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의 작별을 고한다.

이 글은 2002년 5월의 어느날 작성되었으나 정확한 일시는 잃어버렸습니다.

2 년 쯤 전에 사진 촬영과 감상 수업을 들었다. 그 땐 접사 촬영이란 것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자동 카메라로 접사를 시도해 사진을 망쳤었다. 인화소 점원이 뭘 찍은 거냐고 물었을 땐 그녀가 나를 경멸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자존심이 매우 상했기 때문에 그것을 제출하지 않았고 그래서 D- 라는 학점을 맞았다.

그 뒤 이번 학기에 재수강을 할 결심을 하고 Nikon FM2 를 구입했다. 상당히 우수한 성능의 수동 카메라였는데, 조금은 불편했지만 매우 강력하여 큰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고 얻어내는 결과물 자체는 그다지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은 Dynax 7 을 소유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본다. (여담이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기기를 바꾸는 사람들은 백날 찍어봐야 사진기 기종공부밖에는 못할 것이 확실하다.) 어쨋든 나는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사진이란 이미지를 창출해 내는 프로세스에 취해 그렇게 셔터를 눌러 왔다.

나는 내 필름의 많은 분량을 코스튬 플레이 사진에 쏟아부었다. 아마도 찍기가 수월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그 때로 되돌아 간다면 코스튬 플레이 행사장에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다. 내가 이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간단히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피상적인 인간관계이다. 내가 소위 코스계에 발을 디딘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일부러 추가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차례차례나를 친구목록에 추가했고, 그들중 80%는 내가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오래 또는 깊게 나눠 본 적은 정말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다. 그리고는 행사장에 나가 눈웃음과 겉치레의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어 돌아다니는 내 자신의 모습은 나 자신조차도 경멸할만한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난 왜 이 곳을 무의미하게 거닐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두번째는 사진사들의 이상야릇한 경쟁구도와, 디지털 카메라 위주의 분위기 때문이다. 노출이니 색감이 어떤사진은 샤프니스가 떨어지고 어쩌구저쩌구,…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할 수 있는 가장 하급의 평가를 하고 있다. 정말 질릴대로 질리고 지금은 끔찍하게까지 생각된다. 누가 사진을 이쁘게 깔끔하게 찍으라고, 그게 전부라고 가르쳤는가. 난 정말 그 이상한 분위기를 싫어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장비에는 엄청나게 돈을 쏟아붓는다는 것이 더더욱 나에겐 위화감을 주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중엔 친해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최소 반은 그렇다. 덕분에 사진에 완전히 질려 버렸고, 이제 나의 모든 사진장비를 정리한 뒤, 더 잘 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더 깊은 무언가를 해야 할 시간임을 느낀다. 애시당초 잘 맞지 않았던 일을 오기로 여기까지 끌고 왔던 것 같다. 아마도 그들과 나는 , 그것과 나는 이제 서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