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정확한 작성 시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생활이 평온을 되찾고 있다. 성호와 군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부천 환타스틱 영화제의 Cine-Rock Night Festival 을 관람했고, 유정이의 가슴어린 글도 읽었고, 또 ‘시간’이라는 묘약이 나를 안정시켜 주었다. 모두에게 감사하고 싶다.
요즘 연구실에서 녹차를 많이 마신다. 연구실이 에어컨 때문에 추워서 녹차를 마시면 냉방병에 걸리지 않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 약간의 카페인 덕분에 집중도 어느정도 잘 되는 것 같다. (비록 요즘은 나태해졌지만 ) 점심을 먹고 녹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는 것의 기쁨은 이루 말할 바 없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방학때는 수학, 영어, 알고리즘 공부를 하기로 했었는데, 논문을 읽느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논문으로부터 얻는 정보는 조금 단편적이어서 이 모든 기억들을 모아서 내가 무언가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리고 연구실에서의 연구라는 것이 다른 논문에 실린 여러 연구 결과를 다른 분야에 접목시켜보거나 논문끼리 섞어서 다른 실험에 적용해 보는 일이다 보니 창조 욕구를 떨어뜨린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은 실패확률을 높이기 때문에 섣불리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생활을 안정적으로 계속되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존재의 의문과 같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종류의 느낌이다. 어쩌면 성욕일수도 있고, 어쩌면 좀더 높은 차원의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를 사서 읽어보는 것이다.
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식해서인지 친근감있게 많이 썼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솔직해지기를 좋아했다. 나를 표현하고 싶었고, 나의 삶에 대한 생각들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 그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즐거운 기억이었지만 지금 보면 조금 유치하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삶이 그렇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만큼 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지 그 일부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 일부가 모여서 언젠가는 어떤 공통의 특징 따위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일기와 지금의 일기의 차만큼 달라져 있을까. 아무리 변해도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의 나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본래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차분한 것을 즐겼었다.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가야지. 그 생각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