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myself.

소심함은 두려움을 낳는다. 두려움을 무력함을 수반하며, 무력함은 자괴감을 갖게 만든다. 자괴감은 다시 소심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고리 안에 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과 함게 수반되는 존재에 대한 회의에 대해서 거부하고 싶다. 내가 어째서 무엇을 위해, 또는 누구를 위해 이 곳에 위치하는지 생각하려고 할 때 마다 필연적인 무답을 얻어내는 것에서 조금은 신물이 났다고 할까. 결국 그들은 내가 빠져 있는 고리를 느슨하게 하기는 커녕 점점 끊을 수 없게 조여가고 있다.

자신의 존재는 가만히 앉아 사유함으로는 얻어낼 수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글을 쓰고 누워서 생각에 흠뻑 빠져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거의 모두 실패였었을음 나는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실을 조금이나라 어렴풋이 깨달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우 혼란스럽다. 어려서부터 나는 많은 상황에서 가상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중요한 총체적이며 추상적인 법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 법칙이란 인간 자신의 사유에 의해 완전히 정립되기를 기대해 왔었다. 나는 그런 절대적인 무언가를 찾아 해메였었다. 결국 지금은 나의 기나긴 탐험이 좋은 선택이었는지에 대해 자신할 수 없다.

이젠 나를 잊은 채 새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격렬하고 끊임없는, 미쳐서 부서질 정도로 그것이 나인지 아니면 내가 추구하는 것인지 모르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나를 내 자신 뿐만아니라 이성에 대해서도 조금 미쳐버렸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서로에게 완전히 미쳐버려서 그녀가 나인지 내가 그녀인지, 서로가 ‘우리’ 라고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단 하나의 융합된 개체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만지면 서로 녹아서 붙어버릴 것 같은 관계였으면 좋겠다고 최근 생각했던 것은 지금의 내 생각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내가 어찌 되어 이런 생각을 했든 간에, 나는 내 안에서 나를 조금 도려내고자 한다. 운이 좋았다면 내 자아의 일부도 함게 도려져 새로운 모험에 조금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나와 ‘단절’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으로 지워져갈 것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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