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하기보다는 잊고 싶다

Davi – Let’s Fall in Love

연휴도 어느덧 반이 지났다. 잠도 충분히 잤고 방정리도 그 어느 때보다 깔끔하게 마쳤다. 잊고 싶은 기억은 휴지통으로 떠나보내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은 이리 저리 고심해서 정리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내가 지금 소중히 여기고 있는 기억도 어느 날엔가 는 그렇게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찾아오지는 않을까. 누구나가 새해가 되면 비슷한 생각을 한다. 한숨을 내쉰다. 세상엔 변하는게 참 많다고.

서랍 속에서 발견한 액자도 그랬다. 조용히 액자를 풀어 사진을 휴지통에 넣었다. 그리고는 액자를 깨끗이 닦아 책상에 눕혀 놓았다. 액자도 함께 버릴 걸 그랬다. 원하는 디자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고른 녀석인데. 내일 아침엔 멀쩡한 액자를 왜 버리냐는 가족들의 만류를 듣지 않을 시간에 몰래 액자도 실종시켜야 겠다. 세상엔 변하는 게 참 많구나.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이 세상은 오죽할까.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심지어는 자연마저도 우리와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

친구가 말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나 다툼 따위가 아니라 바로 ‘사랑했었다’라고.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어떤 것은 과거가 되고 어떤 것은 현재에 살아남아 계속된다. 마치 오늘의 태양이 어제의 태양이 있던 자리를 지워버리듯 변하지 않기를 바라던 것이 변해버 리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혼란 속에서, 내게 주어진 지금이 과거형이 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추억하기보다는 잊고 싶다. 내 전부를 던질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라고 외치고 싶다. 나는 사랑 안에 있으므로.

PS:

이 보잘것 없는 일기를 쓰는데 무려 두 시간이나 걸렸네요. 그럼에도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쨌든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거에요.

지금 내 곁의 사람들에게 충실하고 싶고 지금 내 앞의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는 제 마음을

그렇게 누군가에게 열중하고 나면 잊어버려야 할 추억도 그 열기에 녹아서 남아 있지가 않게 되어버린다는 표현이 저에게는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목소리로 쓰는 편지

My Little Lover – DESTINY

벌써 새해 첫 달의 2/3가 흘렀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 그만 놓치고 지나간 일이 있으면 어쩌나 조금은 걱정스럽다. 내 ‘할 일 목록’ 표에서 어느 순간 나타났다가는 사라져버린 많은 일들을 기억하기엔 나에게 할 일이 너무나 많은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위해 이번 달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쓰기로 했다. 지난 한 달간 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이야기들도 털어 놓고 앞으로의 계획도 편안히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정말 편안히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편지를 완전히 편안하게 써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편지라는 것이 가지는 전달력을 알게 된 뒤로부터는 말이다. 일본어와 영어로 펜팔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기도 하다. 나는 항상 연습장에 편지를 쓰고 이리저리 수정과 편집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편지지에 마지막 결과물을 옮겨적어왔다. 고백의 편지도, 크라스마스 편지도 그랬다.

돌이켜 보면 많은 후회가 남는다. 물론 한 편의 소설처럼 멋드러지게 정리된 편지는 꽤 인상적이지만, 좀 더 자연스럽게 마음이 은은 히 풍겨나는 편지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편지를 많이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 사람의 편지를 받기 전까지는 즉석에서 써 내려간 편지의 멋을 몰랐었다. 솔직함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마음에 와 닿는 그 사람의 온기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월 4일 어린이 대공원, 나는 독특한 시도를 해 보았다. 글로 남기지 않고 목소리로 전하는 편지를 썼다. 한적한 공원 길을 함께 거닐며 천천히 한마디 한마디 지난 번 편지의 답장을 써 내려갔다. 내 두근거리는 가슴의 진동 하나 하나를 목소리의 울림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은 그렇게 긴장했지만 이내 내 마음은 그녀의 미소는 엉킨 실타래를 풀듯 나를 편안함으로 이끌어 주었다. 오 히려 마음이 자유로웠다. 솔직한 느낌 그대로 모두 전했다.

이제는 조금 자연스러워지고 싶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항상 떠오르는 일들의 목소리에 경청하고 싶다.

새벽의 연애 노트

서영은 – 천사

지금은 새벽 세시 반, 서비스 업계의 기술직이다 보니 가끔은 이런 새벽 작업도 있기 마련이다. 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이번이 처음이 다. 지금까지는 테스트 장비도 없었기 때문에 실제 서비스 시스템에 직접 칼을 대는 위험한 짓을 해 왔지만 새로운 부장님이 오신 뒤 로는 많은 상황이 나아졌음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바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번 달은 순식간에 지나버릴 것 같다. 1년의 8.4%의 시간이 순식간에 내가 모르는 어딘가로 배출된 느낌이랄까? 이렇게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지탱하는 힘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사람은 알까?

함께 할 일 목록을 만들고 그 목록에 하나하나 선을 그어 간다. 그 선이 지금 몇 개가 그어져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늘어가는 목록의 길이와 그 위에 덧그려진 선들을 떠올리면 기쁘다. 누구나 느끼고 있을지 모르는 이 감정이 나에게만은 너무나 특별하다. 사랑은 역 시 두 사람만의 것이니까.

오랜만에 바뀐 그 사람의 컬러링에 전화를 잘못 건 줄 알고 놀랐지만 이내 적응했다. 가사를 염두에 두고 바꾼 걸까? 그랬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두 사람 사이의 편안함은 그 어떤 가사보다도 따뜻하다.

나의 하루를 그릴 때면 그 사람의 하루가 떠오른다. 지금 즈음 잠이 들어 있겠지? 내일은 출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겠지? 그 사람의 하루를 그리는 일은 즐겁고, 내 하루도 함께 즐거운 계획으로 가득찬다. 가끔은 서로의 계획이 교차하기도 하고, 나는 그로부터 두 사람의 입술이 닿는 것 같은 충만한 애정과 묘한 흥분을 느낀다.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다. 성격이 둘 다 모나지 않고 낙천적이어서 싸울 일이 없다. 이렇게 영원히 싸우지 않게 될까? 알 수 없다. 당연히 무엇보다도 싸우고 싶지 않다. 외부와의 싸움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족과 친척

Rita Calypso – Kinky Love

나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일까?

“너는 아가씨랑 대화 많이 하냐?” “글쎄, 워낙 가족같은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럼 말이 없거나 무뚝뚝한건가?” “가족이라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많지 않나? 내가 말하고자 한 건 가족들 사이처럼 어떤 필터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된다는 뜻이었어.”

생각해 보면 나는 부모님께 꽤나 무뚝뚝했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너무나 긴 시간을 같은 집에서 살아 오 면서 얻은 애증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부모님의 끊임없는 조언과 명령의 과잉상태에서 20년이 넘는 시간을 살다 보니 간단히 넘길 조언들도 짜증이 앞설 때가 많다. 모두 좋은 말들인 것은 알지만 나는 그 말은 일주일 전에도, 한 달 전에도 계속해서 들어 오고 있었기에 답답하기만 하다. 심지어는 30초 전 에 먹은 반찬을 한 번 먹어 보라고 권유받는 일 까지도… 이렇다 보니 어느새 꽤나 반복을 싫어하는 내 자신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차라리 부모님이 멀어서 쉽게 닿기 힘든 곳에 계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잘 해 나가긴 하겠지만 먼 곳의 부모님이 그립기도 할테고, 좋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전화 한통에 마음이 설레기도 할 듯 싶다.

누나와도 대화가 거의 없었지만 요즘에는 메신저 덕택에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좀 더 친한 사이가 되었다. 누나의 성격은 참 좋아 서 대화를 하다 보면 친근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친척이라던가 하는 개념은 나에게는 정말 익숙하지가 않다. 친인척 관계에 대한 특수한 호칭을 잘 모르는 것은 기본이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별로 좋지 않은 모습을 많이 목격한 터이라 가급적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항상 친척들이 모이는 행사를 나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지독히도 먼 거리를 달리는지 기는 지 알수도 없는 도로를 따라 행군하기는 더더욱 싫다. 오히려 회사 사람들과 파티를 열면 그것이 더 허물없을 것 같다.

이런 복잡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가끔씩 나를 주눅들게 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 나름대로의 응대도 하고 형식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익숙해진다는 것이 나에게 있어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날이 올까? 와야 할 필요는 있는 걸까?

춘천 여행 그 일주일 뒤

L’Arc~en~Ciel – winter fall

2003년 12월 28일. 춘천 소양댐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난 일이라니,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에겐 분명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지금 말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내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의 일부다.

소양댐에서 돈이 없어서, 아니 돈이 없는 줄 알고 유람선을 타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까? 우리는 그랬다. 많이 미안했고 우스운 실 수를 한데 대해서 아쉬움이 앞섰다. 하지만 그녀의 편안하고 너그러운 마음은 내 잘못을 잘못이 아닌 것처럼 대해 주었다. 그녀의 나 에 대한 배려는 진실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었다. 미안한 와중에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경이와 찬탄에 어쩔 줄을 몰랐다.

우리는 그 외에도 기차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는 실수도 했지만, 덕택에 춘천 조각공원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나름대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해는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바람은 점점 차가운 색을 띄기 시작했지만 행복했다. 불평을 하기보다 는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마음에 속으로 감사했다. 벤치에 함께 앉아 얼어붙은 강을 바라보았다. 겉은 얼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은 따뜻한 물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애정어린 편안함은 아름다움을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꽃처럼, 그렇게 그녀의 깊은 곳에서부터 조용히 전해져 왔다.

PS: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나의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지속되기 힘든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그 날 보냈던 수많 은 순간들의 조각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 몸 구석구석에 그들은 붉은 포도주처럼 흐르고 있는데. 그 점이 글을 조금 뒤늦게 쓰다 보면 슬프기도 하지만 나는 확실히 안다. 그 모든 한 방울 한 방울이 그 사람에 대한 ‘사랑’ 이라는 내 마음의 기준점을 나침반 처럼 변함없이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