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모습들

여전히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닳아 없어지고, 지금 어디선가는 누군가 뺑소니를 당해 차가운 공기속으로 신음을 스미고 있고, 또 누군가는 얼마 전 약국에서 구입한 질좋은 콘돔을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요긴하게 쓰고 있을 터이다.

죽음, 환희, 생명, 그리고 아무것도 아님이 교차하는 매 순간 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아마 무지 덕택이 아닐까. 죽음을 앞두고 평생 역작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어가는 숨을 다해 미망인에게 받아적게 하는 자의 시간을 처절하게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쉽게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을 듯 하다.

죽음에 대한 예찬

일의 일정이 빡빡하여 거의 몇 년 만에 일요일에도 일을 했다. 일을 하기 싫었지만 일단 일에 착수하게 되면 생기는 내 앞에 떨어진 이 장애물을 어떻게든 완전히 사라지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6시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요즘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의미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언제 죽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얼마 전 놓칠 뻔 한 버스를 격렬하게 달려가 잡은 뒤 가슴에 강한 통증을 느낀 뒤로는 가슴이 살짝 살짝 아플 때가 더 잦다. 덜컥 걱정이 되어 다음날 바로 피트니스 클럽에 등록하여 주말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언제나 그래왔듯, 나는 운동도 마치 질 수 없는 싸움에 임하듯, 잘 해 낼 수 있다는 모습을 내 스스로와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는다. 죽음이란 이런 면에서 비장한 각오의 에너지를 나에게 불어 넣어 힘든 운동도 마다 않게 하고, 내키지 않는 일도 후딱 해치워 버리게 하는 것이다.

이런 광기에 가까운 의지 끝에 죽음이 매우 뒤늦게 찾아온다면 그것으로 좋지만, 금방 죽어버릴 처지에 끝낼 수 없는 일에 애를 쓴다면 조금 손해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콘서트라면 가차없이 예매도 하고 있다. 3월 31일 다이애나 크롤부터 4월 10일 박정현, 그리고 4월 30일 팻 메스니 그룹까지. 요즘 그래서 영희씨와 하는 말이 ‘우리 요즘 너무 럭셔리한거 아냐?’ 다. (웃음)

두려움을 용기와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다면 죽음이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아무 것도 바뀐 것은 없다

몸을 태우는 분노와 절망은 나를 닳게 한다.

언젠가는 나를 우울케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잿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새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또 하나의 아침은 어쩌면 상쾌할지도 모르겠다.

아무 것도 바뀐 것은 없다.

언제까지 계속될 지에 대한 의문

오늘도 새벽 두 시까지 잠들지 않았다. 내일은 무리해서라도 일찍 일어나 원래대로의 일상을 되찾고 싶다.

집에서 일한지도 이제 일주일이 다 되었다.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흐른다. 할 일이 많아 전체적인 조망을 하지 못하고 있다.

편안함과 치열함이 함께하는 근사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집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더 일하게 될 지 아직은 짐작이 가지 않는다.

C# 에 비하면 뒤떨어졌다고 느껴지는 이 단순하기 그지 없는 언어를 사용한 지도 5년이 넘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 언어를 사용한 적은 없었는데, 언제까지 계속될까.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는데, 나는 계속 함께 변화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지만 세월의 힘 앞에서 평범한 회사원의 생활을 지속한다. 인생이 모험이 되기에는 그렇게 녹녹하지 않은 것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높이를 알 수 없는 하늘처럼, 어쩌면 이런 의문은 스스로 채워 나갈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을 오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승부욕에 관하여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면 항상 어느 누구보다 잘하고 싶다. 프로그래밍은 물론 기술 트렌드에 대한 지식, 심지어는 취미인 사진까지도. 누군가 나의 능력과 그에 따르는 작업물을 보고 찬탄하길 바라는 것이다. 누군가와 겨루게 된다면 반드시 이기고 싶어한다. 나는 강한 승부욕을 갖고 있다.

초등학생때의 일들이 많이 생각난다.

컴퓨터 학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당시 BASIC 언어로 소수점 첫째 자리를 반올림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할 일이 있었는데, 나는 내장 함수명을 몰라 반올림 함수를 직접 작성하고 뿌듯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또래의 어떤 녀석이 내장 함수로 간단하게 만든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나를 놀리자, 나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엉엉 울었다.

정보처리 기능사 자격증 실기 시험장에서는 ‘소수’를 구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라는 문제를 만나, 소수의 정의를 몰라 감독관에게 물어 보았지만 가르쳐 주지 않아 시험에 떨어진 적도 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으니까 소수를 알 턱이 없었고, 소수의 정의를 가르쳐 준다고 해서 컴퓨터 자격증 시험에서 부정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단순히 소수가 무엇인지 몰라 떨어졌고, 덕택에 최연소 자격증 취득자의 영광을 다른 어떤 내 또래의 아이에게 넘기고 말았다. 사실 그래서 난 그 감독관을 아직도 어느 정도는 증오하고 있다.

그밖에도 운동회 달리기 대회에서는 달리다가 그만 쓰러지는 바람에 3등에 머물러 엉엉 우는 나를 달래려고 선생님이 없는 선물까지 구해다가 남이 안보는 곳에서 손에 쥐어 주셨던 기억도 난다.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최고의 능력과 그에 걸맞는 명성과 대접을 나는 바래 왔다. 능력뿐만이 아닌, 그에 맞는 인정을 받고 이름을 널리 알리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런 순간을 꿈꾸고, 그 순간을 위해 내 영혼을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끝으로 내달리고 있다.

마지막 순간 나는 어디에 있을까. 물론 시간이 말해 주겠지만, 그곳이 정상이 아니라면 어린 시절의 나처럼 실망스러워 하고 있지 않을까? (웃음)

새로운 일과에 적응하기

며칠 전부터는 하루 종일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재택 근무라는 것이다. 외국에서 송금되어 오는 돈을 받으며, 내 나름의 일과에 따라 일하고 휴식을 취하는 이 생활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두렵다. 이렇게 주어진 시간 조차 어느 사이엔가 점점 의미 없는 곳으로 사라져가는 것이. 주어진 기회로부터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미 없는 걱정이. 백일몽처럼 나타났다가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나는 정말 최고로 근사하게 즐기고 있는가?

며칠 전에는 주말 영어 회화 코스를 등록했다. 오랜만에 영어라는 언어를 글이 아닌 입을 통해 표현하려고 하니 긴장이 된다. 과연 내가 가진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유창하고 자신감에 넘친 모습과 함께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람이 어떤 좋은 일을 만나도 그 상황에 따른 근심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마음에 드리워진 무의미한 근심이라는 그림자를 이제는 치우고 매 순간 주어진 나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