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ted.

“한때 일기를 꼬박꼬박 쓴적이 있습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10년쯤 지나 그 일기장을 발견하고서 들추었을때에..

그곳에 담겨있는 것은, 나의 소중한 기억이 아니라, 어린시절의 유치한 생각들이었습니다.

………

이곳, 뭐 어느곳이라도 상관없구요. 자기가 남긴 글들, 자기가 한 행동들, 10년쯤후에 다시 보게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것도 미덕이겠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체와 우유부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유치하다거나 실수를 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다음번의 잠재적 실수 가능성을 더 증폭시킨다는 것을 왜 모를까.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는 그 평화를 지나치게 지키려 하기 때문에 무너져가고 있는데.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 볼 의무와 타인과의 충돌을 발생시키고 해결할 의무를 포기한다면 외적 안정외에 우리에게 무엇이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린 곤충이 아니다.


호연씨를 만났다. 헤어질 때,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 어땠어요?” “좋았어요.” “어떻게 좋았는데요?” “좋은 날에 좋은 사람 만나서 즐거웠어요.” “그럼 님은 어땠어요?” “저도 좋았어요.” “왜 좋았는데요?”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요. 그러니까, 새로운 사람.”

그리고, 그 중에서 아마도 당신이라는 사람이라고 말했더라면 좋았으련만.


서로 솔직해졌으면 좋겠다고 다짐하지만, 내 자신의 깊은 곳을 남에게 쉽사리 설명할 수 없었기에, 항상 나의 시도는 실패해왔었던 게 아닌가 한다. 나에게도 상실의 시대의 미도리같은 자가 내 앞에 나타났으면 하는 바램은 미친 상상일까.

일주일에 한 번, 서로의 하루를 완전히 할애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매주 번갈아가면서 서로에게 자신에게 또는 자신을 위해 해 주었으면 하는 일종의 소원을 말하고, 상대방은 법적 물질적 한도 내에서 그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다. 내 생에 해 보고 싶은 모험이 있다면 주저않고 나는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은 왠지 외로운걸, 밤기차를 타고 바다라도 가고 싶어.” “비가 많이 오네… 비를 맞으며 흠뻑 젖은 채로 안아주지 않을래?” “나랑 같이 책을 읽어 주었으면 해.” “오늘은 서로에게 편지를 쓰자. 하루 종일.”

만약 그대도 이런 꿈을 꾸고 있고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나와 나이가 비슷하고 나만큼 센티멘털해서 무엇이든 감상적으로 즐길 수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을 만나 모험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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