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때문에 충남 서산(엄밀히 말하면 인지면 둔당리)에 다녀 온 관계로 어제 일기를 지금 쓴다. 그 집에는 네트워크는 물론이며 CD-ROM 드라이브도 없었다 ㅡㅡ;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작년보단느 차가 덜 막히지 않을까 하는 기분으로 아버지께서 모는 차를 타고 고향 – 정말 내 고향일까 의문스러운 – 을 향했다. 예상대로 차가 별로 막히지 않아서 3시간도 안되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이어서 친척들과의 약간은 어색한 – 나만 어색한 – 만남이 이어졌고 저녁을 먹고 나와 나이가 비슷한 친척들과 놀았다.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좋았다. 그래도 주위의 친구들보다도 서로에 대해 모른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색했던 것은 사실이다.
사랑방에 누워서 오랜만에 컴퓨터로부터 떨어져 ‘장미의 이름’을 끝까지 읽었다.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와 비슷하게 – 놀랍게도 제목의 문법구조도 같다! – 소설의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하나의 세계 처럼 완결되는 것이었다. 잠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끝에 붙은 작품 해설을 읽어 보며,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수많은 메타포어가 그 속에 무한에 가깝에 숨어 있었다는 것, 다만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 뿐이라는 데 대한 경외심을 느꼈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것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불가능할런지도 모르겠다.
몇 해 만의 시골 방문. 큰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의 관계도 많이 호전되어 있음을 느꼈다. 작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오랫 동안 모시고 있어서 불만도 많고 말싸움도 많았었는데, 올해는 분위기가 매우 온화하고 즐거웠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술자리에서 목소리가 커 질까? 내가 많이 마셔 보지 않은 사람이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테지만, 그래도 묻고 싶다. 그렇게 큰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하면 자기 생각이 그렇게 커 보이는 거냐고. 사실 이것은 관계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는 문제일텐데 내가 너무 일반화시켰는지도 모른다. 어쨋든 귀가 아픈 것은 싫은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