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ity Relationship Diagram

하루 종일 회사 일했다. ER Diagram 을 그렸다. 적당한 툴을 찾아서 몇시간인가 헤매다가 MS Visio 2000 을 써 보았는데 꽤나 잘 만들어진 툴이었다. 특히 DB를 Forward/Reverse engineering 할 수 있는 기능이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어서 DDL(Data Description Language)를 쉽게 생성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이어그램은 저녁때까지 계속 그려서 결국 기획 스토리보드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완성을 했는데, 왠지 뿌듯한 기분하면서도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전문가에게 한 번 어디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다이어그램의 노테이션은 정확한지 묻고 싶은데 당장 찾기가 힘든 것 같다.

세상은 다이어그램으로 이루어졌을까? 프로그램도 다이어그램으로 먼저 그려서 작성하고, 무언가를 설계할 때는 다이어그램이 필수적이다. 그만큼 직관적이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그리지 않고 해도 우수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이해해 내고 때로는 그런 툴 없이 더 빨리 작업을 해낸다는 점에 있어서 다이어그램은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닐런지도 모른다.

나의 사랑, 나.

나는 만날 수록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며, 만나고 있지 않을 수록 금방 사랑이 식어버리는 사람. 나는 왜 이런 사람일까. 어떻게 하면 한 사람만을 계속 사랑하며 그것을 잊지 않을까. 나는 언젠가부터 결국 그것은 절망이란 이름으로 다가올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서 그 대상의 완전 무결성을 추구하던 시기도 지났고, 이젠 어떤 특정한 누군가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나날도 무의식속으로 잠겨버렸다. 나는 이제 누구라도 좋으니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면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많은 사람을 만났으며, 그들을 만날 수록 조금씩은 사랑에 빠졌고, 자주 계속 만나는 사람에게는 더 큰 사랑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감성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그 사람이 누구든 간에 서로 꼭 안고 있고 싶다. 시작은 사랑이 아니었다 해도 함께 있음으로서 사랑을 창조하고 싶다. 마지막엔 진실한 감성으로 서로를 대하고 싶다. 그렇게 결국엔 내 무의식 속에 잠겨있던 사랑이란 이름의 용기를 되돌리고 싶다.

만남은 계속되며 기억은 늘어간다. 하지만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걸 아니까, 적어도 그 순간 좋다고 느낀다면 말하고 싶다. 너를 좋아하게 될 것 같노라고. 만약 흥미가 있다면 서로 손을 잡고 기대어 보자고.


오늘 유정이랑 heartBreakers 를 봤다. 아주 재미있었다. 현준이 말로는 재미없다고 들었는데, 나에겐 재미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만약… 이렇게 자주 만나다가 좋아하게 되면 어쩌지..?] [쿡.. 그런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구.]

좋아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사랑은 만날 수록 생겨나는 작은 광기. 광기는 단단한 욕망을 만들어 의심을 쌓고, 대상을 자기만의 소유로 하고자 한다. 난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예전처럼 [지나치게] 감성적이지 못한지도 모르겠다.

서로 기대는 감촉.

오랜만에 재헌이와 성훈형과 당구를 쳤다. 몸 컨디션이 좋지가 않아서 오래 치지도 않았는데 발목이랑 무릎이 쑤셨다. 둘이 졸라서 결국은 정보특기자들 준철·수아네 집들이에 같이 갔다. 백세주 한병 반 쯤 마시고 친구들의 저지(-_-)를 뿌리치고 집에 왔다. 꽤 재미있었는데… 그래도 밤을 새면 데이트가 곤란해진다 -_-;;

당구 물리고 회비내고 택시타고 하니 30000원 뽑은 돈이 3050원이 됐다. 아휴…


버스를 타고 오는데 내 옆에 앉으신 어떤 여자 분께서 심각한 잠에 빠지셨다. 우리는 버스 오른편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버스가 오른 쪽으로 커브를 돌자 자리에서 떨어질 뻔 한 위기를 서 있는 여자의 가방끈을 불끈 쥠으로써 간신히 모면했다. 그녀는 왼쪽으로 기우는 것이 다소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슬슬 내 쪽으로 기울어져 오기 시작했다. 결국에 그녀는 완전히 나에게 몸을 기대고 자기 시작했는데, 왠지 잠을 깨우면 미안할 것 같아서 나도 오른쪽 유리창에 몸을 기댄 채 잠을 자는 척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이 올 리가 없다. 그 느낌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누군가와 몸이 닿는 다는 것은 정말 좋은 기분이다. 내게 함께 서로 기대 있을 수 있는 [그녀]란 존재가 있다면 그만한 축복이 어디 있을까.

Rational Rose

이번에 하게 된 아르바이트 일을 UML을 그려 가면서 하려고 하루 종일 Rose 와 씨름했다. 내가 UML의 이용법에 대해서 아직 많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Use Case 와 Class Diagram의 연관성이 도무지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리고 Use Case 가 매우 많을 때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예제에서는 Use Case 가 10 개 이하일 때만 다루고 있는데, 내가 모델링 하려고 하는 것은 Use Case만 50가지 정도가 되는 것 같아서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면 지저분해서 도대체 알아볼 수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Class Diagram 편집도 매우 불편하다. 기본 언어를 Java로 해 놓으니 Standard Properties 를 보려면 오른쪽 버튼을 누르고 메뉴를 불러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메서드를 추가하는 버튼이 없어서 오른족 버튼으로 메뉴를 불러야 하며, 메서드의 여러 특성들을 한 페이지에서 수정할 수 없고 탭을 옮겨가면서 수정해야 한다. 한마디로 클래스 다이어그램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직접 타이핑해서 역공학하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길다. 어떻게 이렇게 불편할 수가 있지..?

세계 최고의 툴과 씨름하는데 지친 하루였다. Use Case 에 대해서 공부를 더 많이 하고, Class Diagram 쉽게 그릴 수 있는 툴을 찾아 봐야 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정이는 연인이 있는데 나랑 그렇게 자주 만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나고 또 만나고… 그녀는 결국 그와 헤어지게 될까? 가끔 나는 그녀에게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어떤 확실한 답을 구하고자 묻는 것이 아닌, 그저 막연한 의문. 개의치 않고 그저 좋은 만남을 하는 것도 좋지만 차분하게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A Silly Day

내가 오늘부터 하는 일이 라이코스 아르바이트 일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과장님께서 라이코스 일이 조금 늦게 시작될 것 같아서 자기가 아는 회사의 일을 나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오늘에 와서 알았다. 의외로 이렇게 일을 얻게 되어서 좋았다. 일도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고. 사람들을 알아간다는 것은 대부분 이익이 되어서 좋다.

아버지 생일 선물로 브라운 플렉스 인테그랄 6550 면도기를 주문했다. 나도 같은 것으로 했는데, 덕분에 돈이 많이 깨져서 한동안 과소비는 하지 않게 될 것 같다. 새 면도기가 오면 깨끗한 면도를 할 수 있겠지? 나는 턱수염을 정말 싫어한다. 내가 만지는 촉감이 안좋고, 수염 자국이 남으면 나이들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PS: 그리고 라이코스 일이 아니기 때문에 출근 계획은 취소 됐다. 데이트 데이트 데이트…;

6년만의 재회

6년 만인가. 유치원 동창이던 그녀를 두근거리는 사춘기의 마음으로 가르치던 그 때로부터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가르친다는 것은 그 날 이후로 나에겐 괴로움으로 각인되었건 것 같다. 동갑이며 이성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라는 야릇한 관계로 변질되어 [친구]로서의 이미지를 소실시키고 말았다.

내 기억으로 그녀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아마도 갈색 피부의 아름다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녀로부터였던듯 하다.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가 몰고 있는 그랜저의 차창으로 손을 내밀며 신나게 [안녕!] 하고 말했을 때부터 난 지난 날의 힘들었던 관계를 잊고 그녀와 아주 친한 사이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6년만에 만나는 사람 치고는 너무나 활기찬 모녀의 모습에 동화되어 나조차 꽤나 활기찬 사람이 되어 있었다. 관계의 개선을 느끼면서.

조금 오래 되어 보이는 케이스 타잎의 컴퓨터 앞의 쇼파에 앉아서 윈도우즈를 설치하면서, 우리는 지난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동안 무슨 일을 하고 지냈는지,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것인지, 서로의 인상은 어떤지. 그녀는 나에게 아부는 아니지만 항상 오랜만에 보면 볼 때마다 점점 더 좋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확실히 지금의 나는 그날의 나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때 처럼 완벽한 것을 추구하거나 나로서 존재하겠다는 강인한 의지 같은 것은 잃어버렸고, 실로 그녀도 그것을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나를 조금은 별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입장에서 그녀를 본다면, 그녀는 정말 먼 곳에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슈팅스타와도 같았다. 한참 먼 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던 사람이 내 바로 옆에서 친근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또한 나는 방금 패러다임 쉬프트를 거친 중세인이기도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여러 사실들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대단한 공부벌레에다가 장학생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아름다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연인이 없는지도 몰랐다. 오해라고 하기엔 나의 관심이 너무 부족했을 정도이니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나는 순식간에 신세기로 접어들고 말았다.

그녀는 내가 오늘 도와준 보답으로 나에게 무언가를 대접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오늘은 쉬고 싶어서 다음에 따로 만나면 어떨까 하고 생각지만 그녀는 이미 외출용 옷을 입고 있었다. 썩내키지는 않았지만 우린 밖으로 나왔다. 전등이 미처 켜지지 않은 어두운 거리를 걸었다. 종종 웅덩이에 발을 잘못 딛기도 하면서 작게 보이던 유흥가를 조금씩 조금씩 확대시켜가는 우리들의 눈빛은 여전히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공감과 불일치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순간 신호등은 녹색으로 바뀌었고 아스팔트위의 스트라이프 위에 발을 얹었다.

서로가 빚어낸 스트라이프가 점점 교묘해져 단색으로 합쳐질 때 쯤 우리는 유흥가에 도착했다. MOON 이라는 곳에서 맥주를 한 병 마셨다. 그녀는 나의 특별함 – 예상과는 다른 상냥함이나 유머감각, 약간은 어긋난 생활방식 – 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마도 변한 나에 대한 신기함일런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는 새로운 나를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잠정적인 일치를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와 내가 둘 다 연인이 없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우리는 [사랑]이 천천히 자연스럽게 할만한 것이며, 완벽한 사람은 사랑하기 어렵다는 데 동의했다. 물론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격정적 사랑의 경우에 대해 내 나름대로 설명하기도 했다. 우리는 주로 MOON 에서 가벼운 주제보다는 그런 삶의 이야기를 했다. 진실로 상대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비슷하다는 것만은 안다.

MOON에 있을 때 한 번은 만남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녀와 나의 이번 방학 목표 중에는 [많은 만남을 하자] 가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많은 만남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녀는 어제 여러 사람들을 새로 만났던 일, 컴퓨터가 고장나는 바람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나를 불러서 6년만의 스스럼없는 재회를 했다는 것에 대해 대단히 기뻐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어떤 인연의 끈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그녀와 나는 반드시 만났어야 했고, 이곳에서 술을 마셨어야 했다.

12시가 넘어서 그녀의 어머니께서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우리는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새로운 만남이 가져온 가벼운 혼란에 나는 손을 흔드는 것도 잊고 차를 보냈다. [나는 누구와 사랑에 빠질까.]


오늘 낮에서 엄마, 누나, 매형과 영종도에 갔었다. 여름바다에 발을 담그고 돌아왔다. 역시 가을바다가 좋을 것 같다. 9월의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

明日のファンタジー

오랜만에 성호가 놀러 왔다. 왜이렇게 친한 친구에겐 게으름을 피우는 것인지 지난번에 왔을 때 맡기고 간 씨디를 아직도 복사를 안 해 놓아서 미안했다. 남자들 끼리는 무언가 사과하기도 힘든 친하면서도 벽 같은 게 있는 걸까? 하여튼 오랜만에 만나서 책 이야기, 음악 이야기 등 여러가지 일 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정작 자신들의 일상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이야기한 것 같지는 않지만 좋았다. 어쩌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감상을 하는 게 우리들의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지도 모르니까.

한참을 그러다가 간식으로 피자헛에서 엑스트리마 피자를 시켜 먹었다. 라지를 둘이서 한 조각만 남기고 다 먹었으니 엄청난 대식을 한 셈이다. 그래도 어찌나 맛이 좋은지 그렇게 심각하게 배부르다는 생각도 안 들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집에서 먹을 땐 피자를 손으로 먹는데, 밖에서는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먹을까…? 난 손으로 먹는게 훨씬 기분 좋던데. 양념이 묻은 손을 쪽쪽 빠는 재미도 있고 좀 더 솔직한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계속 씨디를 구우면서 음악이야기를 하다가 성호는 강남 역으로 자바 과외를 하러 갔다. 그 뒤로 나홀로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듯 싶다. 가족들이 하나둘씩 집에 돌아오고 나는 피곤해 져서 침대에 누웠다. 누워 있다가 방금 도착한 [장미의 이름] 서두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안경을 벗고 책을 읽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글씨의 세밀한 부분까지 관찰할 수 있고, 종이의 질감이 진짜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 진다. 30분인가를 그렇게 있다가 일어났다. 책은 즐거워..~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와 매형이 왔다. 광복절인 내일 조개를 따러 놀라가자고 하는 것 같은데 난 솔직히 가고 싶지 않다. 도심의 카페에서 가만히 앉아 있거나 벤치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다. 조개따러 차 타고 멀리 멀리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가볍게 친구와 점심으로 우동 국물을 후루룩 들이마시고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저녁으로는 초밥을 먹고선 집에 가서는 서로에게 편지를 띄우는 거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나는 환타지에 빠지고 만다…

내일 정말 그럴 수 있을까.

PS: 사진은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에 있는 벤치.

푸른 요정.

오랜만에 지현이를 만났다. 계산해 보니 1달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 긴장이 되고 암울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그냥 너무 오랫동안 보지 않아서 두려워진 걸까? 그녀를 5시 반에 마주쳤을 때, 혈색이 좋아진 이쁜 얼굴을 보았을 때 거의 불가항력에 가까운 힘을 받아 나는 웃고 말았다. 핑크 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무슨 종류의 옷인지 정확히 명칭은 모르겠다. 옷처럼 뺨도 약간 핑크 빛이 돌았다.

둘 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 저녁은 먹지 않기로 하고 이야기를 나누러 카페를 찾았다. 모텔들이 지겹게 늘어선 동네길을 지나 간신히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조금 중년 분위기가 나긴 했지만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분위기의 카페였다. 이런 저런 그간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시간이 흘렀다. 중간중간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오랜만에 마주치는 눈이라서 자꾸 내 시선이 얼어붙었다. 그녀의 눈도 참 깊다고 생각했다. 만화처럼 모두 검은 느낌이 드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 하는 동안 몇번인가의 정적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좀처럼 쉽게 견딜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무언가 이야기하고 이 짧은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조금 어색했고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지금 그녀와 만나고 있는 이 시간이 좋은데 오래간만의 만남 탓에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흘러 A.I를 볼 시간. 오랜만에 만나는 대단히 훌륭한 영화였다. 영상의 아름다움, 훌륭한 스토리라인, 눈물을 자아내는 서정적 호소.. 범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자아의 인식과 사랑의 문제..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데이빗에게 결국 자신의 존재를 일깨웠듯이 어쩌면 자아란 사랑이라는 것으로부터 파생된 개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의 데이빗과 어머니와의 재회 부분에서 데이빗이 눈물을 흘리는데, 데이빗은 정말로 사람이 된 걸까..? 섹스 머신 아저씨는 결국 폐기 처분되었을까..? 하비 박사는 어째서 자기 아들을 양산하기까지 하게 되었을까..? 사람은 절대 신뢰하지 말라며 데이빗을 도망치게 한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데이빗은 결국 신뢰할 수 없었던 복잡한 세상을 완전히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랬기에 그는 더 순수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아는 로봇으로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다 보고 우린 헤어졌다. 그녀가 우산을 빌려 주어서 비를 맞지 않고 올 수 있었고, 다음번에 꼭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후다닥 빌딩 안으로 달려갔다. 나는 우산을 들고 뒤를 쫓다가 멈추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살짝웃으려고 했는데 잘 안된다. 야릇한 아쉬움이 남아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다음에 만났을 땐 더 기쁘게!!!!!! 혼자 외쳤다.

익숙해지기.

홈페이지 작업이 대충 완료되어서 이전 작업을 했다. 모든 것이 거의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카운터도 맞추고, 일기장이랑 방명록도 php 에 통합하는데 성공해서 기쁘다. 내가 원하던 페이지가 나와서 정말 다행이다. php도 처음 해 보고 여러 모로 고생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php의 의미 그대로 개인이 쓰기에 아주 적당한 언어 같았다.

홈페이지를 수정하고 보니 11시에 일어났는데 3시가 다 되도록 밥 한끼도 먹질 않았다. 집중력의 끝은 어디일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약속 시간이 6시니까 4시 부터는 준비를 해야 하는데 벌써 시간이 3시를 넘어버렸으니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한 셈이다. 유정이도 한끼도 안먹고 있다가 세 시쯤에야 아침(?)을 먹었다 하니 둘 다 대단한 인간들임에 틀림없다 ㅡㅡ;

우린 6시 반에 만났다. 나도 시간이 약간 촉박했을 뿐더러 유정이도 머리 말리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30분 정도 늦추었다. 그런데 난 버스가 늦게 와서 10분 또 늦어서 6시 40분에 만났다. 일단 예매한 표를 받고 어디로 저녁을 먹으러 갈까 갈팡질팡하다가 ‘Mr. Pizza’에서 피자를 먹었다. 피자헛 피자보다는 맛이 별로였던 것 같다. 역시 엑스트리마 피자가 최고야..; 특히 빵이 너무 얇고 부드럽지가 못해서 코를 자극해서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남은 두 조각은 싸가지고 나왔다. 피자를 다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가버렸다. 막상 기억해 내려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런 삶의 이야기들을 했다. 수강신청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 휴학 게획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쩜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까..

이번 예매한 자리는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 화면에서 조금 오른쪽이어서 균형이 약간 안맞았다. 사운드는 그런대로 좋았다. 소리가 꽤 커서 몰입이 잘 되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호러 + 역사 + 동서양액션 + 미스테리의 혼합물이었는데, 일단 중간에 짤린 부분이 있다. 그것도 처리가 매우 매끄럽지 못하다. 특수 효과 면에서는 슬로우 모션을 이용한 컷이 꽤 많았는데 남용하니 조금 별로였고, 3D 그래픽으로 처리한 채크럼으로 변신하는 칼은 그래픽 티가 너무 많이 났다. 그리고 별 의미없이 너무 야한 신이 나오기도 했다 ㅡㅡ; 하지만 오락적인 면에서는 딱히 나무랄 곳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여기저기 조금씩 어설퍼서 문제일 뿐이다. 내일 볼 A.I는 그다지 평은 안좋은 것 같지만 그래도 기대가 된다. (난 SF는 왠만해서 전부 좋아하는 편이니까) 유정이는 소리가 너무 커서 안좋았나 보다. 귀 때문에 병원을 다닌다고 하는데 미안했다. 좀 더 조용하고 재미있는 것을 골랐으면 기뻤을텐데.

영화가 끝나니 10시 20분. 잠시 신촌을 배회하다가 현대백화점 근처에 있는 공원에 앉아서 또 이야기를 했다. 이번 주는 유정이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를 정도의 많은 이야기로 그녀와 더 친해졌다고,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오렌지색 안경도, 웃을 때 생기는 이마의 주름도, 희지 않지만 아름다운 갈색 피부도 자연스럽다. 더 멋져 보일 때도 많다. 오늘은 그녀가 나를 배웅해주었다. 다시 만났으면 하는 바램을 실어 손을 흔들었다. 다시 만났으면 하고.

자주 만남.

이상하게 일기가 쓰기 싫다. 그래도 써야지.

조금 늦게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회사에 가서 간단히 회의를 했다. 회사 연구소의 업무 방향이 너무 소극적이라서 제대로 결정되는 사항이 없다. 개발진들은 너무 구체적인 구현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설계가 제대로만 되면 이 일은 한달도 안걸릴 것 같은데 막무가내로 그때그때 땜빵하는 것처럼 일하니 재미도 별로 없고 열의도 안생긴다. 그만두기에는 돈이 아깝고 그냥 다녀야지 어쩌냐…

회사에서 나와서 남대문 숭례문 수입 상가로 이어폰을 사러 갔다. 그런데 회현 역에 내리긴 했는데 숭례문 수입상가를 찾지를 못해서 엄청나게 해맸다. 심지어는 실수로 사창가 입구까지 갔다가 이상한 아줌마 – 말그대로 아줌마 – 가 ‘오빠 어디가~? ^o^’ 하며 나를 부르는 일도 당하기까지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에서나 나올 법 한 황량한 골목을 본 것 같다. 하여튼 황급히 뒷걸음질쳐 다시 큰 거리를 해매고… 30분도 넘게 걸은 뒤에야 숭례문 수입상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에 봐둔 싸게 파는 집이 있어서 그 곳을 찾았는데, 이것도 꽤나 오래 걸렸다. 너무 피곤해서 그냥 아무데서나 사려고 했다가는 가격차이가 2000원이나 나서 결국 악착같이 40000원에 소니 838 이어폰을 두 개 샀다. 하나는 내꺼 하나는 유정이꺼. 그래서 이어폰 값으로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놀기로 했다 핫핫. 이렇게 하면 일주일에 세 번이나 만나는 셈이다. 무슨 커플도 아니고.. 그래도 한 사람을 자주 만난다는 건 정말 해볼만한 일이다. 기분이 좋다. 그렇게 만나면 더 잊어버리는 일이 없게 되고… 난 그게 좋다. 만약 연인이 생긴다면 매일매일 보고 싶을 것 같다.

나 정말 .. 연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을 자주 만나면 꼭 그 사람이 연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자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내 인생에서 가장 매력적인 일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