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혼란에 관하여

SOUL’d OUT – 1,000,000 Monsters Attack

업무상의 사소한 실수로 지금은 집에서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을 그 시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글 을 쓴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 방금 말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이니까, 업무상의 일은 아무래도 좋다.

텅 빈 것으로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의 하룻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꿈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머리맡에 놓아 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마지막 권을 읽어 내려갔다. 이 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 다. 그것은 마치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과 같았다.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다. 소설가만이 알 수 있다. 자신의 앞날을 알게 되는 것 조차도 사실은 소설가의 계 획에서 비롯한 것임을 주인공은 모른다. 그들의 현명함도 무지도, 소설가가 만들어낸 세계 안의 그들에게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세상엔 내가 바꿀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을 뻔히 알면서 멍청스레 실수를 하기도 하고, 의외로 좋은 일도 생긴다. 그것은 4륜 구동차의 덜컹거리는 뒷칸에 앉아 거꾸로 멀어져가는 도로를 하염없이 바라볼 때의 느낌처럼 이미 과거라 불리우는 시간 속에 묻혀 멀어져 간다.

PS: 바다가 보고 싶다.

그대만으로 채우고 싶은 지구

Sowelu – No Limit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과거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틀림없이 그 둘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금의 나와 아무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먼 옛날의 일들도 조심스럽게 돌이켜 보면 알게 모르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맨발로 구두를 신고 걸은 탓에 발가락 껍질이 조금 벗겨졌는지 아픈 것처럼.

이런 인과 관계가 나에게 행운을 가져오기도 했고 나를 마음 아프게도 한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들다.

그대만으로 이 지구를 몽땅 채우고 싶다는 생각만 조용히 방안을 채운다.

다 버리기

대구에 내려가는 그녀를 배웅하고 터미널 옆의 CGV에서 영화를 한 편 보려고 했지만 예매를 하려 늘어선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바뀌어 일찍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나의 새 방으로 옮길 책상과 그 위에 달린 책장을 옮겨 놓으셨다. 나는 내가 가져갈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 년에 한 번쯤은 이렇게 예기치 않게 방 정리를 하게 된다. 마지막 정리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것들을 가차없이 버리는 과정은 스스로를 냉정한 자로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모든 생각을 비운 채 분류하고 버리는 일을 계속해 그 끝에 이르는 순간만큼 후련할 때도 없다.

중학교 시절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기술 선생은 수업 시간에 I = V / R 이라는, 저항이 작을 수록 흐르는 전류의 양은 더 크다는 기본적인 공식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저항이 0이 될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그는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전류에 어떤 일이 생기냐고 다시 물었다. 이렇게 몇 번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자 결국 그는 학 생들 앞에서 화를 내고 나를 학교 방송실에 데리고 가 혼냈다. 비록 체벌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있 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린다면 어떤 느낌일까. 새로 태어난 느낌일까.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무한대의 전류가 흐르는 일이 없듯 그런 일들은 현실의 나에게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정말인지 다행스럽고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느낄 수는 있지만 알 수는 없는 것에 관하여

My Aunt Mary – 공항 가는 길

말없이 팔을 버스의 차창에 걸친 채 바깥을 바라보면 이 긴 길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생각이라곤 남김없이 지워져버린 텅 빈 머리로 바라보기만 한다. 이 곳엔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버스 안에서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다. 느낄 수는 있었지만 알 수는 없었다. 이것이 내가 가진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단속적인 느 낌을 하나의 생각으로 엮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 한계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을까. 남들이 어떠하든 간에 내가 가진 한계는 가끔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내 인생은 일관성의 부재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어딘가 단편적으로 끊어져 뭉쳐지지 않는 것이다. 점점 모여 밀도를 높여가는 것이 아니라 팽창하는 풍선처럼 나는 스스로를 채우기가 힘들어져 간다.

존재는 느껴지되 실체는 알 수 없는 삶의 모순은 아마도 이렇게 종종 찾아와 나의 마음을 애처롭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품을 그리도록 종용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