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7일

이 글의 정확한 작성 시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는가라는 영원히 풀기 힘들 그 문제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갖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신중히 살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 변화라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나는 대학 시절 갑작스러운 휴학도 해 보았고, 멀쩡한 회사를 다니다가 이렇게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기도 했다. 만약 내가 원하는 공부를 전혀 못할 환경이라면 어쩌면 대학원도 그만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두 가지 인생에 대한 관점이 충돌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변화라는 것은 더 신중해지기 위한 경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동적인 자만이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를 시간을 더 빛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 말로 삶의 시간을 좀 더 만족스럽게 사용하는 방법이 아닌가? 전체적인 맥락 – 인생의규율 – 과 역동성을 함께 유지하는 것 만큼 만족스러운 것도 없으리라.

그래서 나는 나이가 많기 때문에 다시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다지 많은 가능성을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없다시피한 희망에 돈 천원을 걸고 로또를 하지만, 자기 자신의 숨겨진 가능성에는 좀처럼 투자하지 않는 법인지도 모른다. 마이너스가 나올 것 같아 보이는 – 그러나 사실은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는 – 복권은 아무래도 사기가 난처하니 말이다.

2005년 1월 2일 두 번째

이 글의 정확한 작성 시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좀 더 솔직해질 수 있고, 할 말 못할 말도 하면서 친해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그렇지 않다. 맥주와 같은 술을 한 병 정도 마시게 되면 약간 흥분하여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과 솔직함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또 그것보다 더 많은 술을 마시며 스스로의 건강함을 과시하거나 몸을 망쳐가는 사람들을 볼 수록 나는 술이라는 것이 솔직함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주장 속에는 납득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음을 느낀다.

사람은 왜 제정신이 아닐 때 솔직해지는가? 이는 자기 자신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술을 마시면 저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능력이 정말 저하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제어 능력의 저하로 인해 얻는 것 (상대방의 깊은 곳) 보다 잃는 것 (소위 꼬장이라 불리우는 것들) 이 많지는 않은가? 제어 능력이 있다고 해서 인간이 솔직해질 수 없는가? 나는 이 두 가지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다.

자기 제어 능력의 저하로 그 사람으로부터 더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무언가 나를 위해 숨기거나 내놓지 않은 어떤 다른 감정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즉, 그 사람은 평상시에 나에게 솔직하지 않은 면이 있다는 것으로, 이는 그 사람이 친구가 되기에는 그렇게 적합하지 않거나 친구가 되려면 좀 더 평상시에 솔직해져야 함을 뜻한다. 나는 평상시에 솔직하고 정당하게 나를 대하지 않는 사람이 술이 깨어난 뒤에 나에게 좀 더 솔직하고 정당하게 대해 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겠다. 차라리 평상시에 솔직하지 못하였다가, 나중에 평상시에 그런 과거를 이야기하고 정식으로 사과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해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건전한 동반자로 받아들이겠다.

사회가 복잡해 지고 그들이 권력 관계에 놓이면서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게 했으면 했지 덜 겪게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나쁘게 했으면 했지 좋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셔야만 가면을 벗게 된다는 논리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또 하루라도 빨리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의 가면이 사라졌으면 하고 빌고 있다.

2005년 1월 2일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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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나버린 2004년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한해다. Netty2를 본격적으로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했고, 그 덕택에 Apache Software Foundation 의 커미터 자격도 얻었다. 처음으로 잡지라는 곳에 특집 기사를 기고했고, ‘희승사화‘라 불리우는 연봉 파문 사건도 겪었다. 이 모든 과정의 한가운데에 오픈소스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오픈소스야말로 프로그래머가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다.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은 자가 그것을 즐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한계는 이미 결정난 것이 아닌가? 나는 프로그래밍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오픈 소스와 여러 협업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에게 다가올 수도 있는 성공에의 확률도 거부하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개발자와 소프트웨어 연구자가 살고 있지만 순순히 프로그래밍을 엔터테인먼트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래서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웃음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는 없지만 나와 나의 몇몇 동료들에게는 존재하는 이 세계의 위대함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2004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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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가 크리스마스라니, 나이를 먹을 수록 시간은 빨리 흘러가는 것일까? 확실히 회사라는 곳 안에 있게 되면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늦게나마 학창시절을 그리워하고, 자식들에게 학생일때가 좋으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잠시나마 그 학생이라는 조금은 어색한 신분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졌으니, 부디 이 기회라는 것에 익숙하게 되어 다시 수 년 전의 나로 되돌아가지는 않기를 기도해 본다.

200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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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애써서 바쁘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 삶은 계속된다. 그것은 그런데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지고는 한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만 알았던 길이 끝나는 순간 나에게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끝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 하면서 지냈는데 결국 길고 길게 이어지는 길이었다면 또 얼마나 허탈할까. 내가 한살의 나이를 더 먹든 먹지 않든 나의 삶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새벽 세시를 넘기고 있다. 아레오라는 회사에서 정식으로 일하게 된 지도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나쁜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기억 또한 없다. 내가 떠나고 2년이 지난 후에도 아레오라는 회사는 계속 지금처럼 이 자리에 서 있을까? 아마 지금의 규모를 넘어서는 회사가 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회사란 것도 아마 마찬가지인 듯 하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누구나가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싶어한다. 어느 순간은 어떤 것이 정말 필요한 것처럼 느껴졌다가도 어느 사이 그 대상이 바뀌어버린다. 개인조차 잘 할 수 없는 일을 회사가 하기란 그렇게도 어렵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 회사의 기억처럼 나의 많은 기억들 중에 정말 너무나 좋았던 것은 얼마 없었다. 나는 어떤 일에 대해 특별한 기복이 없는 편이라 더더욱 그럴 듯 하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기쁨과 슬픔, 분노가 다가왔다가는 사라져버린다. 시간이 지나 되돌아 보면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모두 그저 오선지의 한 옥타브에 걸쳐 있는 음계와 같다. 많은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은 슬프면서도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인지도 모르겠다.

2004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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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 서비스넷 대사건 – 또는 연봉파문 – 도 마무리가 되어 가는 듯 했더니 또 불이 붙고 있다. 뭐라고 글을 남길 입장이 되지 않아 보고만 있는데, 사실 조금 재미있기도 하다. 자바 서비스넷에서 활동하면서 이렇게 많은 답글이 달린 것은 정말이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나를 ‘아~ 그 연봉 얼마~’ 라고 부르지는 않을까 두렵다.

요즘에는 사진 편집과 음악 감상에 푹 빠져 제대로 된 프로그래밍을 하지 못했고 거기에다가 신기술 공부라던지도 전혀 하지 않아 불안감이 깊어지고 있다. 오늘 저녁엔 프로그래밍을 했지만 프로그래밍만 하다가 새로운 기술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은 두렵다. 게다가 사 놓고 읽지 않은 여러 양서들을 읽는 시간이 거의 없어 또 문제다. 아무래도 위키를 사용해 일종의 스터디 노트를 만들어야 겠다.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면 나나 이 곳에 오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테니 말이다.

시간이 자정을 넘었다. 영희씨를 처음 만난 지도 1년이 넘었다. 회사 근처 일본어 학원의 위치를 몰라 헤매다가 그만두려는 마지막 찰나에 발견한 학원 간판과 학원에 들어섰을때 등록할지 말지에 대한 망설임. 그리고 간신히 수업에 들어간 그 날 내 앞자리에 앉은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녀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돌이켜 보면 얼핏 생각하면 별다른 에피소드 없이 지나 온 짧은 시간이지만, 눈을 감고 떠올릴 수록 많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가 만났던 하루 하루 한 순간 한 순간이 추억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는 행복했고 또 행복하다.

언제나 나를 위해 주는 영희씨인 만큼 올해가 가기 전에 자격증이라든지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성공 – 또는 그것이 실패일지라도 – 의 매 순간 순간 항상 함께라면 좋겠다.

2004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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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편지를 쓴다는 것이 참 쉬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읽기만 해도 그 표현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편지, 구구절절 감정이 넘쳐 흐르는 그런 아름다운 편지를 쓰고 싶은데 마음껏 되지 않는 그런 때 말이다. 새벽 이슬을 품은 공기가 물방울을 떨어뜨려 가녀린 잎새를 매끄럽게 타고 내려가듯 써 내려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2004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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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를 새단장한 뒤 한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쩌면 나조차도 이 WikiWiki 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녀석을 단순화된 웹 어서링 툴이라고 생각한다면 생각보다는 간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캄의 면도날은 여전히 빛나고 있으니까.

회사에서의 힘든 일들에 집에서는 컴퓨터 앞에 앉기조차 힘들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도 편안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자신을 보면 집이라는 것은 정말 낭만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자기만의 공간 속에서 사람은 그 어느때보다도 커지나 보다.

Sun TechDays 2004-2005 참가 소감

여러 회사들의 기조 연설은 매우 재미있었다. 특히 웹 서비스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학교 수업이랑은 거리가 있는지라 졸음에 꾸벅 꾸벅 졸기가 다반사였지만. (웃음)

신상철씨의 세션은 특히 재미가 있었고, 그가 나에게 티-셔츠를 두 개나 주어서 감사하고 있다. 사실 다른 세션들이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다 아는 것을 다루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인지상정이겠지 싶다.

특히 이 행사에서는 웹 서비스의 전체적인 조망과 로드맵 및 각 선두 주자들의 접근 방법에 대해 느낄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오라클에 대해 갖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도 말끔히 해소되었고, 멀게만 느껴지던 SAP 에 대해서도 가깝게 느겨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제공된 음식이 호텔 측에서 준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형편 없었다는 점, 입장이 양일 모두 10분 이상 지연되었다는 점이다. 또, 각 세션에 대한 기술 난이도를 기재하여 자신에게 적합한 세션에 참가하여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으면 좋았 겠다는 생각도 든다. 위화감이 조성되려나?

그리고 오늘 드디어 ASF SVN Repository 에 처음으로 commit 을 했다. 나만의 작은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오늘 컨퍼런스의 기조 연설을 담당한 사람들, 에반젤리스트들, 그리고 첫 번째 ASF Commit. 나에게 모든 것이 중요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