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흥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전화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떨리는구나… 이번엔 정말 받을거야… 어떻하지?

에잇 모르겠다! 하고 전화를 걸고 신호음이 세 번이 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는 사람은 정 장 자 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는 자기가 장자라고 하며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얼마 전에 조심스럽게 적어 보았던 시나리오에 따라서 말을 이어 갔다. 생각외로 잘 되는 것 같다. 그녀는 한국어를 좀 못하는 것 같고, 나도 일본어를 좀 못했던 것 같다… 한숨 푸욱…;

그녀는 나를 한번 만나 보고 결정하고 싶다고 한다. 이거 면접인가? 랭귀지 익스체인지하는데도 면접을 보네 하핫… 뭐 좋다고 하고 약속을 정했는데, 이 때부터 나의 일본어가 심각하게 버벅이기 시작했다. 서로 답답답답… 두둥…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알아들어서 토요일 오후 세 시로 시간을 정하고, 장소는 그녀가 정했다. 난 그녀가 신촌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쪽지를 우리 학교 공대 게시판에서 봤으니까) 대학로… 란다. 난 대학로 정말 거의 안가봐서 잘 모르는데 참… 그래도 어쩔수 없지! 하고 우린 스타벅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이 정해지자 그녀는 황급히 ‘안녕!’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매우 쫄아 있었던가, 답답해서 그랬던 것 같다. 하긴, 나도 어제 후다닥 두 번이나 끊었으니 그 심정을 이해할 수 밖에.


여기는 꿈의 세계 피곤한 몸으로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SES 가 지나간다… 바다를 이렇게 가까운데서 보다니, SES 가 나를 힐끔 쳐다보고 수다를 떨면서 지나간다. 그러나 사인해달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일반인으로서의 한가로움을 한껏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왜 이 꿈을 꾸게 된 걸까? 이지현양 분석바람 -_-;


일어나니 11시. 경남님을 2시에 역삼에서 뵙기로 해서 아침을 먹고 곧바로 나갔다.

2시가 약간 넘어서 경남님을 만나서 점심을 먹고 회사로 갔다. 회사 이름이 이저드 란 곳이었는데, 대구(대전?)에서 있다가 서울에서 올라온지 얼마 되질 않아서 공사가 한창인것 같았다. 아랫층에는 PanWorld Net 이라는 유명한 회사가 있는데, 경남님의 형님이 운영하는 회사라던가? 하여튼 여러모로 관심이 간다.

다만 찔리는 것은, 원래 Neximo 측과 다시 계약을 해서 이번엔 월급을 받으며 그곳을 위해 일하려고 했었는데 이저드에서 일하려고 학업 때문에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한 것…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분나쁠까? 난 잘 모르겠다. 내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시간이 말해주겠지. 다만 이번에 하게 된 일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것 밖에는 달리 변명이 없구나.

이저드에서 만나기로 한 분이 안계셔서 별로 한 일 없이 사무실을 나와서 신촌으로 갔다. 컴퓨터실에 가서 학교 숙제를 하려고 하는데 띠리리리리… 어랏 호석형이다. 한양대에서 당구 결투신청이다 하핫 -_-; 공부보단 역시 당구가 우선인지 조금 고민하는 척 하다가 한양대로 갔다. 같이 저녁먹고 당구쳐서 3:2 로 나의 승리 -_-v

침착해 지는 법을 배워서인지 패배가 싫지는 않지만 승리가 그래도 좋긴 한가보다.


오늘도 하루 분의 일기를 썼다. 내가 얼마나 하루를 감흥없이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일들이 일상을 만들어내지만, 그 속의 우리 감정은 너무나 단순하지는 않은지? 그곳에서 하루에 적어도 하나 쯤은 무언가 얻고 느껴야 하지는 않은지?

내 자신을 반성해 본다.

PS: 그림은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정훈이네 홈페이지에서 슬쩍. 뭔가 심각한 사색, 허무, 추억 따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