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멀어져간다는 것

오랜만에 메신저로 말을 건넨 그 친구는 이제 나와는 다른 길을 향해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 사이의 끈이란 천천히 희미해져 결국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하긴, 아주 오랜만의 대화이기에 시간과 서로의 소홀함이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 바퀴 일 년 세계 여행을 하고 돌아 와도 아무 일 도 없었던 것처럼, 언제나처럼 나를 집에 초대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 하루를 만나도 그런 편안한 친구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 조금은 나를 외롭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것

나는 정말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새 이일 저일 벌려 놓고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할일은 많은데 여러가지 일들이 끼어 들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바람이 막 빠져나가기 시작한 풍선처럼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내 자신에 분노도 일고, 이렇게 된 내 상황도 한탄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을 대충, 적당히 넘기고 싶지 않은 성미 때문에, 분배된 시간이 만들어낸 하잘것 없는 결과물에 또 다시 격분하고 스트레스는 쌓여만 간다.

이대로 몇 달만 더 살면 다시 십이지장에 구멍이 나고 한 달 정도 원치 않은 휴가를 갖게 되지 않을까? (웃음) SafeHaus 투자 받으면 다른 일은 다 정리해야 겠다고 굳게 다짐해 본다.

‘amiryo.com’ 과 ‘상실의 시대’

아미료라는 곳에 머문지도 생각보다 긴 시간이 지났다. 한 번은 카페24.com 으로 이사를 시도한 적도 있지만, 돌아와 달라는 말에 지금도 아미료 서버의 호스팅을 받고 있다. 나는 루트 권한을 갖고 있는 한 명의 관리자이며, 글리미노드넷의 주인으로 이 곳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막상 나에게는 아미료란 곳에 대한 애착은 없는 것 같다. 그 때를 돌이켜 보아도 나는 역시 아미료라는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다들 무슨 생각으로 아미료에서 각자의 홈페이지를 꾸려 가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무제한에 가까운 메일과 홈페이지 용량이 메리트일까나. 아니면 아미료에 있는 사람들과의 어떤 보이지 않는 유대감? 어쩌면 아미료라는 상실의 시대에서 유래한 멋진 이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철저히 나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나는 무제한에 가까운 메일 용량을 gmail.com 에서 이미 확보했고, 홈페이지는 블로그만 할 거라면 이글루스로 옮기면 그만이다. 그리고 아미료의 입주자들은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고, 내가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도 그 중 소수일 뿐이다. 백업도 알아서 해야 한다. 거기다가 내가 운영자이니 뭔가 안되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미료의 또 다른 주인이자, 진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현우 군은 아미료에는 정작 홈페이지가 없다는 사실. 그는 네이버 블로그를 쓰고 있다. 난 100 번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의 블로그는 로그인 안하면 답글도 못단다. 답글 달기 위해 아미료 사람들은 네이버 사이트에 가입하고, 로그인을 해야 한다. 네이버 뉴스와 사전 빼고는 전혀 사용 안하는 나에게 로그인은 사치다.

어딘가에 소속해 있으면서 그 안의 사람들과 소통이 없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아미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많을 수록 나는 이 곳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마 사람이 네명을 넘어 가면 상당히 불편해 하는 것이 틀림 없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젊은 시절 상실의 시대가 가져다 준 감흥은 대단했지만, 그 감흥은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잃어버려간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버려서, 그것은 더 이상 멋지거나 아름답게 보이지가 않는 것 아닐까? 슬프고 애처로운 것이 아니라 있을 수 밖에 없고 또 있어야만 하는 상처를 덮는 딱지와도 같은 기분.

서버도 내 홈페이지도 아무 문제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 곳을 떠나고 싶다.

メトロ – orange pekoe

보사노바, 재즈, 그리고 R&B가 믹스된 팝 사운드로 신선한 자극을 안긴 혼성 퓨전 재즈 유니트. (라고 앨범 설명에 적혀 있다)

음악에 장르를 매기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하는 그들의 음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2집 ‘Modern Lights’ 의 ‘メトロ (Metro)’ 라는 곡이다. 도시의 상실감을 짧은 가사에 아름답게 담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감탄이 절로 난다. 긴 곡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 노래를 지금 끝도 없이 듣고 있다.

2004년 8월에 내한 콘서트도 했었다는데,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지 싶은 밴드 중 하나다.

어떤 신입 사원과의 전화 통화

Update: 다 읽으셨다면 저의 다른 글을 추가로 참고해 주세요.

어제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덜컥 집에 걸려온 전화를 통해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어판을 구독 신청했다. 텔레비젼은 커녕 뉴스도 잘 보지 않는 나에게는 사치인 듯 싶다.

오늘 아침 쓸데 없이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구글과 지식인을 통해 알아 본 결과, 아마도 YBM mbu 에서는 신입 사원들에게 스크립트를 주고 교육을 통해 내셔널 지오그래피 한국어판을 판촉하는 것 같았다. 스크립트의 전체적인 맥락은 다음과 같다:

  •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홍보를 하고자 하는 듯 이야기를 도입
  • 자신의 첫 번째 회원이 되어 주었을 때의 혜택 제시
  • 신입사원으로서의 자신의 안타까운 처지 어필
  • 구매를 촉발

돌이켜 보면 매우 교묘하여 마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잘 먹혀들어갈 것 같은 전략이다. 그렇다고 지금 YBM 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마 내가 YBM 을 욕하게 되는 시점은 실제 서비스에 불만족하거나 계약을 철회 및 해지하는 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궁금한 것은 아무래도 그 사람이 진짜 YBM 에서 일하는 신입 사원인가 하는 것과, 나에게 제공된 제안이 과연 저렴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녀는 생 초보 텔레마케터, 진짜 신입 사원 같았다. 쉴 새 없는 기침, 모르는 부분에서 상사가 불러주는 라이브 스크립트를 따라하는 모습, 제품 구매 결정이 이루어지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말투랄지.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직종상 관계는 전혀 없지만 포르노 영상의 섹스는 대부분 연기라 한다. 직업의식이 투철하면 그런 것도 가능해진다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쳐 그녀를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당장은 그저 믿을 수 밖에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에게 제공된 제안은 여러 가지 검색 결과 그렇게 싼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내셔널 지오그래픽 미국 사이트에서 구입할 경우 거의 덤핑에 가까운 가격 (권당 17 USD) 으로 1년 구독을 할 수 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사회 초년생 한 명 도운 것인지, 아니면 경력 만점의 텔레마켓터 또는 철저히 진화한 텔레마켓팅 시스템에 농락당한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진실이었다면 나와 생년월일이 같은 재미있는 친구 한 명 사귀었다고 생각하면 만족스럽지 않을까 싶다.

9 Comments

  1. 무파이 said,

    August 4, 2005 at 3:35 am

    저도 똑같은 전화를 받았었죠… 저두 회사 신입, 그녀도 신입 사원… 님께서 설명하신 네가지 요소를 다 갖춘 상황이었습니다.
    신입으로서 회사에서 받은 상태라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더군여. 그리고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쉰 목소리 그리고 애절한 느낌… 구입의사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 순간,,, 자신이 피아노 전공이고 목소리는 쉬었지만 얼굴은 이쁘다는 주제에서 벗어난 호소까지,,, 참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졌더군여… 분명 그녀가 신입사원이긴 했지만 예전에 그와 비슷한 사기를 당한 경험때문에 생긴 선입관때문에 전화를 끊고 말았습니다. 같은 상황,,, 거부한 저, 수락한 당신,,, 당신은 저보다 순진한건가요? 아니면 어쩌면 찾아올 만남에 대한 투자인가요…
    ㅎㅎㅎ 재밌네여…

  2. Trustin Lee said,

    August 4, 2005 at 3:36 am

    처 음부터 어느 정도의 능력으로 입사한 저는 신입 사원의 설움을 겪어 보지 않아, 마치 타국의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유가 좀 생뚱맞겠지만 고국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있다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국에 막 도착해 고생하고 있는 노동자를 대하는 느낌이랄까. 버벅이면서도 열정적으로 제품 하나를 팔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더군요.

    사기인지 아닌지, 모든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직감상 사실은 맞는 것 같더군요. 해당 사무실의 전화번호도 조회해본 결과 종로 2가에 위치한 국번이고, 카드 결제 정보의 회사 명도 동일하고, TM의 휴대 전화 번호도 본인 것이고요. 사기는 아닌 듯 합니다. (물론 환불 요구시 어떤 상황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본인이 직접 1:1 관리를 해 준다는데, 사실 잡지 구독하는데 딱히 관리해 줄 것이 있겠냐만은 잡지가 늦게 오거나 할 때 얼마나 잘 관리해 줄 지 궁금하군요. 서비스가 나쁘면 휴대 전화로 5분마다 압박을 가하는 등의 행위가 가능하니 그 점에서는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너무 가혹한가요? ^^)

    어쨌든 YBM mbu 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결국 신입 사원을 이용해 그런 식으로 영업을 펼치는 것이라는 점이 상당히 비굴해 보이네요. 필요한 사람들은 알아서 구독할 텐데 말입니다. 저같은 경우 이번달 목차가 상당히 재미있어 보인 것도 구매 결정에 한 몫 했으니까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지리적인 내용만 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더라구요.)

  3. 무파이 said,

    August 4, 2005 at 3:36 am

    그렇군여… 희승씨는 조금은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으셨군여…
    저는 가장 평범한 길을 걸어왔지요… 거의 대한민국 표준 남성의 삶을 걸어왔습니다.고등학교 대학 1년 후 봄 입대 재대를 거쳐 대학 졸업후 입사 -_-;
    대 학교 친구 대부분은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4년을 방황한 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너무 안일하게 살았지요. 그리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고 그 하고 싶었던 것이 님처럼 발전적인 것이었다면 제 삶은 조금은 나아졌겠지요…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관심도 없었고 흥미도 없었지만 어느 정도의 호감은 있었습니다. 막상 직업으로써의 일을 하게 되니 ( 강제성을 띄는… )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더군여… 빠르지도 않고 앞지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님이 예전에 느꼈던 즐거움을 전 이제야 느끼나 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길이 저의 길인지는 항상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남들만큼은 할 거 같지만 그 이상이 되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남들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열정과 욕심이 필요한 법이지요…
    그러나 전 매사에 욕심이 없어서 아직 머하나 제대로 이룬 건 없답니다.
    ,
    ,
    ,
    OKJSP 눈팅만 3년을 했어도 글 한번 남긴적 없었는데…
    여긴 조용해서 좋네여…
    저도 블로그 하나 장만할까 봅니다…
    좋은 블로그 장만 과정이나 팁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여…
    암턴 가끔 여유가 있으면 끄적되겠습니다…
    그럼…

  4. Trustin Lee said,

    August 4, 2005 at 3:36 am

    이렇게 답글을 달아 주시는 분도 계셔 기쁘네요. ^^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배워 취미삼아 오랜 시간을 거쳐 왔기 때문에 초기 커리어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들은 앞으로의 제 행동에 달려 있겠죠. 열심히 해야 할텐데 큰일입니다. ^^;; 시간은

목표 설정 방법론 ‘S.M.A.R.T’

출처: ZDNet Korea

SMART stands for…

Specific

구체적이어야 한다. (공부를 하겠다(X) -> 구체적으로 **** 책을 공부하겠다(O))
목표에 따라 하나의 구체적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을 서술한다.

Measurable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어느 정도 진전됐는지 평가할 수 있다. (잘 하겠다(X) -> 90점을 받겠다(O))

Agreed (또는 Achievable)

도달할 수 있는 혹은, 서로 협의가 된 목표여야 한다. 어느 한쪽에서만 유리한 목표가 아닌 양자가 협의 가능한 목표여야 한다. 이것은 연봉 협상이나 팀의 목표 설정에서 서로 합의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 쪽에서는 99%를 목표로 설정하고 싶어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70%를 목표로 설정하고 싶어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도달할 수 없다면 혹은 협의될 수 없다면, 이를 통해서 내 목표 달성에 방해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도 있다.

Realistic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태양을 가 보겠다. (X) TOEIC 현재 300점인데, 800점을 받겠다. (O))

Time-Limited

시간을 정해 두어야 한다. 평생 목표만 나열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가 붙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장기 목표는 따로 세운다.

3 Comments

  1. 쪼냐~* said,

    August 4, 2005 at 3:33 am

    이거 ITIL에서도 나오더라-_-;

  2. Trustin Lee said,

    August 4, 2005 at 3:34 am

    그, 그래? ITIL 이랑은 무슨 관계지;;?

  3. 쪼냐~* said,

    August 4, 2005 at 3:34 am

    IT SM을 훌륭히 수행하기 위해 목표도 중요하다는 뭐 그냥 참고사항으로 나와-_-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언가에 열중하고, 그 결과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 나를 짜증내게 하는 모든 일들을 잊는 것. 한마디로 약간의 단세포화라고 할까?

Alex 는 죽음의 문턱인 중환자실을 거쳐 병원에서 돌아왔고, 덕택에 프로젝트는 다시 활기를 띄고 있다. 나는 보고되는 버그를 하나 하나 수정하고 메일링 리스트에 올라오는 질문에 답변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곧 대대적인 릴리즈가 있을 예정이고, 그 전까지 나는 MINA 튜토리얼을 작성해 JaxMagazine에 기고해야 한다. 할 일은 이렇게 끝도 없이 있고, 나는 그것을 묵묵히 해치워 가고 있다.

어떤 일이든 이렇게 차곡 차곡 수순대로 진행되기란 쉽지 않은데, 이렇게 적절한 타이밍으로 여러 안좋은 일들을 잊고 열중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신촌 아이리버 판매점

신촌 아이리버 판매점에서 최근 물건을 구입했다. 사실 인터넷으로 구입했다면 훨씬 싸게 구입했을 물건들인데 귀찮아서 가까운 오프라인 매장을 이용한 것이다.

이 곳은 한 명의 여자 점원이 지키고 있는데, 매우 불친절하다. 사람이 많아 친절치 못한 것을 양해해 달라는 무성의한 글씨가 적힌 사무용 A4 용지가 벽에 떡 하니 붙어 있지만 사람이 한 명일 때나 세 명일 때나 그 태도는 다르지 않다. 몇 가지 문의를 해 본 결과 퉁명스러운 대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물건을 사러 왔냐고 질책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 물건을 사지 않았으면 좋았는데, 사버렸지 무어야. 박스에 시디 플레이어를 넣어 줄 때 리모콘이 다른 것 같아서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며칠 듣다가 방금 떠올라서 설명서를, 그것도 일본어로 된 설명서를 애써 천천히 읽어 보았더니 내가 받은 리모콘과는 다르다. 별 미친 여자를 다 보겠네. 그렇게 똑똑해서 지금 나한테 거짓말한거야?

다시 만나 리모콘도 교환 받고 그 툭 튀어나온 주둥이와 개구리를 닮은 눈알을 어떻게 빼든 밀어 넣든 하려면 그곳엘 가긴 가야 할텐데, 그 여자를 다시 내 눈앞에 보러 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화가 치밀고 짜증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열을 내면서도 잠시 후에는 이 빌어먹을 시디 플레이어로 근사한 음악에 빠져 행복해할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우습다.

PS: 2005년 8월에 생긴 공식 iRiver Zone 과는 무관합니다.

누군가를 욕한다는 것

누군가를 욕해서 좋은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다. 비난을 받는 그 어떤 대상이든 간에 어떤 다른 시각에서라면 그 대상을 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나 ‘사정’ 이 있다는 것이다. 그 대상들은 어쨌든 하나같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절친한 친구이고 또 자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맘 편히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는 넓은 아량도 나에게는 없다. 화내고 욕해 봐야 소용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결국 이렇게 화를 내고 또 낸다. 짜증을 부리고 스트레스를 받고, 그 대상을 문드러뜨리고 싶을 정도의 분노를 마음 속에 가둬 두고 망각이라는 시간의 은총을 기다린다.

세상에 어느 누가 고가의 물건을 사러 가서 그런 100년 전에도 보기 힘들었을 불친절과 맞딱뜨리겠는가. 거기에다가 가격이 비싼 것을 알면서도 오프라인 매장임을 이해하고 구입한 물건의 구성품을 사기당했다. 이것은 정말 도저히 내 상식 밖의 일이라고밖에는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런 가게가 21세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소프트웨어 개발사간의 업무 효율의 차이가 최대 10배까지 난다는 사실보다도 충격적이다. 그 가게는 벌써 몇 년 전에 원폭을 맞고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야 했다.

그래, 누군가를 욕한다는 것은 이렇게 지저분하고 복받치는 일이다. 앞으로는 이럴 일이 없다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