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난 것은 엄밀히 말해 오전 9시였지만 아침밥을 먹게 된 것은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윈도우즈에서 나오는 소리를 내가 자주 쓰는 리눅스에 달린 스피커에서 출력되도록 하려고 한참 해맨 탓이었다. 그래도 개발자와 시간대가 잘 맞아서인지 거의 실시간으로 E-mail을 주고 받을 수 있어서 어느 정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집에 있으면 공부 안되는 것 뻔히 알기에 학교에 와서 공부를 했다. 특별히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기만하지도 않으면서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했다. 특히 연하란 친구가 나에게 ‘넌 항상 희망을 주는 친구여서 좋아’ 라고 해 주어서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사실 특별히 힘이 되어 줄 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그 때가 사실은 나에게 독특하고 특별한 시간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5시 쯤 되어서 재헌이, 대성형, 수재, 나 넷이서 당구 치고… 7시 다 되어서 맛있는 유부초밥 도시락 사들고 컴퓨터실에 와서 저녁 먹고 (나는 속이 안좋아서 조금만 먹겠다고 했는데 막상 음식이 나오니 식욕이 왕성해졌다 -_-;) 성훈이형 만나서 재헌이랑 셋이서 이야기 좀 하다가 밖에서 파파이스 먹고 또 당구치다 보니 12시가 넘어서 재헌이네 집에서 자게 되었다.
그리고, 재헌이네 집에서 이 일기를 쓰면서 편지를 확인해 보니, 누군가에게 멋진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 첫만남에서 호감이 느껴지나 날이 갈수록 실망감을 안겨주는 사람이 있다.. 첫만남에서 아무런 감흥이 없었으나 날이 갈수록 괜찮아지는 사람이 있다..
첫만남 전에 어떤이에 대한 선입관이 작용하여 괜시리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첫만남에서도 그 후에도 있는듯 없는듯 어떤이의 존재를 알지 못하다가.. 어느날 문득 그 사람이 흙속에 묻힌 진주임을 발견할 때가 있다..
자주 만나면서도 필요할 때 일말의 위로가 되어주지 못하는 이가 있고.. 일년에 한번을 만나도 마음으로부터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다..
냉정함과 깐깐함 뒤에 온정이 숨어 있는 이가 있고.. 부드러움 뒤에 칼날 같은 비정함이 숨어 있는 이가 있다..
하루에 한번 만나 일상을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일주에 한번 만나 연극을 관람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한달에 한번 만나 음주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계절에 한번 만나 여행을 함께가고 싶은 사람이 있고.. 일년에 두번 만나 서로를 충고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일년에 한번 만나 가치관 점검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십년에 한번 만나 강산의 변화 느끼고픈 사람이 있고.. 삼십년 후에 한번만 만나 주름진 모습에서 살아온 발자취를 유추해보고픈 사람이 있다.. }}}
나는 정말로 당신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PS: 친구네 집이라 사진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