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맹세

Toy – 구애

내 경험에 의하자면,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다가서서 이야기를 걸어야 한다. 불만족스러운 일상, 무언가 빠진듯한 느낌, 제대로 되어 가고 있지 않은 인생이다. 어서 빠져나가고 싶을 때, 우리는 너무나도 편리하게 기다림을 택한다. 안타깝지만 역시 내 경험에 의하자 면 기다림은 기다림을 낳을 뿐이다. 어쩌다 재수좋게 걸려들어온 행복도 언젠가는 재수없게 날아가버리지는 않을까?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서 당당히 말하고 싶다. 내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의 장점이나 단점때문이 아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환희로 점철된 그대의 과장되게 아름다운 모습을 숭배하다가, 어느날 그대의 모든 베일이 벗겨졌을 때 드러난 단점들을 불평하고 있을 나 자신이 되지 않겠음을. 사랑의 환희는 그대로 간직하되 그대의 화장기 없는 맨얼굴을 그대로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으로, 그 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겠음을.

믿어라, 사랑을 위해

Yuri Chika (有里知花) – Such a Beautiful Feeling

몇명으로부터 악평을 들어서 보고 있지 않았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봤다. 보기만 해도 미소짓게 하는 그 사람이 추천해준 영 화는 10년 뒤 30세가 되는 날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심각한 우연으로 결 말은 해피엔딩에 이른다. 연주가가 그곳에 와 있는 것은 조금 심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 우연에도 불구하고, 뭐랄까 이 영화가 우리에게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마지막에 준세이가 기차를 타고 아오이를 앞질러가는 장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우리 삶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우연인지 나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나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어쩌면 여러 선택 가능한 행동에 대한 주사위 놀음에 다름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 모든것이 복잡해져서 입을 다물고 마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사랑에 대해서는 말이다.

사랑에 있어서 선택은 믿음에 의존할 때 더 강렬하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랑은 미지근한 맥주 취급당하는 게 세상인 것을. 지금 나에겐 6면 모두 ‘믿음’이 새겨진 주사위만 있으면 되는 거다.

인연은 없다

SOUL’d OUT – True to Myself

오캄의 면도날의 법칙을 따르자면, 우리에게 존재 유무와 아무런 관계 없이 인지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혼이나 귀신, 악마, 신과 같은 것은 실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틀 안에서 해석되었을 때에야 의미 를 갖는다.

인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알고 지내고 있는 사람과 어떤 인연이 닿아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결국 우리가 죽는 순간에야 답을 보여준다. 죽기 전까지, 아니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고민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사람이 인연이든 인연이 아니든 그 사람과 나는 이 곳에 있다. 우리는 서로를 느낄 수 있다.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일부를 뇌리에 새길 수도 있다.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 사선의 시작까지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대 앞에 서서 말하겠다. 그대를 바라보는 내 눈빛은 호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지금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라고.

외로운 줄타기

Muse – Time is Running Out

출퇴근하는 버스와 전철 안에서 나는 잠들거나 무언가를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에 몰두하며 지내왔다. 그러던 오늘 문득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더 미약해져 가고 있다고. 나 자신의 세계가 너무나 완전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내 자신이 나의 안쪽을 바라보기 보다는 다른 것에 더 집중함으로써 그것이 갖고 있을 수 있는 문제점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그 문제는 어쩌면 내 앞에 선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한 번 정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이 마주칠까봐 고개를 떨구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외롭지 않음이라는 상태는 외롭지 않음이라는 상태는 외롭지 않음이라는 상태는 그것이 어떻게 정의되든 – 허상이든 만에 하나 정도 있는 진실이든 간에 –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성에 기초한다. 외로움을 견디며 무언가를 해 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외로움을 모른 채 해 내기는 비교적 쉽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지 말라는 줄타기의 원칙을 지켰다. 버스 안에서의 한가한 자기 성찰도 결국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후반부를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가면서 그렇게 시야 밖으로 사라져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의 아픔도, 심지어는 우리가 지금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 지까지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앞만 바라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언가 더 잘 해내가고 있다는 일은 어쩌면 서글픈 일인 것 같다.

ANC 일본어반 첫 수강기

George Winston – Rain

오랜만에 다시 일본어 학원을 등록했다. 삼성역 근처의 ANC 라는 곳인데, 생각보다는 규모가 매우 작은 곳이었다. 사미사 학원에서 계속 6단계까지 배우고 싶었지만 거리나 시간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ANC를 택했다. 사미사와는 단계 체계가 달라서 좀 혼란스러웠는데, 수업을 듣고 나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나의 새 선생님이신 사토나오코 선생님은 처음 보는 순간 한국인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한국인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 1년 3개월 생활하셨다는 선생님은 한국어를 상당히 잘 하셨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오늘 수업은 네 명이서 함께 했는데, 두 분은 나이가 있는 분들이었고, 나의 파트너였던 이영희씨(였나)는 나와 비슷한 세대였다. 아 무래도 내가 가장 어린 사람인 것 같았는데, 다들 내가 23살이라 하니 믿기 어렵다는 듯이 웃음을 지어서 조금 당황했다. 거울속의 내 모습은 23살 청년의 모습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바꾸고 싶 은 생각은 없지만, 왠지 남들이 나를 더 늙게 느낀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불안하다. (웃음) 어쨌든 짝을 지어 하는 대화는 사미사때와 마찬가지로 재미있었다. 어쩌면 나는 바로 이런 자유로운 대화를 하는 즐거움을 위해 학원에 가는 것은 아닐까? 만약 어학 교환을 할 수 있는 동년배의 성격좋은 친구가 곁에 있었다면 나는 학원에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대로 원하는 사람을 구하기란 힘드니까, 오늘의 이 순간도 마음껏 즐겼다.

수업 교재나 과정 자체는 사미사 학원 쪽이 좀 더 좋은 것 같았다. 같은 문장을 좀 더 여러 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을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배울 내용 자체가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모두들 좋은 사람이고 또 사토 선생님도 참 친절하셔서 좋다. 한 시간 이십 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그 사람들의 모두를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Matrix Revolution, 카페와 회사

이수영 – Sunshine

퇴근 후 느긋하게 간다는 명목으로 궂이 신촌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588-1 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자리를 얻어서 편하게 책을 읽으며 올 수 있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이지만 피곤 그 자체는 여전히 피할 수가 없다. 거기에 지난주 수요일, 그러니까 11월 5일 오후 11시에 동우와 Matrix Revolution 을 보고 새벽 두시 반이 되어서야 잠드는 바람에 피로가 연속적으로 누적된 것 같다.

우선 Matrix Revolution 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자면, 아주 만족스러웠다. 특히 영상 면에서는 위대했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액션/SF 영화에서 이렇게 스타일리시한 영상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스토리도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다 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맞도록 정확히 구성되었으되 (내가 생각이 짧아 예상을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관람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도 보여주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특히 매트릭스 내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녹색 톤의 차분함 속에서 펼쳐지는 빗속에서의 역동 적인 격투 신은 아름답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주먹으로 물방울을 밀어나아가는 장면은 1편의 총알을 멈주는 장면의 역행임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실제 스토리상의 대칭과 맞아 떨어져 그 인상을 한층 고조시켰다.

영화의 감상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고 회사 이야기로 잠깐 되돌아가 보면, 사람들의 불필요한 타인에 대한 헐뜯음이나 논리상의 불일치 를 발견하게 되어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상사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즐겁게 식사해야 할 자리에서 그 사람의 무능이나 자 신에 영화의 감상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고 회사 이야기로 잠깐 되돌아가 보면, 사람들의 불필요한 타인에 대한 헐뜯음이나 논리상의 불일치를 발견하게 되어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상사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즐겁게 식사해야 할 자리에서 그 사람의 무능이나 자신에 영화의 감상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고 회사 이야기로 잠깐 되돌아가 보면, 사람들의 불필요한 타인에 대한 헐뜯음이나 논리상의 불일치를 발견하게 되어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상사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즐겁게 식사해야 할 자리에서 그 사람의 무능 이나 자신에 대한 무시를 이야기하는 것은 나로서는 참 싫다. 아니,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짜증을 부리는 것 자체가 싫다. 특히 쓸데 없이 비슷한데다가 부정적인 이야기가 매번 식탁 위에 오르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 전까지 한미은행 본점에서 근무할 때 혼자 교보 문고 melodies 에서 조용히 즐겁게 식사했던 때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있지도 않은 약속을 지어내어 혼자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고 싶어진다.

특히 상사의 등가죽을 긁어먹자거나 하는 이야기를 즐거운 듯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무능력을 지적할 합리성에 기반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지고, 자신들이 나중에 경험을 쌓아 그 자리에 섰을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 지 궁금해진다. 직원들을 위한 사기 진작을 위해 지불되는 커피 값과 회식비 외의 지출은 회사에서 지불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지불의 의무를 지지 않아야 한다. 이를테면 커피를 한 잔 주문했을 때 커피와 함께 케잌이 무료로 제공되면 좋지만 보통의 카페에서 케잌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비로 무언가를 제공함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호감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곳엔 도의나 의무, 분위기상의 강요 따위는 없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상사의 사비로 내 배를 채워야 할 때면 상당히 주저한다.)

다만 위 두 가지 문제에서 카페와 회사의 차이는 아마도 커피 맛이 나쁠 때는 고객으로서 불평할 수 있지만, 상사의 일 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함께 협력해서 체계상의 문제점을 고쳐가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몰취향한 사람의 불행한 연애

BOA – Duvet (Serial Experiments Lain Opening Theme)

사람을 만나면 묻는다. 휴일에는 어떻게 보내세요 라고. 어떤 취미가 있거나 한 사람을 만난 지가 너무 오래 되었음을 실감한다. 다들 그냥 쉬죠,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놀죠,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말해주기 싫은것 같기도 하고 정말 쉴때 저러는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저런 대답을 들으면 금새 그 사람에 대한 흥미라는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매스미디어가 현대인의 파김치가 되어버린 일상을 잠식하며 제공해오는 몰취향의 세계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나 자신이 멍청해진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들어서 싫다. 추상적으로 누구나 말하는 난 심플한게 좋아 같은 것들를 지금 취향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진정한 취향은 스스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브랜드 이름이나 드라마의 제목보다는 훨씬 근사하지만 역 시나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취향이 사라진 개인은 대부분 불행하다.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조차 반복의 연속이다. 스스로가 앞으로 무엇을 해 야 할 지, 스스로에 대한 무지나 두려움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갈래 속에서 시도하기도 전에 방향 감각을 잃는다. 어느 순간 너무나 외롭고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무작정 기대고 싶어 한다. 잠시나마 등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24시간 일주일 내내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의지하지 않으면 현실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불행의 증거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은 연애를 통해 행복해지기는 커녕 ‘누구라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 더 불행해질 확률이 크다.

만남이라는 복권

이수영 – 그래

한 주 동안 회사일로 많이 바빴다.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들을 회상하기엔 지금 이 순간도 너무나 빨리 흘러가고 있어 안타깝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순간은 나에겐 항상 그렇다. 애처로운 심정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며 지금 내가 꺼내야 할 말을 이리 저리 생각해 보지만 그 어느 것도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다. 조금이라도 말을 꺼내서 풀어나가기 시작해야 하는데.

경험을 통해 지난 수 년간 나의 화술이나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는 드라마틱하게 개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는 망설임이 앞선다. 만나서 아무 할 말도 없을 것만 같은데, 이 사람을 만나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만나면 그때 그때의 느낌과 생각에 맞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안심하곤 하지만 그 두려움의 순간은 내 몸 곳곳에 새겨져 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사람의 코드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기분좋게 그 일부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사람의 코드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기분좋게 그 일부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사람의 코드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기분좋게 그 일부를 흡수해 나아가며 그 사람을 배워 나갈 수도 있고, 도저히 체질에 맞지 않아 멀어져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만남이 가져오는 무엇보다도 값진 결과는 꽝이 없는 복권처럼 만족할만한 확률로 다가오는 동지애 아닐 까. 서로가 서로의 언어가 되어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만남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 아닐까 싶다.

일을 취미처럼

Shawn Kane – Mistreated

프로그래밍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서인지, 요즘 퇴근이 다소 늦어지고 있다. 퇴근 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늦게 퇴근하는데 원하는 결과를 다 보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퇴근 하는 경우가 많다. 시스템 자체가 크고 개선의 여지가 많다 보니 개발이 즐겁다. 실제 서비스에 들어갔을 때 제대로 동작할 수 있을지는 완벽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실력을 믿으니까 어떻게든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소 자신감에 찬 거만한 말투 -_-)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를 잃고 일상으로부터 그것을 괴리시키기 시작한다. 어떤 경우에는 기본 지식의 부족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건강이나 회사의 시간적 압박으로 인해 그렇게 변해가는 일도 많은 것 같다. 가끔 전임자의 코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Java 라는 플랫폼이 가진 잠재력과 그것을 제대로 이용하는 방법을 조금만 더 잘 알고 있었더라면, 개체지향 설계에 대해 조금 만 더 관심이 있었더라면 더 즐겁고 효율적인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어떤 지식은 반복된 일상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을.

그래서 말이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누군가의 말은 나에게는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새로운 발견이 끝나지 않는 이상 그 말은 틀렸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