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부림, 열정

어김없이 아스팔트를 가르는 자동차들과 함께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는 기분으로 버스를 탔다. 오늘도 우중충하면서도 상쾌한 공기다. 버스의 답답한 기운은 내가 왜 여기에 서 있어야 한는지 이유조차 잊게 한다. 학교에 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어수선한 분위기의 관광 코스를 돌고 있는 기분이다. 이 뜨거운 공기 안에서라면 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쏠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름대로 나는 2년 남짓이라는 길다면 길다고 해야 할 세월을 참으며 통학을 해 왔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지만, 어쩌면 이 뜨거운 공기는 희망이 가져다 주는 열정의 2차 효과일 뿐일런지도 모른다. 다들 작아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열정을 갖고 이 600원짜리 버스에 타서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어딘가를 향해 매일같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짧은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고 미온의 열정이 이 세상 곳곳에 무의식적으로 뿌려진다고 생각한다.

버스에 내려 다시 우중충상쾌한 공기와 함께 정확히 수업 시간 4분 전에 강의실에 들어섰을 땐 아무도 없었다. 잠시나마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럴리가 없다. 밖에 게시판에 붙은 연합 채플 공지사항이 기억난다. 그게 하필 오늘 아침이라니. 어제는 2시에 자서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힘들어서 미칠 것 같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내 기대가 무너져내리니 수업이 없는데도 수업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여유를 내서 산 포도농장이라는 포도 쥬스를 마시며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왔다. 다음에 일어날 일은 조금 뻔하다. 이제 무얼 해야 할지, 갑자기 길잃은 개처럼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결국엔 언제나처럼 컴퓨터실에 가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실에 도착했을 땐 아까 버스 안에서나 느꼈을 법한 미지근한 온기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버스의 기운과 이 곳의 기운은 사뭇 다르다. 어디까지나 기계의 그것은 열정이라기보다는 발열이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 홈페이지를 관리하고는 어제 읽다 만 소설을 마저 읽어내려갔다.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 속에서 멋진 글귀도 찾아서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하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에겐 오늘도 결정적으로 이 곳에서 항상 느끼는 ‘갈증’ 이라고 하는 것을 해소할 수가 없다. 왠지 모르게 나는 이 곳에서 내가 내는 ‘체온’이란 것이 열정이라기 보다는 삶의 몸부림이라는 생각히 들었다. 열정과 몸부림은 비슷하다. 다만 그것은 비슷할 뿐이다. 본질은 다르다. 마치 치즈와 버터의 차이와 같다. 둘 다 같은 원료를 사용하지만 어디까지나 버터가 더 느끼하다. 마찬가지로 몸부림은 느끼하다. 상쾌한 터치가 되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필요를 느꼈다.

마침 PDA 가 수업시간을 알린다. 선배와 수업시간에 들어갔다. 읽던 소설을 마저 다 읽어버렸다. 아직도 소설의 결말 부분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주제 조차 파악이 되지를 않는다. 잠시나마 멍한 CHAOS에 빠져 있는 사이에 수업의 반이 끝나고 잠시 휴식시간에 찾아왔다. 밖에서 동창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강의실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재헌이가 수업엘 들어왔다. 아마도 어제 태워먹은 CPU를 교환하러 갔다 온 거겠지. 아까 동창과 했던 내가 읽은 소설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을 그와 다시 한 번 이야기한 뒤에 수업이 끝났다.

다시 컴퓨터실로 돌아온 나는 조금 쉬다가 이미 딜레이되어버린 운영체제 숙제를 했다. 5인 1조가 되어서 하는 숙제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충분이 잘 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분간 프로그래밍은 꼴도 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다. 단체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오늘 같은 경우엔 인내력 테스트에 좋다 할 수 있겠다.

기침이 계속 난다. 어제 본 파이란처럼 폐가 아파서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죽어도 그만이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어째서 나에겐 이리도 살아야 한다는 몸부림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역시 열정과 몸부림은 적어도 같은 뿌리를 갖고 있기는 한 듯 싶다. 사실 다른게 근본적으로는 없는지도 모른다.

내 몸 안의 작은 열정은 나도 모르는 동안 언제나 있다. 죽기보다 싫은 일을 할 때도 꺼저가는 열정을 짜 내어 무언가를 해야만 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생각할 때 열정의 불꽃에 기름을 들이붓기도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생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겐 최소한의 열정이 식지 않고 발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열정은 우리 몸 안에 함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항상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의처/부증과도 같다. 심해지면 집착이 된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지만, 사랑과 집착은 정말 작은 차이에서 온다. 상대방을 항상 생각하되,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사랑은 어느샌가 집착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내가 한 것들이 사랑이긴 한 것인지. 난 변변히 잘난 사랑도 한 번 해 본적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아직도 어떤 만남을 할 때 마다 그 사람들 모두를 내 연인처럼 대하고 싶다고 느끼곤 한다. 정말 내가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만난지 며칠이 지나도록 만난 사람의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 본다. 지금쯤 양치질을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까? 어떤 기분으로 숙제를 하고 있을까? 이 모든 생각들이 집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바보 같은 감정을 갖지 않도록 노력한다.

지금으로선 이런 일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싶다.

PS: 사진은 내가 쓰고 있는 향수… 누나에게 선물받은 것인데 향이 맘에 든다. 예전에 타미힐피거 애프터쉐이브 쓸 땐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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