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일본어반 첫 수강기

George Winston – Rain

오랜만에 다시 일본어 학원을 등록했다. 삼성역 근처의 ANC 라는 곳인데, 생각보다는 규모가 매우 작은 곳이었다. 사미사 학원에서 계속 6단계까지 배우고 싶었지만 거리나 시간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ANC를 택했다. 사미사와는 단계 체계가 달라서 좀 혼란스러웠는데, 수업을 듣고 나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나의 새 선생님이신 사토나오코 선생님은 처음 보는 순간 한국인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한국인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 1년 3개월 생활하셨다는 선생님은 한국어를 상당히 잘 하셨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오늘 수업은 네 명이서 함께 했는데, 두 분은 나이가 있는 분들이었고, 나의 파트너였던 이영희씨(였나)는 나와 비슷한 세대였다. 아 무래도 내가 가장 어린 사람인 것 같았는데, 다들 내가 23살이라 하니 믿기 어렵다는 듯이 웃음을 지어서 조금 당황했다. 거울속의 내 모습은 23살 청년의 모습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바꾸고 싶 은 생각은 없지만, 왠지 남들이 나를 더 늙게 느낀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불안하다. (웃음) 어쨌든 짝을 지어 하는 대화는 사미사때와 마찬가지로 재미있었다. 어쩌면 나는 바로 이런 자유로운 대화를 하는 즐거움을 위해 학원에 가는 것은 아닐까? 만약 어학 교환을 할 수 있는 동년배의 성격좋은 친구가 곁에 있었다면 나는 학원에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대로 원하는 사람을 구하기란 힘드니까, 오늘의 이 순간도 마음껏 즐겼다.

수업 교재나 과정 자체는 사미사 학원 쪽이 좀 더 좋은 것 같았다. 같은 문장을 좀 더 여러 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을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배울 내용 자체가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모두들 좋은 사람이고 또 사토 선생님도 참 친절하셔서 좋다. 한 시간 이십 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그 사람들의 모두를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Matrix Revolution, 카페와 회사

이수영 – Sunshine

퇴근 후 느긋하게 간다는 명목으로 궂이 신촌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588-1 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자리를 얻어서 편하게 책을 읽으며 올 수 있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이지만 피곤 그 자체는 여전히 피할 수가 없다. 거기에 지난주 수요일, 그러니까 11월 5일 오후 11시에 동우와 Matrix Revolution 을 보고 새벽 두시 반이 되어서야 잠드는 바람에 피로가 연속적으로 누적된 것 같다.

우선 Matrix Revolution 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자면, 아주 만족스러웠다. 특히 영상 면에서는 위대했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액션/SF 영화에서 이렇게 스타일리시한 영상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스토리도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다 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맞도록 정확히 구성되었으되 (내가 생각이 짧아 예상을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관람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도 보여주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특히 매트릭스 내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녹색 톤의 차분함 속에서 펼쳐지는 빗속에서의 역동 적인 격투 신은 아름답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주먹으로 물방울을 밀어나아가는 장면은 1편의 총알을 멈주는 장면의 역행임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실제 스토리상의 대칭과 맞아 떨어져 그 인상을 한층 고조시켰다.

영화의 감상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고 회사 이야기로 잠깐 되돌아가 보면, 사람들의 불필요한 타인에 대한 헐뜯음이나 논리상의 불일치 를 발견하게 되어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상사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즐겁게 식사해야 할 자리에서 그 사람의 무능이나 자 신에 영화의 감상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고 회사 이야기로 잠깐 되돌아가 보면, 사람들의 불필요한 타인에 대한 헐뜯음이나 논리상의 불일치를 발견하게 되어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상사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즐겁게 식사해야 할 자리에서 그 사람의 무능이나 자신에 영화의 감상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고 회사 이야기로 잠깐 되돌아가 보면, 사람들의 불필요한 타인에 대한 헐뜯음이나 논리상의 불일치를 발견하게 되어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상사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즐겁게 식사해야 할 자리에서 그 사람의 무능 이나 자신에 대한 무시를 이야기하는 것은 나로서는 참 싫다. 아니,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짜증을 부리는 것 자체가 싫다. 특히 쓸데 없이 비슷한데다가 부정적인 이야기가 매번 식탁 위에 오르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 전까지 한미은행 본점에서 근무할 때 혼자 교보 문고 melodies 에서 조용히 즐겁게 식사했던 때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있지도 않은 약속을 지어내어 혼자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고 싶어진다.

특히 상사의 등가죽을 긁어먹자거나 하는 이야기를 즐거운 듯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무능력을 지적할 합리성에 기반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지고, 자신들이 나중에 경험을 쌓아 그 자리에 섰을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 지 궁금해진다. 직원들을 위한 사기 진작을 위해 지불되는 커피 값과 회식비 외의 지출은 회사에서 지불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지불의 의무를 지지 않아야 한다. 이를테면 커피를 한 잔 주문했을 때 커피와 함께 케잌이 무료로 제공되면 좋지만 보통의 카페에서 케잌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비로 무언가를 제공함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호감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곳엔 도의나 의무, 분위기상의 강요 따위는 없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상사의 사비로 내 배를 채워야 할 때면 상당히 주저한다.)

다만 위 두 가지 문제에서 카페와 회사의 차이는 아마도 커피 맛이 나쁠 때는 고객으로서 불평할 수 있지만, 상사의 일 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함께 협력해서 체계상의 문제점을 고쳐가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몰취향한 사람의 불행한 연애

BOA – Duvet (Serial Experiments Lain Opening Theme)

사람을 만나면 묻는다. 휴일에는 어떻게 보내세요 라고. 어떤 취미가 있거나 한 사람을 만난 지가 너무 오래 되었음을 실감한다. 다들 그냥 쉬죠,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놀죠,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말해주기 싫은것 같기도 하고 정말 쉴때 저러는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저런 대답을 들으면 금새 그 사람에 대한 흥미라는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매스미디어가 현대인의 파김치가 되어버린 일상을 잠식하며 제공해오는 몰취향의 세계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나 자신이 멍청해진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들어서 싫다. 추상적으로 누구나 말하는 난 심플한게 좋아 같은 것들를 지금 취향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진정한 취향은 스스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브랜드 이름이나 드라마의 제목보다는 훨씬 근사하지만 역 시나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취향이 사라진 개인은 대부분 불행하다.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조차 반복의 연속이다. 스스로가 앞으로 무엇을 해 야 할 지, 스스로에 대한 무지나 두려움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갈래 속에서 시도하기도 전에 방향 감각을 잃는다. 어느 순간 너무나 외롭고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무작정 기대고 싶어 한다. 잠시나마 등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24시간 일주일 내내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의지하지 않으면 현실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불행의 증거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은 연애를 통해 행복해지기는 커녕 ‘누구라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 더 불행해질 확률이 크다.

만남이라는 복권

이수영 – 그래

한 주 동안 회사일로 많이 바빴다.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들을 회상하기엔 지금 이 순간도 너무나 빨리 흘러가고 있어 안타깝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순간은 나에겐 항상 그렇다. 애처로운 심정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며 지금 내가 꺼내야 할 말을 이리 저리 생각해 보지만 그 어느 것도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다. 조금이라도 말을 꺼내서 풀어나가기 시작해야 하는데.

경험을 통해 지난 수 년간 나의 화술이나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는 드라마틱하게 개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는 망설임이 앞선다. 만나서 아무 할 말도 없을 것만 같은데, 이 사람을 만나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만나면 그때 그때의 느낌과 생각에 맞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안심하곤 하지만 그 두려움의 순간은 내 몸 곳곳에 새겨져 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사람의 코드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기분좋게 그 일부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사람의 코드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기분좋게 그 일부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사람의 코드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기분좋게 그 일부를 흡수해 나아가며 그 사람을 배워 나갈 수도 있고, 도저히 체질에 맞지 않아 멀어져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만남이 가져오는 무엇보다도 값진 결과는 꽝이 없는 복권처럼 만족할만한 확률로 다가오는 동지애 아닐 까. 서로가 서로의 언어가 되어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만남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