽어내려갈 것 같다고 좋아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책을 들추는 것 조차 어색해진 오후다. 두려움, 막연한 것이 나를 짓누른다.

삶은 안정과 불안정의 조화라고 생각한다. 둘 중 어느 한 쪽이 커 지면 문제가 생긴다. 사실 우리는 그 경계를 매일 매일 넘나들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안정되어 있다 싶을 때면 무언가 불안정해지고 싶은 욕구를 갖고, 불안정할 때는 그 반대를 원한다. 나는 그 경계선에서 한발 짝 정도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내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인생에는 아쉽게도 – 또는 다행스럽게도 – 심판이 없다.

‘서극의 순류 역류’. 꽤 볼만한 영화였다. 액션과 멜로(?)를 알맞게 버무려서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잡았다. 사랑에 대한 … 희망이랄까. 비단 사랑 뿐만은 아닐 테지.

보람누나가 나에게 이상형을 묻던 기억이 난다. “지적인 여성”. 좋지 지적인 여성. 하지만 무엇보다도 멈추지 않는 나의 애정적 갈증의 해소가 지금의 내 삶에서는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한때 누구라도 좋아! 라고 생각했던 나날들. 세월은 돌고 돈다. 계절은 바뀌지 않았지만 세월은 흐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눈빛

아르바이트도 끝났고, 이제 지지난주와 같은 생활의 시작이다. 11시까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되고, 수업을 들은 척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하느라 바빴던 지난일을 잊으려고 하는 것 처럼 나는 아직도 다 읽지 못한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의 상권을 읽기 시작한다. 도대체 이 소설이 나한테 말하려고 하는 건 무엇일까 한참을 헤맨다. 결국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끝에 가서야만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쩌면 그것은 소설이란 것이 지닌 유일한 매력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묘사나 개성적인 표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보여주고 있는 작가의 의도에 대한 파악이나 독자의 제멋대로의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제멋대로 해석하는 편이다. 너무 어렵다 싶으면 평론을 읽기도 하지만, 그렇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본능적으로 어려운 말들을 싫어한다. 예시하거나 빗댄 것을 – 실제로 그렇게 표현할 능력은 부족하지만 – 좋아하는 편이다.

재헌이와 당구 좀 치고 라이코스 일 마무리 해 주러 갔다. 일요일날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날 누전으로 건물이 정전이 되버려서 갈 필요가 없었는데, 오늘은 복구가 된 모양이다. 물론 예상은 틀리긴 했지만서도, 적어도 컴퓨터는 돌아가고 있었다. 에어컨이 안돌아간다는데 큰 문제였는데, 너무 더워서 팥빙수도 먹고 하면서 일했다. 사실 일했다고 하기도 뭐한 것이, 실제로 코딩한 것은 5줄 도 안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되는데, 내가 왜 와야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글 윈도우즈 2000 서버도 빌리고, 주민등록등본과 통장 사본도 제출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 일은 없었으니까 왠지 와서는 안될 곳에 온 기분이 들었다.

몇 시간 쯤 그 곳에 머물렀을까. 일이 대충 마무리가 되어서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팀원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나가려는데, 보람 누나가 어딜 가냐고, 계속 있으라고 부탁 – 아니 명령 – 한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 깊이가 있다. 그래서 농담과 진심을 구분하기 어렵다.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서 그 자리에 멈춰서서 살짝 웃었다. 그녀는 웃으며 다음에 또 보자며 안녕을 말했다. 난 정말 모르겠다. 사람들의 눈빛을… 특히 그것이 아름다울 때는…

집에 있다가 상원이네 가서 상원이네 누나인 보경 누나에게 머리 염색을 받았다. 꽃을 든 남자 Orange Cooper로 했는데, 예전에 했던 색 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안 한 것 보다는 나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다음번엔 좀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기분좋은 색으로 하고 싶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해 주어서 더 밝은 색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런데 왜 이렇게 염색에 대해 쓰냐고? 염색하면 좀 덜 아저씨 같아 보이니까 그렇지. 난 누가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 별로 안좋아하니까. 한 때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나보고 자꾸 그렇게 놀려서 처음으로 염색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를 포기한 뒤로는 염색 한 번 안하고 지냈다. 사실 내가 원하는 머리 색은 검은색이였기에. 하지만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검은색”이라는 것은 블랙 홀의 그것과도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해도 달성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난 그것마저 포기해야만 했다.

16 color로 보는 체크무늬가 가득찬 화면은 정말인지 심플하지 못하구나. 오늘은 컴퓨터를 제대로 쓸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빌며… 생각나는 사람들을 마구 떠올리며…

공부와 일 사이

케이블 모뎀에 직접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를 윈도우즈로 바꾸고, 그에 딸린 컴퓨터를 리눅스로 해서 운영하려고 내 자료를 백업했다. 사실 그저께 부터 시작했는데 지금에 와서야 간신히 마무리가 되 가고 있고, 이 일기를 쓰고 나면 대대적인 윈도우즈 재설치가 있을 예정이다. 덕분에 4기가 가량 모아 왔던 JPops mp3 를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후 힘들다.

백업 때문에 편지도 쓰지 못한다. 내가보낸 편지들을 나는 전부 저장하는데, 하드 디스크 용량 확보를 위해 Outlook 을 삭제했기때문에, 편지를 써도 저장이 안되서 아직까지 답장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보낼 편지라면 언제라도 내가 다시 읽어 보고 내 마음에 그것을 되새길 수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랬다. 나는 뭐든지 보내면 답장을 꽤나 기다리는 편이기에, 어쩌면 남도 그럴지 모르겠다는 마음에 그러는 것인데, 과연 남들이 나의 회신을 기다릴지는 정말 모르겠다. 사실, 기다려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 주었으면 행복할텐데.

라이코스 아르바이트는 대충 정리가 되고, 내일부터는 다시 학교에 나간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막상 공부는 많이 하지를 못하는 것이 정말 싫다. 혼자서 공부하는 게 어쩌면 효율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여러 모로 공부에 대해서는 혼란스럽게 느끼고 있다. 특히 공부와 일의 병행이란 그 경계가 모호해서,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생활한 것 같다. 백업하기, 책읽기, 내가 할 일 따위를 생각하다가 다른 어느 누구도 내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한 것 같다.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할 사람들에게…

젖은 발

아르바이트에 지쳐서 9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신촌에 가서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 도움이 될 만한 책을을 뒤졌다. 오라일리에서 나온 Java & XML 이란 책과 GNU Emacs Pocket Reference를 샀다. 요즘은 내가 할 일들에 대해서 꽤나 기대가 된다. 뭔가 할 일이 있고 그것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신호이다. 모든 일이 잘 되었으면 한다.

책을 사고 쉬다가 현준이를 만나서 게임방에 잠깐 있다가 재헌이에게 빌려주었던 씨디를 돌려받고 용산 전쟁기념관에 갔다. 폐관 한 직후게 도착해서 그냥 팜플렛만 얻었다. 사실 현준이의 교양 과목 숙제를 위해 가는 거였으니까 상관도 없었다. 비가 내리는데 기념관 앞의 공원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곳곳에 벤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공원을 좋아한다. 실제로 가 본 적은 별로 없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꼭 공원에 한 번 같이 가 보고 싶다. 벤치에 앉아서 도시락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너무 할아버지 같은 발상인가?

택시를 타고 용산 전자상가에 가서 공씨디 50장, 공엠디 10장, 72장들이 씨디 보관용 지갑을 샀다. 점심을 안먹어 몸이 피곤한데다가 솔직히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기 때문에 별 가격 흥정 없이 사버렸다. 이제 좀 용량에 여유가 생기려나.

나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자료의 양은 지극히 한정적인데, 음성, 화상 따위의 정보는 왜이리도 거대한지… 디지털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는 걸까? 결국 인간의 자아라는 건 기억이고, 한 개인의 기억이란 디스크 한 장에 들어갈 만치 작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내 인생이 디스크 한장보다는 조금 크길 바란다. 내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길 갈망한다. 너무나 부족한 나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채울 길이 없다고 느꼈다.

항상 내 연인에 대한 꿈을 꾼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이며, 나에게 나를 남성으로 대해 주는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체념하기엔 이르지만, 그 사실은 받아들이고 있다. 나를 바꿈으로서 내 몸이 채워지기를 바랬던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번번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절망이라 할 것도 없이, 나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누군가 특정한 대상이 없이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 싫어하지만, 차라리 기분이 나을 때도 있다. 나는 요즘 너무 편한대로 생각하고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점점 빗줄기가 강해 졌다. 발목이 좋을세라 물에 뛰어든다. 곱슬 곱슬한 내 다리털은 내 피부에 달라붙어 잠시나마 생머리의 꿈을 꾼다. 발바닥은 바다에 온 줄 알고 기뻐서 괜히 신발과 입을 맞춰 본다. 이렇게 계속 걸었으면 좋겠는데…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이내 내 사타구니 근육은 버스의 계단을 한발짝 한발짝 밀쳐내려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