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째 나를 바치다

Keyco – SPIRAL SQUALL

그녀의 눈동자보다 긴 시간동안 누군가의 눈동자를 깊이 바라본 일은 없다. 끝없이 빠져들어갈 듯 뻗어내리는 홍채의 갈색 무늬와 그 주위를 감싸는 깊은 원은 나를 멈출 수 없게 한다. 나의 모습이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비치고 있음을 확인할 때 내가 그 속에 들어 왔음을 확인한다. 내가 그녀 바깥에 있는지 안에 있는지 모호해질 정도로 그렇게 그녀의 눈동자는 깊다.

2004년 2월 17일, 그런 깊은 눈을 가진 그녀와 같은 하늘 아래 있음을 알게 된 지 100일째다. 같은 하늘도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다 가올 수 있구나 싶다.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행복하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과 사랑도 나는 잘 해 내고 있다. 오히려 일이 가져오는 힘든 순간 순간마다 사랑은 대표적 수식어인 ‘묘약’에 어울리게 나의 어려움을 말끔히 씻어내려 주었다. 정말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자랑하고 싶은 그녀의 편 안한 마음씨에 있다.

이제 백 번째 하루가 지나고 백 한 번째 하루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을 위해 스스로를 헌정할 것이다.

걱정의 말들이 어색해질 때

이수영 – 꿈에

누군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을 알 수가 없어서 당황할 때가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자책감이 드는 것이다. 누군가의 심정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저 마음으로 받아들여 나의 일처럼 여기고 있지만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무어라 할 수가 없는 상황.

이럴 때 그저 예전과 다름없는, 어떻게 보면 항상 하는 걱정의 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듣는 사람은 어떨 지 몰라도 나에게는 견디 기 어렵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란 마치 가슴이 눈물로 울컥거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는 애처로운 상황과도 같다.

어쩌면 이렇게 애써 표현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당장 만날 수만 있다면 단 한 번의 따뜻한 포옹으로 모든 말들을 대신할 수 있을테니까.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에 표현하면 할 수록 어색해지는 걱정의 말들. 그만두기엔 너무나 아쉽고 계속하기엔 너무나 생경하다.

나만의 방을 꿈꾸며

Pizzicato Five – Happy Sad

부모님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일찍 집에 들어와야 한다고, 식사를 제때 챙겨먹어야 한다고. 수백번을 들어온 그 말들을 들으면 이젠 화가 난다. 속이 아파서 내일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는 말에 ‘그러길래 일찍일찍 들어오고 그랬어야지’ 하는 투의 말들에 대한 나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우리는 말다툼을 했고 그것은 언제나처럼 내가 철이 덜 들었고 부족한게 없이 자랐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로 불 쾌하게 끝났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가족과 함께 한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많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나의 지혜로운 연인은 조언했다. 부모님들은 기성세대로서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더 넓은 시야를 갖고 나를 돕는 그녀에게 감사하고 싶다.

하지만 …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문제일까.

철이 덜 들어서 그런다고 말하는 것이 싫다. 나를 어린 아이로 보는 것이 정말 싫다. 나를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아 주지 않을 때마다 부모님의 애정은 나에겐 스트레스이며 마음에서부터 몸까지 집을 떠나버리게 만든다. 내가 정말로 피곤하고 힘든 것은 회사 일 때문도 아니고 집이 멀어서도 아니다.

가족사이의 따뜻한 마음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느낄만 하면 끊임없이 가이드라인이 제시되기 시작한 다. 자격증은 빨리 따야 하고, 일본어 학원은 왜 계속 안다니는지, 제발 집에 일찍좀 들어오라는 말들. 세상에 해야 할 일은 많다. 모두 하나같이 소중하고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일들이다. 나도 일본어 공부를 매일같이 하고 자격증을 5개 정도는 갖고 있으면 좋겠다. 일찍 집에 들어와서 매일 숙면을 취하고도 싶다. 하지만 나는 다 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그 중에서 선택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그 권리가 전혀 존중되지 않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집을 떠나는 것은 나의 숙원이 되어버렸다. 나는 오늘도 꿈꾼다. 진짜 내가 만들어낸 시공을.

아니, 당장이라도 짐을 싸기 시작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