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받으러 신경정신과를 방문했다. 의사는 그대로인데 전보다 방이 좀 커지고 옆에 여자 조수가 붙어 있다.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작게 이야기해서 들리지가 않는다. 좀 더 크게 이야기해 달라고 하자 벽이 방음이 잘 되지 않아 옆 방에 이야기가 새면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좀 황당했지만 그러려니 하는 수 밖에 없다.

잠시 후 의사가 나가고 조수가 몇 가지 테스트 준비를 하는데, 틈이 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보통은 일 년에 꿈 세 네 번 꾸기 힘든데 지난 주에만 세 번은 꾼 것 같다고, 약을 끊어서 그런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은 꿈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으니 (방금 나간) 선생님께 물어보라 한다. 음, 그런가, 하면서 잠에서 깨었다.

감정을 배워 보자

지금까지는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그것을 지혜롭게 밯뤼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함을 느낀다. 즉, 감정에 대한 이해 또한 마찬가지로 꾸준히 갈고 닦아야 하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쉬우나, 유사한 방법으로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을 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서투르면 결국에는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고만 하게 되고, 그 여파가 대인 관계나 업무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고 왜 그러한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두려움과 분노로부터 그저 달아날 궁리만 해서는 달아나는 잡기술만 늘어날 뿐이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 진정 고민하지 않는다면 형사 가제트의 클로우 박사와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비유가 좀 깨나 ㅋ)

스스로를 들여다 보는 것

스스로를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아니, 근본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나약함과 대면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열린 마음을 갖겠다고 다짐한들 그 과정에서 맞딱뜨리는 기계적 반응에 가까운 두려움을 어찌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바로 나 자신의 일부가 될 때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다.

XBMC 를 제어하는 iPad 앱을 개발해 앱스토어에 올렸는데 별 하나 레이팅만 네 개가 달렸다. 알고 보니 호스트 주소를 하드코딩하여 제대로 작동할 턱이 없었던 것이다. 문제도 해결하고 코드도 깔끔히 할 겸 개발을 하다 보니, 처음에 템플릿에서 자동 생성된 부분을 정리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예외 처리가 미흡하여 에러 메시지 출력 부분을 손봐야 했는데, 예쁘게 메시지를 출력해 주는 모듈을 이용하기로 했다.

재미있게도 이 모듈은 컴퓨터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묵직한 만화풍의 아기 인형 로봇이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어차피 더 예쁜 여자 캐릭터 모듈이 있으니 무겁더라도 임시로 사용하라고 했다. 해당 모듈을 시험하기 위해 다른 방으로 이동하여 전원을 연결했다. 적당히 사용법을 알아 보면서 로봇과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자폭을 하겠단다. 방에는 한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황급하여 그 여자아이 뒷쪽으로 뛰어들어 위기를 모면했다.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친구에게로 돌아와 있는데, 자폭한 뒤에도 로봇은 계속 움직여서 무기를 들고 쫓아 왔다. 아마도 킬코드 같은 것을 이용하여 동작을 정지시킨 것 같은데 잠에서 깨어나는 바람에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문득 아주 어렸을 적의 꿈이 떠오른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한 최초의 꿈이면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 꿈 중 하나다.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 때나 그 전 즈음인 듯 하다. 나는 달나라로 여행을 떠났고, 그 곳에서 토끼들을 만났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외계인 (로봇?) 이 나타나 레이저건으로 토끼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토끼들은 인형이었기 때문에 피를 흘리지 않고 신기하게도 솜덩이로 변해버렸다. 계속해서 쫒기던 와중에 나는 저항군을 조직하자고 주장한다. 우리는 저항군을 조직하여 반격했지만 결국 궁지에 몰려 나마저도 레이저에 당해 버리고 만다. 레이저를 맞는 순간 나는 땀에 젖은 채로 공포에 휩싸여 깨어났다.

이 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꿈을 거의 꾸지 않는 나에게는 앞으로 유용한 자료가 될 지도 모른다.

프롤로그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육아휴직이다.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쉬고 싶어서 그렇게 결정했다. 어느덧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고민도 조금 했지만, 개인적으로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휴직을 결정한 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현실을 직시해 보면, 그 결정은 도피의 산물이었다. 항상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으면 의욕이 서지 않는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주어지면 압박을 느끼고 도피하고만 싶어진다. 건강 문제니 하는 것들은 실재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부차적인 문제다.

언제까지나 핑계를 벗삼아 살 수는 없다. 이제는 내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