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방 특유의 눅눅한 냄새와 함께 잠이 들어 깨어난 때는 9시였다. 그 많은 친족들이 하나의 세면실을 놓고 차례 차례 세면을 마쳐 가고 있었다.
세면을 마치고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돌았다. 성묘는 적어도 4 곳은 돌았던 것 같다. 도대체 나에겐 그 조상님들이 누구인지 알 턱이 없다. 내가 지금 엎드리고 있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시원스럽게 말해주면 좋으련만 – 사실 안다고 바뀌는 것은 없을지는 모르겠다 – 다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나에게 말할 필요를 못느끼는 것 같다. 어쨋든 그들은 멀리 떠나버렸고, 나는 여기에 있다. 여기에서 할 일을 하고, 사랑을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생의 불꽃이 조금은 더 뜨거워진 느낌이 들었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 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성묘도 모두 끝나고, 점심을 먹은 뒤 우리 가족은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Carl Sagan씨가 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라는 책을 읽었다. 영화 ‘Contact’의 원작자이며 퓰리처상 수상자인 그는 그 책에서 과학의 중요성과 사이비 과학의 위험성에 대해서 아주 흥미롭게 설명해나가고 있었다. 내가 그를 좀 더 일찍 알았으면 했다. 더 빨리 ‘Contact’를 읽고 내 사랑의 힘의 근원을 설정할 수 있었어야 했고, 이 책을 읽으며 지식을 가진 자로서 부정한 지식을 몰아내는데 노력함의 중요성에 대해서 일찍 알았어야 했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읽고 있다는 게 참 즐거웠고, 앞으로 다른 책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을 기대하게 되었다.
약간 막혔지만 시종일관 시속 20km 정도를 유지해서 4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오자 마자 홈페이지에 추가하려던 답글 달기 기능을 추가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느낌과 생각을 나에게 남겼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를 생각한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 아닐까. 처음엔 그냥 생각하다가도 차츰 차츰 그 생각이 눈사태처럼 불어나곤 하는게 내 마음인가 보다. 사람을 잊는다는 것. 그것은 조금 덜 사랑함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나에게서 한 순간이라도 강하게 기억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렇기에 –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 내 사랑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에는 지속적일 수 없다. 나는 한 때 이것을 매우 슬프게 생각하고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곧 내 사랑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고 별 정황적 근거도 없이 희망을 가짐으로써 그 슬픔을 떨쳐내고 만다.
누가 되었든, 나를 놓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이렇게 누구든 좋겠다고 지껄이면서도 나는 자부심 강한 사람이다. 자부심 강해서 지는 꼴은 못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은 그 무엇이든 들어 주고 싶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