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아르바이트도 끝났고, 이제 지지난주와 같은 생활의 시작이다. 11시까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되고, 수업을 들은 척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하느라 바빴던 지난일을 잊으려고 하는 것 처럼 나는 아직도 다 읽지 못한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의 상권을 읽기 시작한다. 도대체 이 소설이 나한테 말하려고 하는 건 무엇일까 한참을 헤맨다. 결국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끝에 가서야만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쩌면 그것은 소설이란 것이 지닌 유일한 매력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묘사나 개성적인 표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보여주고 있는 작가의 의도에 대한 파악이나 독자의 제멋대로의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제멋대로 해석하는 편이다. 너무 어렵다 싶으면 평론을 읽기도 하지만, 그렇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본능적으로 어려운 말들을 싫어한다. 예시하거나 빗댄 것을 – 실제로 그렇게 표현할 능력은 부족하지만 – 좋아하는 편이다.

재헌이와 당구 좀 치고 라이코스 일 마무리 해 주러 갔다. 일요일날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날 누전으로 건물이 정전이 되버려서 갈 필요가 없었는데, 오늘은 복구가 된 모양이다. 물론 예상은 틀리긴 했지만서도, 적어도 컴퓨터는 돌아가고 있었다. 에어컨이 안돌아간다는데 큰 문제였는데, 너무 더워서 팥빙수도 먹고 하면서 일했다. 사실 일했다고 하기도 뭐한 것이, 실제로 코딩한 것은 5줄 도 안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되는데, 내가 왜 와야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글 윈도우즈 2000 서버도 빌리고, 주민등록등본과 통장 사본도 제출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 일은 없었으니까 왠지 와서는 안될 곳에 온 기분이 들었다.

몇 시간 쯤 그 곳에 머물렀을까. 일이 대충 마무리가 되어서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팀원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나가려는데, 보람 누나가 어딜 가냐고, 계속 있으라고 부탁 – 아니 명령 – 한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 깊이가 있다. 그래서 농담과 진심을 구분하기 어렵다.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서 그 자리에 멈춰서서 살짝 웃었다. 그녀는 웃으며 다음에 또 보자며 안녕을 말했다. 난 정말 모르겠다. 사람들의 눈빛을… 특히 그것이 아름다울 때는…

집에 있다가 상원이네 가서 상원이네 누나인 보경 누나에게 머리 염색을 받았다. 꽃을 든 남자 Orange Cooper로 했는데, 예전에 했던 색 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안 한 것 보다는 나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다음번엔 좀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기분좋은 색으로 하고 싶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해 주어서 더 밝은 색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런데 왜 이렇게 염색에 대해 쓰냐고? 염색하면 좀 덜 아저씨 같아 보이니까 그렇지. 난 누가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 별로 안좋아하니까. 한 때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나보고 자꾸 그렇게 놀려서 처음으로 염색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를 포기한 뒤로는 염색 한 번 안하고 지냈다. 사실 내가 원하는 머리 색은 검은색이였기에. 하지만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검은색”이라는 것은 블랙 홀의 그것과도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해도 달성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난 그것마저 포기해야만 했다.

16 color로 보는 체크무늬가 가득찬 화면은 정말인지 심플하지 못하구나. 오늘은 컴퓨터를 제대로 쓸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빌며… 생각나는 사람들을 마구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