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다. 어떤 사람은 그것에 더 많이 익숙하고 다른 이는 그렇지 못하다. 나는 그 중간 즈음에 위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외국 생활을 오래 했다거나 외국계 회사에서 오래 일했다는 이유로 한국어 문장 속에서 영어를 혼용하는 것이 아직은 거북하게 들린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 말이다:
- Boss – 상사
- Claim – 불만 사항
- Expense – 비용
- Industry – 업계
- Meeting – 회의
- Office – 사무소
- Payroll – 월급 명세
- Position – 직위
- Post – 글
- Report – 보고
수시로 문장마다 한자를 섞어 쓰는 마당에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익숙함의 차이 아니겠냐고 대답하겠다. 내 모든 글에서 가능한 글자를 전부 한자로 바꿔버린다면 거북해 할 사람들이 영어로 바꿀 경우보다 훨씬 많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듯 말이다.
하지만 중간 즈음에 위치한 사람인 나는 혼란스럽다. 나도 모르게 섞어 말하고, 적절한 한국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에게서 그런 경우를 보면 왠지 거북하고, 그래서 내게서 그런 말이 나오면 부끄러울 때도 있다.
그런데 이것을 조금만 더 확장해 보면, 수학자가 각종 수학 용어를 섞어 일반인과 소통한다면 그것이 비록 영어가 털끝만치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한국어라 할 지라도 거북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특히나 수학 기호나 미적분학 용어만 보면 멀미가 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가정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거북함이라는 것은 어쩌면 그냥 ‘나한테 익숙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이 왠지 잘난 체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별의 별 것이 상대적으로 인식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내가 남을 무제한적으로 배려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이상적으로야 똘레랑스를 바탕으로 서로를 자유롭게 받아들여야 마땅하겠지만, 끼리 끼리 논다는 말이 좀 더 현실적이다. 결국에는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나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끼리 끼리 성향은 나이가 들 수록 고착화되고 새 친구를 사귀기 어렵게 만들어, 노년에는 세상을 떠나가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만 깊어지게 되는 것 아닐까, 어렴풋이 두려움을 깔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