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서 회사에 오전에 도착해서 문서좀 수정하고 윤택현 소장님이 사주신 맛있는 히레야 우동을 먹고 맨하탄의 상징인 빌딩이 양각된 열쇠고리를 선물받았다. 얼마 전에 열쇠고리를 돈 주고 샀는데 역시 앞일은 누구도 모르는구나 ㅡㅡ;
집에 도착해서 아버지 컴퓨터 연결 공유 시도하다가 잘 안되서 시간 꽤 소비하고 약간 쉬다 보니 저녁먹을 시간. 밖에 나가서 제주 흑돼지 5겹살인지 하는 걸 먹었는데 5겹의 제일 윗 층이 돼지의 피부였다. 구울때 보면 피부 층에 털이 박혀 있다 -_- 면도기로 밀긴 민 것 같은데 너무 역겹다는 생각도 들고 실제로 그 부분의 맛도 너무 느끼해서 얼마 먹지는 못했다.
집에 다시 돌아와서는 상연이 생각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성적이면서도 중성적인 면이 카푸치노처럼 조화된 달콤한 목소리였다. 그녀와 주고 받은 편지를 모두 읽으며 그녀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사실은 그녀가 다니는 학교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를 않아서 어떤 단서를 찾기 위해 그런 노력을 기울였는데, 결국 얻고자 하는 것은 얻지 못했지만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고 할 그녀에 대한 인상과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녀에게 오늘 도착한 문자를 읽어 보니 10시에 전화를 한다고 하길래, 지난 번에는 그녀가 전화했었고, 또 내가 편지를 쓴다고 해 놓고선 아직도 쓰지 않은데다가 오늘 그녀의 편지를 받았다는 약간의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녀가 전화를 걸 것으로 예상되는 10 시 보다 5분 빠르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녀는 받자마자 희승아 내가 있다가 30분 뒤에 다시 전화할게 알았지~! 하며 짧디 짧은 통화를 끝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난 번의 술집에 있을 때 받은 전화로부터의 목소리보다 더 깊은 목소리였다. 마치 금방 녹아버리는 비타민 씨의 짜릿한 맛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내 귀에 짜릿하게 남았다.
그녀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30분에서 5~10분 정도 더 지난 시각이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자칫하면 매우 짧게 끝날 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너무 아쉽다고 생각되어서 – 특히 멋진 목소리의 소유자와는 더욱더 그렇다 – 그녀에게 전화 통화가 너무 짧지 않냐고 해서 단 1분 30초 짜리 통화를 1시간 이상으로 늘려놓고 말았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통화끝에 그녀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도 알게 되었고, 그녀의 삶의 스타일이라던가 만남에 대한 생각을 나름대로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특히 그녀의 생각의 표현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그녀는 종종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나에게 내 자신의 뜻을 묻곤 하는 것이 나를 그렇게 감명깊게 만들었다. 사실 나는 그런 일을 거의 하지 않는데, 그녀는 그것을 통해서 서로의 즐거움을 공유시키는 데 무의식적인 재주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를 내일 만난다.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그녀가 가진 여유의 덕을 볼 것 같은 만남이다. 그 여유속으로 들어가 언제까지고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인생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일 6시에는 미린이랑, 수재랑, 그리고 미린이 친구분이랑 만난다. 소위 2:2 미팅이란 것! ㅡㅡ; 새로운 사람을 하루에 두 명이나 만난다니 조금 부담스럽고, 또 상연이가 시간을 그렇게 내 주었는데 짧은 시간 밖에 함께 있지 못한다는데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몇번이고 미룰 까 생각했지만, 미린이와 그 친구분을 생각하면 양심의 가책에 대한 딜레마는 더더욱 커져서 결국 어떻게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들은 이해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