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3.21.

Evanescence – Bring me to life (featuring Paul McCoy)

예전의 글들을 읽어보았다. 이 글이 정녕 내가 쓴 것일까 싶을 정도로, 나는 내 글을 스스로 알아볼 수 없었다. 아직은 순수하다고 생각해 왔던 나지만 역시 그 때에 비해서는 참 타락해버렸구나 하는 심정이다. 생각한다. ‘가끔은 후회할 일도 생기는구나’ 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바로 사랑하지 않았기에, 타인을 끌어들이고 말았다는 자책감이 든다. 후회하게 될까봐 실수해버릴까봐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누구나에게나 친절한 척 아무 생각 없는 척 너무나 먼 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바른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PS: 음악은 안나오는게 정상이에요. 내일 출근해서 올릴테니 꼬옥~ 들어주세요 참 좋아요!

누군가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믿기.

김진표 – 아직 못다한 이야기 (featuring BMK)

여러가지 바쁜 일들이 있는 하루하루가 가끔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누군가를 곁에 두고픈 마음을 어떻게 하면 균형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별다른 해도 없는 문제를 계속해서 생각할 수록 삶이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마지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패닉 상태처럼. 며칠에 한 번 씩은 변함없이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고 살아 나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변함없기에 이렇게 살아 있나 보다. 뭐랄까 끔찍하다고는 할 수 없되 답답하다고는 할 수 있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으니까.

좋은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구나, 그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 들어주기를 바라는구나 라는 생각에 참 뿌듯하다. 그 사람도 나에게 이야기한만큼 풀리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진심으로 바래 본다. 내 생의 모든 진심으로..

그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인데, 신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믿는다는 것 보다는 훨씬 쉬운 일 같다는 것이다. 신은 절대적인 존재이고 변함이 없는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위대한 존재이니, 그 개념을 따라 당연히 믿고 경배하는 것으로 귀결지어질 수 밖에 없는 반면, 인간은 그렇지가 못하다. 인간은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수많은 불확실성을 갖고 있기에 가장 친한 친 구라도 일생 일대 최고의 도박에서 그 친구를 믿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또한 신뢰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인간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따라서 신과 인간의 만남에서 불확실성은 적은 편이지만,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확실하게 된다.

그래서 말인데, 어쩌면 해피엔딩의 진실된 사랑이나 우정 같은 것들은 어쩌면 종교같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 가 서로에게 신이 되어 서로를 절대적으로 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결국 개개인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불확실성이 그렇게 되기를 거부하겠지만, 사랑을 한다면 이렇게 순수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기에 우리는 서로를 절대적으로 대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처음 믿음을 시작할 용기와 상대방의 믿음을 믿 음으로써 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 우리에겐 아마 그것만으로도 멋질테니까.

PS: 가끔은 대답이 없을때 밀려드는 슬픔에 발목을 담그기도 하지만… (웃음)

긴 한숨.

Fredro Starr & Jill Scott – Shining Through

왜일까? 만났을 때에는 참 좋은데, 어째서 메신저를 하면 아무 기대도 할 수 없게 되는 걸까? 그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있기에 내 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데… 그렇게 소중한데… 용기인지 푸념인지, 한숨 한 조각 기일게 쉬어 본다.

We are…

Do As Infinity – We Are…

가끔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사소한 일에 행복을 느길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 자신의 불행하 다는 신호일 수도 있고, 아니면 행복이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같은 느낌에도 이렇게 자신의 상황이 다르다는 사실이 왠지 슬프다. 이 복잡다양한 감정 속에서 나는 지금 자신이 행복한지 아닌지를 잘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런 것이 불행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 이렇게 순수함이 나의 마음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또 떠올렸다는 사실에 너무나 행복하다.

얼마전 존재의 이유에 대한 일기를 쓴 적이 있는데, 쓰고 난 다음 날 아침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누군가 곁에 있기 때문에’ 였다. 누군가 곁에 있기 때문에 그들과 상호작용하는 기쁨이 우리가 죽음의 가치를 낮게 책정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우리의 마음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그 슬픔을 다른 누군가가 메워가는 해변가이지만, 9월의 바다에 발을 담그러 와 주는 고 마운 손님이 가끔은 있다는 사실에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살아 있나 보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것

David Benoit & Russ Freeman – After The Love Has Gone

가끔은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미울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 그렇다. 나는 왜 제대로 말하지 못할까. 후회가 된다. 지키기 위 해 구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일인데 나는 마음대로 말할 수가 없다. 그저 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 나의 머리 구석 어딘가에 잠시나마 숨겨 두려고 애를 쓴다. 애를 써 봐야 답답함만 늘어날 뿐 머릿속만 텅 비게 된다.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지금 이 공간에서조차도.

존재의 이유를 위해 잃어야 할 것.

Utada Hikaru – Time Limit

남들과 나 자신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정말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논리적으로 부합되는 타당성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왜 이렇게 찾기가 힘들까. 정말 힘든 일이 들 때 지금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과 조금만 더 참으면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불확실한 결정 사이의 고민이 많다는 현실과 우리의 고민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세기에 걸쳐 철학자들이 열심히 이야기해 온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들에게 남겨진 ‘진실’ 이라곤 어디에도 없다. 결국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에 있고 그 불확실성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기 때문에 가치있다고 말한다. 물론 가치있다. 그렇게 느끼게 되는 어떤 희열을 순간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희열 속에서만 살아간다거나,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강인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힘들어질 때면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비관론이 스며나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평균으로 보았을 때 나약하고 방황하는 존재들인 셈이다.

영화 ‘Equilibrium’ 에서는 인간의 존재 이유가 ‘느끼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명제의 타당성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단호하고 자 신감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삶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존재 이유를 위해 존재마저도 희생할 수 있는 권 리(?)를 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얻기 위해서는 잃어야 하는 단순한 사실이 어쩌면 이리도 많은 곳에 적용이 되는 지 모르겠다. 이 세상을 누가 만들었든지간에 그는 정말 잔인한 균형주의자였으리라.

말없는 웃음 비는 내리고

김동률 – 취중진담

후배들과 한밤중에 근처 극장에서 MATRIX RELOADED 를 보고 닭야채볶음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지금은 컴퓨터실이다. 사늘한 밤이 되면 비가 오고 있지 않은가 착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비가 왔을 때처럼 그리운 사람 중 한 사람을 떠올린다.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사람이 유난히 떠오르는것은 아마 내가 여전히 낭만주의자이고, 외로움도 잘타는 깨지기 쉬운 정신의 소유자라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떠랴. 오늘 같은 밤이라면 비에 젖은 기억으로 좋다.

협동과 경쟁에 관하여.

김진표 – 악으로

우리는 많이 뒤쳐진 상태다. 분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된다. 선배들이 가이드라인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선배들은? 잘 생각해 보면 가이드라인이란 것은 충분히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단순한 의지가 아닌 좀더 강화된 동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 그것은 협동인 것 같다. 그러나 그냥 단순한 협동은 아니다. 서로의 실력을 경쟁하고 심하 게는 견제까지 할 수 있는 적극적인 협동이다. 협동에 왠 견제냐고? 협동하다 보면 당연히 서로의 능력을 비교하고 더 개선하고픈 욕 구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어 저녀석 내가 모르는 개념을 알고 있잖아? 와 우리 정특의 수준이 한차원 높아졌네? 너무 기뻐! 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 협동을 하고 있느냐와 상관 없이 우리 사이에 경쟁상태를 유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할 무언가가 우리 모임에는 부재한 상황이다.

스스로 자신 안으로부터의 발전을 이루어내기 힘들다면 방금 말한 방법이 더 옳은 방법은 아닐까? 이제 곧 방학이다. 경쟁적 방법이건 어떤 방법이건, 후배 여러분들은 방학이 끝났을 때 ‘남들을 완전히 따라잡았다’는 만족감에 기뻐하고, 계속되는 경쟁에 대비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편으로, 우리 같은 집단에게 필요한 것은 체계화된 정보 관리 능력 아닐까? 우리는 지금 남들이 어떤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또 현재 어떤 것을 잘 모르고 어떤 것을 잘 할 수 있는지, 지금은 어떤 일 (개인 프로그래밍이든, 회사 일이든) 을 하고 있고 어떤 내부 디자인을 갖는지, 어떤 문제점에 봉착하고 있는지 거의 모른다. 즉, 우리는 집단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잇점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중간 규모의 회사에서도 빈번히 발견할 수 있는 문제로, 회사가 크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선을 거쳐야만 하는 프로세스다.

그래서 이 여담에 대한 결론은, CVS 와 같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소스 코드 저장소를 두고, 각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게시판 한 곳에서 모두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통합 소모임 (노는 소모임 말고 프로젝트만 순수히, 프로젝트 명을 대괄호로 감싼 말머리 이용) 게시판을 메인 메뉴에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매 주 CVS 활동 순위도 매기고 공개적인 평가 에세이를 모든 구성원이 최소 격주로 작성하도록 하자.

여러분은 아마 CVS 사용도 익숙치 않을 것이고 많은 어려움이 있을것이다. 물론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뭘 세팅하고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질문이 있을때 대답하는 것은 선배로써 영광으로 여기고 가급적 성실해 대답해 줄 용의는 있다. 아마 이 점에 대해서는 모든 선배들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은 바쁘거나 게으르니까 🙂

– 정보특기자 모임에 쓴 글

an ironical being.

宇多田ヒカル – Movin’ on without You

뭔가 단절된 느낌이 들 때면 좌절감도 함께 찾아온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야말로 고독과 우울을 느끼기 쉬운 법 아닐까나. 빌어먹을 욕을 허공에 지껄여본 들 이런 기분이 좋아질리 없다. 모든 것을 더욱 더 잘 돌아가게 하는 순간 아픔 은 잊혀진다. 다시 기억날 때 즈음, 나는 더 성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난다 한들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에, 나의 아픔도 언제나 나와 함께 존재를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아픔이 나 자신을 나 자신으로 있게 해 주는 힘이 된다.

기회.

Amuro Namie – Respect the Power of Love

이맘때 쯤이 되면 괜한 생각들이 맴돌며 잠을 방해한다. 자려고 했다면 1시 쯤에 잤었어야 하는데, 자꾸 이렇게 늦게 잠을 청하게 되는 나 자신을 원망해 본다. 이제 학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는 일도 없이 보내는 일상과 작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해 본다. 좀 더 다부진 사람이 되어 보자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을 갖자고 다짐도 해 본다. 희망에 찬 결심과 과거의 회상은 마치 구간 반복이 된 테이프모냥 매일 밤 계속된다. 하루하루가 엉망이라고 느껴지는 밤 을 지나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돌고 도는 수레바퀴같이 느껴지지만 항상 조금씩 다른 일상속에서 변화가 일어나리라 믿는 이상, 기회는 다시 찾아오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