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Minutes

어제 러닝머신을 했더니 피곤해서 12시 30 분 쯤에 잠이 들어서 9시 쯤에 일어났다. 일찍 잤음에도 불구하고 9시에 일어나니 기분이 묘했다. 비가 왔던 탓인지 아침공기는 너무나 상쾌하고 새로운 일들이 하나둘씩 내 앞에 다가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차피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내도 다가올 일은 다가오겠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새로운 일을 좀 더 새로운 일 답게 여기고 멋지게 대할 수 있으리라.

아침을 먹고 신촌에 도착해서, 지난 일요일에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국민 Free Pass 카드를 만들었다. 재헌이에게 카드 만드는 창구는 따로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카드 신규 가입’ 이란 창구는 어디에도 없었기에 나는 필요도 없는 대기표를 뽑고 기다렸다. 결국에는 대기표와 무관하게 카드를 작성하게 되었는데, 이것 저것 적고 마지막에 인터넷 뱅킹 암호를 써 달라고 하길래, PDA 로 랜덤생성한 뒤에 PDA 로 이거로 해주세요~ 하고 보여줬더니, 점원이 PDA 에 대해서 잘 모르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는 바람에 카드 발급 시간이 거의 두 배로 길어졌다. 그래도 좀 참고 PDA 에 대해 설명해 주고 결국은 카드를 수령했다. 웹에서 보건 것과는 다른 외양의 Free Pass 카드였는데, Mondex 라는 전자화폐 기능이 추가된 것이었다. 어차피 교통카드 외에는 쓸 일도 없을 터였기에, 그저 잠깐 신기해서 팜플렛을 읽어보고는 가방 속에 집어넣어버렸다.

핸드폰에 달린 시계 – 나는 손목시계를 좋아하는데, 지난번에 시계가 고장나서 버린 이후로는 손목 시계가 없어서 아주 불편하다 – 를 보니 12시 20분이었다. 지현이가 학교 갔다 돌아올 시간이어서, 옷을 같이 바꾸러 가면 어떨까 해서 전화를 했는데 아직 학교란다. 그래서 나 혼자 바꾸러 가기고 하고 – 그녀는 미안하다 하는데 그냥 전화를 걸지 않았어야 하나 – 현대 백화점으로 갔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생각해 보니 무슨 색으로 바꿔야 할지를 확실히 하려고 다시 걸어서 물어보고 매장에 가서는 흰색으로 교환을 했다. 눈부시도록 하얀 색이었다. 사실 처음 선물을 살 때도 흰색이 어울릴 것 같았는데, 왜 핑크색을 골랐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나중에 이 옷을 입은 모습을 보게 될 상상을 해 보았다. Oh Pretty Baby~! 푸핫…;

학교 컴퓨터 실에 가 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잠금을 해체하고 – 전자열쇠라서 자물쇠를 딴다거나 하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 들어가니, 컴퓨터들이 돌아갈 때 나는 특유의 퀭한 냄새가 진동했다. 에어컨을 풀로 가동시키고 아래 층에 내려가서 음료수를 마시고 돌아와 보니 냄새가 한결 가셔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지현이에겐 미안하지만 공부를 별로 하지 못해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0 챕터 중에 3 챕터 정도밖에 끝내질 못해서 적절히 중요한 내용만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역시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지 자꾸 촉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 시간 남았을 때 쯤 이미 노트의 마지막 장을 볼 수가 있게 되어서 여유롭게 그녀와 SAY 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어제 열심히 쉬어서 공부가 오늘 너무 잘된다는 둥 농담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재헌이와 시험장에 갔다.

시험장 앞에서 강의실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재헌이에게 지현이가 어제 내 줬던 전구 알아맞추기 퀴즈를 내 줬다. 내가 힌트를 줘서 재헌이가 풀은지 얼마 되지 않아 강의실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시험문제는 O/X퀴즈, 5지선다, 단답형, 서술형으로 나왔는데, 단답형은 단 한 문제여서 다행이었고, 서술형은 나름대로 아는 것이 나와서 다 채울 수 있었다. 조금 모르는 문제가 나오긴 했지만 지난 시험에 비해서는 훨씬 많이 (특히 서술형) 풀 수 있어서 기뻤다.

끝나고 그녀에게 바꾼 옷을 전해 주러 맥도널드 앞에 갔다. 그녀가 내려와서 시험 본 이야기… 우리 학교의 계절학기 시스템… 그녀 학교의 철회, 계절학기 시스템… 계절학기 이야기라던가, 썰렁한 하와이 티셔츠 유머 따위를 이야기했다. 10분 정도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경비 아저씨가 기분에 거슬렸는지 나가서 이야기하라고 하셔서 바이바이를 하고 헤어졌다. 짧은 시간이었고 갑자기 인사하며 헤어졌지만 무엇때문인지 난 조금은 기쁘게 미소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오면서 목소리를 떠올리니, 오늘은 왠지 힘이 없어 보여 걱정스러웠다. 뒤에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여자 대학생 넷이서 너네 누나처럼 누구누구가 캡 이쁘다는둥, 오늘 니 헬로키티 팬티가 너무 이쁘다는둥, 팬티가 보이냐고 아유 민망하다는 둥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나는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답답한 마음에 상실의 시대를 읽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내 그만두고 안경을 벗은 채 스쳐지나가는 시가지를 바라 보게 되어서야 시원한 기분으로 집에 올 수 있었다.

답답한 기분은 정말 싫다. 아무 일도 없는데 무언가 안되가는 기분. 끊임없이 사소한 일에 대해 궁금해 지는 것이라던가 따위의 습관이 다시 생겨나곤 할 때는 여지 없이 답답한 때였다. 좀 시원한 기분으로, 아침의 그 기분으로 되돌아가야지.

PS: 어설픈 나의 패러디를 용서하거라 뿌하하 -_-; 그리고 사진이 없어서 화면은 못채움; 만들고 보니 대따 웃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