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왼쪽눈에 다시 생긴 쌍커풀. 이것을 일컬어 하루키는 절망이라 하였던가. 나는 오늘도 내가 있던 그 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쌍커풀 따위의 미신에 흔들리다니 나 자신을 향해 가벼운 조소를 지어 보았다. 하지만 이 세상은 미신으로 가득차 있는걸.
사는 이유를 잠시 잊고 생활을 하니, 오늘은 아주 평범하고 그리 우울하지도 않았다. 특히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을 빌리니 기분이 좋았다(내가 나를 위해 빌린 책은 아니고 우유가 레포트 쓰는 데 필요하다고 빌려달라 부탁한 책인데, 상당히 재미있어 보인다. 그리고 나는 책을 보통 빌리지 않고 구입한다.). 책을 껴 안고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갈 때의 기분이란 색다른 것이다. 혹시 미끄러져서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한켠으로는 뿌듯한 마음이 교차한다. 미묘한 감정의 충돌이 삶에 새로운 색깔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여느때처럼 재헌이는 꼬임에 넘어가 대성선배, 재헌, 나 셋이서 당구를 치고 (오늘은 내가 1등을 했다 핫핫…) 수업을 들었다.
파일 처리론 시험 성적이 나왔다. 100점 만점인 것 같은데 5 점 나왔다. 그럴 줄 알았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 않았다.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 훨씬 위안이 되었다. 다음 시험과 기말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면 쉽게 따라잡을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곤 오랫만에 집에 일찍 돌아와서 한가한 김에 머리를 이쁘게 깎고 내일이 마감인 서양 문화의 유산 레포트를 썼다. 시간이 없어서 쓰레기 같은 레포트가 나온 것 같은데, 현애가 말해 주기로는 괜찮다고는 하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레포트 쓰는데 갖은 글늘리기와 설명을 해대느라 힘이 다 빠져서 일기에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 쓰레기 같은 글을 쓰고도 이렇게 뭔가 한 것 처럼 쓰려니 답답해 죽겠다.
내일은 좀더 열심히, 좀더 즐겁게, 좀더 가깝게…
PS: 그림은 오늘 내가 쓴 레포트의 모습을 상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