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이 결혼식에 다녀오다

친한 친구 조은이 결혼식에 다녀왔다. 재택근무 이후 워낙 게으른 생활을 하다 보니 1시에 하는 결혼식도 늦을까봐 마음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결과적으로 그런 과잉 반응 덕택에 꽤나 일찍 식장에 도착해 신부 대기실에서 조은이를 만날 수 있었다. 신부 복장을 한 친구라. 왠지 모르게 딸을 떠나보내는 아버지도 아닌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마 결혼을 한 친구와는 시간이 흐르면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는 속설 때문인가 보다. 그런 건 정말 싫다.

신부 대기실에서 사진을 찍는데 이것 참, 어깨에 손을 얹기도 뭐하고 옆에 앉기도 뭐하고, 뻣뻣한 자세로 찍어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회하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조은이 친구 봄이에게 부탁해서 같이 앉아서 승리의 브이를 그리며 제대로 한 방 찍을 수 있었다. ^^v

그러고도 신랑 신부 입장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어슬렁거리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축의금을 엉뚱한 쪽에 낸 것이다. 위의 액정 스크린에 버젓이 이름이 적혀 있는데 엉뚱한 쪽에 축의금을 전달하다니, 꼴이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이야기해서 돌려 받아 줘야 할 곳에 주었다. 여기서 가볍게 한숨.

30분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식이 끝났다. 무대에서 사진도 찍고 즐거운 여행을 부탁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리스라, ‘제피로스’ 에서 보았던 그 회벽 마을을 나도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고 다짐해 본다.

한편, 봄이와는 지금까지 이름만 전해 들었을 뿐 제대로 인사조차 해 보지 못했는데, 이 기회를 통해 인사도 하고 얼떨결에 말도 놓게 되어 기쁘다. 친구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도 친구가 늘어갈 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존재는 나를 들뜨게 한다.

퀘스트 소프트웨어 코리아의 끈질긴 스팸 발송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한 컨퍼런스의 부스에서 나눠주는 경품을 받기 위해 메일 주소를 적어 준 것이 화근이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퀘스트 소프트웨어 코리아에서 날아오는 홍보 메일은 끊이질 않았다. 몇 번이고 수신 거부 폼을 입력하고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보았지만 수신 거부 처리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도 퀘스트 소프트웨어 코리아의 프로모션 메일이 내 메일함에 와 있다. 수신 거부 폼은 마치 동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바스크립트로 버튼 클릭 시 바로 창이 닫히도록 작성되어 있다. 수신 거부 수단을 제공하지 않는 명백한 불법 스팸으로 보인다. 혹시 거부 폼만 보여주고 거부 처리는 해 주지 않아도 적법한 것인가?

이렇게 수신인을 기만해가면서까지 홍보 메일을 보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던 때도 있다. 하지만 알게 뭔가. 결국 퀘스트 소프트웨어에서 오는 모든 메일은 필터링되고, 퀘스트 소프트웨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최하’ 나 ‘악덕’, ‘저질’ 쯤으로 기억될텐데.

Update: 2009년 9월 9일 새 마켓팅 담당자님께서 적극적으로 처리해 주신다고 메일 및 답글을 보내 오셨습니다.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대해 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자바 네트워킹 기초에서 응용까지: 제 10회 한국 자바 개발자 컨퍼런스 발표자료

발표일 새벽까지 준비를 하다 보니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발표 자료와는 내용이 좀 다르게 되었습니다. 여기를 클릭해 실제 발표에서 쓰였던 최신 자료를 받아 보시길 바랍니다. 녹화된 동영상을 입수하면 다시 한 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인터뷰: 제이보스 개발자 이희승, “나눴더니 더 크게 돌아왔다”

도안구 기자님 께서 작성하신 Bloter.net 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고, 어색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수정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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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명함에는 ‘수석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Principal Software Engineer)’라는 직함이 있다. 그는 현재 오픈 소스 미들웨어인 레드 햇의 제이보스 리모팅 프로젝트 의 리드로 활동하고 있는 전업 오픈 소스 개발자다. 그는 경기도 부천 집에서 재택 근무를 하면서 전세계 흩어져 있는 제이보스 개발팀과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전지구적으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답니다”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오픈 소스 회사 다운 개발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NHN에 인수된 검색 서비스 회사인 첫눈에서 근무하다 NHN에 잠시 몸을 담갔다가 레드 햇 본사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고 2007년 9월 레드 햇에 입사했다. 현재 제이보스 리모팅네티, Log2Log, APIviz 프로젝트 리드와 JBoss 메시징 컨트리뷰터로 활동하고 있다.

언급된 대로 주로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와 관련 프로토콜 개발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들을 손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활동해 온 것.

그의 이름은 이희승.

그를 간략히 소개하기 위해 블로그에 올라온 자기 소개서를 살~짝 인용한다.

“이희승은 다양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입니다. 그는 대량 SMS (Short Message Service) 게이트웨이, 경량 ESB (Enterprise Service Bus), RPC 애플리케이션 서버와 같은 자바 기반 고성능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을 4년 이상 개발해 왔습니다.”

그간의 ‘오픈 소스를 말한다’ 인터뷰는 국내 오픈 소스 사업과 관련한 정부 관계자와 국내외 오픈 소스 진영 경영진들이 대상이었는데 반해 이번 인터뷰는 오픈 소스를 만들어 내는 창조자인 ‘개발자’가 주인공이다. 전업 오픈 소스 개발자이자 전세계 최대 오픈 소스 기업에 소속된 오픈 소스 개발자라는 점이 그와의 만남을 추진한 이유다.

또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고 해외 커뮤티케이션에도 성공했고,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에서 진행한 관련 프로젝트도 매끄럽게 끝낸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생산과 소통을 통한 커뮤니티의 활성화, 그 후 전세계 최대 오픈 소스 기업으로의 이직 등은 국내 개발자는 물론 이제 국내 기반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기업들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하고, “모처럼 부천 집을 떠나 서울 삼성동의 레드 햇코리아로 출근했습니다”라고 웃으면서 기자를 맞아주었다.

이희승씨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그가 진행한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잠깐 살펴봐야 한다. 그는 네티 프로젝트라는 오픈 소스를 공개하면서 오픈 소스 분야라는 강호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네티 한국어 사용자 그룹 을 방문하면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잠시 인용을 한다면 ‘네티 프로젝트는 고성능과 고확장성 프로토콜 서버와 클라이언트를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비동기와 이벤트 드리븐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과 관련 프로토콜 구현, 도구 모음을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기자에게는 좀 버거운 이야기임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이희승 씨는 “통신사가 인프라를 구축하면 이런 망에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탑재되는데 그런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개발 환경과 도구, 프로토콜 등을 제공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내고 받는 단문메시지시스템 같은 것도 이런 프레임워크를 통해서 개발된다. 국내에는 이동통신사와 제휴해 대용량 SMS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곳이 많은데, 이런 회사들에서 많이 활용한다.

처음엔 국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소스를 오픈하고 그 다음에 영문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해외 사용자들이 하나 둘 관심을 가지면서 관련 커뮤니티가 인기가 많아졌다. 그 후 전세계 최대 오픈 소스 커뮤니티인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 (Apache Software Foundation) 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자는 제의를 받게 됐고, 관련 프로젝트는 ‘미나‘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 후 앞서 밝힌대로 첫눈에서 일하다가 NHN에 합류한 후 레드 햇의 러브콜을 받고 제이보스 개발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나 프로젝트에서는 손을 떼고 전업 오픈 소스 개발자로 일하면서 틈틈이 네티 프로젝트도 다시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구현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개발하고 싶었습니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소스를 왜 오픈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PC통신 하이텔의 게임제작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서로가 개발한 지식을 공개하면 상호 작용을 통해 더 큰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퍼주는 것이 아니라 공유를 하면 서로가 발전할 수 있고, 저도 발전하게 되더라구요. 그 때의 경험을 그대로 이행했을 뿐입니다”라고 밝혔다.

“커뮤니티 활성화 방법은…음… 뭐랄까… 딱히 .. 방법은… 없는데요… 마법 같은 건데요..”라면서 웃던 이희승씨와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네티 프로젝트는 어떻게 해서 탄생된 건가요?

대학 졸업 후 아레오 커뮤니케이션즈 에 입사해서 대용량 SMS 게이트웨이를 개발했었습니다. 메시징 전송 대행 서비스에 사용되는 기술입니다. 당시엔 SK텔레콤, 신세기통신, LG텔레콤, KTF, 한솔PCS 등 5개 통신사가 있었는데요. 각 통신사마다 서로 다른 프로토콜을 사용하고 있었죠. 통신사와 회선 계약을 맺고 다양한 SMS를 보내야 했습니다.

개인 메시지부터 신용카드 결제 정보까지 수많은 메시지들을 처리하면서 고성능 시스템을 물론 메시지의 유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배웠고, 서비스 중단없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기술들도 익혔습니다. 당시 자바 (Java) 가 다이내믹 업데이트도 가능하고 신속한 개발도 가능해 이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러다가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 개발 프레임워크와 개발 도구들을 만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틈틈이 개발해서 국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리고, 또 더서버사이드닷컴 (www.theseverside.com) 이라는 당시 자바 관련 최고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올렸습니다.

당시 프로젝트 이름이 네티 (Netty) 였습니다.

네티의 뜻은 뭔가요?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와 도구 쪽이라서 네트워크의 ‘Net’에 좀 친근한 이미지를 풍기기 위해 ‘ty’를 붙여 네티라고 했습니다.

공개한다고 모두 주목받지는 못할텐데요?

국내 커뮤니티 사이트는 좀 그랬죠. 단방향이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지 않았어요. 상호작용이 많아야 하는데 아쉬웠죠. 그래도 자바서비스넷 (현 제니퍼소프트) 이원영 대표가 관련 회원들에게 메일링을 하면서 조회수나 방문자가 늘었습니다.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이죠.

또 영문 사이트를 운영하다보니 해외에서도 피드백이 있더라구요. 초기엔 퀄리티가 조금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 중 좋은 콤포넌트가 있어서 그런지 반응은 좋았습니다. 네티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2000년대 초기에는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상용 제품들도 없었던 시기거든요. 그래서 더 주목을 받은 지 모르겠어요.

질문에 답변을 해주다보니 점점 커졌고, 또 앞서 말씀드린대로 대용량 SMS 게이트웨이를 개발하면서 다양하게 배우다보니 하나 둘 좋은 기능들도 붙고 그래서 개발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내 통신 환경이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 앞서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 같네요.

아무리 하찮은 질문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질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해주다 보니까 점점 커졌습니다. 시간이 들고 이상한 질문들도 많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질문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줘야죠.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에선 연락이 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나요?

말씀드린대로 당시 관련 프레임워크가 많지 않았는데, 이미 실운영환경에 적용된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다보니 네티 커뮤니티가 커졌고, 자연스럽게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에서도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엔 아파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최고의 오픈 소스 커뮤니티다 보니 다양한 오픈 소스 프로젝트들을 스크린하고 필요할 경우 지원을 하는 것이죠.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 지원 아래 아파치 디렉터리 프로젝트의 서브 프로젝트로 진행됐습니다.

네티 프로젝트가 미나 프로젝트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은 상당히 오래된 오픈 소스 커뮤니티입니다. 내부에서 처음부터 진행된 프로젝트가 아닐 경우 제 프로젝트처럼 외부에서 소스를 가져올 때는 지적재산권을 면밀히 검토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이름을 바꿔서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자고 결론이 났습니다. 당시 네티는 2.0까지 나왔었는데요. 아파치 브랜드를 이용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고 해서 저도 흔쾌히 참여하게 됐습니다. 물론 네티가 모태가 됐죠.

이희승씨가 주목을 더 받게 된 이유가 아파치 디렉터리 프로젝트의 서브 프로젝트였던 미나가 TLP (Top Level Project) 로 승급됐고, PMC (Project Management Committee) 의장으로 선출되면서인데요.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 출신이 아닌 사람이 PMC 의장에 선출되기는 힘들다고 하던데요?

나중에 고참 아파치 멤버가 아피치소프트웨어 재단 의장도 상당히 이례적이지만 아주 자연스러운 일었다고 전해줬습니다. 설명을 드리자면 좀 긴데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역할을 좀 살펴봐야 됩니다.

일반적으로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고, 커미터라고 해서 소스의 저장소에 접근해서 개발에 참여를 합니다. 멤버는 재단의 이사회 구성원을 뽑고 재단의 내부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PMC (프로젝트 관리 위원회) 는 각자 담당한 프로젝트의 운영을 맡습니다. 어떤 아파치 프로젝트가 새로 생길 때 초대 PMC 의장은 커미터가 아닌 멤버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미나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당시에 커미터였던 제가 초대 PMC 의장을 맡게 되어 화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다른 멤버의 추천을 받아 어엿한 재단의 멤버가 되었지만요.

초기엔 디렉토리 프로젝트의 서브 프로젝트였습니다. 디렉토리 프로젝트는 오픈 소스 기반 LDAP 서버 개발 프로젝트인데요, 그 프로토콜이 굉장히 복잡해요. 그런 복잡한 프로토콜을 이용해 빠르고, 고성능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톱레벨 프로젝트로 승격이 된 것이죠.

전 멤버가 아니었는데 핵심적인 활동을 했다고 판단을 해주신 거죠.

최근에도 계속 관련 프로젝트에서 일하고 계신가요?

지금은 미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글로벌 프로젝트가 되면 개인적으로 가능을 추가하고 싶었던 것들은 좀 미뤄지게 되거든요. 여려 사람이 공통으로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니까요. 물론 지금의 미나도 상당 부분 제 의견이 많이 반영이 됐죠. 어떤이는 견해차이나 기술의 조화 같은 것 때문에 저를 독재자로 볼 수도 있었겠지만요.

그렇지만 무난히 프로젝트가 진행됐으니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미나에 대한 로드맵이 있었어요. 하면서 느낀 미나의 구조적인 결합 등이 보이고, 소프트웨어는 지속적으로 성장을 해야 되잖아요. 미나를 능가하는 또 다른, 내가 원하는 기술적인 완성도를 구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제이보스에 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개인 프로젝트로 하고 있죠. 소스포지닷넷도 오픈 소스 진영에 호스팅을 해주지만 제이보스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그쪽에 합류해서가 아니라 좋은 프로젝트라면 모두 호스팅을 해주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해줘요. 오히려 소프포지닷넷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네티 3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죠.

미나는 국내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나요?

게임 서버라던가 플래시미디어스트리밍, 포스 단말기와 서버, 채팅 서버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편집자 주: 이희승 씨는 몇군데 이야기를 했지만 함께 동석한 한국 레드 햇 홍보 담당자는 확인되지 않은 고객사 정보라면서 기사화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럴 땐 홍보담당자가 정말 밉다.)

그런데 소스를 왜 공개하셨나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컴퓨터를 접했습니다. 부모님 졸라서 샀죠. (당시 87년) 2학년 때부터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언어도 배우고, 게임도 개발해 봤어요. 초등학교 5학년 (91년도) 때 정보처리기능사도 땄습니다. (기자와 홍보담당자는 헉! 소리를 내면서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하는 표정으로 이희승씨를 쳐다봤고, 그는 그냥 웃었다.) 컴퓨터잡지도 보면서 하나씩 배워나가다가 게임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게임 개발이라는 게 고급기술과 낮은 수준의 기술을 모두 배워야 하는 분야거든요. 당시 PC 통신 하이텔에 게임제작동호회가 있었는데요. 게임 라이브러리를 공유하는 장이었어요. 당시엔 다이렉트엑스도 없었던 시기였거든요. (편집자 주: 한국 위키피디아의 다이렉트엑스 설명을 보면 다이렉트엑스는 1995년 9월 30일에 처음 공개됐다. DirectX: 멀티미디어, 특히 게임 프로그래밍에서 마이크로소프트 플랫폼에서 작업을 위한 API의 집합이다. 다이렉트엑스는 OpenGL, 단순 다이렉트미디어 계층 (SDL) 과 경쟁 관계에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세가 드림캐스트,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및 엑스박스 360을 위한 컴퓨터 · 비디오 게임 개발에 널리 쓰인다.)

게임라이브러리를 올리면서 자료를 공유하고, 서로 협동하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체험하게 됐죠. 또 지금은 게임 개발 회사에 계신 김학규 사장님도 동호회 활동에서 알게 됐습니다. 라이브러리 리뷰도 해주시고, 조언도 하고, 좋은 책도 권해주셨어요. 남이 올린 좋은 라이브러리를 보면서 공부도 더 하게 되고, 서로의 지식을 나누다보니까 더 큰 지식이 되어서 돌아오더라구요.

그 때 느꼈죠. 지식은 나누면 큰 힘이 된다는 걸요. 나중에 보니까 오픈 소스 활동들이 많더라구요. 자연스럽게 제가 만들 걸 공개한 거죠.

아니 그럼 게임 개발자로 안나서시고, 좀 엉뚱한 프레임워크 개발자로 나섰나요? 이력을 보니까 첫눈에 근무하다 회사가 NHN에 인수됐던데, 그냥 일하시지 왜 나오셨어요? NHN은 한국 개발자들이 많이 선호하는 직장이잖아요.

저는 게임 개발보다는 게임 같은 걸 만들 수 있는 프레임워크 개발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반 프로그램도 사용자가 배우기 쉽고, 사용하기 편해야 하잖아요. 그래야 널리 퍼지니까요. 인프라 애플리케이션도 똑같아요. 같은 법칙이 적용되죠. 이 분야가 저하고 더 맞는 거 같습니다.

NHN은 물론 좋은 회사죠. 근데 당시에 레드 햇에서 연락이 왔어요. 같이 일해보자구요. 제가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해 봤지만 전업으로 한 경우는 대학원 잠깐 다닐 때였어요. 미나 프로젝트를 보고 같이 사업을 해보자고 연락이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때 당시에 정말 기능들을 많이 업그레이드 했죠. 근데 잘 안됐고, 학계도 잘 안맞아서 그만 두고 직장 생활을 했죠.

NHN에서 일하고 있는데 세계 최대 오픈 소스 기업에서 일하자는 제의가 왔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래서 합류하게 된 것이죠. 요즘 NHN이 오픈 소스 분야에 많은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데, 이곳에 합류하지 않았으면 아마 저도 그쪽에서 같이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전업 오픈 소스 개발자로 생활할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전세계인들과 소통을 하려면 영어는 물론 기본이 돼야 할 텐데요. 국내 회사나 개발자들의 오픈 소스 기여도가 낮은 이유도 언어 문제가 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들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해외 기술 유입 속도가 많이 빨라졌죠. 책도 3개월~6개월 정도면 번역돼서 나오구요. 번역의 질도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컴퓨터를 접할 때는 그렇지 않았어요. 정말 번역도 형편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정보 유입도 잘 안됐고, 자바 신기술도 원서나 영문 자료가 훨씬 많았죠. 당연히 영어로 보다 보니 친숙해 진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영어가 다는 아니라고 봐요. 다만 누구와 상호 작용할 것인가 생각해 봐야죠. 그래서 영어가 중요하죠. 습득한 정보를 영어로 표현해야 되니까요. 오픈 소스에 기여하고 있는 곳들 대부분이 영어로 소통을 하는 곳이예요. 공식 커뮤니티도 대부분 영어권이구요. 문제와 해결 방법을 설명해줘야 하고 정당성을 설득해야 되거든요.

커뮤니티 기반이 커지면 애초에 이걸 진행한 사람 이외에 많은 이들이 참여해 서로 응답을 해줘요. 당연히 영어가 중요하죠. 전세계 사람들이 참여를 하니까요. 이 때문에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가 오픈 소스 커뮤니티를 잘 이끌어 가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 프로젝트를 해보니까 거기는 메일링으로 질문을 해야 하고, 두번 이상은 안돼요. 자꾸 질문을 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이런 매커니즘을 알아야 하거든요. 오픈 소스 프로젝트는 비영리목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계속 귀찮게 하거나 보채면 안되거든요.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게되는 것이죠. 자꾸 괴리가 생기게 되기도 해요.

또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 같은 경우는 커뮤니티의 단일성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국가별로 따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반기지 않아요. 하지만 제이보스의 경우에는 그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네티 한국어 사용자 그룹을 개설하고 지속적으로 소통을 해 오고 있어요.

또, 아주 간단하지만 뭐랄까 무시할 수 없는 것인데요. 소프트웨어를 개발을 할 때 메소드 같은 구성요소의 이름을 부르기 쉽고 간결하게 지어야 해요. 근데 모국어가 영어가 아닐 경우 힘들죠. 버튼을 하나 만들 때도 확인이냐 알았음이냐 가지고 생각을 해봐야잖아요. 직관적인 이름 짓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프로그램 짜는 일은 재미있으신가요? 또 해외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개발자들이 기본적으로 코딩을 잘 해야 할텐데요. 그런 부분은 어떻게 준비를 하셨죠?

그렇죠. 취미가 프래그래밍이거든요. 일을 하다가 프로그램밍하고 또 일하다가 프로그램 짜고. 그러다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미나 프로젝트를 하면서 대학원에 1년 좀 다녔는데 풀 타임으로 일할 기회가 생겨서 정말 전문적으로 열심히 짰습니다. 그 후 회사 생활하면서 미나도 하고 회사일도 또 하고. 그랬죠.

자바와 관련돼서 자바에서 자주 사용하는 패턴이 있고, 효율적인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베스트 프랙티스가 나와 있었는데 그걸을 많이 따랐죠. 자료들이 많으니까요.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자바의 경우 SDK (Software Development Kit) 가 잘 정립돼 있었거든요. 썬이 정한 자바 표준도 따랐구요. JDK (Java Development Kit) 을 사용하는데도 무리가 없었죠. 표준을 따르고 패턴을 사용하면 별 문제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오픈 소스 개발자는 명성을 얻을 수 있잖아요. 저도 물론 그런 걸 얻고 싶었죠. 열심히 하다보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기술적으로 공유를 하다보면 저보다 더 높은 경지의 개발자를 만나게 되구요. 지금 제이보스의 좋은 개발자들을 만나게 된 것도 이런 과정들이 쌓여서 된 것이기 때문에 즐겁죠.

국내에서도 오픈 소스 전문 업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커뮤니티 활성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요. 나름의 비법을 좀 전수해주신다면?

커뮤니티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국내는 일방향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대로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뭐랄까, 일종의 마법 같은 기술이에요.

마법이요?

뭐라고 딱히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그런 것인데요. 저는 운이 아주 좋은 경우였죠. 네티도 성공했고, 미나도 성공했으니까요. 미나의 경우는 서브 프로젝트들도 생겨났거든요. 최근 진행하고 있는 네티3 프로젝트도 트래픽이나 글을 읽는 빈도 등 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거든요. 얼마나 많이 다가가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어디에 적용되고 있고, 어떤 건 안되는지, 어떻게 실행되는지 계속 설명을 해줘야 해요. 말이 안되는 질문에도 친절히 답해줘야돼요.

뭔가 물었을 때 딱 그에 대한 답만 해서는 안되요. 그 이상의 것을 줘야 되는거죠. 그래야 다시 찾아오고 참여를 하거든요.

그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공식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네티 3에 대해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조만간 구글이 공개한 개방형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Android) 를 지원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드로이드를 이용해 힘겹게 개발하지 않고도 신속하고 고성능의 안드로이드 지원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다고 한다. 오픈 소스의 매력과 힘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족)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2월 28일 (토), 자바개발자들의 축제인 JCO 행사 이전에 열렸다. 그는 이번 행사에서 ‘자바 네트워킹 기초에서 응용까지’라는 네티 관련 핸즈온 랩을 마련했는데, 사전 예약 시스템 오픈 당일 50명의 사전 예약이 모두 차고, 행사 당일에도 강의가 성황리에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