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2시에 잤음에도 불구하고 숙면을 취하지 못했는지, 첫 수업시간부터 졸았다. 처음부터 꼬이는구나. 재헌이와 강의실에 나와서는 가볍게 당구 두 판 치고, 재헌이가 내 생물학 책을 제본한다 해서 맡기고, 점심 먹고 화일처리론 수업을 10 분 정도 듣다가 나와서 쉬다가는 다시 컴퓨터로 당구 대결하다가 마지막 수업인 운영체제 수업마저 빼먹는 개가를 올렸으니, 이는 3학년 1학기 초유의 일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재헌이네 집에 가서 재헌이 애인의 어머님께서 보내 주신 굴비를 구워 먹고, 가는 길에 산 과자와 콜라를 마시며 나는 파일처리론 공부를 하고, 재헌이는 회사일을 했다. 집에 가기 전에는 재헌이와 함께 WinAMP의 Visualization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헤어지면서 오늘 우리가 낭비한 막대한 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집에 가면서, 아니 오늘 내내 줄곧 토요일에 만난 그 요오꼬씨를 생각했다. 나의 추측이 – 확신에 가까운 – 맞다면 그녀는 지금 혼자다. 매일 우리 학교 어학당에 등교해서는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와서 여유 – 넘쳐서 주체할 수 없으리만치의 – 를 흘려보낸다. 한국어는 아직 거의 할 수 없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생활 반경에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게 뻔하다. 나는 그녀를 돕고 싶다. 오늘도 연락이 와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계속 생각했다. 어제 저녁에는 어떻게 한국말을 가르쳐 줄 지에 대해서도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매일 만나서 내가 낭비하는 그 시간을 그녀가 한국에 머무르는 귀중한 시간에 이용해서 서로 도움을 얻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번이고 생각한다. 꼭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한 달 뒤에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한국이 아마 적응이 되질 않고, 한국어도 진척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현지인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잘 할 수 있을텐데, 소개시켜준 분에게 어서 연락을 해야 겠다. 그녀가 한국에서 보낸 한달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니까, 또 어쩌면 열심히 도와주면 한국을 떠나지 않아도 될 수 있을 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