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맞이 이직 1년 결산

9월 1일, 이직을 했다. 나는 덕택에 풀타임 오픈 소서 및 수석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명칭을 얻었다. 전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게 되었다. 거기다가 마치 ‘노동의 미래‘나 ‘세계는 평평하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재택 근무 작업 환경도 차렸다.

무엇을 사더라도 예전보다도 ‘더 멋진’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더 많은 음반이 아마존을 통해 내 콜렉션에 추가되었다.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전반적인 건강상의 향상도 얻었다. 이 정도라면 거의 모든 면에서 내 삶의 질은 진보했다, 라고 평할 수 있을까?

다소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에 비해 내면의 질은 많은 향상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전보다 더 바빠졌다. 수영왕 펠프스가 연습시간에는 수영을 하고, 수영 녹화 영상을 보는 것으로 여가를 보낸다면, 프로그래밍왕도 아닌 나는 시간대를 허물어가며 업무 시간에는 프로그래밍을 하고, 프로그래밍으로 여가를 보내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단순히 새 직장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저 나의 프로그래밍에 대한 순수한, 아니 본능에 가까운 욕구가 새 직장이라는 침실을 차지하게 되면서 생긴 예측된 수순에 다름없다. 이러한 실락원에서나 볼법한 뜨거운 만남은 나를 자발적 과로로 인한 커리어 파멸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다음 단계로의 도약으로 이끌 것인가.

정답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 지 내 스스로도 모르겠다. 나는 전보다 교양서나 소설을 더 적게 읽는다. 뿐만 아니라 기술서도 더 적게 읽는다. 이 상황의 심각성은 내가 ‘알만큼 알아서‘와는 거리가 먼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 한 때 날렸던 누군가가 새로 들어온 똑똑한 친구에게 험담이나 당하는 꼴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한 때 그 ‘똑똑한 친구‘에 해당했던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고, 또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그것은 다르게 말한다면 ‘내가 가장 유능할 수 있는 위치는 어디까지이고, 내가 가장 무능할 수 있는 위치는 어디부터인가‘일 것이다. 그리고 그 위치는 지금으로서는 뭐랄까, 다소 무섭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오늘도, 조금은 힘들지만 변화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