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헛산 것 같은 이 느낌.

어떤 사람은 같은 시간을 살더라도 더 나은, 아니면 적어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지낸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마도 평균 정도는 되었으리라. 그러나 그 이상은 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오랜만에 예전에 활발히 활동하던 JavaService.net (http://www.javaservice.net/)에 들어가 보았다. 그저 멀게만 느껴지던 Enterprise Java의 물결이 그 곳에서 어찌나 가깝게 느껴지던지,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특히나 이아스(http://www.iasandcb.pe.kr/)라는 사람의 활발한 활동은 놀라울 정도였다. 나는 뭘 하고 지낸 걸까.

삶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는 나. 이 메일 주소가 바뀌면서 귀찮다는 이유로 여러 메일링 리스트에 내 새 메일 주소를 갱신하지도 않았다는 것 만으로도 나의 나태함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http://tech.gleamynode.net/ 도 오픈했으니, 좀 더 고삐를 당겨 보아야 하겠다. 사랑도 일도 그 무엇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조금은 유치한 생각이 드는 밤이다.

사랑의 정의와 나의 사랑

얼마 전, 정수와 차이나 비스트로라는 신촌의 한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했었다. 우리 건너편의 여러 손님이 앉을 수 있는 테 이블에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식사를 마친 채로 기나긴 수다를 계속하고 있었다. 처음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우리가 살짝 귀를 귀울이자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남자들은 쉽게 말해 ‘여자를 사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원하는 여자와 사귀기 위해 그녀에게 사용해야 할 다양한 테크닉의 디테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사귀게 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하는 추상적인 이야기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우리는 그들을 살짝 비웃었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벌써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

어쨌거나, 이런 많고도 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을 들을때면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가 어지럽거나 한 것이 아니 라, 길을 지나가다가 얼굴을 아는 사람을 지나친 것 같아서 잠깐 어리둥절해 하다가 아니라고 결론짓고 갈 길을 갈 때의 그 느낌이다. 완전한 혼란도 아닌 이런 어리둥절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사랑’이라는 단어는 언어로 만들어져서는 안되었던 것이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물론 ‘사랑해’ 라는 말은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명사는 왠지 부자연스렵다. ‘사랑을 하되 사랑은 모른다’는 말은 이런 연유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나.

굳이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자면, 사랑이란 호감, 증오, 소유욕, 관심, 역설, 성욕, 주거나 받고 싶은 마음, 두려움, 확신 등 아무 리 많은 단어를 나열해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랑은 우리 인생사의 모든 국면처럼 한결같이 동적이며, 따라서 역설적이다. 누군가 자신, 또는 남의 삶을 말로 설명하고자 할 때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내가 우리 삶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사랑을 좋아한다. 사랑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랑 그 자체가 지니는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좋다. 한때 일본에서 유행했던 가수들의 앨범 제목 ‘Sween and Bitter’ 처럼 나는 내 사랑의 쓴 맛과 단 맛을 모두 즐기련다.

멀어져가는 것과 가까워져 가는 것

지금까지 실제로 만난 적이 단 한 번 있는 좋은 친구 미린이의 홈페이지에 오랜만에 들렀다. 사실 그녀의 홈페이지를 자주 방문하지는 않는다. 오늘은 그녀의 MSN 메신저 닉네임이 특이해서 생각난 김에 오래 전부터 외워두었던 URL을 브라우저에 입력해 보았다. 어느새 봄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녹색으로 탈바꿈한 그녀의 홈페이지. 언제 쯤 리뉴얼한 걸까? 잘은 모르겠다. 오래전에 했을 수도 있 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남의 홈페이지를 그렇게 자주 들르는 사람은 아니니까. 반면 남이 내 홈페이지를 들르기는 꽤나 바라는 웃기는 사람이다.)

문득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 사람의 홈페이지를 방문한다던가, 편지를 한 통 보내 보는 것은 분명 내가 그 사람 을 그리고 있다는 표시다. 아련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 이미지로 남는다. 만질 듯 말듯한 희미한 기억은 나 자신이 가진 한계이며 동시에 그 반대다.

이런 실재적이면서도 아련한 기억의 조각들이 머릿속을 떠 다닐때면, 내가 익숙했던 많은 것으로부터 나 자신이 멀어져간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제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기억들 중 몇 %인가는 잊혀지고, 나는 어느 만큼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길이가 무한대인 도로를 계속해서 드라이브하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어쩌면 인생이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어딘가로부터 멀어져가며 동시에 다른 어딘가를 향해 가까 워져 가는 것. 다만 그 어딘가라는 것이 여럿 있어서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없는 것.

사이트 리뉴얼에 부쳐

저를 아시는 분은 아시리라 믿습니다. gleamynode.net 이라 불리웠던 그 시절의 제 홈페이지를요. 우리 모두에게 참 좋은 시절이었다 고 생각합니다(이 ‘우리’라는 정의가 그 시절을 좋게 느꼈던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gleamynode.net 의 의도는 제 자기 표현의 공간이자 그것을 알아 주고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저는 매일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꾸밈이 거의 없었지요.

그러나 코스튬 플레이 사진을 찍게 되면서부터 그런 사적인 것들을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약간의 대외용 멘트도 필요했던 것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주 있는 실수니까요. 저는 그 실수를 피하려다가 속히 말해 제 홈페이지를 개판쳤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지적해 주신 사항입니다만, 설상 가상으로 일기를 매일 쓰는 습관을 버렸고, 몇 번인가의 리뉴얼로 겉은 자주 바뀌었으나 실속은 없어져 가는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바빠지는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기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지막 몸부림을 쳐 보는 이유는 다들 아시죠?

자기 자신을 자신으로 있게 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